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55)화 (155/366)



〈 155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네 명이었다.


 네 명이 이번 선발전을 통해 선발되어 교류전에 참가하게될 예정이었다.


헌데 벌써 그 중에 세 자리가 찬 상황.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날 상대하기 위해 연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의 눈빛이 제법 사나웠다. 어떻게든 날 이기고 교류전에 참가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눈빛이라고 해야할까.


놀라운 것은 다른 이들을 찍어누르고 내 앞에 선 이가 나와 같은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뭐..'


피지컬을 보면 여기까지 올라온 저력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분명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나오는 힘으로  찍어누르면서 올라온 것이겠지.

덩치가 어찌나 거대한지 손에 들고있는 망치가 뿅망치처럼 앙증맞게 느껴질 정도였다. 망치만 따로 떼놓고 보면 분명 양손으로 잡고 쓰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이야..'

그렇기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로 떨어지고 나서 본 고추 새끼들이라고는 하나같이 주인공처럼 쬐끄맣고 가녀린 놈들 뿐이었던만큼 내가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밀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대체 성장기에 뭘 쳐먹은 건지 나보다 머리  개, 아니   반 정도는 더 큰데 원래 몸으로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서 고개가  뻐근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멀대같이 키만 큰 건 또 아니었다.


저 커다란 몸에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두껍기 짝이 없는 근육이 꽈악 들어차있었으니까.

저 덩치로 저런 걸 휘두른다라.


실제가 아닌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등골을 섬칫하게 만드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눈앞으로 그려졌다.


아마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는 건 저걸 두고 생긴 말이 아닐까.


'뭐, 맞았을 때 이야기지만.'

확실히 힘은 좋았다.

정확히는 힘만 좋았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라올  있었던 것은 대진운이 좋아서였거나 여태까지 상대한 이들이 저렇게 생겨먹었어도 남자라 방심했기 때문이겠지.


후욱-


뭔가가 바람을 가르면 날아드는 소리에 맞춰 슬쩍 고개를 뒤로 젖히자 맞으면 그대로 얼굴이 갈릴 것 같은 망치 대가리 부분이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자꾸만 빗나가는 게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분하다!'라고 외치는 것같은 침음성과 함께 망치를 휘두르고 있던 놈의 팔 위로 힘줄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허공을 가르던 망치의 궤적이 조금씩 휘어지기 시작했다.


'이야..'


역시 힘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뭔가를 휘두르는 와중에 궤도를 바꾼다는 게 말로는 쉬워보여도 보통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하물며 저렇게 딱 봐도 무거워보이는 걸 있는 힘껏 휘두르는 와중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핏줄이 불끈 솟아오른 놈의 팔이 비명을 내지르는 듯 했다.

아무래도 공격이 자꾸만 빗나가니 홧김에 놈으로서도 살짝 무리를 해버린 모양.


살벌한 소리와 함께 배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향해 창대를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슬며시 비트니..

"어엇..?!"

망치가 창대를 따라 미끄러짐과 동시에 육중하기 짝이 없는 놈의 거구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렇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놈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창대 끝을 쳐올렸다.

"컥-"


놈으로서는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 듯한 느낌이었을 거다.


통짜 철로  창대에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넘어지던 놈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그 사이에 갇혀있던 것이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쿵-!

무슨 장롱같은 거라도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놀랍게도 망치가 떨어지며 난 소리가 아니라 놈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난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닥에 엎어져버린 놈을 보고 가망이 없어보인다고 판단한 건지 살짝 떨어진채  있던 자칭 심판님의 입에서 내 승리를 확정짓는 말이 흘러나왔으니까.

꽤나 감명깊게 본 것인지 제법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귀로 듣고  귀로 흘리면서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있는 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놈 이거 그냥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만한 덩치를 가진 놈이 어중이떠중이일리 없으니까.


'동료 포지션 중에 한 명인가?'

어쩌면 그럴 지도 몰라서 더더욱 놈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놈을 수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연무대 위로 올라왔다.


보이는 것만큼이나 무겁긴 한가 보다. 저렇게  명이나 붙고도 낑낑대는  보면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교류전에 참가하는 걸 확정짓고 나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때부터 모든 것들이 착착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사 부문을 시작으로 해서  부문에 참가하여 제 기량을 뽐낼 이들의 면면이 정해졌다.


참가자들을 인솔할 이들과 호위 역으로 따라붙을 이들의 면면이 정해진 건 그 다음이었다.


호위 겸 인솔자 역으로 클레어가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그렇게 교국을 향해 떠날 행렬의 모습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해가던 와중이었다.

처음 클레어의 참가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별 생각 없었다.

그저 학원 측에서 얼마나 지지고 볶아댔길래 카트린느만큼이나 한 곳에 진득하게 쳐박혀있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나 싶었을 뿐.


한편으로는 그런 학원의 결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학원 측 인사였다고 해도 클레어의 등을 떠밀었을테니까.


여차하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그녀만큼이나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인사가 또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는데..

"스승님이 직접요?"

"응, 아무래도.. 걱정스러우셨나봐."


디아나의 입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억지로 등 떠밀린게 아니라 자원한 거라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지가 눈에 훤해서 솔직히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가신다면서요? 교국?"

한 번 놀려보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가 궁금해서 그리 내뱉었던 것인데 돌아온 건 격렬하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제 안을 드나들던 내 손가락을 입에 문채 제가 묻힌 걸 혀로 열심히 닦아내던 클레어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턱에 힘을 줬던 것일까.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어가있던 손가락 중간 쯔음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

그에 나지막하게 신음성을 뱉으며 인상을 일그러뜨리니 그제서야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은 클레어가 화들짝 놀라며  안에 머금고 있던  손가락을 그대로 뱉어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양손으로 움켜쥔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저로 인해 상처라도 생기진 않았을지 우려되었던 모양이다.

딱봐도 멀쩡해보이는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녀로부터 내 손가락을 빼냈다.

붙잡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꼬맹이 모드라서 그녀가 본격적으로 힘을 쓴다면 저항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순순히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아니, 붙잡을 엄두 자체를 내지 못했다.


 마치 자길 떨쳐내는 내 기세에 압도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방금 그걸로 인해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걸까.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그득하게 담겨있는 시선이 클레어로부터 날아와꽂혔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눈치를 살피고 있던 그녀와 눈을 맞추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동시에 물었다.

대답 안 할 거냐고.

"마, 맞아.."


"학원 측에서 부탁했나봐요?"

그에 클레어가 대답이랍시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넌지시 물었다. 그러니 볼 수 있었다. 클레어의 눈동자가 데록데록 구르는 모습을 말이다.

사실대로 말을 할지 아니면 학원 핑계를 대며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갈지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던 모양.

그렇게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둘  한쪽을 저울질하던 클레어가 결국 선택한 쪽은..


"응.."


후자였다.


내 말에 맞장구라도 치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으로 들어온 순간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입매를 비틀었다.


"거짓말."


동시에 그리 내뱉으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클레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가 잔뜩 동요하고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자원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거짓말을 했냐는 식으로 물으니 할 말이 없었는지 클레어가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를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한 탓일까. 클레어는 말 그대로 어쩔  몰라했다. 웃긴  그런 그녀의 몸이 보이는 반응이었다.


뭔가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허벅지 안쪽이 움찔움찔하고 떨리며 묘한 떨림을 내뱉었다.


그 사실을 내게 들키고 싶지 않았나 보다.


클레어가 입고 있는 수련복 바지 위로 근육이 확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허벅지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림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결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시선이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광경이라 움찔움찔하고 떨리는 그녀의 허벅지를 향해 물끄러미 시선을 던지니 그런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확인한 클레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감'이나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들킨  그리도 수치스러웠던 걸까.

눈에 살짝이지만 물기가 서려있는 게  몰아붙이면 눈물이라도 찔끔 쏟아낼 기세였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나랑 떨어지기 싫었어요?"

언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냐는 듯 피식하고 웃으며 그리 물으니 먹구름이라도  것마냥 우중충하게 물들어있던 클레어의 얼굴이  밝아졌다.

동시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으, 응..!"

"참 어리광쟁이 스승님이시네."

클레어를 상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된 사실  하나는 그녀가 내게 애취급 당하는 걸 은근히 즐긴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실제로 애한테 그러는 것처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그녀의 볼을 슬며시 쓰다듬으며 그리 말하니 수치심으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벅지를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떨어대고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던 그녀를 살살 달래주다가..

"그래도 거짓말을 하면  되죠."


기습적으로 찌르고 들어갔다.

클레어의 볼과 맞닿아있던 손바닥 쪽에서 흠칫거림이 전해져온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거짓말은 나쁜 짓이잖아요. 그렇죠?"

"그, 그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을 해봐야 소용 없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내 말에 답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 클레어의 얼굴 위로 조금씩 홍조가 어리기 시작했다.

"흐음, 뭐가 좋을까.."

 변화를 눈에 새기면서 클레어로 하여금 보란듯이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러고 있으니 어디선가 꼴깍하고 군침을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대감이 아주 노골적으로 담겨있는 그 소리에 속으로 쓰게 웃으면서 얼굴 위로는 가벼운 미소를 띄워올렸다.

"간단하게 찰싹찰싹으로 갈까요?"


내가 뭘 말하는 지 단번에 알아들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빨갛게 달아올라있던 클레어의 얼굴이 내 물음을 기점으로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몇 대가 좋으려나.."

"..."


"열 대? 아니면 한 대?   골라봐요."


"하,  대.."


클레어의 대답이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그녀를 향해 쯧하고 혀를 찼다.


"열 대를 고르시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봐드리려고 했는데.."


"..."

"안 되겠어요. 다섯  때리세요."

그리 말한 순간 돌아온 반응은 '내가?'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한테 당해도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행위를 남이 지켜보는 앞에서 스스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나 보다.

뜨악해하는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클레어를 향해 물끄러미 시선을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어있던 그녀가 입술을 질끈하고 깨물더니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썩-!

쫙 펴진 손바닥이 살집이 도톰하게 올라와있는 부분을 두들기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웃긴 건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렇게 울려퍼지는 소리에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다, 다서헛..!"


그리고 마침내 클레어의 입에서 다섯이라는 숫자가 흘러나온 순간, 철퍽하고 축축하게 젖어있는 천을 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때리기 좋도록 좌우로 쫙 벌리고 있던 허벅지를 격렬하게 떨어대던 클레어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잘 하셨어요."

처음에는 칭찬의 말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처신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당부의 말을.


"또 벌 받긴 싫으시잖아요?"

마지막으로는 경고의 말을 주저앉아 있는 클레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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