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기는 한 걸까.
레이시아를 따라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탄 순간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말에 솔직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디아나하고 앨리스도 앞으로 사저에서 함께 생활할 거라니.
레이시아는 내 안정을 위해서라며 둘러댔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레이시아라면 절대 할 리 없는 발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위화감이라는 놈이 다시금 내 안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셋 중에 한 명이 덜컥 내 아이를 갖게 되면 내가 거기에 부성애같은 걸 느끼고 조금은 안정될 수 있을 거라고 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착각해준다면야 나야 사양할 이유가 없긴 했지만..
'왠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직감이라는 놈이 내 귀에 대고 자꾸만 속닥거렸다. 분명 그것말고 뭔가 다른 꿍꿍이 속 같은 게 있을 거라고.
문제는 그게 대체 뭐냐는 건데..
대체 뭘까.
대체 뭘 꾸미고 있길래 한 나라의 왕녀 쯤 되시는 분이 제 욕망까지 굽혀가면서 내게 맞춰주려는 척을 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섣불리 캐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가면서 시도하는 거라면 분명 상당히 중요한 노림수라는 건데 함부로 그걸 들춰냈다간 자해라는 초강수로 간신히 봉합시켜놓은 것이 다시 터져버릴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렇다고 뭔지도 모르는데 마냥 무시하고 있기도 살짝 찝찝하고..'
그래서 일단은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기로 했다.
노림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셋의 팀플레이가 쭉 완벽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셋의 합이 그럭저럭 괜찮아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이 초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어떨게 될까. 그때도 지금처럼 안정적인 합을 보여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그리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셋은 기본적으로 화합이 될 수가 없는 조합이니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내가 신이 아니라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언젠가는 균열이 일어날테지.
그때를 노리고 들어간다면 굳이 지금부터 아둥바둥할 되지도 않는 연기를 이어나갈 필요도 없이 어렵지 않게 셋의 노림수를 알아낼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금 단축시키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저 잘 됐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수도로 귀환한지 이틀 째 되었을 때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디아나."
넷이 다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던 와중에 디아나의 이름을 부르니 은근히 이쪽을 힐끔대던 시선이 확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갑자기 디아나를 부른 이유가 그리도 궁금했던 걸까.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들이 제법 따끔했다.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더 즉각적이고 강렬해서 살짝 놀랐다.
그렇지만 그런 나보다 더 놀란 것이 바로 디아나였다.
갑자기 불려서 놀란 것일까.
아니면 기억을 되찾았다는 걸 밝힌 후부터 다시 '선배'로 돌아갔던 호칭이 대뜸 기억을 잃었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돌아가버려서 그런 걸까.
점잖게 제 몫으로 나온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쪽으로 가져가던 디아나가 그 모습 그대로 우뚝하고 정지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니쉬로 딸려나온 버섯을 포크로 찍어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같이 드셔야죠."
그리 말하면서 그녀를 향해 내민 포크를 살짝 흔들어보였다. 그러니까 얼른 받아먹으라는 것처럼.
그랬더니 아까 전부터 얼굴로 날아와 꽂히던 시선들이 한층 더 강렬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둘만 있었다면 부끄러워하면서도 넙죽 받아먹었을텐데 지켜보는 눈이 두 쌍이나 되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으.."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디아나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다고 물러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팔을 한 번 떨어준 뒤 그녀를 재촉했다.
"얼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은 디아나가 포크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것을 덥썩 베어물었다.
다만 너무 급하게 받아먹은 탓일까.
버섯이 연분홍빛 입술 사이에서 일그러지며 그 안에 머금어져 있던 즙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렇게 버섯즙이 튄 곳 중에는 디아나의 상체를 감싸고 있던 제복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
"참.. 조심하셔야죠."
장난기가 좀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아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얼굴 위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띄워올리며 허벅지에 깔아놓았던 냅킨을 집어들어 버섯즙이 묻은 곳을 가볍게 톡톡 두들겼다.
그곳이 하필이면 가슴이었던 것은 사이즈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졸지에 앨리스와 레이시아가 지켜보는 앞에서 내게 가슴을 어루만져지게 된 디아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마냥 민망해만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민망해하는 척을 하면서도 은근히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달까.
그 모습이 심히 눈에 거슬리셨던 모양이다.
땡그랑-
요란한 소리가 식당 안으로 울려퍼졌다.
뭐, 포크같은 거라도 떨어뜨린 걸까.
갑자기 울려퍼진 소리에 놀란 척 하던 걸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레이시아가 '아, 실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놓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레이시아의 옆쪽에 앉아있던 앨리스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그런 레이시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격한 반응이라니.
그런 이쪽의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태연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벽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 중 하나를 불러들인 레이시아가 새 포크를 요구했다.
중간에 그런 식으로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식사 자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식사를 하는 짬짬히 디아나를 챙겼다.
정확히는 디아나'만' 챙겼다.
물론, 너무 노골적으로 그러지는 않았다.
배부르다는 핑계를 대며 접시 위에 남은 스테이크 조각들을 포크로 찍어서 디아나를 향해 내밀었다. 그녀가 나와 가장 가까이 앉아있기에 그러는 것처럼.
덕분에 접시 위에 반쯤 남겨놓았던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나와 디아나 쪽을 힐끔대는 시선이 조금씩 강렬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디아나도 살짝 웃긴 게 처음에는 그토록 둘의 눈치를 보더니 비슷한 일이 두세 번 정도 반복되니 그 다음부터는 둘의 눈치를 보는 일없이 내가 내미는 족족 넙죽넙죽 받아먹더라.
'참..'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혼자 차지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연인의 애정인데 그걸 셋이서 나누려고 하니 얼마나 부족하게 느껴졌겠는가?
그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될때 얼마나 충족감이 드는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깨우쳐버린지 오래인만큼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기회가 생기자마자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그것을 만끽하고 있는 것일테고.
덕분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저녁 식사시간 내내 관심에서 소외되었던 것이 그리도 섭섭했던 것일까.
"그럼, 밥도 먹었으니까 이제 약 먹어야겠네?"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앨리스가 날 향해 물었다.
'약 먹자.'는 우리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호였다.
그 정체모를 환을 복용하게 되면 한 발 빼기 전까지는 발기가 풀리질 않으니까.
고로 지금 앨리스는 내게 '배도 꺼뜨릴 겸 한 번 할까?'라고 물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낮 시간을 차지했던 것이 그녀임을 고려하면 셋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룰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실제로 그런 게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일까.
이대로 침실까지 그대로 직행할 생각이었는지 식사가 끝난 후에도 은근슬쩍 자리를 같이하고 있던 디아나의 눈이 일순간 사납게 변했다.
꼭 마치 제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같은 반응이라고 해야할까. 그 반응을 분명히 봤을텐데도 앨리스는 제 제안을 거둘 생각이 요만큼도 없어보였다.
오히려 제게 날아와꽂히는 디아나의 시선을 싹 무시한채 내게 보란듯이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손짓을 해보이는 게 날 유혹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놀라운 건 그런 앨리스의 몸짓에 내 몸이 반응했다는 점이었다.
뭔가를 잡고 흔드는 듯한 그녀의 손짓에 물건이 제멋대로 움찔하더니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는 아무리 나라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뭔가를 숨기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더니..
"응? 이안, 누나랑 약 먹으러 갈까?"
그런 내 반응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디아나를 피해 내 뒤쪽으로 다가온 앨리스가 내 몸을 뒤에서부터 꼬옥하고 끌어안으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따뜻하고 촉촉한 숨결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오싹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쭉 내달림과 동시에 엉거주춤하게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가 제멋대로 꼿꼿하게 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앨리스의 물건이 바지 위로 살짝 도드라져있던 내 물건을 스리슬쩍 훑으며 지나갔다.
그 자극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앨리스의 손이 물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보냈던 순간들이 주마등마냥 머릿속으로 촤르륵 펼쳐지며 물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네, 네에.."
그래서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다.
그에 나와 침대 위에서 노닥거릴 생각만 하고 있던 디아나의 눈이 뒤집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잠깐."
그대로 날 데리고 방을 떠나려던 앨리스의 앞을 디아나가 막아섰다.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
그렇지만 그런 디아나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명분은 그녀가 아닌 앨리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뭐가요?"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꼴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내가봐도 그럴진데 디아나에게는 어떻게 비춰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나는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아나의 품 안에 내가 있었으니까.
아마 내가 자리에 없었다면 차례 안 지키고 뭐하는 거냐고 득달같이 따지고 들었을테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차마 대놓고 말하질 못했다.
"..약속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그래서일까.
디아나가 목소리를 살짝 죽인 채 뭔지 모를 셋의 합의에 대해 언급했다.
앨리스의 얼굴 위로 잘 걸렸다는 미소가 번진 건 바로 그때였다.
"약속이요? 물론, 기억하죠. 이안이 원하는대로 하게 해준다는 내용이었잖아요?"
앨리스의 입술 사이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디아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들으셨겠지만, 이안은 저랑 먹고 싶다고 하네요. 그렇지?"
동의를 구하면서 은근슬쩍 가슴을 내 등에 대고 비벼대는 게 참으로 악질적이었다.
해서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셋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자극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보면 셋 중에 한 명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서 민망해하는 척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앨리스의 물음에 답했다.
디아나에게는 아까 밥 먹을 때 애정과 관심을 듬뿍 몰아주었으니 이제는 앨리스에게 성욕과 관련된 것을 몰아줄 차례였으니까.
"으, 응.."
"들으셨죠?"
내가 앨리스가 아니라 자길 택했다는 게 그리도 충격적이었던 걸까.
디아나는 약 올리듯 던져진 앨리스의 물음에 차마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디아나를 따돌린 앨리스가 날 데리고 향한 것은 주방이었다.
그 안에 도착하고 나서야 날 품 안에서 내려놓은 그녀가 품속에서 예의 그 환들이 가득 들어있는 병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가슴골 사이에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병 안에서 꺼내든 것 하나를 내 손바닥 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그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을 입 안으로 털어넣으니 순간 환과 닿았던 곳에서 쓴맛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대체 뭐로 만든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쓴맛이 장난 아니었다. 몸이 어려져서 그런 지는 몰라도 더 쓰게 느껴지는 감도 없잖아 있었고.
그래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많이 써?"
장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앨리스가 묘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적당히 좀.."
아무리 그래도 애 취급은 적당히 하라는 뜻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더니 앨리스의 입가에 맺혀있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러면 상도 필요없겠네?"
스륵하고 천이 살결을 스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허벅지까지 드리워져있던 치마자락이 걷히며 그 아래 숨겨져있던 것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디아나가 보는 앞에서 날 꾀여냈다는 사실 때문에 흥분한 것일까.
면으로 된 분홍색 팬티는 흠뻑 젖은 채 왠지 달콤할 것 같은 액체를 한 방울 수줍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손가락 끝으로 치마자락을 살포시 들어올린 채 그녀가..
"정말.."
날 향해 속삭이듯 물었다.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