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맛 좀 보라고 일부러 세게 움켜쥐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격한 반응이라 솔직히 좀 놀랐다. 놀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저런 귀여운 비명까지 뱉어가며 놀랄 줄은 몰랐으니까.
'끼앙이라니..'
확실히 많이 놀라긴 했나 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움켜쥐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짝 부스스하게 뻗쳐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보드라운 느낌이었던 꼬리의 털들이 지금은 무슨 천적을 맞닥뜨린 고슴도치의 가시마냥 삐죽삐죽 솟구쳐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드러운 느낌이긴 했지만.
아무튼 상황이 이리 된 이상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기에 나는 내 안에 남아있던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박박 긁어모아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괘, 괜찮으십니까? 저도 모르게.."
방금 그건 내 고의가 아니었다.
라는 주장을 어필하는데 중점을 두고 예상 외의 사태에 당황한 척 말을 더듬거리고 있자니 돌아온 건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 아냐..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던 것 뿐이니까.."
크게 놀란 내가 혹시라도 제 꼬리를 놓고 물러날까봐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목소리에 배어든 열기와 달콤함을 숨기는 대신 황급히 말을 뱉어 날 안심시키려고 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어진 말 뒤로 이어진 것은 듣는 이에게 묘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조금만 부드럽게.. 부드럽게 해줘.."
뭔가를 의도하고서 내뱉은 것 같지는 않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건 진심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기색 뿐이었으니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 손안에 잡힌 채 이따금씩 움찔움찔하고 묘한 경련을 뱉어내고 있는 이 꼬리라는 기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민한 곳이라는 것을.
문제가 있다면 역시 방금 그 멘트였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나와 바이올라 둘뿐이었다면 그녀의 목소리에 열기가 얼마나 배어있든 간에 딱히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는 눈도 없는데 뭣하러 다른 이를 의식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나와 바이올라 뿐만이 아니었다.
날 이곳까지 안내한 바이올렛이 여전히 창가 쪽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살짝 이상하긴 하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단 한 마디도 건네질 않는 걸 보면 바이올렛에게 맡겨진 역할을 날 이곳으로 안내하는 것까지가 끝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헌데 왜 그녀는 방을 빠져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굳이 여기서 서류를 볼 필요 없이 방을 빠져나가서 조용한 곳으로 옮기면 집중도 훨씬 잘 될테니 업무 효율또한 몇 배는 올라갈텐데.
저래서야 흡사 이쪽을 감시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감시라..'
설마 제 동생이 나한테 헬렐레해서 제국 측 정보를 팔아먹진 않을지 걱정이라도 됐던 걸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상태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니면 혹시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닌 건가?
아리송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가운데 딱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바이올렛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제 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온 약한 목소리가 그녀 입장에서는 많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바이올라의 입에서 예의 그 멘트가 흘러나온 순간 눈으로 들어온 건 시야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던 바이올렛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이었다. 꼭 마치 남자친구한테 애교를 부리는 여동생의 모습을 목격한 오빠의 표정같다고 해야할까.
물론, 그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시선이 제쪽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순식간에 얼굴 위에서 지워버렸으니까.
그 정도로 반응이 격하다보니 사람 심리상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바이올라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가 말이다. 그녀는 내게 꼬리를 만져지면서 어떤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고 있을까.
흐물흐물하게 풀린 표정?
아니면 토마토마냥 빨갛게 달아오른채 뭔가를 꾹 눌러 참는 듯한 표정일까.
확인하고 싶어서 고개를 요리조리 움직여봤지만 쉽지 않았다. 자세도 자세지만 본인도 보여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내게 얼굴을 보여선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살짝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기를 쓰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대는데 덕분에 목만 아파졌다.
해서 살짝 뻐근해진 목을 옆으로 기울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이쪽에 집중하라는 것처럼 손안에 잡혀있던 바이올라의 꼬리가 움찔거리며 꽤나 또렷한 떨림을 토해냈다.
그게 꼭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솔직히 좀 귀여웠다.
그래서 달래줄겸 아까보다는 덜 삐죽삐죽하게 서 있는 것들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었더니..
"흐.."
꽉 다물어진 입술 틈 사이에서 새어나온 듯한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그녀의 엉덩이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 전체로 번져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한 곳인가 보다.
그저 살짝 쓰다듬었을 뿐인데 저렇게 부들부들 떨어대는 걸 보면.
물론, 그러한 부분을 티낼 수는 없었기에 대신 그녀의 꼬리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에 감탄한 척 중얼거렸다.
"되게 부드럽네요.."
"그, 그래?"
그러자 돌아온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혹시 꼬리를 칭찬하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도 되는 걸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바이올라는 내 중얼거림을 듣고는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더 만져도 괜찮아."
살짝살짝 손을 움직여 꼬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귀까지 뾰족하게 곧추세우며 기뻐하는 주제에 특별히 허락해주겠다고 말하는 듯한 모양새가 퍽 귀여웠다. 더 어울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보자..'
어떻게 만져주는 걸 좋아하려나.
그게 궁금해서 확인이나 해볼겸 만질 때마다 방식을 바꿔가면서 어루만져줬더니 그럴 때마다 '흐..'하고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은빛의 털로 뒤덮인 세모꼴의 귀가 삐죽 솟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신기하네요. 여기에도 감각이 있다니.."
어떤 기분인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간다는 투로 그리 중얼거렸더니 그제서야 바이올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표정을 관리하는데 성공한 것일까. 불그스름하게 물든 얼굴을 한채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녀가 무슨 재미있는 말이라도 들은 것마냥 피식하고 웃었다.
"머리카락이랑 똑같다고 보면 돼. 털 자체에는 감각이 없지만 이렇게 잡아당기면은.."
아무래도 처음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그 핑계로 나와 스킨십을 하고 싶었거나.
둘 중에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슬쩍 말끝을 흐리면서 자연스럽게 내쪽을 향해 손을 뻗어온 바이올라가 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카락을 슬며시 움켜쥐고는 살짝 잡아당겼다.
말 그대로 살짝이라서 딱히 아프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제법 따끔했다는 것처럼 살짝 얼굴을 찌푸리니 언제 그러고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손을 떨어뜨렸지만.
그 뒤로도 바이올라의 꼬리를 손으로 슥슥 쓰다듬으면서 그녀와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된 것중에 하나는 그녀가 가장 선호하는 만져주기 방식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야성미 넘치던 모습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바이올라는 부드럽게 만져주는 쪽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손가락을 갈퀴모양으로 만들어서 털 사이로 푹 찔러넣은 다음에 그렇게 파고든 손가락을 이용해 빗질을 하듯 쭉 만져주는 걸 가장 좋아했다.
그러면서 털 사이로 파고들어간 손가락 끝부분을 이용해 그 안에 숨겨져있는 살짝 말캉한 부분을 박박 긁어주기까지 하면..
"끼잉..!"
아주 정신을 못 차렸다.
저도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소리까지 내뱉을 정도로 말이다.
스스로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게 많이 민망했던 모양이다. 내쪽을 향해있다가 다시 벽쪽으로 돌아간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죄, 죄송해요. 혹시 아프셨나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다른 것으로 오해한 척 말을 더듬거리니 바이올라가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멈추지 말고 더 해달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에 그녀가 요청한대로 다시금 손을 움직이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돌아갈 시간이 됐으니 오늘 만남은 이쯤에서 정리해야할 것 같네요."
꼬리가 주는 감촉이 너무 좋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거기에 푹 빠져버렸었나 보다. 멀찌감치 앉아있던 바이올렛이 이렇게 지척으로 접근할 때까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보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바이올라 사이로 끼어든 바이올렛이 손을 뻗어 제 동생의 꼬리를 움켜쥐고 있던 내 손을 자연스럽게 걷어냈다.
특별히 강한 힘이 담겨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거기에 대고 저항한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얼굴을 향해 내려꽂히는 바이올렛의 시선이 그만큼 차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앗, 네.."
"아까 그곳으로 안내해드릴테니 이만 내려가시죠."
여기까지 데려온 게 자신이니만큼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또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차하면 우리 측 숙소까지 데려다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며 은근히 자리에서 일어설 것을 종용하는 그녀의 발언에 순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로서는 그 제안을 사양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방을 떠나기 전에 소파 위에 엎어지다시피한 바이올라를 향해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바이올라님."
"으, 응.."
그러자 돌아온 건 왠지 모르게 해파리를 생각나게 하는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목소리였다. 끝끝내 얼굴만큼은 보여주지 않고 손만 살짝 들어올린 채 그걸 날 향해 살랑살랑 흔들어보이는 것이 내게 잔뜩 시달린 탓에 기력이 다해버린 모양.
그렇게 건조대 위에 널린 오징어마냥 축 늘어져있는 바이올라를 뒤로 한채 그곳을 빠져나오니 바이올렛이 자연스럽게 앞장을 섰다.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며 유심히 그녀의 몸 곳곳을 살폈다.
물론, 그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던, 그녀 입장에서는 꽤나 야릇하게 느껴졌을 광경에 대한 바이올렛의 감상은 어떨까.
라고 생각하면서 뭐라도 건져보기 위해 열심히 바이올렛의 모습을 눈으로 훑어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설마 딱히 별 느낌을 받지 못한 걸까.
'그럴 리가 없을텐데..'
그리 되뇌인 순간 열려있던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함께 잘 정돈되어 있던 은빛의 머리칼이 슬며시 흔들리며 그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확인하게된 바이올렛의 목덜미는..
'했네 했어.'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불그스름하게 물들어있었다.
그럼 그렇지. 반응이 없을 리가 있나.
아무래도 동생이 점찍은 남자다보니 티를 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제 반응을 최선을 다해 숨겼던 모양.
그렇게 목덜미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바이올렛을 따라 움직인 끝에 같이 숙소를 떠났던 이들과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제국 측의 대접이 꽤나 괜찮았나 보다.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썩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미소를 띄고 있는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주인공 놈의 반응은 어떨까 싶어 잽싸게 눈을 굴려 놈의 모습을 쫓았다.
그러자 눈으로 들어온 것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에게 선물이라도 받은 것인지 제 주먹만한 크기의 상자를 한가득 품에 안고 있는 놈의 모습이었다.
뭐 차같은 거라도 선물받은 걸까. 심히 궁금했지만 확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인원체크가 끝나자마자 그대로 우리 측 숙소로 출발하게 되었으니까.
부지런히 걸은 끝에 숙소로 돌아온 순간 날 맞이한 건 디아나와 앨리스였다.
아무래도 내 방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문을 열자마자 덮쳐온 걸 보면.
앨리스보다 디아나 쪽이 한 발 더 빨랐던 걸까.
날 향해 다가오려다가 말고 애매한 곳에 멈춰선채 '한 발 늦었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쓰게 웃고 있는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귓가로 울려퍼진 건 걱정이 그득하게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별일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