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내가 들이닥쳤을 때 화들짝 놀랬던 걸 보면 확실히 뭔가를 준비하긴 한 것 같은데 말이다.
뭘까.
뭘 준비한 걸까.
궁금한 마음에 아까 카트린느가 허둥지둥 수습했던 곳을 향해 시선을 던져봤지만 딱히 음식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실험용 기구로 보이는 것들만이 주르륵 늘어서있을 뿐.
'아, 혹시..'
음식 대신 특별한 약같은 걸 준비한 건가?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걸 과연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살짝 애매하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둘다 먹는 거긴 하니까. 거기에 카트린느가 그런 세세한 부분을 신경쓸 것 같지도 않고.
은근히 효율을 중시하는 그녀이니만큼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큰 쪽을 시도하느니 아싸리 자신의 주특기로 승부를 보는 게 낫다고 보지 않았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솔솔 풍겨와서 조금씩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워낙 요상한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카트린느다보니 그런 그녀에게 있어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일단 보통 물건은 아니라는 뜻일테니까.
어쩌면 카트린느는 그쪽으로는 생각도 안했는데 나 혼자서 김칫국을 사발째로 드링킹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하고 뛰는 걸 느끼면서 침착함을 되찾은 카트린느의 인도에 따라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보니 참..'
이 오두막도 그동안 참 많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았다.
예전같았다면 앉기 전에 소파에 쌓여있는 온갖 연구자료들부터 치웠어야 했을텐데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으니까.
여기서 놀라운 점이 있다면 소파를 치운 장본인이 바로 카트린느라는 것 정도?
물건은 고쳐써도 사람은 고쳐쓰지 못한다더니만 최근 카트린느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내 시선을 의식해서든 아니면 제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인든 간에 머릿속에 청소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던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로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봐야 당장은 소파 주변이 한계긴 했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 범위도 서서히 늘어나지 않을까.
사람이 바뀌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여서 내가 다 흐뭇할 정도였다.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카트린느는 평소처럼 성실하게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이 실험이지 실험이랍시고 하는 행동들은 전부 야한 짓이긴 했지만.
그러면서 명분이랍시고 내세운 게 살짝 웃기긴 했다. 남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식능력이니만큼 혹시라도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매일 확인할 필요가 있다나?
그 말과 함께 근거랍시고 덧붙여진 말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 기묘한 세계가 직면해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출산율.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직면해있는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놈이었다.
안 그래도 성비가 8대 2정도로 불균형한 상황인데 남성들의 성욕과 생식능력또한 날이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
심지어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도 남자아이의 수는 현저히 적어서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몇 세대 후에는 남성들의 취급이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게 카트린느의 설명이었다.
덕분에 최근들어 서서히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의욕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대로 죽어버렸다.
처음에는 분명 뭐 이딴 곳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한 곳이었는데 지내다보니 나름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달려볼까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말이다.
'출산율을 어떻게 해결하냐고.'
차라리 마왕이나 대악마라는 놈들하고 드잡이지를 하는 게 훨씬 쉽지 그건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 차원에서 나서도 해결이 될까말까한 정도?
물론, 명백히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닌지라 세상을 이리 만든 원인이 있을 거라는 것까지는 혼자서 추측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결을 시도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그 원인이 뭔줄 알고 해결을 시도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냥 이대로 쭉 살다가 다음에 비교적 멀쩡한 세계가 걸리면 그때 죽어라고 달리는 편이 낫지.
그게 카트린느의 말을 들은 순간 든 생각이었고, 기존의 방침을 수정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책임하다면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긴 했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세계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원인을 찾아서 해결했는데 그로인해 마왕같은 놈들이 뿅하고 튀어나와서 세상을 다른 의미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게 멸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서서히 멸망해버리는 게 이 세계 주민들 입장에서도 훨씬 낫지 않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거쳐온 세계들 중에 이 세계처럼 서서히 스러져가는 곳은 없었으니까.
다들 하나같이 마왕이니 악신이니 악마니하는 놈들이 튀어나와서 '크와아아아앙-! 다 멸망시켜버리겠따-!'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쳐죽여대는 곳들 뿐이라서 내게는 이 세계가 너무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둘다 멸망이라는 낭떠러지를 향해 내달리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그동안 한 시속 400km정도 되는 속도로 벼랑끝을 향해 내달리는 열차만 이용하다가 갑자기 한시간은 커녕 일년에 100m는 나아갈까 말까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갈아타게 되니 묘하게 위기감이 안 생긴다고 해야할까.
'쩝..'
그 이야기를 들은 게 바로 이 자리다보니 여기 앉으면 자꾸만 그와 관련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금세 머릿속을 차지하더니 그대로 눌러앉으려고 하는 것들을 살짝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털어내니 카트린느로부터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오늘 먹을 건 많이 받았어?"
그게 궁금했던 걸까.
따지고보면 실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긴 한데 말이다.
그래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더니 그런 내 시선에 도둑이 제 발 저리기라도 한 것처럼 카트린느가 잽싸게 변명을 덧붙였다.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긴 했지만.
"받기는 받았는데.."
아무튼 꽤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그리 말했더니 카트린느가 '흐응..'하고 묘한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난 봤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카트린느의 입꼬리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부르르 떨리는 모습을 말이다.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른 년들이 먼저 다녀갔다고 생각하니 순간 기분이 나빠졌던 걸까.
그렇게 잠시동안 기분 나빠하던 카트린느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며 날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혹시.. 기억 나?"
앞뒤 다 자르고 그리 물으면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카트린느를 바라봤더니 그녀도 제 말이 많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잽싸게 생략했던 부분을 덧붙였다.
"그 왜.. 성 니나브 데이때 말이야. 나한테도.. 줬었잖아."
"아, 응. 그랬지."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냐는 식의 눈빛을 카트린느를 향해 날려보내니 그녀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제가 예상했던 반응하고는 좀 달랐던 걸까. 움찔하며 동요하던 것도 잠시, 슬며시 입술을 깨문 카트린느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마음먹은 걸까.
"그..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좀 그렇더라고."
밑밥을 깔기 시작하는 걸 보면 슬슬 오늘을 위해 준비한 걸 꺼내들려는 모양이다.
뭘까.
뭘 준비했길래 이렇게나 조심스러운 걸까.
호기심이라는 놈이 미친듯이 솟구치며 당장 준비한 걸 꺼내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러서 참았다.
그리고는 슬쩍 시치미를 떼봤다.
"난 괜찮은데.."
실험만으로도 충분히 바쁠텐데 뭣하러 그것까지 준비했냐는 식으로 받아치니 카트린느의 입술이 다시 한 번 경련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다른 년들은 쉽게쉽게 가져다 받쳤을텐데 자긴 왜 이리 힘드냐고 한탄이라도 하는 것처럼 티나지 않게 입술을 슬쩍 한 번 깨문 카트린느가 이내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좀 그렇지."
받은 게 있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느냐.
그런 뉘앙스로 내뱉어진 카트린느의 발언에 민망함과 멋쩍음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볼을 긁적이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시선을 그녀를 향해 던지니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잠잠하던 목울대가 위아래로 거칠게 요동쳤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인 카트린느가 조심스레 입고 있는 셔츠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갑자기 거기로 손은 왜 가져가는 걸까.
설마 가슴골 사이에 오늘을 위해서 준비한 걸 숨겨놓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까지 할까 싶어서 떠오르는 순간 부정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은 야릇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카트린느가 피부 위에 초콜릿같은 걸 발라둔채 '자 이제 날 먹으면 돼..'라고 말하며 날 유혹하는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혀서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자니 귓가로 울려퍼진 건 톡하고 단추가 풀어질 때나 날법한 그런 소리였다.
'설마..?'
진짜로?
그런 쪽으로는 영 젬병이던 카트린느가 그렇게 과감하기 짝이 없는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 옷깃을 보며 열심히 기대감을 불태우고 있던 순간..
툭-
카트린느의 손이 단추를 하나 더 풀어냈다.
'아..'
그와 함께 눈앞으로 드러난 건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하고는 다르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녀의 가슴에는 아무 것도 발려있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새하얗기만 했다.
그럼 그렇지.
아직도 내 물건에 손을 댈 때마다 손을 벌벌 떠는 게 바로 카트린느인데 그런 그녀가 그렇게 과감한 시도를 할 리 있겠는가.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혼자 김칫국부터 원샷때린 꼴이라서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자니 그런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카트린느가 남은 단추들을 모두 풀어냈다.
그렇게 평소 실험할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거듭난 카트린느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날 향해 제안해왔다.
"하, 한 번 만져볼래?"
솔직히 그런 카트린느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슴을 만지는 것 정도야 평소에도 매일같이 하던 행동인데 거기에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구석이 아직도 남아있었을 줄이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마음껏 주물러서 저렇게 가슴을 내보일 때마다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하는 거나 해결해주자하고 그쪽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가져갔는데..
그렇게 카트린느의 가슴을 향해 가져간 손을 오므려 그녀의 가슴을 슬며시 움켜쥔 순간이었을 것이다.
새하얀 살결이 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옴과 동시에..
'..어?'
뭔가가 손바닥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긴장한 나머지 땀방울 같은 거라도 맺혀있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땀이라면 이렇게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리 없으니까.
'설마.'
그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실험에 필요하다는 명분때문에 카트린느의 가슴을 열심히 빨아댈때마다 느꼈던 자그마한 소망이었다.
다만 내쪽에서 먼저 요구하기는 좀 그런 소망이라서 그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 속에 고이 묻어왔었는데..
카트린느의 가슴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미증유의 액체는 마르지 않는 샘물마냥 여전히 퐁퐁 솟아오르며 내 손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것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아깝게 느껴졌다.
동시에 바로 조금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갈증이 목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즉시 카트린느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눈으로 들어온 건..
"아무리 실험이라고 해도 매번 같은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질릴테니까.."
살짝 흥분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분홍빛 돌기 끝에서부터 새하얀 액체가 퐁퐁 솟아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카트린느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그대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새하얀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돌기를 허겁지겁 베어물었다.
그렇게 입안으로 들어온 것을 입술을 이용해 부드럽게 짓누르자..
"흣.."
나지막한 신음성과 함께 달콤한 액체가 혀끝을 적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