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먼저 입을 열기는 애매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막 깬 것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고 있었더니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던 카트린느의 시선이 얼굴을 집요하게 훑어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 많이 졸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인가 했더니만 거기서부터였을 줄이야.
다 떼놓고 귓가로 울려퍼지는 목소리만 들어보면 진짜로 날 걱정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걸 집요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 다 깎아먹고 있었고.
아무튼 그리 묻길래 멍하니 앉아있던 걸 풀고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렇게라도 정신을 차리려는 것처럼.
"음.. 미안, 잠깐 졸았었나봐."
"피곤하면 좀 쉴래?"
"아냐, 괜찮아. 그.. 무슨 이야기 중이었더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투로 물으니 귓가로 울려퍼진 건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였다. 나름대로 볼륨을 조절한답시고 조절했던 것 같은데 거리가 거리인지라 무용지물이었다.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이었잖아."
"실험..?"
그건 또 뭐냐.
꼭 그리 말하는 것처럼 의아해하는 목소리를 내어 반문하니 순간적으로 카트린느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제가 예상했던 전개하고는 조금 달랐던 걸까. 그렇게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할 정도로 동요를 드러냈던 카트린느였지만 그 동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응, 네 몸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줄 약을 개발하는 실험 말이야."
말 그대로 순식간에 침착함을 되찾은 그녀가 자연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랬었나..?"
거기에 대고 맞장구를 치니 카트린느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 번도 오간 적 없는 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줄줄 읊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카트린느의 이야기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그래서 네가 돕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그러라고 했고."
"..내가?"
"응, 기억 안나?"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리 묻는 것이 헛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그랬던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랬어."
"어.."
"그 모습은 너무 허약해서 최대한 빨리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아니었어?
그런 투로 내던져진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천천히 끄덕였다.
"그랬었지. 참."
그 말위에 덤으로다가쓴웃음까지 얹으니 완성된 것은 카트린느가 바라마지 않았을 모습 그대로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전부터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던 그녀의 숨소리가 살짝이지만 거칠게 변해있었다.
카트린느가 상당히 흥분한 상태라는 걸 알려주는 그 소리를 나름 즐겁게 만끽하면서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그런 내 말이 카트린느한테는 과연 어떻게 들렸을까. 모르긴 몰라도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손에 넣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던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에 일순간 힘이 바짝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싱글벙글 웃고 싶은데 그랬다가 혹시라도 내게 걸어놓은 암시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치밀어오르는 기쁨을 억지로 참는 듯한 그런 모양새였다.
'귀엽네.'
기쁜 걸 티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카트린느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속으로 흡족하게 웃고 있자니, 흠하고 작게 헛기침을 한 그녀가 이내 난감해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잘.."
"아니,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누나는 알고 있어야지."
볼을 긁적이는 카트린느를 향해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던지니 스리슬쩍 내 시선을 피한 그녀가 이내 '음..'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고민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살짝 답답하게 느껴지면서도 좀 웃겼다.
바라는대로 자유이용권을 끊어줬더니 정작 그걸 써먹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기껏 비싼 돈 주고 자유이용권을 끊어놓고서 산책만하는 꼴이라고 해야할까.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약간이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마 나라도 저랬을테니까.
자유이용권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다짜고짜 거기서 제일 유명하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부터 타버리면 그 다음에 타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흥이 안 살지 않겠는가.
어차피 자유이용권에 이용기한 같은 것도 없겠다 일단 상대적으로 평범한 것들부터 차근차근 맛보며 즐길 생각인 거겠지.
그러니 저렇게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래도 좀 답답하긴 하네.'
그래서 그쯤하라고 카트린느를 불러보았다.
"누나?"
의아한 목소리를 내어 그녀를 부르니 그녀도 고민하는 척 연기하는 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봤는지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음.. 오늘은 처음이니까 그러면 네 몸 상태부터 보다 확실하게 파악해놓는 걸로 할까?"
"내 몸 상태?"
"응, 혹시 뭐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뭐 그런 것들 있잖아."
그리 말하길래 그럼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뜻으로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때부터 질문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아가서.. 혹시 어디 아픈 곳 있어?"
"아픈 곳? 딱히 없는데.."
"대충 대답하지 말고 잘 생각해봐."
"그렇게 말해도.."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생각해보라는 카트린느의 말에 난색을 표하면서도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짚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곳은 없다는 뜻으로.
"일단 다행이네."
그리 중얼거린 카트린느가 그 다음으로 던진 질문은 불편한 점에 관한 것이었다.
"불편한 점이라고 하면 역시 허약함이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 몸은 진짜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는 것처럼 몸을 살짝 떠니 질문을 던져놓고 유심히 내 반응을 관찰하고 있던 카트린느가 기억해두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 말고는?"
"글쎄.. 애초에 가만히 있어도 어지간한 건 다 알아서 해줘가지고.."
그런 걸 체감할 기회가 없었다는식으로 말하니 일자로 곱게 다물어져있던 카트린느의 입술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딱 그게 전부였다.
"혹시 나중에라도 알게되면 말해줘."
"응."
자연스럽게 불편한 주제를 마무리지은 카트린느가 이번에는 전과는 다르게 살짝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도 확인은 해야겠는데 섣불리 꺼내들만한 주제가 아니라서 내 눈치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순수하게 궁금한 마음에 답지않게 머뭇거리고 있는 카트린느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보내니 살짝 침음성을 흘린 그녀가 곧바로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해? 이것도 확인해야할 것 같아서 묻는 것 뿐이니까.."
그리 말하면서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있는 모양새가 연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진짜로 부끄러워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덕분에 대충이지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가 물어보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를.
"그.. 밤에는 어때?"
아니나 다를까 서로 꼬옥하고 끌어안고 있던 붉은 입술이 슬며시 벌어지며 그 안에서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밤에? 잘 자는데?"
그래서 일단 헛다리 짚는 척을 해봤다. 그랬더니 안 그래도 빨갛게 물들어있던 카트린느의 얼굴이 조금 더 붉게 변했다.
"아니 내 말은.. 그.. 할 때 있잖아."
"할 때?"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입을 살짝 벌리며 '아..'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카트린느 쪽을 향하고 있던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나름대로 민망해하는 모습을 연기해봤던 것인데 다행히 남이 보기에도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살짝 내리깔고 있던 카트린느가 내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그것만 보면 민망해하는 것 같았지만, 내쪽을 바라보는 카트린느의 눈동자 속에는 기이한 열기가 맴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걸까.
"으음.. 그.. 뭐..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예전만큼은 아니긴 한데.."
"..그래?"
예전이라고 말을 하니 예전 몸으로는 과연 어땠을지가 궁금해지기라도 한 걸까. 내쪽을 향하고 있던 카트린느의 눈동자 속으로 일순간 호기심같은 게 스치고 지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동글동글한 약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매일 먹다보니까.."
"매일..?"
설마 거기부터 관심을 보일 줄이야.
슬쩍 시선을 움직여 카트린느의 반응을 확인해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날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였다. 자기는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독수공방하고 있었는데 남들은 매일같이 행복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순간 복장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이 제법 따끔했다.
이내 스스로도 조금 과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카트린느가 날 향해 던지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게 거두어진 건 시선 뿐이었다. 관심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그렇구나.. 그러면 그건 확실치 않다는 거네?"
그리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퍽 진지했다. 얼핏 보면 그랬다는 것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 감정을 상당히 억누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술부터가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것을 다른 년들이 낼름 집어먹은 것도 모자라 쪽쪽 빨아먹고 있다는 말을 들어버리니 순간적으로 눈이 확 뒤집혔던 걸까. 혹시 까먹을 수도 있으니 따로 적어두겠다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처럼 펜을 움켜쥐고 있던 카트린느의 손은 어느새 허옇게 질려있었다. 그 손 안에 인질마냥 잡혀있던 펜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부러지고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뒤이어 흘러나온 카트린느의 목소리에도 힘이 잔뜩 실려있었다.
"그러면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좋겠네."
"..응?"
그에 당황한 듯한 반응을 내비치니 카트린느가 잽싸게 덧붙였다.
"실험을 위해서야."
치트키나 다름없는 한 마디가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그 즉시 반응을 바꾸었다.
"하긴 이왕할거면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긴 하지."
"..그렇지. 의외로 그런 식으로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부분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거든."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는 내 모습이 순간적으로 적응이 안 됐던 건지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 뿐이었고 카트린느가 자연스럽게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 반응을 눈에 담으면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 바로 확인할까?"
"바, 바로?"
그랬더니 오히려 당황하더라.
그래서 친히 일러주었다. 디아나가 볼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면 난 가야한다고.
"그, 그럼 서두르는 편이 좋겠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는 카트린느였다. 그런 그녀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시선을 던지니 카트린느가 뺨을 빨갛게 물들인채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 일단은 벗어야.."
그러면서 그리 말하길래 바라는대로 벗어주었다.
아무리 그런 암시들을 새겨넣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순순히 제 뜻대로 움직여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걸까. 벗는 김에 팬티까지 한 번에 벗어버리니 그와 함께 드러난 내 물건을 확인한 카트린느가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한 번 시선을 던졌다. 그쪽이 말한대로 일단 벗었으니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는 것처럼.
내 뜻이 무사히 전해졌던 걸까.
"일단 서기 전의 상태부터 확인해볼게.."
꼴깍하고 한 차례 침을 삼킨 카트린느가 스스로를 향해 되뇌이듯 그리 중얼거리면서 날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거리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카트린느가 내 앞까지 도달하는 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내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한 행동은 몸을 숙이는 것이었다.
마침내 마주하게된 내 물건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걸까.
내 사타구니에 코를 파묻기라도 할 것처럼 바짝 얼굴을 들이밀어오는데 덕분에 그녀의 코와 입에서 새어나온 뜨뜻한 숨결이 물건을 간지럽혔다.
반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그 묘한 감각에 물건이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걸 느끼고 있으니..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지며 방금 전보다 조금 더 뜨뜻하고 축축하게 변한 숨결이 내 물건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