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대체 어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시아가 기정사실을 만들기를 원하는 눈치라서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한 발 시원하게 싸지른 다음에 지친 척 연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었는데..
스륵-
가느다란 뭔가가 가슴팍을 간질이는 느낌이 수마 속에서 잠겨있던 내 정신을 끄집어냈다.
대체 이건 뭘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드러운 것들의 장점만 쏙쏙 뽑아다가 다 합쳐놓은 듯한 그 감촉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살짝 떨렸다.
그에 놀란 것일까.
서로 껴안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짝 밀착해있던 것으로부터 움찔하는 기색이 전해져왔다.
덕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레이시아와 어떤 식으로 몸을 겹치고 있는 지를.
분명 잘 때는 살짝 떨어진 상태로 잠들었던 것같은데 잠결에 품 속으로 파고들어오기라도 한 것일까.
품 안에서 레이시아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 와중에 문제가 있다면..
대체 어쩌다가 그리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샌드위치용 빵 사이에 낀 햄마냥 레이시아의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가 있는 내 물건이었다.
아침이라서 딱딱하게 변한 그것을 레이시아의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허벅지가 꼬옥하고 감싸오는데...
도저히 발기가 풀리질 않았다.
이대로 레이시아가 깨어난다면 여러모로 난감해질 게 분명한 상황.
해서 어떻게든 힘을 빼보려고 속으로 반야심경이며 애국가며 열심히 불러제끼고 있자니..
"흐으음.."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왜 냄새 맡을 때 나는 소리 있지 않은가?
귓가로 울려퍼지는 그걸 들은 순간 깨달았다.
잠들어있다고 생각했던 레이시아가 실은 깨어있는 상태라는 걸.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조심스레 실눈을 떠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레이시아의 모습이었다.
대체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길래 저렇게 열심히 킁킁대는 걸까.
어제 그렇게 하고 나서 그대로 잠들었으니 딱히 좋은 냄새는 나지 않을텐데 말이다.
구관에서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돌아다닐 때처럼 내 냄새를 맡는다는 행위에 바짝 몰두하고 있는 레이시아의 모습은 뭐랄까.. 묘하게 귀여웠다.
워낙 미인이다보니 푼수같은 짓을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함을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달까.
그래서 실눈을 뜬채 열심히 내 가슴팍에 제 얼굴을 부비적대는 그녀의 모습을 나름 흡족하게 쳐다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흐.."
별안간 달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온 뜨겁고 촉촉한 숨결이 내 가슴팍을 가로질렀다.
자꾸만 냄새를 맡다보니 흥분한 걸까.
아까하고는 다르게 살짝 몸을 떨어대는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녀가 별안간 몸을 뒤로 물렸다.
이 이상은 위험할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물러나려는 모양.
'그럼 슬슬 나도..'
일어나야겠지.
그리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내게서 몸을 떨어뜨린 그녀가 그대로 뒤로 돌아누웠다.
덕분에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잡티라고는 하나도 없이 매끄러운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가 그 상태로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어?'
다소곳하게 포개져있던 그녀의 허벅지가 살짝 벌어졌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아래쪽으로 내려온 손이 그렇게 생겨난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혹시 소리라도 날세랴 조심스럽고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파고들어간 손이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딱딱하게 서 있던 내 물건에 와서 닿은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이 세계의 여성들이 가진 성욕을 내심 얕보고 있었다는 걸.
아니, 정확히는 레이시아의 성욕을 얕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건물 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야외나 다름없는 곳에서 그런 짓까지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로 강력한 성욕을 평소에 잔뜩 억누르며 생활하는 게 바로 그녀인데 말이다.
그렇게 억누르며 사는 사람의 앞으로 나라는 존재가 뚝 떨어졌으니 나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치밀어오르는 성욕을 참기가 쉽지 않을 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잠들어있는 틈을 이용해 아침부터 뭔가 저지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손놀림에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자니 제 몸을 조금 더 뒤로 물리면서 동시에 내 물건을 잡아당긴 레이시아가 그것을 다시금 제 허벅지 사이로 끼워넣었다.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다.
특유의 보드라움에서 기인한 편안함 때문인지 그곳이 꼭 원래 있어야할 곳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살짝 벌리고 있던 허벅지를 다시 곱게 포개서 내 물건을 단단히 고정시킨 레이시아가 내 물건을 잡고 있던 손을 제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또 뭘 하려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그녀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끈적끈적한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진흙 속에 손가락을 밀어넣고 헤집어대면 저런 소리가 날까.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소리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래서 갑자기 손가락은 왜 핥고 계신 걸까.
그것도 저리 꼼꼼하게 말이다.
속으로 그런 의문을 느끼고 있자니 혀로 제 손가락을 핥으면서 슬금슬금 허리를 움직이고 있던 그녀가 그것을 다시금 제 다리 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러더니 촉촉하게 젖은 손을 동그랗게 말아쥐어 허벅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내 물건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그 상태로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미친..'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녀하고 관계를 맺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허리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보들보들한 손가락의 굴곡이 물건을 꼬옥하고 감싸며 훑고 지나가는데 아슬아슬할 정도의 쾌감이 몸을 타고 훅훅 내달렸다.
"윽..!"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허리를 흔들어가며 결국에는 내게 한 발을 뽑아내는데 성공한 레이시아가..
제 손에 쏟아진 희끄무레한 액체를 허벅지와 배 위에 대고 펴바르기 시작했다.
'미친..'
아침부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나 싶더니만..
'이래서였네.'
아무래도 그녀는 어제 짜낸 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나 보다.
살짝 뜬 눈을 통해 얼핏 본 레이시아의 모습은 누가봐도 간밤동안 격렬하게 관계를 맺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제 의식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 점을 노려 저런 모습을 연출한 모양인데..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자니 제 몸을 내려다보며 조금 티가 난다 싶은 부분들은 손으로 흐트러뜨리는 식으로 점검을 끝마친 그녀가 이내 내 팔뚝을 잡고 조심스레 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안, 일어나 보거라. 이안."
날 깨우기 위해 내뱉어진 그 말이 얼른 일어나서 자기 모습을 확인하라는 것처럼 들렸던 건 과연 기분 탓일까.
대체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던 것인지 잠긴 기색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평소와 똑같은 그 목소리에 내심 헛웃음을 흘리며 눈쪽에 힘을 꽉 주었다.
과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눈꺼풀이 살짝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막 잠에서 깨어난 것같은 모습을 연출해준 뒤 조심스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
정말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에 최대한 힘을 푼채로 살짝 멍한 소리를 내니..
"이안? 정신이 좀 드느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레이시아가 공세를 시작했다.
"..회장님? 이게 어떻게 된.."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멈칫했다.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잠시 굳어있다가..
허둥지둥 손을 움직여 몸을 더듬었다.
꼭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배하고 가슴 쪽을 번갈아 터치하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이 마침내 훤히 드러나있던 하복부에 가서 닿은 순간, 얼굴 위로 당황한 표정을 떠올렸다.
"이, 이게 어떻게.."
솔직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아까 레이시아로부터 느꼈던 당혹감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었으니까.
그걸 그대로 얼굴 위로 띄워올렸더니..
"그.. 미안하다. 네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레이시아가 면몫이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까는 것으로 응수해왔다.
내리깔린 시선과 흐릿한 목소리.
그것들만 보면 간밤동안 있었던 일을 반성하는 듯한 태도였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는 밤동안 있었던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척'을 하면서 은근히 그것을 내게도 떠넘기고 있었다.
널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을 보란듯이 꽉 깨물면서 그녀에게 더 파고들 수 있는 빌미를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그 먹음직스럽기 짝이 없는 것을 두 눈 뜨고 그냥 흘려보낼 레이시아가 아니었다.
"그대만 괜찮다면.. 내게도 들려주지 않겠느냐. 밤의 그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어느새 뻗어온 그녀의 손이 부드럽게 내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러지 말라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게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흠칫했을 정도였다.
'뭐냐 이거.'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멈칫멈칫하고 있으니, 그런 내 몸짓을 조금 다른 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레이시아가 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그러더니..
"일단 옷부터 가져다 주마. 잠시만 기다.. 읏..!"
그리말하면서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꼭 마치 밤에 있었던 일의 여파가 몸에 고스란히 남아서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간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판단해서 그런 것 같은데..
진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본방은 시작도 안해놓고서 밤동안 내게 잔뜩 시달린 척이라니.
그 와중에 앙큼한 건 입으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져서..
"괘, 괜찮.."
어울려주기로 했다.
일어서다 말고 다시 풀썩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척 덮고 있던 이불을 내던지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니 대답이랍시고 돌아온 게 또 가관이었다.
"나, 난 괜찮다. 그냥 다리에 조금 힘이 풀려서.."
"아.."
"그나저나 그걸 그대로 덮고 있기엔 찝찝할테니 그것말고 이거라도 덮고 있거라."
그리 말하면서 내 손길을 사양하고는 다리 사이가 불편하기라도 한 것처럼 엉거주춤하게 걷는데..
그에 맞춰 그녀의 새하얀 엉덩이가 묘하게 씰룩거리며 아까 그녀가 허벅지에 발라놓은 내 정액이 그녀의 피부를 타고 슬며시 흘러내렸다.
아주 간밤동안 엄청나게 해댔다고 온몸으로 광고라도 하는 듯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민망한 척 그녀가 회수해 간 이불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
생경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레이시아의 손에 들려있는 이불 곳곳에..
살짝이지만 붉은 얼룩이 남아있었다.
'시발..?'
설마 잠들어있는 사이에 지 혼자서 첫 경험을 끝내버린 건 아니겠지?
그야말로 생각치도 못한 광경이라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곧 깨달았다.
그건 피같은 게 아니라는 걸.
피와 꼭 닮은 색이긴 했지만, 피는 아니었다.
아마도 적포도주나 뭐 그런 거겠지.
'이야..'
잠들어있는 사이에 저런 준비까지 끝내놨단 말이지.
감탄하는 동시에 깨달았다 그녀가 뜬금없이 이불을 회수해가고 대신 덮고 있으라며 옆에 걸려있던 커다란 샤워 가운을 건네주었던 이유를.
그냥 방치해뒀다간 그게 피같은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걸 들켜버릴 가능성이 크니 아예 치워버리는 게 낫다고 본 것이겠지.
겸사겸사 내가 그 흔적들을 발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서 심적인 부담감도 지워주고 말이다.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꼼꼼하게 준비된 덫이었다.
거기에 걸리게 되면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런 식으로 레이시아가 건네준 샤워가운을 몸에 덮은 채 그녈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드레스룸 안에서 걸어나왔다.
나와 똑같은 걸 몸에 걸친 채로 말이다.
물론, 안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 시선이 의식되는 걸까.
"미,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먼저 갈아입을 옷부터 전해주고 싶어서.."
레이시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살짝 벌어져있던 옷깃을 손으로 조심스레 움켜쥐어 금방이라도 가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가슴을 가렸다.
그러더니..
"그.. 먼저 씻겠느냐? 아무래도 그대로 입기에는 좀 찝찝할테니.."
뺨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을 던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