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고작 미끌미끌한 것 하나만 추가되었을 뿐인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느낌이 많이 달랐나 보다.
최초의 한 방 이후로 바이올라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내가 만져주는대로 낑낑거리기 바쁠 뿐.
덕분에 굉장히 편했다. 많이 놀랐는지 딱딱하게 굳은 상태에서 움직이질 않는 탓에 마음껏 그녀의 꼬리를 어루만질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손을 움직일 때마다 굉장히 음란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냄새는 못 맡아도 청력은 멀쩡한 모양이다.
바이올라의 꼬리를 내쪽으로 쭈욱하고 잡아당기듯 훑어올려주면서 슬쩍 바이올렛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아까 전부터 들여다보고 있던 책 위로 얼핏 드러나있는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집중하려고 해도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소리가 너무 음탕(?)하다보니 반응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던 모양.
멀찌감치 서서 대기하고 있는 시녀들의 반응도 그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묘하고 배덕적인 분위기.
그것이 온실 안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온실 특유의 안락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살짝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홧홧하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뜨겁고 축축한 것이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으로 부터 유이하게 벗어나있는 것은 다름아닌 나와 바이올라였다.
나야 애초에 그걸 신경 쓸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지만 바이올라는 달랐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싼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거기에 반응할만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아까 전부터 놀리고 있던 손을 멈추지 않고 있었더니 바이올라는 정신을 못차리고 헐떡이고 있었다.
"끼이잉.. 끼이잉.."
내는 소리만 들어보면 괴로워하는 것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그녀의 몸만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꼬리를 본격적으로 어루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의 몸에 깃들어있던 가느다란 떨림이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찌나 쉬지 않고 몸을 떨어대는지 저러다가 전신에 쥐라도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보통이라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이 정도에서 멈췄겠지만..
"간지러워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바이올라가 보이는 반응을 그런 것으로 치부하며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그게 내가 지금껏 바이올라의 꼬리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꼬리를 마구잡이로 어루만지다가 이내 그곳에서 손을 떼어냈다. 보아하니 이 이상으로 해버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으니까.
'충분히 즐기기도 했고.'
해서 곧장 손을 떼어낸 뒤 아까 그녀의 꼬리를 헹굴 때 집어들었던 항아리를 다시금 집어들었다.
애초에 아까 꼬리에 대고 물을 끼얹을 때 다 때려붓지 않고 적당히 양을 조절했기에 항아리 안에는 아직 절반을 조금 넘는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집어들어 손으로 잡고 고정시켜둔 바이올라의 꼬리를 향해 조심스레 기울였다.
그리고는 꼬리에 묻은 것들을 헹군다는 느낌으로 물을 쫄쫄 흘려보냈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따뜻해지긴 했어도 차갑게 느껴지는 건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평소의 풍성함을 잃고 숨이 팍 죽은 채 축 늘어져있던 것 위로 투명한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바이올라로부터 꽤나 격렬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흐히잇..?!"
그런 소리와 함께 축 늘어져있던 은빛의 꼬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솟구쳤으니까.
덕분에 치덕치덕하게 젖어있는 꼬리에 어퍼컷을 맞을 뻔 하기도 했지만, 예상하고 있었던 움직임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유리로 되어 있어서 하늘에 뜬 태양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보이는 온실 천장을 향해 날카롭게 솟구쳐있던 꼬리에 대고 물을 쭐쭐 흘려주니 바이올라의 입술 사이에서 '으..'하고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보아하니 슬슬 정신이 드나 본데..
정신을 차린 바이올라가 가장 먼저 보여준 반응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만큼 민망했던 거겠지.
내 손놀림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헐떡이기만 한 꼴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바이올라는 기껏 정신을 차려놓고도 곧바로 패닉 속으로 퐁당하고 빠져버렸다. 그리고는 한참동안을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하더라.
덕분에 나야 편했다.
아까 물을 끼얹을 때처럼 물방울 세례를 맞을 일도 없었고.
꺠끗하게 물로 헹궈낸 것을 아까 쓰지 않고 남겨둔 천을 이용해 감쌌다. 그리고는 감싼 부분을 양손을 이용해 팡팡 두들겨준 뒤 꾸욱하고 눌러주니 꼬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민망함이라는 이름의 늪 속에 빠져서 한참을 허우적대던 바이올라가 거기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내, 내가 할게."
이 이상 내 손길을 맛봐버리면 뭔가 잘못될 것 같기라도 했던 걸까. 그게 바이올라가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지자마자 가장 먼저 꺼내든 말이었다.
"아니에요. 아직 좀 남았는 걸요."
물론, 거절했다. 누구 좋으라고 그걸 들어준단 말인가?
헌데 거절하기 위해 적당히 내뱉었던 말이 바이올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오싹하게 들렸나 보다.
"더..?"
그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반문해왔다. 마치 여기서 뭔가가 더 남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해서 그녀에게 희망이라는 걸 던져주기로 했다.
"네, 마무리 해야죠."
다음 것만 견디면 끝이다.
대충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니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었는지 내 말을 듣고는 바짝 솟구친채 굳어있던 바이올라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전에 아까 전처럼 물기를 좀 털어주시겠어요? 닦는다고 닦아봤는데 수건 한 장만으로는 좀 부족하네요."
내 부탁을 바이올라는 거절하지 않았다.
잠깐만이라는 말로 내게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바이올라가 내쪽을 향해 돌려놓았던 꼬리를 반대방향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는 막 목욕을 끝마친 강아지가 그러하듯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힘입어 수건으로는 미쳐 다 훔쳐내지 못했던 물기가 물방울로 변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꼬리에 남아있던 물기를 털어내고 돌아온 바이올라를 위해 빗을 대기시켰다.
시작은 큰빗부터였다.
빗살 사이사이가 비교적 넓은 것을 이용해 원래의 풍성함을 조금씩 되살리고 있는 것을 슥슥 빗어주니 기대감과 걱정이 반씩 뒤섞인 얼굴을 한채 내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바이올라의 입에서 '흐응..'하고 콧소리가 새어나왔다. 만족스러움이 그득하게 담겨있는 소리였다.
살짝 근질근질한 곳을 둥그스름하고 뾰족한 빗살의 부분이 슥슥 긁어주는 느낌이 꽤나 각별했던 모양이다.
애초에 걱정같은 건 한 적조차 없다는 것처럼 바이올라가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빗질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흐흥하고 콧소리인지 코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연달아 흘려가며 내 빗질에 대한 만족감을 있는 힘껏 드러내는 바이올라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부지런히 빗질을 계속하다보니 그녀의 꼬리를 이루고 있던 털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해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이 눈으로 들어온 즉시, 쥐고 있던 큰빗을 내려놓고 그것과 세트로 챙겨온 것을 집어들었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빗살 사이의 간격은 훨씬 더 촘촘한 녀석이었다.
그것을 바이올라의 꼬리에 가져다대기 전에 아까 신세를 졌던 모발용 영양제가 담긴 병을 다시금 집어들었다.
아까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쾌감을 선물해주었던 물건이 다시금 등장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어질 내 행동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채 티나지 않게 내쪽을 힐끔거리던 바이올라의 눈동자 위로 경악과 기대감이 동시에 서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허리서부터 엉덩이를 이어주는 부분이 움찔움찔거리며 묘한 떨림을 뱉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하려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우선, 병을 기울여 그 안에 든 것을 쏟아냈다.
이번에는 손이 아닌 빗이 목표였다.
물론, 양을 조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끼지 않고 듬뿍 짜냈던 아까하고는 다르게 '에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소량을 빗 위에다가 짜낸 뒤, 그 잠깐 사이를 못 참고 빗살 사이로 흘러내리려고 하는 것을 손가락을 이용해 빗 전체에 대고 꼼꼼히 펴발랐다.
덕분에 손가락 끝이 미끌미끌해지긴 했지만 빗또한 딱 좋게 번들번들하게 변했다.
딱 내가 원하던 모습 그대로였고, 해서 집어든 병을 내려놓고 대신 바이올라의 꼬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살짝 잡아당겨서 옆구리에다가 끼워넣었다.
그렇게 일자로 만든 것에 대고 살 부분이 번들번들하게 변한 빗을 푸욱하고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아까 영양제를 발라줄 때처럼 빗의 손잡이 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손을 내 몸쪽으로 쭈욱하고 잡아당기니..
'이거지.'
최고급 비단을 생각나게 하는 부드러운 감촉이 빗을 타고 올라왔다.
물론, 결과물또한 최고급 비단에 뒤지지 않았다.
역시 카트린느라고 해야할까. 그녀의 빼어난 솜씨는 모발용 영양제라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바이올라의 꼬리 위로 좌르르 흐르고 있는 윤기가 그 증거였다.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탄생한 것은 무두장이라면 환장할 것 같은 탐스럽기 그지없는 윤기를 간직한 꼬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자태가 어찌나 탐스러운지 바이올라가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마냥 낑낑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은근히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던 바이올렛이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시녀들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상관이 수인족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기하고 있는 시녀들 중에는 수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제 꼬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과 눈빛은 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반응을 다 합쳐도 바이올라가 보여주고 있는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탐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제 꼬리를 확인한 바이올라의 반응은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제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제 꼬리라는 걸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이올라의 눈동자가 꼬리 쪽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 그녀를 향해 물었다. 내 솜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어떠세요..?"
"어떠냐고 물어도.."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걸까.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고 막힌 듯한 표정을 해보이고 있던 바이올라가 이내 날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날 향해 쏟아지는 그녀의 눈빛이 이전보다 진득하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던 건 꼭 기분 탓만은 아니었겠지.
아무튼 심플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 그녀의 칭찬을 듣고 민망함을 느낀 척 볼을 긁적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아니, 이건 단순히 마음에 들고 말고를 떠나서.."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혀버렸는지 기껏 벌린 입술을 오물대던 바이올라가 간신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음같아서는 맨날 부탁하고 싶을 정도인데.."
극찬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은 바이올라의 찬사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힘들지 않겠냐는 뜻으로 그녀를 향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내 대답이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입술을 삐죽하고 내밀길래 멋쩍게 웃고 있다가 처음 꺼내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한결 가벼워진 영양제 병을 집어들었다. 이제 볼일도 끝났으니 자리를 정리하려는 것처럼.
"음, 조금 남긴 했네요.."
그러면서 그리 중얼거리다가..
"아!"
바이올라에게 들릴 수밖에 없도록 탄성을 내뱉으며 바이올렛이 자리하고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뒷쪽에서 들려온 것은 그런 날 따라서 몸을 돌리는 소리였다.
덕분에 굳이 뒤쪽을 확인하지 않고도 알 것 같았다. 바이올렛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날 뒤에서부터 쳐다보고 있는 바이올라의 얼굴 위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있는 지를 말이다.
분명 불안해하는 표정이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거기에 어울려줘야하지 않겠는가.
해서 곧장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금 나와 바이올라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던 바이올렛과 똑바로 눈을 맞춘 채..
"바이올렛님도 해드릴까요?"
그녀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