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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199)화 (198/366)



〈 19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목덜미를 물린 순간 가장 먼저 고개를 치켜든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만큼 뜬금없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설마 이게 끝이야?'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한 즉시, 그럴 리 없다고 내심 부정을 해봤다.

고작해야 목덜미를 깨무는 것에 불과한 일이 특별한 행동일리 없으니까.


차라리 '악!'하고 비명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면 순간적으로 짜증은 났을지언정 이렇게까지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면 분명 흉터가 졌을테니까. 흉터를 표식이라고 보기 애매한 건 사실이지만 어찌되었건 그렇게하면 뭐라도 오랫동안 남는 게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해 지금 바이올렛이 하고 있는 행동은 잘해봐야 이빨 자국 정도만을 남길 뿐이었다.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릴 것이고 말이다.

아니, 이 정도면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일지도 모르지.

고작 몇 시간만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어떻게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위한 표식이  수 있는 걸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 의문을 해결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나마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찰나였다.


바이올렛의  안으로 들어가있던 목덜미 쪽이 뜨끈뜨끈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목덜미가 아니라 그곳을 슬며시 짓누르고 있던 바이올렛의 이빨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맞닿아있는 곳을 통해 뭔가가 흘러들어오는 듯한 감각이 엄습해왔다.

그 감각이 참으로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으.."


해서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대고 있자니 그런  몸부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이올렛이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어 의자 안에 갇혀있던  몸을 꾸욱하고 짓눌러왔다. 의자를 지탱한다고 당장 손을 쓸 수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몸부림을 봉쇄해 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레이시아의 것보다는 작고, 앨리스의 것보다는 살짝 큰 것이 몸을 꾸욱하고 짓눌러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하니 열심히 내 목덜미를 잘근거리고 있던 바이올렛의 얼굴 쪽에서 '흐흫..'하고 기꺼워하는 기색이 듬뿍 담긴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런 식으로 뭔지 모를 것을 주입하는 과정은  뒤로도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언제까지고 내 목덜미를 베어물고 있을 것 같았던 바이올렛이 마침내 그곳으로부터 입을 떼어낸 것은 처음으로부터  15분여가 지났을 때였다.


마침내 그 특별한 행동이라는 것이 끝이 난 걸까.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따뜻하고 축축하면서도 말캉한 것이 바로 조금 전까지 날카롭기 그지없는 바이올렛의 이빨에 짓눌리고 있었던 부분을 조심스레 훑어댔다.

표시가 제대로 새겨졌는지 그런 식으로 확인이라고 하려는 것일까.


그보다는 그냥 내게서 나는 맛을 즐기는 것만 같았다.


그 증거로 내 목덜미를 혀로 핥짝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 그래도 거칠었던 바이올렛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내 목덜미에서 나는 맛이 그녀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독적으로 느껴지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살짝 까슬까쓸한 느낌을 주는 것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훑어대는데 그럴 때마다 꼬리뼈부터 시작된 오싹오싹한 감각이 척추뼈를 타고 쭉 내달리며 신발 안에 숨은 발가락이 제멋대로 오그라들었다.

그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꽤나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아프거나 그런 거면 익숙해서라도 견디는 것이 더 수월했을텐데 기분 좋은 느낌이 쉬지않고 몰아쳐대는 것이 영 낯설게 느껴졌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제까지고 내 목덜미를 핥고 있을 기세라서 슬슬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맛을 봤다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슬슬 바이올라가 돌아올 타이밍이 된 것인지 바이올렛이 바짝 들이밀고 있던 얼굴을 조심스레 뒤로 물렸다.

대체 얼마나 격렬하게 핥아대면 입술이 저렇게 번들번들하게 변하는 걸까.

도톰하게 부풀어오른 분홍빛 입술 위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것이 투명 립글로스라도 바른 듯 했다.


아무 미련없이 뒤로 물러나길래 충분히 만족해서 이성을 어느 정도 회복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엄지를 이용해 입술을 적시고 있던 것을 무심하게 훑으며 특유의 야성미를 살짝 흩뿌린 바이올렛이 가슴 쪽에 달려있던 포켓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날 향해 내밀었다.

이 타이밍에 손수건을 내밀었다는 건 목덜미에 묻은 걸 닦으라는 의미겠지.


솔직히 축축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기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에 분개한 척 바이올렛을 노려보면서도 그녀가 내민 것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묻지 말아야할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축축한 느낌이 드는 곳을 움켜쥔 손수건을 이용해 벅벅 닦아낸 뒤, 그것을 그대로 바닥에다가 내던졌다.


왠지 그렇게 행동해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물론, 그로인해 바이올렛이 어느 정도 자극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인지하고서  행동이었다.

헌데 의외로 바이올렛은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보며 잔잔하게 웃어댄 것이 그녀가 내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너무 그렇게 화만 내지 말아요. 그쪽한테도 나쁜 일은 아닐테니까."


그러더니 의미를 알  없는 마을 지껄이면서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바닥에다가 내팽개친 손수건을 주워들어  주머니 안으로 챙기는게 아닌가?


시녀를 시켜서 주워도 됐을텐데 굳이 직접 몸을 굽혀가며 손수건을 주워든 건 따로 보관해뒀다가 나중에 사용하기 위함인걸까.


순간적으로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이올렛이 지껄인 의미모를 말쪽이 더 신경쓰였다.


화만 낼 일은 아니라니.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귓가로 울려퍼진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몸이 그렇게 되고 나니 원래 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선뜻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고 침묵하고 있자니 바이올렛이 은근슬쩍 손을 뻗어 내 볼을 살살 쓰다듬어댔다. 물론, 허락하지 않고 거칠게 쳐냈다.


그럼에도 바이올렛은 얼굴 위로 내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예전만큼만 움직일  있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텐데.."

내게 손찌검을 당해서 빨갛게 변해버린 손을 뒤로 슥 거두면서 그녀가 나로 하여금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겠죠. 아닌가요?"

"..."

"그런 의미에서 '그건' 그동안 당신이 느꼈을 그리움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줄 수 있을 거에요."


 타이밍에 그거라고 함은 역시  목덜미에 제멋대로 새겨넣은 걸 말하는 거겠지.

얘는 내꺼라고 표시해두기 위한 수단인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그런  아니었던 걸까. 저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런 거겠지.


'이게 대체 뭐길래..'

살짝이지만 신기한 마음에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올렛의 입 안으로 들어가있던 곳을 손가락으로 훑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런 내 행동을 확인한 바이올렛이 안 그래도 호선을 그리고 있던 입꼬리를 조금  위쪽을 향해서 말아올렸다.


"우리 일족은 반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일정 부분 나누어줄  있거든요."


그리 말하고는 슬쩍 덧붙이기를 일족이라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원류라 불리우는 직계 혈족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이들만이 가능한 일이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표식을 새겨야 하지만요."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목에 새긴 것이 바로 그거다.


바이올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뭐, 엄청나게 거창한 의식을 거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앙하고 깨문 것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점같은게 그랬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믿지 못하는 척을 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지껄인 거냐는 식으로 표정을 살짝 찡그려준 뒤 눈빛 속에 경멸이라는 것을 담아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반응이랍시고 돌아온 것은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해요. 당연히 그렇겠죠."


자신이 나였다고 해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며 은근슬쩍 동의하는 듯한 발언을 덧붙인 바이올렛이 기회를 요구해왔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하는 그녀의 발언에도 나는 찡그리고 있던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는 역으로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하냐고.


"그야, 이건 당신에게도 기회이기 때문이죠."


옛날의 무위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되고 나서 한층 더  무시하기 시작한 년놈들에게 한  먹여주고 싶지 않느냐.


제법 달콤하게 느껴지는 속삭임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저 말에 넙죽 고개를 끄덕였겠지.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 바이올렛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못 이기는 척 수락의 뜻을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한 번 뿐입니다."

그 이상은 허용치 않겠다고 잽싸게 덧붙이니 바이올렛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는 것처럼.


그러더니 손을 들어올려 제 코를 감싸쥔 바이올렛이 이내 코를 감싸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어 그것을 이용해 내 코를 움켜쥐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바이올렛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와 시선을 맞추며 눈을 찡긋해보인 그녀가 이내 내게서 손을 떼어냈다.


그와 함께 막혀있던 것이 뚫리며 그 안으로 뭔가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순간 깨달았다.

바이올렛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이게 바이올렛이나 바이올라같은 이들이 코를 통해 접하는 감각일까.


감각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은 뭐라고  꼬집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기묘하면서도 신비했다.

다른 감각의 힘을 빌리지 않고 후각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파악하는게 가능할 것 같았다. 그만큼 코가 민감했다.

그래서일까.

묘한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한 여성만이 낼  있는 그런 야릇하기 그지없는 냄새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이올렛에게서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내게서 뿜어져나오는 페로몬에 취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침착해보이는 모습이더라니 흥분한  숨기고 있었던 걸까.

바이올렛의 다리 사이에서 풍겨져나오는 야릇하기 그지없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문득 그녀의 치마 아래의 풍경이 굉장히 궁금해졌다.


내가 자신이 꽁꽁 숨겼던 것의 냄새까지 맡고 있다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바이올렛은 어느새 득의양양한 미소를 얼굴  가득 베어물고 있었다.

그런 얼굴을 한채 그녀는 날 향해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어떠냐고.

"신기하죠?"

맛보기는 이제 끝났다는  그녀가 다시금 내 코를 감싸쥔 순간, 코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것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에 살짝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바이올렛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목적이 뭡니까?"


"목적이라뇨?"


"내게.. 힘을 빌려주려고 하는 이유가 뭐죠?"

이제 곧 교류전인데 내가 빌려준 힘을 이용해 제국 쪽에서 내보낸 참가자들을 찍어누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냐.


대충 그런 의미로 던진 물음이었다.


아니면 혹시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겠냐만은 가능성은 충분했다.


평소의 바이올렛이었다면 그런 실수같지도 않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겠지만 아까 민감해질대로 민감해진 코를 통해 확인했듯 지금 그녀의 상태는 명백히 정상이 아니니까.

그걸 억누르는데 신경을 쏟기 바빠 다른 곳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내뱉은 말이 주변에 울려퍼진 순간, 바이올렛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미소였으니까.


그것도 그냥 미소가 아니라 가소로운 짓을 해대는 귀여운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미소라고 해야할까.


살짝 다르게 말하면 절대적인 자신감이라  수 있는 것이 날 바라보는 바이올렛의 얼굴에 깃들어있었다.


그런 얼굴을 한채로 그녀는 날 향해 말하고 있었다.

무슨 변수가 끼어들던 간에 교류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은 제국이  거라고.

그러니 설령 내가 너한테 힘을 빌려준들 그로인해 최종 결과가 바뀌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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