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11)화 (111/366)



〈 11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누구일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으로 고개를 치켜드는 일은 없었다.


장소도 그렇고 타이밍도 그렇고 지금 이 방으로 기어들어올만한 이는 딱 한 명 뿐이었으니까.


향초의 효과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일까.

왠지 눈을 뜨면 안   같은 느낌이라서 그대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끼익-

바닥을 밟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진  바로 그때였다.

아까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고새 원래 몸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만 왜?


향초의 효능을 확인하는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할 이유가 있나?

굳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듯한 이유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과 함께 심장이 쿵쿵쿵쿵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 와중이었을 것이다.

끼익-

제법  소리가 났음에도 내가 반응을 보이질 않으니 완전히 잠들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조용하던 방 안으로 나무 바닥을 사뿐히 즈려밟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침대가 한쪽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그러더니..

스륵-

앞머리를 걷어올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가늘고 살짝 서늘한 손가락이 이마를 간질이며 지나가는 느낌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으음.."


그래서 잠결에 그걸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살짝 반응을 내비치니 이마와 맞닿아있던 손가락이 움찔하고 떨렸다.

"이안.."


자라고 해놓고서는 이름은 왜 부르는 걸까.


도무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탓에 속으로 의문을 표하는 사이에도 카트린느의 부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꼭 마치 내가 자신의 부름에 대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의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상하다.. 비율을 잘못 맞췄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중얼거림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한 가지 가능성이었다.

그러니까..


만약에 저 향초라는 것의 효능이 내게 알려준대로 수면유도 뿐만이 아니라면?


실험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서였다.

"이안..?"


"으응.."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불러보겠다는 것처럼 내뱉어진 카트린느의 부름에 조심스레 입을 열어 답을 했던 것은


그걸 잠기운에 내뱉은 걸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안..?  말이 들리면 '응, 누나 들려.'라고 대답해봐."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가 카트린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솔직히 좀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로 확실해졌으니까.


지금도 열심히 특유의 향을 피워올리고 있는 향초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게 말이다.


'대체..'


 년은 나한테  하려는 걸까.

"응.. 누나.. 들려.."


의문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의도대로 맞춰준 건  그대로 궁금해서였다.

해서 그녀가 지시한 그대로 답을 했더니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는 것처럼 볼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걸로 반쯤 확신을 얻은 것일까.


카트린느가 본격적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이안은 착한 아이니까 누나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줄거지?"

"응.."


"요즘 왜 못 잤던 거야?"

역시 그게 궁금했던 걸까.

어떻게 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꾸.. 생각나서.."


잠기운에 취한 것처럼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밤에.. 자꾸.. 찾아와.."

설마 거기까지는 아무리 그녀라도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볼과 맞닿아있던 카트린느의 손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런 그녀의 동요는 목소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찾아오다니? 누가?"


"모르겠어.. 자꾸.. 찾아와.."


뿌득하고 이 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에 반응한 것처럼 다시 한 번 몸을 움찔하고 떠니 카트린느가 언제 분노를 내비췄냐는 듯 조심스레 날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분이 어때?"


그런 질문이 흘러나온 건 그 와중이었다.


"편안해.."

"그래?"

"응.."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볼과 맞닿아있던 손이 이마 쪽으로 옮겨가더니 그곳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편안해서 좋아?"


"응.. 좋아.."

"그럼 계속 향초 피워야겠네?"


"향.. 초..?"

"내가 선물해준 거 말이야."


"아.."

"잘 때 피워놓고 자면 또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피울 거지?"

"응.. 피울래.."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나 보다.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그 뒤로도 카트린느는 계속해서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누나 방에서 자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지?"

"옛날..?"

"응, 옛날에 우리 집 놀러와서 자고 가고 그랬잖아."

"그랬..나..?"

"그때는 맨날맨날 우리 집에서 자고 싶다더니 잊어버린 거야?"


그랬던가?

잽싸게 기억을 뒤져봤지만 그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딱히 없었다.


"잘.. 모르겠어.. 기억 안 나.."

그래서 그렇게 얼버무렸더니..

"..그럼 누나 학원에 입학할 때 엉엉 울면서 자기가 다 클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던 것도 기억 안 나겠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마디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시발 그랬다고?

이안이?


그 말을 들은 즉시 다시   기억을 뒤져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기억나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흑역사라면 기억이  날래야  날 수가 없을텐데 말이다.


혹시 카트린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눈을 뜨기가 애매해서 표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방금 그녀의 목소리는 누가봐도 서운한 사람의 그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의문이 솟구쳤지만 일단 잠시 묻어놓기로 했다.

그건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을테니까.


지금 중요한 건 카트린느에게 맞춰주는 것이었다.

"기억.. 안 나.."

"그때 누나한테 직접 만든 꽃반지까지 줬었잖아."


"으음.."

"나중에  예쁘고 큰 걸로 줄테니까 지금은 이걸로 참아달라고 그랬잖아. 기억  나?"

섭섭하다는 투로 내뱉어진 그 말을 들은 순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유사 화이트데이 때 내가 건네준  팔찌를 받고서 카트린느가 그런 반응을 보였던 이유를 말이다.


동시에 지금 그녀가 이렇게까지 섭섭해하는 것도.

그야 섭섭할 수밖에 없겠지.


본인은 과거의 약속을 떠올리며 살짝 두근거렸는데 정작 그 두근거림을 선물해준 장본인이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기억..  나는데.."


"누나가 거짓말 하는 것 같아?"


"아니.."


"그러면 기억 못하는 사람 잘못이네? 그지?"

"맞아.."

그걸 빌미로 대체 무슨 요구를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깔아대는 껄까.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카트린느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사과.."


"그렇지 누나한테 사과해야겠지?"


"응.. 사과해야해.."


"어떤 식으로 사과할 건데?"

"잘.. 모르겠어.."


"그럼 누나가 알려줄까?"

"알려줘.."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 걸까.

기대감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 있자니..

"향초가 떨어질 때마다 누나를 찾아오면 돼. 할  있겠어?"


"응.."

"이제 3개 남았으니까 다음에는 3일 뒤에 찾아오면 되겠다. 그치?"


"맞아.."


카트린느가 당당하게 제 요구를 관철해왔다.


열심히 밑밥을 깔았던 것치고는 굉장히 소박한 요구였지만 말이다.

'귀엽네.'

그에 속으로 피식피식 웃고 있으니 내 이마를 살살 쓰다듬던 카트린느가..

쪼옥-


가볍게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말캉한 것이 슬며시  이마에 닿았다가 그대로 떨어져나갔다.

아쉬울 정도로 짧고 간결한 입맞춤이었다.


"그럼, 이제 코 자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쏠려있던 침대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렇게 생각치도 못한 방식으로 나와 카트린느 사이에 기묘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말이 기묘한 관계지 내가 짬짬히 그녀의 오두막을 찾아가서 그녀를 챙겨주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카트린느는 다 좋은데 도저히 치울 줄을 몰랐으니까.

더러운 것보다는 깨끗한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그런 그녀의 태만함을 참아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카트린느의 침대에서 잠을 청하곤 했으니까.

 의지는 아니었다.


카트린느가 조금  효과를 개량했다면서 성능 확인을 도와달라는 식으로 그걸  앞으로 들이밀어왔으니까.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내가 잠들어있는 방 안으로 숨어들어왔다.


그리고는 향초에서 피어오르는 향에 취한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내게 제 요구사항을 속닥거렸다.


요구사항이라고 해봐야 먹고 싶은 거나 내가 어떤 복장을 했으면 좋겠다던지 하는 게 전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부담없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그런 식으로 카트린느에게 어울려주면서 앨리스와 레이시아를 번갈아가며 만나는  반복했다.


맘같아서는 클레어도 끼워놓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미행을 멈춘 디아나가 연무장에 눌러앉은 탓이었다.


그렇게 셋을 번갈아 가며 만나다보니 시간이 살살 녹아내렸고..

달마다 예정되어 있는 이벤트가 자연스럽게 코앞까지 다가왔다.

"월말평가는.."

그게 신경쓰였던 걸까.


조심스레 그 화제를 꺼내드는 앨리스를 향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힘들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앨리스는 다시는 그와 관련된 화제를 꺼내들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앨리스가 언급했던 월말평가 날이 도래했다.

미리 행정실에 들려서 기권 의사를 밝혀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보러가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나는 실기시험이 치뤄지는 시간에 맞춰서 그것이 펼쳐지는 야외연무장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디아나와 마주칠 것을 우려해서라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갈 수밖에 없었다.

확인해야할  있었으니까.

'최근 들어 부쩍 열심히 훈련을 한다던데..'


디아나를 말하는  아니었다.

주인공 놈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부에서의 일 때문에 제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달은 걸까.

카트린느에게 듣기로는 오두막에 들릴 때마다 단련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챙겨간다던데 지금까지는 매번 교묘하게 엇갈린 탓에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직접 확인하러 나온 것이기도 했다.


카트린느의 말마따나 주인공 놈이 수련에 힘을 쓰고 있다면 그로인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필히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놈의 수준도 확인할 겸 야외 연무장으로 향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내가 살짝 늦은 모양이다.


앨리스가 저렇게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문 채 구석에 쳐박혀있는 걸 보면 말이다.


초반부터 디아나와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으니까.

디아나가 아니라면?

앨리스를 꺾을만한 가능성이 있는 건 한 명 뿐이겠지.

지금 연무장 위에서 열심히 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는 놈 말이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배는 뛰어난 주인공의 무력에 당황한 것일까.


놈과 검을 맞부딪히고 있는 년의 얼굴은 당황으로 얼룩져있었다.


침착해도 모자랄 판국에 당황을 한웅큼 집어먹었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뻔하디 뻔한 결과가 연무장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남부에서의 일을 계기로 주인공 특유의 사기성을 각성하기라도 한 것일까.

놈은  앞에 와서 선 이들을 하나하나 쳐부수며 그대로 결승전까지 직행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놈의 앞에 선 것은..


'음.'

디아나였다.


교수에게 호명되어 불려나온 둘의 모습이 눈으로 들어온 순간 기분이 굉장히 묘해졌다.

서로를 노려보는 꼴이 꼭 원수라도  것같은 모양새였으니까.

그렇게 상대방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대련의 승자는..

"..졌습니다."


디아나였다.

그렇게 실기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디아나가  찾아온 건 월말평가 바로 다음날이었다.


내가 여기있는 건 또 어떻게  걸까.

"서, 선배.."


 그대로 불쑥 튀어나온 그녀를 보며 반쯤 진심으로 당황한 척을 하고 있으니..

툭-

뭔가가 가슴팍으로 날아와 그곳에 한 번 부딪히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땡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르는 그것은 내게도 꽤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럴 수밖에.


내가 레이시아를 불러낼 때 명분이랍시고 사용했던 것이니까.


2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박힌 동전이 바닥을 따라 굴러다니다가 내 발치에 와서 톡 하고 부딪혀 쓰러졌다.


그렇게 널브러진 것을 살짝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봤으면 따라와."


숫제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못 들었어? 따라오라고."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화가 확 치밀었던 것일까.

덥썩 내 손을 움켜쥔 디아나가 날 억지로 잡아끌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도 몸은 속절없이 그녀에게 끌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내 기숙사 방이었다.

기숙사로 들어설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그게 현실로 닥쳐오니까 뭐랄까.. 머리가 살짝 띵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벙찌고 있었더니..

"왜? 여기서는 싫나 보지?"


보란듯이 입매를 비틀며 이죽거린 디아나가 내 몸을 침대 쪽으로 떠밀었다.

그대로 넘어져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꽤 강하게.

그렇게 내 몸에 딱 맞는 침대에 드러눕게  순간..

꾸욱-

어느새 들어올려진 디아나의 발이 내 허벅지를 즈려밟았다.


그와 함께 귓가로 파고들어온 건..

"세워."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못 들었어? 다리 사이에 있는 그거 세우라고. 지금부터 할 거니까."

분노로 점철되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이 다리 사이로 날아와 꽂히는 느낌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흠칫하고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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