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89)화 (188/366)



〈 18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마른 오징어도 어떻게 어떻게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고 하더니만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 듯 했다.


뚜껑을 연 것을 아무리 쥐어짜내봐도 나오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를 째기로 했다.


카트린느한테 실험용으로 쓰이는 손가락만한 크기의 나이프를 빌려서 가죽 주머니에다가 푹하고 찔러넣었다. 주머니가 비싸보이는 거였다면 조금 주저했겠지만 잘 만들어지긴 했어도 귀해보이진 않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찔러넣을 수 있었다.


애초에 주머니가 귀한 거였다면 돌아갈  챙겨가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찔러넣은 것을 쭉 잡아내려서 가운데 부분을 째준 다음에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어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주머니가 뒤집어지며 어제 꿀떡꿀떡 삼켰던 것들의 잔해가 군데군데 묻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안에 그런 게 담겨있었구나하고 간신히 알아볼  있을 정도?


"얼마 없긴 한데.."


이 정도로 될까 싶어서 벌려놓은  카트린느를 향해 내밀어보이니 그녀가 내쪽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손에  건 대체 언제 챙겨온 걸까. 내쪽을 향해 고개를 들이민 카트린느의 손에는 샘플같은  채취할 때나 쓸법한 길다란 집게와 실험용 페트리 디쉬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주머니 안쪽에 묻어있던 것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것도 잠시, 카트린느가 주머니 안에 달라붙어 있던 것들을 집게를 이용해 하나하나 떼어내 수집하기 시작했다.


카트린느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유리로 된 납작한 접시 위로 파란색의 물컹물컹한 잔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둔기같은 것으로 지금 카트린느가 주워모이고 있는 것하고 똑같은 색을  슬라임을 내리쳐서 죽인 적이 있는데 그때 남았던 흔적이 딱 저랬었다.


그러한 기억을 떠올린 덕분일까. 다시 한 번 저 푸르댕댕한 것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다행히 그때하고는 다르게 지금 내 앞에는 그런 내 의문을 해결해줄 수 있을만한 식견을 가진 이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상황.

해서 곧장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내가  때는 거기서 거긴데 카트린느 입장에서는 또 다른 모양인지 그녀는 주머니 안쪽에 남아있는 흔적을 접시 안으로 주워모으기 바빴으니까.


덕분에 접시 안의 풍경은 더욱 그로테스크해졌다.

아까는 뭔가의 잔해같았다면 지금은 누군가 과일푸딩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으깨놓은 듯한 모양새라고 해야할까.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모아놓은 것들이 푸릉푸릉거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음..'

어제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뱃속에다가 밀어넣을 생각을 한 걸까.


아무리 약기운과 피곤함에 취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저건 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대로 샘플 수집을 끝내기엔 아쉽다는 듯 손에 든 집게를 이용해 주머니 안쪽을 벅벅 긁어대던 카트린느가 쩝하고 입맛을 다시며 손에 든 것을 뒤로 거두었다. 그러면서도 시선만큼은 여전히 주머니 안쪽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만큼 집착어린 시선이었으니까.

아무튼 슬슬 팔이 아파오던 참이었기에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끝났어요?"


"그래."


그 말을 들은 즉시 그녀를 향해 들고 있던 팔을 밑으로 내리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여태껏 간직해온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에요?"

어젯밤부터 간직해온 의문을 드디어 해결할  있을 거라는 내 기대감은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물론, 보답을 받지도 못했다.


이어진 카트린느의 답변이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그대로 짓밟혀 버렸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몰라."

대답이랍시고 돌아온 게 저랬으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은 모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으응?'하는 표정으로 카트린느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의외였으니까.

내 앞에서는 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게 살짝 민망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양 뺨을 민망함으로 빨갛게 물들인 카트린느가 횡설수설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라고 해서 모든 약과 약초를 다 아는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널리 알려진  나도 알고 있지만 특정 부족 내에서만 쓰인다던지 하는 것들은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으니까.."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접시 위에서 푸릉푸릉 흔들리는 것들이 카트린느가 말한 그런 것들이라는 소리일까.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그러면서 연신 제  위에 올려져있는 납작한 접시 위로 시선을 던져대는 것이 얼른 그 안에 담긴 것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궁금한 건 나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그녀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도록 얼른 돌아가주기로 했다. 그 전에 딱 한 가지 궁금증만 해결하고 말이다.


"문제는 없는 거죠?"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는 물음이긴 했지만 카트린느라면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아닌 카트린느의 미간이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만 이내 골이  패이면서 가운데를 향해 모여드는 그것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어질 대답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카트린느도 잘 모른다는 걸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던 탓에 그 후속 시나리오또한 알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나 다를까 미간을  좁히고 있던 카트린느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중화제 말이야."


"중화제요?"


카트린느의 말을 듣고 여기서 그게 왜 나오냐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이니 그녀가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어조로 그것을 반납할 것을 종용해왔다.

나로서는 쉬이 들어줄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중화제를 반납한다는  원래 몸으로 돌아갈  있는 수단을 잃는다는 소리니까.

그렇다고 반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중화제라는 약물이 줄어든 내 몸상태에 정확하게 맞춰져서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몸에 변화가 생긴 지금 그걸 복용했다간 생각치도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 어쩌겠는가. 반납해야지.

물론, 그냥 고개를 끄덕이지만은 않았다.


"알고 계시죠? 이제 얼마 후면 교류전 시작이라는 거."


"알고 있어. 최대한 빨리 대체할 수 있을만한 걸 만들어볼게. 지금은 정말 위험해서 그래."


날 달래듯 그리 말한 카트린느가 중화제를 회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잽싸게 덧붙였다.

운이 좋아서 약효가 그대로 나타나면 참 다행이지만 최악의 경우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물론이거니와 영구적인 부작용까지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굉장히 심각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그리 말하길래   물어봤다.

그녀가 예상하고 있는 영구적인 부작용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그랬더니 잠시 주저하던 카트린느가 듣기만해도 오금이 저릿저릿해지는 이름들을 하나하나 입에 담았다.  무서운 건 그 중에 하나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었고.


'탈모에 발기부전이라니..'


남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재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부작용들이었고 덕분에 그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약이 내 방 안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다른 것들은 집어치우고 우선적으로 그것부터 반납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새로운 중화제를 시급하게 완성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겠어. 최대한 빨리 완성해볼게."


자신을 믿어달라면서 카트린느가 나름대로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한채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환경 자체가 많이 달랐으니까.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이 전부 다 구비되어 있었던 학원하고는 다르게 이곳은 죄다 임시방편들 뿐이니 말이다. 약초도 그랬고, 하다못해 약을 제조하는데 쓰이는 도구마저도 그랬다.

애초에 그녀조차도 장비에 대해 불만을 내비췄을 정도니 뭐..

'대비정도는 해두는게 좋겠지.'


일정에 딱 맞춰서 중화제가 완성된다면 기껏 들인 노력들이 쓸모없어지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대비를 아예  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을테니까.

그렇게 카트린느가 머무는 방을 빠져나오기 직전에 생각치도 못했던 것에 정신이 팔려 잠시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히도 기약이 없는 중화제 쪽하고는 다르게 그것에 대한 확답은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코가 막힌다고?"


"네, 건조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쓸만한  없을까요? 자꾸 코가 막혀서 잠을 못 자겠어요."


"흐음.. 잠시만."

대충 둘러댄 핑계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것도 잠시, 잠시 방을 빠져나왔던 카트린느가 이내 뭔가를 바리바리 든채 돌아왔다.

"자."

그렇게 내 앞으로 내밀어진 종이봉투를 건네받아 펼쳐보니 연두색과 주황색을 띈 향초  쌍이  안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두색은 코가 막힐 때 피우고, 주황색은 잠이 안 올  피워놓으면 돼."


다만 날씨가 많이 건조한만큼 피울 때 혹시라도 그것이 화재로까지 번지는 일이 없도록 오목한 그릇같은 데다가 물을 살짝 담아놓고  안에다가 초를 세운 다음에 피우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덧붙이는 걸 보니 이미 같은 말을 여러번 해본 듯 했다.


보아하니 내가 핑계삼아 댔던 것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일행 내에 많은 모양.

'하긴..'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기후인지는 몰라도 왕국에 비해 일교차가 극심한 탓에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거니와 이제 곧 있으면 교류전이라서 마음이 싱숭생숭한 탓에 밤에 잠이 잘 오질 않을테니까.

개인의 문제라고 방치해뒀다가 그게 교류전에 영향이라도 주면 큰일이니 아무래도 윗선에서 지시같은 거라도 따로 내려온  아닐까.

그렇다면 먹는 약이 아니라 향초가 나온 것도 분명 그 때문이겠지.


'연두색은 바이올렛한테 주고..'

주황색은 바이올라한테 주면 되겠네.


지금이야 한 곳에 같이 들어있어서 그렇지 두 종류로 나눠서 따로 포장을 해놓으면 꽤 그럴 듯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꽤 좋은 걸 얻었다고 생각하며 카트린느를 향해 감사의 의미를 담아 꾸벅하고 고개를 숙여보인  그대로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카트린느에게서 받아온 향초를 침대  서랍장 안에다가  넣어둔 뒤,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클레어와 디아나를 찾아나섰다.

물론, 카트린느가 시간을 못 맞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어디보자 이 시간이면..'

방에 있으려나?


클레어라면 몰라도 디아나라면 그럴 것 같아서 곧장 그녀의 방으로 향하니 나를 반긴 건 굳게 닫힌 채 안에 누군가 있다는 기척을 팍팍 풍기는 문이었다.


기숙사가 그랬듯 남자  숙소와 여자  숙소는 층이 달랐고, 디아나의 숙소는 여자층 중에서도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문앞에 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걸 느낄  있었지만 싸그리 무시한채 그것을 두들겼다.

똑똑-


그런 소리가 울려퍼지고 이내 문 안쪽에서 대답이랍시고 돌아온 건 지극히도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들어와."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문만 두들겼더니 다른 이가 찾아온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무래도 그런  같길래 살짝 놀래켜줄겸 그대로 문을 몸으로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온 것은  안쪽에 놓인 책상에 앉아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디아나의 모습이었다.


뭔가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깃털로 만든 펜을 움켜쥔 디아나의 손이 책상 위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 펜촉에 찍은 잉크가  떨어진 걸까.

잉크도 다시 찍을 겸 자신을 찾아온 이의 얼굴도 확인할 겸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는 디아나의 움직임에 맞춰서 얼굴 위로 미소를 띄워올린 순간..

"..이안?!"


디아나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제가 있다면 그녀답게 자세가 꽤나 꼿꼿했던 탓에 일으키다가 책상에 다리를 부딪혔다는 것 정도?

쾅-!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법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놀란 듯 크게 떠져있던 디아나의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아무래도 꽤나 세게 부딪힌 모양.

맘 같아서는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새는 없었다.


그녀에게 걷어차인 책상이 살짝 흔들리며 그 위에 놓여져있던 것이 쓰러질 듯 말 듯 위태로운 광경을 연출하기 시작했으니까.

보아하니 내쪽을 쳐다본답시고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길래 황급히 쓰러지려고 하는 것의 이름을 입에 담아봤지만..

툭-


늦어버렸다.

내가 '잉크통!'이라고 외친 순간, 그리하여 디아나의 시선이 내가 아닌 책상 위를 향한 순간 그것이 그대로 옆으로 넘어가며 안에 머금고 있던 것들을 그대로 책상 위에다가 토해냈다.


"아.."

그렇게 열심히 작성하고 있던 것이 까맣게 덧칠되어버린 걸 확인한 디아나의 표정이 허망함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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