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61)화 (161/366)



〈 16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여성진들만큼이나 놀란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였다.


'이야..'


이걸 이긴다고?


그것도 마지막 판에?

인간승리라는 말은 이걸 위해 존재하는 거겠지. 그만큼 디아나의 승리는 극적이었다. 그녀가 카드를 뽑을 때마다 손에 든 것들이 하나둘씩 줄어드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설마설마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딱 뽑기에 성공할 줄이야.


거기서 다른 걸 골랐다면 보나마나 이번에도 1등은 무리였을텐데 말이다.

그동안 패가 지독히도 안 붙더니만 그걸 이런 식으로 한 방에 만회해버릴 거라고 그 누가 알았겠는가.

본인도 드디어 따낸 승리가 상당히 각별한 모양인지 벌떡 일어나 있던 디아나의 몸이 감격에 젖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감격스럽길래 손등이 저렇게 허옇게 질린 걸까.

그런 식으로 몸을 떠는 디아나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1등을 따낼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에 대한 것을.

사실 아무리 패가 쫙쫙 붙기 시작했다고 해도 고작 그것만으로는 디아나가 1등을 차지하기에는 살짝 무리인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디아나에게는 뽑을 때마다 엇나가는 똥손 말고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존재했으니까.


표정관리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것 같은 얼굴 말이다.

그게 있는 한 디아나가 1등을 차지하는 건 요원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결국 1등을 차지할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내 덕분이었다.

이제와서 갑자기  지분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말은 엄청나게 훈수를 둘 것처럼 하긴 했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말을 아꼈다. 1등만 못했을 뿐이지 디아나는 이미 도둑잡기의 룰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헌데 거기서 대체 무슨 훈수를 둔단 말인가?

그래서 뭔가 하는 대신 그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팔을 꼬옥하고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그랬는데 그게 생각치도 못하게 도움이 되었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나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서 자동으로 표정관리가 되었으니까.


내가  때는 그것이야말로 디아나가 1등을 차지할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광대가 그녀에게로 넘어온 순간 그녀의 게임은 거기서 끝나버렸을테니까.


'그래서..'


디아나는 소원으로 어떤 걸 빌 생각일까.

기념비적인 승리 끝에 따낸 것이니만큼 분명 헛되이 쓰지는 않을 터.

그렇기에 이어질 그녀의 발언이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아까보다 조금 더 무거워진 눈을 비벼대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많이 졸려?"

누가들어도 들뜬 걸 알  있는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럼, 이만 자러 갈까?"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제안이  뒤로 따라붙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디아나의 입에서 그런 제안이 흘러나왔다는 걸 순간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근히 수줍음이 많은 그녀니까. 단둘이 있을 때라면 모를까 이렇게 지켜보는 사람이 세 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디아나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아..'


그러고보니까 만만치 않게 취한 상태였지.


다른 이들에 비해 취하지 않은 것처럼 단정한 모습이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디아나도 만만치 않게 술을 들이킨 상태였다. 한 모금만 들이켜도 목구멍에 불이 붙은 느낌이 들어서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만드는 독주를 희석도 안하고 깡으로 몇 잔이나 들이켰으니 취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


상대방이 취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니 확실히 여기저기에 취기가 묻어나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나 눈같은  그랬다.


몽롱하게 풀린 것이 묘하게 위험해 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런 눈을 한채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는 디아나를 향해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


"그게 소원이에요?"

"..응."

이번만큼은 아무리 취할대로 취한 상태라고 해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걸까. 디아나가 안 그래도 술기운 때문에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있던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히죽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디아나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꼬옥하고 잡았다.


그런 거라면 못 들어줄 이유도 없으니 얼른 자러 가자는 뜻으로.

자기 쪽에서 먼저 요청하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 훅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이다. 내게 손을 잡힌 디아나가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킴과 동시에 누군가 빠득하고 이를 가는 소리와 '으..'하고 침음성을 흘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렇게 저녁에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이어졌던 술게임의 최종 승자는 디아나가 되었다.


살짝 의외였던 점은 다른 이들이 예상했던 것하고는 다르게 순순히 물러나는 걸 택했다는 것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취한 상태고 하니 어쩌면 술기운을 못 이겨 억지를 부리거나 떼를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리분별을  이성 정도는 남아있었던 모양.


쓸쓸한 느낌을 흩뿌리면서 패배자들이 방 밖으로 물러나고 디아나와 단둘이 방 안에 남게된 나는 굳어서 움직일 줄을 모르는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침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미 서로 볼 장 다본 사이긴 해도 다른 이들의 앞에서, 심지어 그들 중에 존경해마지 않는 스승님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금부터 '그걸' 할 거라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었던 방금의 상황이 많이 부끄럽고 민망했던 모양이다. 침대 앞에 도착해서 디아나 쪽을 돌아보니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아마  상태로 방치해두면 어느 순간 코피가 주륵하고 흘러내리는   수 있지 않을까.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침대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는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그 별거 아닌 행동마저도 지금의 디아나한테는 상당히 민망하게 느껴졌나 보다.


간신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던 디아나의 얼굴이 다시금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그녀가 황급히 손을 뻗어 침대를 두들기고 있던 내 손길을 제지했다. 침대 두들기는 소리가 혹시 막 방을 빠져나간 이들에게 들리진 않을까 걱정이라도 됐던 걸까.

덕분에 디아나의 자세가 굉장히 어정쩡하게 변했다. 내 팔을 잡겠답시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어서 균형이 앞으로 쏠려있는 상태라고 해야할까. 그대로 앞으로  잡아당기면  위로 풀썩 엎어질 것 같아서 그대로 해봤다.

얼굴 위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워올리며 그녀에게 잡혀버린 손을 내쪽으로  잡아당기니 예상했던대로 그녀가  위로 풀썩 엎어졌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혹시 내가 자기 밑에 깔려서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황급히 팔을 움직인 그녀가 양손을 이용해 엎어지던 제 몸을 지탱했다.

그렇게 디아나의 밑에 깔려서 그녀와 눈이 딱 마주치게  순간 굉장히 묘한 공기가 우리 둘 사이로 흐르기 시작했다. 간질간질하면서도 은근히 긴장이 되게 만드는 그런 공기라고 해야할까. 누군가 발바닥의 가운데 부분을 간질이는 것 같은 그 묘한 느낌을 만끽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던 디아나가 스리슬쩍 시선을 피했다.


입가에 미소를 내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다가..

쪽-

그대로 상체를 들어올려 아까 전부터 유난히도 시선을 사로잡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말캉한 것이 입술에 맞닿음과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있던 디아나의 눈이 확 커졌다. 그 변화를 눈에 담으며 들어올렸던 상체를 다시 침대 위로 뉘였다.

대신 팔을 들어올려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민망함 때문일까.

디아나의 볼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뜨끈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것을 조물대고 있자니 갓 쪄낸 떡이 떠올랐다. 뜨끈하면서도 보들보들하고 은근히 손에 들러붙어오는 것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달까.

그녀도 내 손길을 마음에 들어하는  같았다.

내 손도 만만치 않게 뜨끈할텐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있는 그녀에게는 그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던 모양.


"흐.."

눈을 살짝 감은   손길을 만끽하던 디아나의 입술 사이에서 만족스러움이 그득하게 배어있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그렇게 뜨끈뜨근한 디아나의 볼을 조물딱대다가 다시금 입을 맞췄다.


동시에 디아나의 볼을 주무르고 있던 팔을 떼어내 그대로 그녀의 목을 휘감았다.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 매달리니 어느새  등뒤로 돌아온 디아나의 팔이 조심스레  등을 감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을 서로 꼬옥하고 부둥켜 안은 채 키스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주도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 안을 탐했다.

그러고 있자니 그녀의 입 안에 남아있던 독주의 잔향이 자연스레 입 안과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꼭 술을 마시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묘하게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고 해야할까.


슬슬 숨이 모자라서 그녀의 몸을 탁탁 두들기니 그제서야 디아나가 조심스레 몸을 떨어뜨렸다.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러면서  몸으로 은근히 그녀의 몸을 떠밀었다.


"침대가 좁으니까 둘이서 자려면 이렇게 딱 붙어있어야겠네요?"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리 말하니 맞닿아있던 디아나의 몸이 잘게 떨렸다.


숨소리도 살짝 거칠어졌고.


술도 먹었겠다 슬슬 하고 싶어지기 시작한  같은데..

"으, 응.."


그래도 지금의 풋풋하면서도 달달한 분위기또한 망치긴 싫었는지 디아나가 내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몸에 얼굴을 파묻고 조심스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헤헤하고 헤프게 웃으니 살짝 앓는 듯한 음성과 함께 디아나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슬슬 미칠 것 같은 걸까.

그것도 잠시,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마주안았다.

"그럼 잘까?"


"네에.."


하는 거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지금은 이 달달한 분위기를 즐기기로 결정한 모양.

덕분에 디아나의 품 안에 꼬옥 끌어안긴 채 느긋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간중간에 소일거리같은 것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국경지대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거진 다 초원이었는데 말이다. 슬슬 도시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풍경이 어느새 차창 위로 눌러앉은 상태였다.

'국경도시라..'


어떤 곳일까.


한 번 가볼 뻔했던 곳이니만큼 호기심이 생기는 건 사람 심리상 어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번 알아나 볼겸 잘 알만한 사람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도 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니만큼 다른 이들보다 교국 소속인 앨리스가 조금이라도 더 잘 알 거라 생각해서 그녀의 방을 찾아왔는데 말이다.

'흐으음..?'

이것봐라?


왜 앨리스의  안에서 주인공 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응?


생각치도 못했던 상황에 멈칫했던 것도 잠시, 문을 두들기기 위해 뻗던 손을 그대로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귀를 가져다댔다.

"..녀..끌어..숫자..맞..니다.."

"..무리..도..좀.."

"..니라..녀..움..필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이리도 은밀하게 나누고 있길래 문까지 잠궈놓고 있는 건지 알아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인데..

"..말.. 그.. 법...능..가요?"


놀랍게도 안에 있는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문틈 사이로 귀를 가져다댄 순간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앨리스에 이어서 디아나라.

대체 뭘까.

대체 주인공 놈하고 작당하고 있는 것이 뭐길래 저 둘을 뭉치게 한 걸까.

조합에서부터 음모의 냄새가 났다.

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내보려고 귀를 바짝 가져다대고 있던 순간이었다.


의견이 갈리기라도 한 것인지 안쪽에서 새어나오던 목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저벅저벅하고 문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황급히 문쪽에 가져다 붙이고 있던 몸을 떨어뜨린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그 안에서 주인공 놈이 걸어나왔다.

살짝 골치아파하는 표정을 얼굴 위에 내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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