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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195)화 (194/366)



〈 195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순간 울려퍼진 소리가 워낙 컸다보니 그쪽으로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쳐다봤을 뿐이다.

나도, 바이올라도 말이다.

정말 별 뜻 없이 무슨 일인가하는 느낌으로 쳐다본 거였는데..

돌아온 건 평소같지 않은 반응이었다.


평소의 바이올렛이었다면?


나나 바이올라가 쳐다보든 말든 하등 신경쓰지 않고 제  일을 했을 거다.

헌데 지금 내 눈에 비친 바이올렛은 뭐랄까..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쪽을 향하고 있는 나와 바이올라의 시선이 형체를 갖추기라도  것마냥 몸을 흠칫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효과가 없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산사태를 앞둔 산에서 흙 부스러기가 떨어져내리는 것처럼 그녀의 표정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바이올렛을 그렇게 만든 걸까.

그건 곧 알  있었다.

바이올라는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바이올렛의 얼굴 위로 드리워지고 있는 난감함이라는 이름의 그늘은 그녀의 콧망울이 움찔움찔거릴 때마다 짙어지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깨달았다.

막혀있던 그녀의 코가 향초의 힘으로 인해 뻥 뚫렸다는 것과 그렇게 뚫린 곳으로 뭔가가 흘러들어갔다는  말이다.

'역시..'

카트린느가 만든 것이라고 해야할까.

꽤나 확실한 성능에 속으로 흡족하게 웃고 있자니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던 바이올렛또한 마침내 결단을 내린 것인지 그대로 찢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꽉 움켜쥐고 있던 책을 옆에 딸린 테이블에다가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나와 바이올라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서 아까와 같은 당혹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의 바이올렛이라고 해야할까. 그녀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이 다시금 그녀의 얼굴 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

그럼에도 거기서 평소답지 않은 아슬아슬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에 맞춰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이었다.


야성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바이올라의 것하고는 다르게 뭔가 절제된 것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던 바이올렛의 호박빛 눈동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무언가 때문에 크게 당황한 듯한 기색과 그에 맞춰 깨어나기 시작한 무언가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늑대의 눈동자가 저러할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를 마주한 것만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자니 나와 바이올라를 향해 다가오던 바이올렛이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애매하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애매한 거리였다.


우리 둘과 바이올렛 사이의 거리가 그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마치  이상 접근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 억지로 걸음을 멈춘 것같은 느낌이 나와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으로부터 물씬 풍겨왔다.

내게는 그랬는데 바이올라에게는 또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아무래도 나하고는 다르게 찔리는  있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보니 평소같지 않은 언니의 행동에서 뭔가 불길한 예감같은 거라도 받은 걸까.

아까  향해 내던지고 있던 흐뭇하고 흡족한 시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바이올렛의 눈치를 강하게 보는 듯한 기색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 상태로 연신 언니인 바이올렛의 얼굴을 힐끔대는 바이올라의 모습은 '들켰..나?'라고 말하는  했다.

평소 바이올렛이었다면 그런 동생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테지만..

지금 그녀는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서 다른 데까지 신경  여력이 남지않은  했다.

동생이 요상한 행동을 보이든 말든 제  일을 하기 바빴으니까.


자신은 이만 돌아가보겠노라고 나와 바이올라 앞에 와서 선 바이올렛이 말했다.


"응? 벌써?"

"..응,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각나서."

바이올라는 그런 언니의 발언에 의아해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떠나겠다는 뜻을 밝힌 언니를 붙잡으려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모양.

겸사겸사 감시역이나 다름없었던 바이올렛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더는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지니 바이올라의 입장에서는 굳이 붙잡을 이유가 없었겠지.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바쁜 와중에도 자신이 떠나는 걸 반기는 동생이 살짝 못 미덥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돌아가는 시간에 늦는 일 없도록 주의하고."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리면서도 저렇게 덧붙이는 걸 보면.


물론, 바이올라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언니의 발언이 못마땅하다는 듯 치이하고 살짝 혀차는 소리를 내며 바이올라가 슬며시 입술을 삐죽거렸다.

"내가 애야? 걱정하지마."


그러니 얼른 가보라는 것처럼 바이올라가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적거렸다.

그렇게 되니 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 건지 바이올렛이 그대로 온실을 빠져나갔다.


웃긴  처음까지만 하더라도 서두르는 느낌이 강했던 바이올렛의 움직임이 온실의 출입구와 가까워질수록 느릿하게 변해갔다는 점이다.

그러더니 아예 출입구 앞에 도착하고서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마치 이 자리를 떠나는 걸 아쉬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걷던 사람이 갑자기 멈춰서버린 꼴이니 주변을 지키고 있던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온실을 떠나기로 결정한 바이올렛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과 뒤로 따라붙었던 시녀들이 의아해하는 기색을 내비췄다.

그걸 느끼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출입구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던 바이올렛이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올라의 꼬리를 만지는 척을 하며 온실을 빠져나가는 바이올렛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이거 참..'

효과가 너무 세도 문제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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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시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가 막 돌아온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몸이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릴 것만 같아서 황급히 손을 뻗어 온실의 벽을 짚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우려했다. 방금 자신의 모습이 혹시 온실 안에 있는 이들에게 보이지는 않았을지를 걱정했다.

그걸 걱정하던 것도 잠시, 스스로가 그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꼭..

"황녀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휘청이다가 말고 그대로 굳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는지 주변에서 걱정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그 목소리는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좀 조용히 해줬으면 했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 판국에 저렇게 쨍알대는 소리까지 들어버리니 머리가 쿡쿡 쑤시는 느낌이었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언제까지 쨍알댈 기세라서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인지 시녀들이 의원을 데려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부산을 떨어댔지만 허튼 소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일축했다.

"아니면 혹시 그 향초가.."

그 와중에 누군가 의심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췄던 것은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분명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휘청거리니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이안이라는 사내가 가져다 준 향초는 그가 설명했던 역할에 충실했을 뿐, 뭔가 해를 끼치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거기에 뭔가 수작을 부려놓은 거라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시녀나 바이올라, 하다못해  이안이라는 사내에게도 무언가 증상이 나타나야만 했다.

헌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향초는 본인이 빚어진 목적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래, 최선을 다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결과까지 최선이라는 법은 없지만 그 향초만큼은 달랐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수를 써도 나아질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코병을 말끔하게 해결해버렸으니까.


콧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냄새를 아예 못맡는 건 아니었다.

이 콧병이라는 것이 참 특이해서 시기에 따라 심해지기도 하고 딱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제멋대로 괜찮아지기도 하니까.

괜찮을 때는 그런 걸 앓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 바로 자신이 앓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특히나 심해지는 것이 바로 요즈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절기쯤이라고 해야할까.

일교차가 심해질 때마다 코병의 상태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래도 제국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제국은 기본적으로 기후가 온난한 편이라서 일교차가 크게 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교국에 도착한 순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만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피로가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제국과 비교하면 한결 서늘한 편인 날씨가 문제였던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갑자기 상태가 확 나빠져버린 바람에 교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쭉 코가 꽉 막힌 상태였다.

물론, 따로 손 쓸 방법도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에 코병을 치료했겠지.


가진 거라고 해봐야 정말 심각한 상황을 대비한 임시방편 몇 개가 고작이었다.


그 마저도 쉬이 쓸 수 없는 것이라서 할  있는 건 참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까지고 꽉 막혀있을  같았던 것이 어느순간 뻥하고 뚫려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향초 특유의 약초향을 맡고 나서부터 그랬던  같다.

허나 그에 기쁨을 느끼거나 놀랄 겨를같은 건 없었다.

언제 막혀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뻥하고 뚫려버린 곳을 통해 같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 때문이었다.

그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자신을 온실 밖으로 몰아내버린 그것의 존재감이 지금도 선명한데 막상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보려고 하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달콤함.'


그래 그것 말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신은 그동안 동생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운명의 상대니 뭐니하는 것들 말이다.

믿지 않은 이유?

간단하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운명의 상대가 눈앞으로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니.

대체 무슨 근거로 그걸 판단한단 말인가.


그래서 운명의 상대니.. 달콤한 냄새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면서 그 이안이라는 왕국 출신의 남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동생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동생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봐줄만한 외모와 우연찮게 체향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알게되었다.


틀린 건 동생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 몸에서 그렇게 맛있을 것 같은.. 아니, 좋은 향기가 날  있는 걸까.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그게 살짝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강렬한 향기였으니까.

계속 맡고 있으면 그대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황급히 온실을 빠져나왔던  그 때문이었다.

거기서 계속 그 향기를 맡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 이안이라는 남성을 덮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향기를 맡으면 맡을수록 그것이 속삭이는 듯 했다.


옆에 있는 것을 치워버리고 얼른 그를 차지하라고 말이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그 이안이라는 남성의 옆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선객이 아니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런데 밀어낸다?

그리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야 굳이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느낀 것을 사실대로 밝히기도 좀 그랬다.


'믿어주면 다행이지만..'

솔직히 말해 그래줄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금의 상황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필이면..'

쌍둥이라고 해서 이런 부분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는데..

'아니지 잠깐만..'

혹시하는 가정이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은 그런 식으로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와중이었다.

머릿속으로 반짝하고 떠오른 것에 복잡하기 그지없는 머릿속 때문에 일부러 느릿하게 옮기고 있던 발을 재촉했다.

그게 사실일지 아닐지 시급하게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꼈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본국으로 연락을 넣을 필요가 있었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그걸 가능케해줄 수단이 자신의 지척에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해서 짐을 모아놓은 방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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