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뒤쪽에서 막 방으로 들어온 이가 몸을 크게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좀 웃겼다. 다 떼놓고 그 반응만 놓고 보면 내가 무슨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도 끌어안고 있는 듯 했으니까.
'아니지.'
시한폭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디아나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인해 내가 뭐라도 떠올리게 되면 그녀 입장에서는 그것만큼의 재앙도 또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황급히 내쪽으로 달려오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이내 거칠기 짝이 없는 손길이 내 손안에 쥐어져있던 것을 황급히 채갔다.
"디, 디아나?"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놀란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며 디아나 쪽을 바라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내게서 채간 망토를 제 품안에 꽈악하고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걸 내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몸까지 살짝 웅크려가며 망토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꼭 상처입은 새끼를 숨기는 짐승같았다. 함부로 손을 뻗으면 물릴 것 같다고 해야할까.
"..디아나?"
과격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척 의아해하는 눈빛을 쏘아보내니 그제서야 좀 정신이 든 것일까.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계심을 사방으로 흩뿌리던 디아나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너무 과하게 반응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테니까.
아마 지금쯤 뭐라 변명하면 좋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텐데..
'한 번만 도와줄까.'
그래서 그녀의 눈치를 보는 척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미안해요. 그냥 갈아입을 옷이 없을까해서 찾아보던 참이었는데.."
옷장을 뒤지다보니 그게 눈에 띄었고, 내 이름이 새겨져있길래 잠시 살펴보고 있었던 참이다.
그런 뉘앙스로 말을 내뱉으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디아나의 시선이 조금씩 진정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내어준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다고 판단한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그런데 그거 말이에요."
먼저 선수를 쳤다.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품 안에 갇혀있는 망토를 향해 넌지시 관심을 표하니 조금씩 잦아들던 흔들림이 다시금 격해졌다. 내가 자꾸만 그것에 관심을 보이니 혹시 뭔가를 떠올리진 않았을지 불안해진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질문을 받는 와중에도 황급히 손을 움직여 그것을 더욱 품 안으로 끌어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그걸 내 시선으로부터 숨기고 싶었던 걸까. 망토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그 아래 깔려있던 것을 꾸욱하고 짓눌렀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척, 알아차리지 못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제 것.. 맞죠?"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이름이 떡하니 박혀있는 걸 내가 봤고, 그 광경을 그녀도 봤을테니까.
"..그래."
아니나 다를까 디아나가 내놓은 대답은 긍정이었다. 본인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답을 하는 목소리가 살짝 떨려서 불안하기 그지없는 긍정이긴 했지만.
"혹시.. 제 선물?"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질 않았다. 뭐라 답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모양.
그래서 나도 그에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좀 더 볼 수 있을까요? 아직 제대로 못 봐서.."
이번에는 뭐라고 답을 할까. 궁금한 마음에 꾸욱하고 다물어진 디아나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자니..
"안.. 된다."
그게 디아나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네?"
해서 의아해하는 반응을 돌려주었다. 내 것이라고 했으면서 왜 못 보게 하는 것이냐. 꼭 그리 묻는 듯한 반응을 돌려주니 간신히 열렸던 디아나의 입술이 다시금 다물어졌다.
"디아나..?"
그런 그녀의 반응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것처럼 의아해하는 척을 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직.. 완성이 안 되서.."
파르르 경련하는 입술을 간신히 연 디아나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리 말했다.
"..보여주기 부끄럽다."
"네? 하지만.."
"그러니.. 이해해다오."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돌아선 디아나가 옷장 문을 열어 품 안에 숨기고 있던 것을 그대로 그 안에 쑤셔박았다. 그리고는 쿵 소리가 나도록 닫은 옷장 문을 등지며 날 향해 돌아섰다. 그걸 열어보고 싶다면 자신부터 통과해야한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대신 나중에 완성되면 꼭 보여주셔야 돼요?"
"..그래."
누가봐도 화제를 바꾸길 원하는 눈치라서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보는 척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레이시아를 찾아갔던 건 어떻게 됐냐고. 그랬더니 표정이 또 안 좋아지더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솔직히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디아나가 레이시아를 상대로 제대로된 승리를 거두는 건 사실상 요원한 일이라고 봤으니까.
'시원하게 얻어터졌나보네.'
다만 주인한테 꾸지람을 들은 강아지마냥 시무룩하게 변한 것이 신경쓰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혹시 저 때문에 한 소리 들으신 건.."
"아, 아니다! 그냥.."
말을 얼버무리는 디아나를 향해 다가가 그녀를 꼬옥하고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걸까. 품 안으로 들어온 것이 움찔움찔거리며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 흠칫거림을 만끽하면서 고생했다고 격려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였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디아나의 귀에 대고 제안하나를 속삭였다.
"제 몸 만지게 해드릴까요?"
포옹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내던져진 제안에 놀란 것일까. 품 안에 갇혀있던 디아나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더니 이내 그녀로부터 안절부절 못 하는 기색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혹시 싫으신 거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건 아닌데.."
차마 고개를 끄덕이질 못하는 건 자신에게 그럴 자격따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민망해하는 척을 했다. 내 딴에는 용기내서 제안한 것이었는데 그걸 거절당하니 민망해하면서도 속상해하는 척을 하니 효과가 아주 직빵이더라. 우물쭈물하던 디아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질끈감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래서였다.
"자."
지금 이렇게 소파에 걸터앉은 채 그녀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건 말이다.
어디 한 번 네가 원하는대로 해보라는 것처럼 눈을 살짝 감은 채로 그러고 있으니 내 앞쪽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디아나가 흠칫흠칫대는 기색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에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떠보니 '으..'하고 요상한 소리를 내며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고 있는 디아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고개는 끄덕였는데 진짜로 해도 되는 지 아직 확신이 서질 않는 모양.
"역시 싫으신 거면.."
해서 살짝 시무룩해하는 척을 하며 활짝 벌리고 있던 거두는 체를 하니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며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디아나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내 허벅지 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팔이 내 목을 휘감으며 자연스럽게 내 몸에 밀착하게 된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허나 그건 잠깐에 불과했다.
일단 끌어안고 보니 생각보다 안정되고 좋았던 걸까. 내 목을 꼬옥하고 끌어안고 있던 것으로부터 올라오던 떨림이 조금씩 진정되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몸에 깃들어있던 떨림이 완전히 진정되었을 때, 내 목에 둘러져있던 그녀의 팔을 잡고 아래쪽을 향해 이끌었다.
그리고는 그걸 내 다리 사이에 위치한 것을 향해 가져다 붙이면서..
"어, 어떠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응?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접촉에 나와의 포옹이 선물해주는 안락함을 만끽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그시 감겨있던 디아나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으니까. 동시에 내 물건과 접촉해있던 그녀의 손이 움찔움찔대면서 현재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어떻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떨림을 만끽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힘이 좀.. 나세요?"
내 물음에 대답이랍시고 돌아온 건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겠지. 그녀 입장에서는 방금 내 행동과 발언 사이에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지 알 수가 없을테니까.
"그.. 동네 아저씨들이 그러셨거든요. 여자친구가 풀 죽어있을 때는 한 번 만지게 해주는 게 최고라고.."
그래서 한 번 해봤던 것인데 어떻게 효과가 좀 있는 것 같냐고 물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디아나의 입에서 이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에 민망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척을 하니 눈꼬리에 눈물방울까지 매단 채 숨죽여 웃고 있던 디아나의 얼굴 위로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뭔가를 떨쳐낸 것 같은 묘하게 후련해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드디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행복을 만끽하고자하는 결심이 선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그게 디아나가 내놓은 감상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만져봐야 확실해질 것 같다. 살짝 장난기가 어려있는 목소리로 그리 말한 걸 보면 내가 민망해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거기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정말 민망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네가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감당하겠다는 것처럼 살짝 눈을 감으면서 더 만져도 괜찮다고 말하니 꽤 귀여운 반응이 돌아왔다. 설마 내가 그리 말할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걸까. 바지 위로 도드라진 물건을 조심스레 움켜쥐고 있던 디아나의 손이 움찔하더니 그곳에 살짝이지만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스윽-
이내 디아나의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건 있는 것일까. 바지째로 내 물건을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심스레 내 물건을 주무르던 그녀가 이내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놀고 있던 손을 이용해 조심스레 내가 입고 있던 셔츠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손이라는 것 정도?
그냥 잠깐 내 물건을 놓으면 될텐데 그러기는 죽어도 싫었는지 한손으로 단추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디아나가 이내 시선을 들어올려 간절하기 짝이 없는 시선을 보내왔다.
'해도 돼?'
꼭 그리 묻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래서..
"갈아입을 셔츠 있죠?"
허락의 의미를 담아 그녀의 귀에 대고 그리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내 눈치만 보던 얼굴이 화악하고 밝아지더니 이내 투두둑하고 단추 뜯어지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허락까지 받았으니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일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셔츠를 단추째로 뜯어낸 그녀가 곧장 그것을 손으로 풀어헤쳤다.
손바닥에 와닿는 감촉이 새삼 신기하기라도 했던 걸까.
자그마한 손바닥이 가슴팍하고 배를 번갈아가며 꾹꾹 눌러댔다.
그에 간지러워하는 척을 하니 손으로 내 몸을 더듬으며 힐끔힐끔 내 반응을 확인하던 디아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손으로 더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던 디아나가 조심스레 내 상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쪼옥-
내 몸 위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키스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내 가슴팍 위로 붉은 색의 꽃이 한송이씩 피어났다.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하던 몸에 제 흔적을 남기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흥분되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일까. 아까 전부터 가슴팍 위에서 흩어지던 그녀의 숨결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 물건을 훑는 손길도 조금씩이지만 거칠어지고 있었고 말이다.
날 기분좋게 만들면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도 가실 거라고 생각한 걸까.
쪽쪽하고 입맞춤을 하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질 때마다 아래쪽에서 뭉근한 쾌감이 훅훅 올라왔다.
"자, 잠깐.."
이대로라면 셔츠 뿐 아니라 다른 것도 갈아입게 될 기세라 잠시 그녀를 멈춰세워보려고 했지만..
먹히질 않았다.
이성이 흥분이 완전히 먹혀버린 걸까.
오히려 그런 내 발언을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의 징조라 여긴 것인지 물건을 훑는 그녀의 손길이 조금 더 빨라졌다.
'와, 시발..'
몸 쓰는데 익숙한 무투파 히로인답게 고새 요령을 터득한 것일까.
어색하기 그지없었던 처음과는 다르게 그녀의 손이 물건을 훑을 때마다 아찔하기 그지없는 쾌감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에 이를 악물고 있다가..
"디아나..!"
그대로 그녀를 안아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