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46)화 (146/366)



〈 14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앨리스가 당도해서 순간적으로 흠칫하긴 했지만, 그건  그대로 잠시 뿐이었고 빠르게 당황을 수습한 뒤 문을 열어 앨리스를 맞이했다.

그렇게 날 데리러 온 앨리스를 마주하게  순간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손가락을 세워 그대로 입가에 가져다 붙였다.

"쉬이-"


물론 조용하라는 의미였다.


앨리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마주치자마자 조용하라고 한 소리 들은 셈이니까. 그래서일까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뜬 앨리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갑자기  그러는 거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카트린느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다행히도 불과 몇  전까지 온몸으로 묘한 떨림을 내뱉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파 위에 고이 몸을 뉘이고 있었다.

덕분에 얼핏보면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얼핏 보면은 말이다.

"많이 피곤했나봐요.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지더니 안 일어나더라구요."


그러니까 잠든 사람 깨우지 말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뜻으로 앨리스를 향해 눈짓을 해보였더니 다행히 그런  뜻이 무사히 전달되었는지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린 앨리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런 그녀를 따라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물론, 조심조심 문을 닫는 디테일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한 다음에 팔짱을 끼고 선채 내가 합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앨리스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자."


그러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이밀어진 손에 그것을 마주잡는 대신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맞받아치니 앨리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향해 내민 손을 살짝 흔들었다.

"안 잡아줄거야~?"

그럼 정말 상처받을거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무룩하게 변한 목소리하고는 다르게 앨리스의 얼굴에는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머물러있었다.

"에휴.."

그에  당하겠다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던 앨리스의 손바닥 위에 손을 포갰다. 그러자 내 손의 감촉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을 한 차례 꼬옥하고 움켜쥔 앨리스가 그대로 내 몸을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저항해봐야 소용없을 거라는  알고 있기에 순순히 끌려가니 말캉한 것이 얼굴로 와서 부딪혔다.


그렇게 셔츠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앨리스의 가슴이 얼굴을 꾹꾹 짓누르는  느끼고 있자니 살짝 고개를 숙인 앨리스가 그대로  어깨에 코를 파묻었다.


"흐으음-"


그와 함께 숨을 힘껏 들이키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시발..'


혹시 냄새나는 건 아니겠지?

순간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평범한 약초 냄새밖에 나질 않는 모양이다.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어깨에 대고 얼굴을 부비적대던 앨리스가 슬쩍 입을 벌려 내 어깨를 살짝 깨물었다. 그렇게 이빨을 가져다댄채 턱을 잘근잘근 움직이는 것이 제 것이라고 표시라도 남기는 듯 했다.

'귀엽네.'

대형 고양이과 맹수가 애교를 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앨리스의 머리카락이 살짝 부스스한 감촉이라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날 꼬옥하고 끌어안은  일방적인 애교 공세를 펼치던 앨리스가 내 어깨에 입술을 가져다댄채 뭔가를 웅얼거렸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걸까.

목소리가 작은 것도 작은 거지만 발음이 다 뭉개져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네? 뭐라구요?"


그래서 그리 물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어깨에 쪼옥하고 입을 맞춘 앨리스가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아니이.. 그냥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 말이 귓가로 울려퍼진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살짝 아쉬웠던 걸까.


'하긴..'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면 지금처럼 일방적인 스킨쉽공세를 펼치는 건 힘들테니까. 당하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하는 입장에서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겠지.

아무튼 그리 말하길래 진심이냐고 묻는 것처럼 물끄러미 앨리스를 바라보니 살짝 찔렸던 것인지 그녀가 다급하게 변명을 덧붙였다.

"혹시 서두르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시도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널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였다면서 황급히 수습을 시도하는 앨리스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참고할게요."


"..그래."

나름 간곡하게 말했는데 끝까지 뜻을 꺾지 않는 내 선택이 자못 원망스러웠던 모양이다.

삐졌다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을 한 차례 삐죽하고 내밀었던 앨리스가 끌어안고 있던 나를 다시 바닥에 내려주었다. 물론, 여전히 손만큼은 놓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앨리스와 손을 잡고 숲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였을 것이다.

"그..!"


생각치도 못한 이가 나와 앨리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만큼은 나도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이 사람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나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덕분에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눌러참았다. 그리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

그랬다.

갑자기 튀어나와 사저로 돌아가는 나와 앨리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아닌 클레어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 위에 맺혀있는 살짝 초조해하는  같으면서도 민망함을 무릅  듯한 표정과 등뒤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포즈를 확인한 순간 깨달았다.

성 니나브 데이때 내게 꽃 장신구를 선물받았던  네 명이 아니라 다섯이었다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그날 억지로 떠넘기듯 선물했던 것의 답례를 전하러  모양인데..


'허.'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디아나, 레이시아, 앨리스, 카트린느 이 네 명이라면 몰라도 클레어가 내게 그 날의 답례를 하려고 들 거라는 건 아무리 나라도 예상 못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클레어 쪽에서 먼저 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도 이 기회에  손에서 벗어나는 쪽을 택했을테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흐으음..'


뭔가 상당히 초조해보이는 낯짝을 하고 있는 클레어의 모습을 눈으로 훑으며 클레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대번 표정이 사나워진 앨리스의 손을 잡아당겨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허벅지에 차고 있는 단검들을 뽑아들 기세였으니까.

자신을 만류하는 내 손길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바로 조금 전까지 클레어를 향하고 있던 앨리스의 눈빛이 그대로 내쪽으로 돌아왔다.

'하긴..'

앨리스가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가 갔다.

아마 내가 그녀라도 그랬을테니까.

그녀에게 있어 클레어는 제자를 협박해서  욕구를 채운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년에 지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보아하니 엄청나게 어려운 결심을 하고서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그 노력을 봐서라도 말은 들어봐야하지 않겠는가.

"괜찮아요."

 영역을 침범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앨리스의 손을 꾹꾹 잡아당기며 그리 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난 괜찮으니까 조금 진정하라는 의미를 담아서 그리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딱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안 그래도 사나운 기세를 떨치고 있던 앨리스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변하더니 그 상태로 잠시간 날 노려보던 앨리스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날 향해 던지던 시선을 거두었다.


동시에 꼬옥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 살짝 뒤로 물러나는 것이 그럼 어디 한 번 알아서 해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살짝 삐진 걸까.


'나중에 달래줘야겠네.'

속으로 쓰게 웃으며 나와 앨리스의 눈치를 보듯 우물쭈물하고 있는 클레어를 향해 다가갔다.

일부러 노리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우리가 숲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들이닥친 덕분에 쓸데없이 시선을 끄는 꼴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들이닥쳤다면 여러모로 난감했을텐데 말이다.


'이런 날 제자한테 뭔가를 선물하는 스승이라니..'

그런 꼴을 사람들한테 보였다면 아마 내가 남부에서 막 돌아왔을 때 한창 학원을 강타했던 소문에 다시 불이 붙지 않았을까.

클레어가 자기 성욕을 해소하고자하는 목적으로 날 제자로 들인 거라는 소문 말이다.

'뭐, 따지고보면..'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는 게 살짝 웃기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클레어를 향해 나아가니 그녀가 어깨를 크게 움찔하면서 주춤 뒤로 물러났다.

여차하면 그대로 도망이라도 칠 기세라서 그러지 못하도록 손부터 잡았다. 내 몸이 이런 상태이니만큼 떨쳐내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내 손 하나 떨쳐내는 것쯤이야 그녀에게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클레어는 제 손을 움켜쥔 내 손을 떨쳐내지 못했다. 아니, 떨쳐낼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는  같았다. 내 손을 떨쳐내면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 닥칠 거라고 굳게 믿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미약한 움찔거림 한 번.

그것이 클레어가 내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그렇게 클레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만든 뒤 내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앨리스를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것 같은 그녀를 향해 제안했다.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할까요?"

그리 내뱉은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흠칫하는 기색이 전해져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어쩌면 앨리스가  붙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의외라고 해야할지 자리를 옮기기 위해 발을 떼는 날 멈춰세우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단단히 토라진 것일까.


아니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 뜻이니만큼 존중해주겠다는 어필이라도 하려는 걸까.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무사히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한 나는 즉시 몸을 돌려 클레어를 향해 돌아섰다.

"주세요."

돌아선 순간 그녀를 향해 보란듯이 손을 내미니 클레어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움찔했다. 꼭 정곡을 찔린 듯한 모양새라 솔직히 좀 웃겼다. 아니, 그렇게 티를 내놓고서는 설마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굳이 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헛웃음을 그대로 입술 밖으로 밀어내니 클레어가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집중하지 않고서는 알아먹을 수가 없을  같아서 흘러나오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바짝 집중한 덕분에 겨우겨우 알아들을  있었다. 클레어가 내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지금 이렇게 답례품을 들고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나 목적같은 게 있어서 그런  아니라 혹시라도 그걸 빼먹었다가 나중에 내가 그걸 빌미로 자신을 겁박할까봐 걱정되서 그런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조각조각난 것을 끌어모아 그 말을 머릿속에서 간신히 완성시킨 순간, 가장 먼저 입밖으로 새어나온 것은 이번에도 역시나 헛웃음이었다.


얘는 내가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열심히 씨부려대고 있는 것일까?

진심으로?


그럴 리 없었다.

진짜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그딴 말도 안되는 생각을  리 없으니까.


 사실을 본인이라고 모르지 않을텐데 저렇게 열심히 되도 않는 변명을 주워섬기고 있는 건 역시..


'더는 혼자서는 만족이 안 됐나?'

그래서 스스로를 향해 일단 받은 게 있으니 답례를 해야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핑계까지 대가며 날 찾아오긴 했는데 막상  사실을 인정하려니 쪽팔리고 민망했던 거겠지.


내 모습이 이렇게 되어버린만큼 더더욱 그랬을 것이고.


뭐, 내 추측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게 사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확인을 해봐야겠지.


클레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대고 있는 틈을 노려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던 것은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다리 사이로 밀고 들어간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축축함이었다. 그것도 그냥 축축함이 아니라 닿은 순간 흠뻑 젖어버릴  같은 질척한 축축함이 그녀의 다리 사이를 지배하고 있었다.


바지가 이렇게까지 젖을 정도면 대체 얼마나 질질 싸대야하는 걸까.


웃긴 건 그런  행동에 대한 클레어의 대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면서  손을 떨쳐냈을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하흐으읏..!"


오히려 내 손길을 만끽했다.

마치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감격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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