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00)화 (100/366)



〈 10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앨리스 시점****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괴로워하는 모습에 일단 이안의 위로 올라타긴 했지만, 자꾸만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였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만찬이 떡하니 차려져있다는  알고 있음에도 차마 손을 뻗지 못했던 건 말이다.


다른 여자들처럼 이안의 몸이, 성욕을 해결하는  목적이었다면?

이런 고민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안이 요구를 해온 순간 옳다꾸나하고 거리낌없이 그의 위로 올라탔겠지.


하지만 자신은 그게 아니지 않나?

처음에는 분명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감정은 어느새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애정이라는 이름의 열매를 맺은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자신이었기에 몇 번이나 봐왔으니까.


지금 이안처럼 뭔가에 취해 스스로를 내던진 이들이 그것이 선사하는 미몽에서 깨어났을 때 자괴감과 괴로움에 휩싸여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따위 놈들과 이안을 같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봐온 게 있다보니 뭔지 모를 약에 취한 채 자신을 갈구해오는 이안의 얼굴 위로 그들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괜찮을까.


다시 한 번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이안이 지금보다  깊고 어두운, 괴로움이라는 이름의 늪속으로 빠져버리는 건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몸을, 팔을, 손을 휘감았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머저리처럼 한참동안을 그러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실은 아니잖아. 그런 거.'

문득 실소가 새어나왔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건 그런 허울 좋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게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겁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약기운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이안이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까봐.

그래서 다시는 그의 옆에 서는 걸 허락받지 못하게 될까봐 망설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이안을 위했다면?

이런 걱정따위는 하지 않고 일단 괴로워하는 이안부터 도와주려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건..

자신이 이기적인 년이기 때문이다.

자신밖에 모르는 년이라서, 간신히 갖게 된 소중한 걸 다시 잃어버리게 될까봐 그게 겁이 나서.

그저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놓고서 뭐?


그가  괴로워할까봐 걱정이 되서 그렇다고?

역겨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자신의 모습이 환멸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귓가로 울려퍼지는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있어서..


"선배..!"


갑작스런 이안의 행동은 면죄부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끙끙 앓던 몸 그 어디에 그만한 힘이 남아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신은 이안의 밑에 깔려있었다.


그의 위에 올라타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남자의 몸이 주는 단단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몸을 꾸욱하고 짓눌러왔다.


 묘한 감각에 몸이 이쪽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그런 자신의 반응을 '거부'라고 해석한 것일까.

"미, 미안해요.."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든 것인지 흐려져있던 이안의 눈동자 속으로 총기가 돌아오며 그가 입술을 악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던 몸을 힘겹게 들어올리는데..

눈에 들어온 그의 팔이 덜덜 떨렸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굵직한 팔이 부들부들 경련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한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저렇게나 자신을 생각해주면서도 간절하게 원하는데.


고민같은 건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였다.

엉거주춤하게 놓고 있던 손을 들어올려 조금씩 멀어져가는 이안의 얼굴을 붙잡았던 것은.

이 정도로 용기를 대체 얼마만일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박박 긁어모은 용기를 원동력 삼아서 조심스레 그의 밑에 깔려있던 몸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츕-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던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떨어뜨리며..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

"하고싶은대로 해도 돼."


솟아오르는 뭔가를 억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있던 이안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떨어뜨렸던 입술이 다시금 맞붙었다.


뭔가에 떠밀려 침대에 머리를 찧게 된 순간 깨달았다.


이번에는 이안쪽에서 먼저 입을 맞추었음을.

저번에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년의 앞에서 했던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키스가 퍼부어졌다.

그때 그것이 과시를 위한 키스였다면 지금의 것은 욕망에 충실한, 그렇기에 몰아붙이는 느낌마저도 드는 그런 키스였다.


숨결 한줌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것처럼 이안의 혀가 거침없이  안을 헤집어댔다.


"흐으.. 잠.."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어찌나 격렬한지 꼭 마치 이안과 자신의 입장이 뒤바뀐듯한 그런 느낌마저도 들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밑에 깔려있다는 기묘한 상황이 주는 배덕감 때문에 심장이 이상한 느낌으로 뛰었다.

가슴 안쪽이 짜르르 울리는 듯한,  번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을 듯한 묘한 감각과 함께 입 안으로 조금씩 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왠지 그걸 이안한테 들키면 안 될  같아서 그걸 몰래몰래 나눠삼키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선배.. 너무 예뻐요.."


이안이 생각치도 못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왔다.


여전히 뭔가에 취해있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목소리에,  말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해버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달콤한 목소리였으니까.

그것이 스치고 지나간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하아.."


조금이나마 진정이  것일까.

입술을 떨어뜨린 이안이 목덜미 쪽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에 진정할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내심 안도한 순간.


"선배 냄새.."


귀를 뜨겁게 달아오르는 말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뒤로 이어진 건 킁킁하고 냄새를 맡는 듯한 소리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아까 여기 도착해서 씻었던가.'부터 시작해서 말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 맡지마.."


그리고 그게 자신이 할  있는 최선이었다.


좋은 냄새가 날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좋은 냄새가 날 리 없었다.

이안을 찾겠답시고 며칠이고 초원을 이잡듯이 뒤졌으니까.


제대로 씻을만한 겨를도 없었고, 그럴 환경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초조한 이쪽의 속내를 아는  모르는 지 이안은 목덜미에서 얼굴을 떨어뜨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혹시 잠들기라도 한 것일까.


워낙 움직임이 없어 그런 생각까지 든 순간.


"힉..?!"

부드럽고 말캉하면서 따뜻한 것이 그대로 목덜미를 쭉 핥아올리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혀로 핥아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웠는데 이어진 이안의 행동은 그걸 배가시키기 충분했다.

쪽쪽하는 소리와 함께 이안의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번이고 그 감각을 느끼고 있자니 꼭 이안한테 잡아먹히는 듯한 그런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그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이안은 실제로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마저  정도로 순간적으로 마주쳤던 이안의 눈빛은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쪽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제멋대로 흠칫거릴 정도로.


그렇게 남자에게 '압도'당한다는 기묘한 감각을 만끽하고 있자니..

부우욱-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안의 몸을 덮고 있던 누더기가  멀리 내던져졌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되게 신기한 기분이었다.


분명 앨리스와 찰싹 달라붙기 전까지는 이성을 붙잡고 있기 힘들 정도로 욕망이 부글부글 들끓었는데 그녀와 몸을 포갠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그녀의 체취를 들이킬수록 조금씩 정신이 명료해졌으니까.

물론, 그와 별개로 욕망은 여전히  안쪽에서부터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분이었다.

'쫄았네 쫄았어.'

내 밑에 깔려 몸을 움츠리고 있는 앨리스의 모습을 비교적 멀쩡한 정신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어찌하면 좋을 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살짝 굳어있는 모습을 보니 입맛이  돌았다.


그래서..

"선배.."


그녀를 부르며 답답하다고 호소라도 하는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져있는 그녀의 셔츠를 향해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단추를 풀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약기운 때문에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려서  되질 않았다.


 탓에   버벅거리고 있으니..

"내, 내가 할게.."


한 번 버벅일 때마다 셔츠에 감싸인 가슴을 툭툭 건드려대는 내 손등이 신경쓰이기라도 했는지 앨리스가  뺨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그리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아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그녀가 물끄러미 날 올려다보았다.


내게는 꼭 그게 조금만 비켜달라는 것같아서..

그녀의 상체를 짓누르고 있던 몸을 조심스레 띄워서 그녀가 움직일  있도록 공간을 틔워주었다.


앨리스의 손이 나와 그녀 사이로 파고들어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조심스레 파고들어온 그녀의 손이 내가 반쯤 풀어낸 셔츠의 단추를 톡하고 건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단추가 단추구멍하고 헤어지게 만들기에는.

톡-

단추 풀어지는 소리가 거의 천둥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만큼  몸의 모든 감각을 그곳에 집중시키고 있으니..

"너, 너무 그렇게 빤히 보지는.."


그런  기색을 느끼기라도  것처럼 앨리스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새삼 긴장한 걸까.

그녀의 손은 아까 내 손이 그랬던 것처럼  끝이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능숙하게 풀어냈던 처음과는 다르게 앨리스는 살짝 버벅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마저 풀어진 순간.

그리하여 셔츠 자락이 좌우로 벌어지며 그 아래 숨겨져있던 새하얀 살결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서 풍겨져나오는 체취를 모조리 쓸어담듯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런 내 숨결이 간지러웠던 걸까.

앨리스가 몸을 움츠리며 바로 조금 전까지 단추를 풀던 손으로 내 가슴팍을 살짝 떠밀었다.


그만하라는 걸까.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시선을 들어올리니 졸지에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수줍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냈다.


"내, 냄새가.."


냄새라니.


그런 단어를 쓰는 건 지금 콧속으로 파고들어와 내게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해주는 이 향기한테 실례였다.

이것도 약의 효과인 걸까.


그녀의  안에서 그녀의 체취를 들이킬 때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팡팡 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냄새만 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대신 그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밀어넣었다.

"읏.."

거칠거칠할게 분명한 내 손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민감한 곳을 스치는 느낌이 요상했던 것일까.


내 밑에 깔려있던 앨리스의 몸이 움찔대는 게 맞닿은 곳을 통해 가감없이 전해져왔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그 떨림을 만끽하면서..

밀어넣은 손을 이용해 셔츠자락 사이를 헤집어댔다.

그럴 때마다 보들보들하고 말캉하면서 심지어 따뜻하기까지한 감촉이 손등을 툭툭 건드려댔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 잠.."

손을 움직여 셔츠 자락 사이로 그 보드랍고 말캉한  개의 언덕을 끄집어냈다.


반쯤 억지로 끄집어낸 탓일까?


찌이익하고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으니까.

셔츠?

그거야 새로 사던 꿰매입던 하면 되는  아니겠는가?

그 따위 것보다는..


"너무 예뻐요 선배.."

다급하게 들어올린 팔뚝에 눌려  보기좋게 일그러져있는 앨리스의 가슴을 확인하는게  배는 더 중요했다.


그래서였다.

그녀를 상대로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가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조심스레 옆으로 걷어냈던 건.

새하얀 팔이 옆으로 밀려나며  아래 짓눌려있던 선홍빛의 열매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 시선이 두렵기라도 한 것일까.

연신 몸을 흠칫흠칫 떨어대는 그것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으읏.."


그것의 첨단을 조심스레 베어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