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셋 중에 누가 좋을까.
그 고민은 디아나의 손을 잡고 사저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렇게 고민에 잠겨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사이 저녁 식사 시간과 그 후에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약먹기 타임도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아, 물론 약은 먹는 척만 했다.
입 안으로 털어넣고 혀 밑에 감춰놓고 있다가 디아나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뱉어내니 눈치를 못 채더라.
다만 약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연기하는 게 살짝 어렵긴 했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시종일관 빳빳함을 유지하고 있으려니 은근히 고역이랄까. 디아나가 본인도 모르게 도움을 줬기에 망정이지 그게 없었다면 중간에 발기가 풀려서 십중팔구 들켰겠지.
"그 오늘은.."
약먹기 타임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디아나가 자연스럽게 그 음까지 차지하려 들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오늘은 그녀말고 다른 이에게 볼 일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내 고민은 어느 정도 끝나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적임자다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잠자리에 드는 척 내 앞으로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누워있다가 바깥이 고요해졌을 때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닫혀있던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갔다.
문 옆을 지키고 있던 기사의 시선이 등뒤로 따라붙는 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날 굳이 붙잡으려 들지 않았다.
이상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따로 언질같은 거라도 받은 걸까.
그렇게 곳곳에서 날아와꽂히는 시선을 느끼면서 주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레이시아의 방 앞을 지나칠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라고 해야할까. 꽤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방으로 통하는 문쪽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딱 내가 원하는 광경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 앞으로 다가가 닫혀있는 문을 두들겼다.
연기까지 해가면서 저녁 약을 거른 효과가 슬슬 나타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잘 때만 입는 걸 그대로 입고 나와서 그런 걸까.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이 제법 뜨거웠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고.
그것들을 눈치채지 못한 척 시치미를 떼면서 다시 한 번 문을 두들겼다.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작아서 못들은 것 같았으니까.
"..누구지?"
다행히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살짝 피곤해하는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그래서 사실대로 정체를 밝히니 아주 잠깐동안 침묵했던 레이시아가 이내 입장을 허락해주었다. 그에 닫혀있는 문을 몸으로 떠밀며 방 안으로 들어서니..
'미친..'
레이시아가 제 살갗만큼이나 새하얀 슬립을 몸에 걸친 채로 날 맞이해주었다.
잠들기 전에 몇 가지만 더 처리하고 잠들 생각이었던 걸까.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접객용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서류들이 제법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런 내 표정을 확인한 것일까.
의아해하는 표정을 얼굴 위에 띄운 채 날 맞이하던 레이시아가 몸을 흠칫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잔소리를 한 발 장전했다.
"왜 아직까지 안 주무시나 했더니.."
이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일하고 있었던 거냐면서 걱정과 속상함을 반씩 섞은 것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니 레이시아의 얼굴 위로 살짝 홍조가 어렸다.
"그.. 최근 들어서 처리해야할 일들이 부쩍 늘어나서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내뱉어진 레이시아의 발언을 그럼 어제하고 그제도 이렇게 늦게까지 일을 했냐는 질문으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답이랍시고 돌아온 건 침묵이었다. 그 상태로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까지 피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짜 그랬던 모양이다.
"어휴.."
그에 답답하고 속상해하는 것처럼 슬쩍 한숨을 내쉬니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던 레이시아가 날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는 이안 너는 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냐고 묻는 레이시아의 질문에 누워있어도 잠이 안 와서 따뜻한 거라도 마시면 좀 괜찮아질 것같아서 그랬다고 말하니 그녀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서 제안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나 한 잔 할까요?"
그 제안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던 레이시아가 이내 피식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며시 덧붙였다. 마침 자기도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고.
그렇게 그녀와 마주앉게 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들을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들면서 레이시아 쪽을 힐끔거렸다.
차가 나왔음에도 레이시아는 손에서 서류를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내 시선으로부터 제 얼굴을 숨기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더욱 끈질기게 그녀 쪽을 힐끔거렸다. 그러고 있자니..
"흐흠.."
내 시선이 많이 신경쓰였던 모양인지 작게 헛기침을 한 레이시아가 제 몫으로 나온 차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물론, 다른 쪽에는 여전히 서류가 들려있었다.
레이시아가 차를 들이키는 것에 맞춰서 딱 좋게 식은 것을 입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두어 모금 정도 들이킨 뒤..
"일이 그렇게 많은가요?"
다시 한 번 그녀를 향해 걱정을 내비췄다. 그러자 서류 너머에서 피식하고 쓰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식으로 레이시아를 향해 걱정스러워하는 시선을 보내다가..
"안 되겠어요."
반쯤 비워진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레이시아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이, 이안?"
갑작스러운 내 접근에 놀란 것일까.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서류뭉치가 흠칫하고 떨리더니 그 너머에서 당혹스러움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싸그리 무시하며 찻잔을 내려놓고 자유를 되찾은 그녀의 왼손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걸 양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쥔 뒤에 그대로 잡아당겼다.
"이리오세요."
저항하고자 하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몸의 힘이라고 해봐야 형편없는 수준이니까.
그럼에도 레이시아는 순순히 내가 이끄는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의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서 포박한 뒤에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대를 향해서 말이다. 그녀도 내 목적지가 그곳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양팔로 꼬옥하고 끌어안고 있던 그녀의 손이 움찔하고 떨리며 동요를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 하나 누워있는 이 없이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던 침대 앞에 도착해서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레이시아의 팔을 끌어당겼다.
"누우세요."
"이, 이안.. 이건.."
"얼른요."
누울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니 몇 번이고 이어지는 내 재촉을 배겨내지 못한 레이시아가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왔다.
스르륵-
침대 위에 깔려있던 이불과 그녀의 살결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리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레이시아의 얼굴에는 어느새 홍조가 서려있었다.
그렇게 내 인도에 따라 침대 위로 올라온 레이시아가 조심스레 몸을 옆으로 뉘였다. 그러더니 날 향해 묻더라.
"이, 이제 됐느냐?"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지금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몸을 일으켜서 다시 일하러 갈게 뻔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끌어안고 있던 그녀의 팔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그녀의 팔을 끌어안은 채 그녀의 옆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내 팔 사이에 갇혀있던 레이시아의 팔이 다시 한 번 흠칫하고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 이제 주무시면 돼요."
그러면 놓아주겠다.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니 돌아온 건 '너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잘 수 있겠냐.'라고 항의라도 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렇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가볍게 무시하고는..
"주무시는 거 보면 그때 놓아드릴게요."
온몸에 힘이라는 힘은 전부 끌어모아 그녀의 팔을 꽈악하고 끌어안았다. 그녀가 잠들 때까지 절대 이걸 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손끝을 스치는 무언가의 감촉이 퍽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품 안에 갇혀있던 레이시아의 팔이 흠칫흠칫하고 묘한 떨림을 뱉어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를 재우는 데 집중하는 척을 했다.
"자, 눈 감으세요."
얼마 되지도 않은 힘으로 팔을 끌어안은 채 재촉하는 내 모습이 가소롭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걸까.
묘하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레이시아가 이내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얼른요."
"그래."
그런 레이시아를 향해 다시 한 번 재촉하니 그제서야 조심스레 눈을 감는 그녀였다.
"자장가도 불러드릴까요?"
내 말이 퍽 웃겼나보다. 바람빠지는 소리가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술 사이를 뚫고 튀어나왔다.
눈을 꼬옥하고 감은 채 피식피식 웃는 레이시아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다 됐다고.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면?
지금쯤 내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페로몬이 레이시아의 안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이성을 흐릿하게 만들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이성이 흐릿해지고 나면 그동안 그녀의 발목을 옥죄어가며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도 한결 헐겁게 변할 터.
그때 적당히 상대해주면서 셋이서 작당한 내용이 무엇인지 캐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몸이 제멋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랬던 날 잠에서 깨운 것은 묘한 소리였다.
꼭 마치 진흙 속에 손가락을 쑤셔넣고 휘젓는 듯한 그런 소리라고 해야할까.
그만 깜빡 잠들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고 있던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소리 덕분이었다.
찌걱..
날 잠에서 깨우고도 멈추지 않고 귓가로 울려퍼지는 그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떠봤다. 그랬더니 눈으로 들어온 건..
"흐으.."
얼굴을 찌푸린채 살짝 앓는 소리를 흘리고 있는 레이시아의 모습이었다.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그녀는 얼굴을 발그레하니 물들인 채 살짝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레이시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것도 잠시, 아까 전부터 묘한 움찔거림을 선보이는 그녀의 팔을 따라 조심스레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녀가 땀에 젖어있던 이유를.
"흐윽.."
작게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레이시아의 다리 사이를 꾸욱하고 누르고 있던 그녀의 자그마한 손이 덮고 있던 부분을 조심스레 문질렀다.
그랬다.
레이시아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내 옆에 몸을 뉘인채로 말이다.
'이야..'
그 모습에는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봐도 날 덮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얼굴을 해놓고서는 그걸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보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깨어있는 상태였다면 몰라도 곤히 잠들어있으니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걸까.
혼자서 끙끙대는 모습이 어쩐지 숭고하게까지 느껴져서 차마 내쪽에서도 먼저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바라만보고 있었더니..
"안 돼.. 안 돼.."
뭔가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던 레이시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에 살짝 뜨고 있던 눈을 다시 감으니 뒤이어 들려온 것은 자그마한 중얼거림이었다.
"부족해.."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해도 자꾸만 몸 안으로 파고들어서 불을 지피는 페로몬 때문에 더는 무리라고 판단한 걸까.
여전히 내 팔 사이에 갇혀있던 레이시아의 손이 묘한 움직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깍지였다.
그렇게 내 손을 꼬옥하고 움켜쥔 레이시아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혹시 소리가 날까 걱정되었던 걸까.
숨소리까지 참아가며 몸을 일으킨 레이시아가 날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자신도 없었다고.
그러니 이런 짓을 하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꼭 그리 말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스윽-
아까 전부터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내 팔을 어딘가를 향해 이끌었다.
그렇게 끌려가던 팔 끝에 축축하고 뜨거우면서도 보드라운 것이 와닿은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하려고 하는 짓을.
"하아아.."
그저 닿기만 했을 뿐인데 레이시아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달콤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잠시동안 숨을 몰아쉬던 레이시아가..
"이안.."
나지막한 목소리로 날 부르며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찌걱-
그녀의 의해 꼿꼿하게 세워진 손가락이 좁고 축축한 틈 사이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물건 대신 손가락을 집어삼킨 그녀가..
"이안.. 이안..!"
내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레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제 안으로 파고들어가 있는 내 손가락이 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