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확실히 내가 클레어를 오랫동안 방치해두긴 했나 보다.
뭔가가 굉장히 간절해보인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가볍게 손을 가볍게 가져다 댄 것만으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터져나올 줄이야.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해서 당황스럽기보다는 살짝이지만 안쓰러웠다. 이 정도면 진짜 혼자서 별의 별 짓을 다 했을 가능성이 크니까. 분명 욱씬거리는 몸을 달래기 위해 열심히 손장난을 쳐댔겠지.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배덕이 주는 쾌감이 어떤 맛인지를 익혀버렸으니까. 이미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쾌감을 맛보았는데 혼자서 손이나 깨작거리면서 얻는 것으로 만족이 되겠는가?
당연히 안 되지.
그 점을 고려하면 클레어가 내 손놀림 한 번으로 저렇게 몸을 벌벌 떨어대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 소리내거나 넘어지면 손 뗄 거에요."
그렇다고 느슨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이런 몸이 되고 나서 자연스럽게 상실하게 된 무력적인 측면을 어디서 벌충하나 싶었는데 클레어라면 그 상실분을 충분히 메꿔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내 뜻대로 움직여준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기다. 그리고 그리 되려면?
고삐를 단단히 틀어쥘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이미 고삐는 걸려있는 상태였다. 쾌감이라는 이름의 고삐가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그걸 이용해 그녀를 내 말에 복종하도록 길들이는 것뿐이고.
그래서 일부러 엄한 표정과 목소리를 꾸며내서 휘청거리는 그녀를 향해 그리 말했던 것인데..
툭-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지금 몸을 휘감은 이 쾌감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듯 클레어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함과 동시에 양손을 이용해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절대로 소리를 내거나 그러지 않을텐데 제발 더 맛보게 해달라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처럼.
덕분에 그녀가 뒤에 몰래 숨겨놓고 있던 것이 잡아주던 것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튀어나와 버린 바람에 그만 그걸 깜빡해버린 걸까.
바닥을 구르는 흰 상자를 내려다보는 클레어의 눈동자가 겉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답지 않게 꽤나 격렬하게 동요하는 모습이 희한하게 느껴져서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 수 있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녀가 거기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을 틀어막고 있는 클레어의 손에는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대체 답례품으로 뭘 준비했길래 손을 저렇게 다친 걸까. 칼질이라면 도가 튼 사람이 말이다.
궁금한 마음에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자를 향해 시선을 던지니 내 시선이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클레어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상자를 향해 몸을 숙이려 했다. 꼭 마치 그걸 집어서 내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기라도 할 기세라서 즉시 제지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가있는 손을 이용해 질척하게 젖은 부분을 슥 훑으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상자를 향해 슬며시 굽혀지던 클레어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꼿꼿하게 펴지더니 이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자를 향해 뻗어져나가다가 그대로 다시 입쪽으로 돌아가 그곳을 틀어막는 일에 합류한 손 사이로 차마 완전히 수습하지 못한 헐떡거림이 새어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채 허벅지를 후들후들 떨고 있던 클레어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살짝 몸을 굽혀 여전히 바닥을 나뒹굴고 있던 상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름 굳게 닫혀있는 것을 손으로 꾹 눌러서 열어보니 날 반긴 것은 넘어져서 엉망이 되어버린 케이크의 모습이었다.
'아이고야..'
보아하니 생전에는 꽤 그럴 듯한 모습이었을 것 같은데 상자와 함께 험하게 구른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다 안타까워지는 광경에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고 있자니 비슷한 타이밍에 케이크의 생사를 확인한 클레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며 그녀의 얼굴 위로 그늘이 내려앉았다. 딱 보니 저걸 만드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던 모양.
'저건 그럼 베인 게 아니라..'
데인 건가?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수습하느냐 겠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원래의 형태를 잃고 곤죽이 되어버린 케이크를 집어들었다.
내가 그걸 가지고 자길 비웃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런 내 행동을 목도한 클레어가 눈꺼풀이라는 이름의 커튼을 내려 거칠게 흔들리고 있던 눈동자를 숨겼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것은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었다.
손까지 데여가며 열심히 준비한 것은 제대로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망가져버렸고, 그로인해 비웃음까지 당하게 된 상황.
아무리 내앞에서 별의 별 꼴을 다 겪은 그녀라도 비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물론, 상황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간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긴 하지만 말이다.
손바닥 위에 자리를 잡은 '케이크 였던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계량할 때 실수로 달걀 껍데기가 조금 섞여들어갔는지 아니면 내 손에 묻어있던 흙먼지 같은 게 케이크에 묻어 같이 입 안으로 들어간 건지 중간에 케이크에서는 날 리 없는 식감이 나긴 했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딱히 흠잡을만한 곳은 느껴지지 않는달까.
그렇게 입 안으로 때려넣은 것을 우물거리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켰다.
그리고는 크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손가락을 혀로 핥짝거렸다.
곧 들이닥칠 뭔가를 대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굳히고 있던 클레어가 다시 눈을 뜬 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제가 예상한 말이 들려오질 않으니 의아했던 것일까. 내 반응을 몰래 훔쳐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던 클레어가 이내 손에 묻은 걸 핥고 있는 날 발견한 것인지 눈을 크게 떴다.
멀쩡해도 먹어줄까 말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내가 바닥에 떨어져서 엉망이 되어버린 걸 먹어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클레어는 눈을 크게 뜬채로 굳어버렸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동자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자기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그걸 몰래 어디다가 내던졌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평소보다 살짝 커진 것같은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집요하게 주변을 훑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선심써서 먹어줬으면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사람을 의심하다니.
이만하면 주변을 훑는 걸 멈출만도 한데 쉬지 않고 그러고 있는 걸 보니 살짝 헷갈릴 지경이었다. 행동하는 모양새가 꼭 상처받길 원하는 사람의 그것이었으니까.
"뭐, 직접 만든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어요."
클레어가 주변 수색을 멈춘 것은 내가 그녀가 만든 케이크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나서였다.
내 말을 듣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눈을 동그랗게 뜬 클레어가 이내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워낙 생각치도 못한 상황이라서 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는 걸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뱅글뱅글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클레어의 눈동자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덧붙였다.
"다만 다음부터는 포크도 같이 챙겨넣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그리 말하며 여전히 크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손을 클레어를 향해 내밀었다. 내 딴에는 다 먹은 증거랍시고 그걸 확인시켜주고자 했던 행동이었는데..
클레어에게는 조금 다르게 비춰졌던 모양이다.
자길 향해 내밀어진 내 손을 내려다보며 꼴깍하고 침을 삼킨 그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붉은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어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크림을 조심스레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주인의 손을 핥는 강아지같았다. 열심히 혀를 움직이면서도 간간히 시선을 들어올려 내 눈치를 살피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저렇게 이쪽에서 고삐를 잡아당기지 않아도 알아서 복종하겠다는 제스쳐를 보여주는데 사양할 이유가 있겠는가.
마침 뭐가 묻은 건 클레어가 핥고 있는 쪽만이 아니었기에 다른 쪽 손도 그녀를 향해서 내밀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여기도 깨끗하게 좀 해주시겠어요?"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니 방해가 되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열심히 내 손에 묻어있던 크림을 제 혀를 이용해 닦아내던 클레어의 눈동자가 제 앞으로 들이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거칠게 흔들렸다.
아무리 내게 굴복한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라도 제가 싸지른 것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걸 핥는 것까지는 무리였던 걸까.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담겨있는 것은 분명 거부감이었다.
저렇게까지 거부감을 드러내니 강요하기가 좀 그랬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해도 그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다 내던져가며 한 행동들이었을텐데 여기서 더한 걸 강요하면 왠지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내밀었던 손을 뒤로 물리려고 했다.
그런 내 움직임을 확인한 클레어가 언제 동요하고 있었냐는 듯 즉시 그쪽에 달라붙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여기서 날 실망시키면 또다시 내가 자길 거들떠도 안 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살짝 뒤로 물린 내 손에 황급히 달라붙은 클레어가 크림이 묻은 쪽을 핥을 때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사납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 묘하게 귀여웠다.
맹수가 애교를 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포기하려던 참이었던만큼 생각치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 기꺼운 마음에 그녀 덕분에 깨끗하게 변한 손을 이용해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자 혀를 움직여 내 손을 훑던 클레어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식상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자인 내게 애 취급을 당하는 게 굴욕적이었던 걸까. 머리를 쓰다듬은 순간 눈을 질끈 감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아.. 흐.."
혀를 입밖으로 내밀기 위해 벌어져있던 입술 사이에서 달콤하고 뜨거운 헐떡거림이 연거푸 새어나왔다.
꼭 마치 그런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뜨겁고도 달콤한 숨을 흘리며 내 손을 꼼꼼하게 핥은 그녀가 이내 시선을 들어올려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시킨대로 깨끗하게 했으니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이 얼굴로 날아와 꽂혔다.
그걸 받고 있자니 문득 쓴웃음이 나왔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학원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의 경외심과 외경심을 한 번에 받던 전 전쟁영웅이라는 여자가 그들이 깔보고 제 아래로 보는 남자라는 존재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 말이다.
'칭찬이라.'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명령했다.
"벌려봐요."
그런 내 말에 순간 몸을 흠칫하고 떨었던 클레어가 쪼그려앉아있던 자세에서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덕분에 쫘악하고 잡아당겨지며 늘어난 바지가 그녀의 몸에 한층 더 달라붙으며 아까 전보다 노골적인 모양새를 그려냈다.
이제 보니 팬티는 입지 않은 상태였나 보다.
질척하게 젖어있는 부분 위로 도톰하게 부풀어오른 채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둔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는 한결 자유로워진 발을 들어올렸다.
그것이 한껏 벌어져있던 클레어의 다리 사이를 향해 내뻗어짐과 동시에 어디선가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로 울려퍼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축축하게 젖어있는 부분에 발등을 가져다댔다.
그 느릿하기 짝이없는 움직임을 클레어가 떨리는 눈동자로 응시했다.
그렇게 그녀의 시선을 한몸에 사로잡으며 천천히 나아간 발이 마침내 질척하게 젖어있던 부분과 맞닿은 순간.
발등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을 만끽하며 그것을 살짝 앞뒤로 움직여 맞닿은 부분을 자극했다.
여전히 내 당부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내게 이 세계판 풋잡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받으며 양손으로 제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귀에 대고 속삭였다.
"더 기분 좋은 걸 하고 싶으면.."
레이시아의 사저에 머무르는 날 찾아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