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93)화 (93/366)



〈 9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리파네 부족의 첫인상은 뭐랄까.. 기묘했다.

 마치 기사부에 전과한 첫날같다고 해야할까.

어딜가던 시선이 쭉 따라붙는데 그나마 좀 차이가 있다면 시선 속에 담긴 것이었다.


좀 더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담겨있다고 해야할까.

그런 게 몸으로 푹푹 날아와 꽂히는데 덕분에 몸이 다 근질거리더라.

손이 묶여있는 탓에 시원하게 긁을 수도 없어서 애꿏은 몸만 움찔대고 있자니 그런 내 몸짓을 대체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리파가  허리를 감싸고 있던 내 팔을 툭툭 두들겼다.


"부담스럽더라도 조금만 참도록."


자기가 어떻게든 해주겠다는 걸까.


그래서 잠자코 있었더니 그녀는 날 손님으로 대우하겠다는 말을 착실하게 지켰다.


딱 봐도 족장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랗고 화려한 천막 바로 옆에 위치한 천막 안을 비우게 하더니 그걸 내 앞으로 배정해줬으니까.

솔직히 좀 의외였다.


부족에 도착하자마자 '넌 이제부터 우리 부족의 소유물이다!'라는 식의 전개도 나름대로 염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손의 자유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손목을 속박하고 있던 가죽끈을 풀어준 리파가 그것을 제 허리춤에 묶으며 날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리석은 짓은.."

"안 합니다.  해요."

여기서 튀어봐야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붙잡힐텐데 머저리도 아니고 그런 짓을 왜 한단 말인가?


얼른 그 신물인지 뭔지부터 찾고 오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저으니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파가 피식하고 웃으며 몸을 돌려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천막 안에 홀로 남겨진 순간.

'자, 그럼 이제..'

잽싸게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안건은 이제부터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였다.


그렇게 미래계획이라고 할만한 것을 세우고 있자니..

부스럭-

천막 입구 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벌써 그 신물인지 뭔지를 찾아낸 것일까.

그런  같지는 않았다.

리파의 것치고는 기척이 미약했으니까.


사람이라기 보다는 자그마한 동물의 것에 가까운 기척이라고 해야할까.


그에 입구 쪽을 주시하고 있으니 자그마한 것이 천막 입구를 통해 쪼르르 달려들어왔다.


"..다람쥐?"

그렇게 등장한 녀석을 '니가 왜 여기서 나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또한 내게 똑같은 시선을 돌려주었다.

어디서 훔치기라도 한 건지 뭔지 모를 열매를 양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쥔 녀석이 내게 시선을 고정한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 식으로 갑작스레 천막 안으로 침입해온 놈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


앳된 목소리와 함께 웬 꼬맹이 하나가 천막 안으로 쏘옥 들어왔다.


 다람쥐의 주인이라도 되는 걸까.


"&*!*@#&!*#(!!"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의 품으로 쏘옥하고 안긴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같았다.


그렇게 녀석을 품에 안고 꾸중 비스무리한 걸 하던 소녀의 시선이 마침내 내게 닿은 순간..

"!&@^#^@?!"

그 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날 보고 크게 놀랐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고정된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져있었으니까.

남자라는 생물을 처음 보기라도 한 걸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열심히 지껄이며 발을 동동 굴러대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천막 입구가 걷히며 리파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소녀를 발견한 리파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소녀를 혼내는 것이었다.

여전히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상당히 따끔하게 혼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날 보며 열심히 부산을 떨어대던 소녀의 표정이 시무룩함의 극치를 내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열심히 혼나던 소녀가 천막을 빠져나가고, 리파의 몸이 내쪽으로 돌아온 순간 깨달았다.

리파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신물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푸른 구슬이 아까  손을 속박하고 있던 흰색의 가죽 끈에 꿰인 채 그녀의  위에서 보란듯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신물이라길래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했더니 확실히 그럴 듯한 모양새긴 했다.

구슬 속에서 푸른색 기운이 일렁이는 것이 척봐도 뭔가 있어보였으니까.

"동생이 실례를 범했군."


어쩐지 닮았다 했더니만 동생이었구나.

"그냥 혼자 신나서 떠든  전분데요."

그러니 실례라 할 것도 없다는 뜻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니 리파가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슴 위에서 흔들리는 푸른색의 구슬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그나저나 찾으신  같네요."

"음, 그대가 말해준 시체 뱃속에 있더군."

그런 사실까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뭐, 어찌되었건 이제 제 결백은 증명된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그래서 물으니 돌아온 건 딱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었다.

"안타깝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아."


것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예상했던대로였기에 딱히 배신감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그런 리파의 말에 배신감을 느낀 척을 했다.

그런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우고 있자니 쓰게 웃은 리파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내 착각을 정정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설명은 굉장히 심플했다.


은인을 대접하는  초원인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할 도리라나?


하물며 나 정도 되는 은인을 대접도 않고 그냥 떠나보내게 되면 자기 체면이 상당히 깎이게 된단다.


"그러니까.."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다오. 게다가 오늘은 시간도 늦지 않았나."

이거 왠지 날 최대한 붙잡아두려고 핑계를 대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모르는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나야 오래 잡혀있을수록 좋았으니까.


너무 오래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초원을 달리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면서 나름 간곡한 어조로 설득을 시도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건 말이다.


그렇게 그녀의 말에 설득당한 척 고개를 끄덕이니 리파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잘 생각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확실하게 지켰다.


아주 작정이라도  것처럼 술과 음식들이 부족 내에 풀리기 시작했으니까.


덕분에 분위기가 굉장히 떠들썩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밖에 나가서 어울리지는 않았다.

밖에 나가봐야 시선이  쏠릴 게 뻔한데 그런 걸 받으면서 식사를 하는 건 피하고 싶었으니까.


해서 리파가 내 앞으로 배정해준 천막 안에 앉아 리파의 부하들이 가져다주는 음식과 음료를 홀짝이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소리를 즐기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입에 맞을 지 모르겠군."

술이라도 한  걸쳤는지 마지막에 봤을 때하고는 얼굴이 살짝 불그스름하게 변한 리파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뭐.. 나쁘지 않네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상당히 훌륭했다.

특히나 고기들은 대체 어떻게 구운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번 씹을 때마다 빠작빠작하게 구워진 껍질이 와자작 부숴지면서 그 안에 감춰져있던 육즙이 입 안을 흠뻑 적셨으니까.


그게 껍질에 발라진 소금하고 살짝 매콤한 맛을 내는 향신료와 함께 어우러지는데..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열심히 한 잔 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건 술을 불러들이는 맛이었다.

아무튼 그걸  티내긴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니 입구에 기대 서 있던 리파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천막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맞은 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쁘지 않은 정도라니. 이거 좀 더 대접에 힘써야겠군."

그래서 본인이 직접 대접하겠다는 걸까.


리파가  속에서 자그마한 병을 꺼내들었다.

"술은 좀.."

생긴 것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딱봐도 술병이었다.

그것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내 직감이 속삭였다.

저건 엄청나게 귀한 거라고.

 그래도 술이 고프던 찰나에 척봐도 엄청나게 귀해보이는 게 눈앞으로 떡하니 들이밀어진 상황.


덕분에 한 잔만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억지로 꾹꾹 내리눌렀다.


그리고는 살짝 꺼려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였다.


"흠, 후회할텐데?"


그런 내 본심을 눈치채기라도  것처럼 리파가 손에 든 자그마한 술병을 보란듯이 흔들어보였다.


그와 함께 찰랑찰랑하고 병 안에 든 것이 파도치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와중에 날 더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조금 전까지  술병이 숨겨져있던 곳이었다.

내가 잘못  게 아니라면 리파가 술병을 꺼내든 곳은 가슴골이었다.

미녀의 체온으로 먹기  적당한 온도로 뎁혀진 술이라니.


'돌아버리겠네. 정말..'

덕분에 다시 한  욕망이 울컥하고 솟아올랐지만 어찌어찌 참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잽싸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그 신물 말입니다."

"응?"


"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겁니까?"


그런  말에 잠시 고민하던 리파가 이내 제 목에 차고 있던 푸른색 구슬을 끌러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꼬옥하고 움켜쥐니..

"보시다시피 이런 물건이지."


그녀의  안에 쥐어진 구슬에서 투명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물입니까?"


"그래. 마실 수도 있는 것이지."


마실  있는 물을 생성해주는 물건이라니.


그런 거라면 확실히 유목민족인 저들 입장에서는 그런 취급을 받을만 했다.


어디에나 물이 있는  아니니까.

하물며 마실 수 있는 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저런 걸 가지고 있다면?

물 걱정할 일은 없을 터.

"신기하네요."


대체 어떤 원리길래 저렇게 물을 뽑아내는 걸까.

순수한 호기심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고 있으니 그런 내 얼굴을 보며 피식하고 웃던 리파가 손에 들고 있던 병의 뚜껑을 땄다.

"손님 혼자 자작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되도 않는 변명을 입에 담으며 어느새 세팅해둔 잔에 술을 따라냈다.

그와 함께 달큰하면서도 어딘가 톡 쏘는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어오는데..


'어우 시발..'

냄새를 맡으니 더 미칠 것 같았다.


뽀글뽀글하고 기포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살짝이지만 탄산도 섞인 것 같은데 이렇게  안이 고기에서 뿜어져나온 육즙으로 꾸덕꾸덕하게 변해있는 이 때 저걸 딱 들이킨다면?

단짠조합이라는 치트키의 완성과 함께 목구멍까지 차지하고 앉은 기름기가 싹 씻겨내려갈텐데 말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절로 고여서 애꿏은 침만 꼴깍 삼키고 있으니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리파가 맛깔나게 그것을 들이켰다.

가볍게 쭉 들이키고는 크으하고 탄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내 인내심이 툭하고 끊어지기에는 말이다.


그리고 리파는 그런 내 기색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정말 안 마실 건가?"

그리 말하면서 다시   술병을 살랑살랑 흔들어보이는데 뚜껑이 닫혀있던 아까하고는 다르게 뚜껑이 열려있다보니 과실주 특유의 달큰한 향기가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솔솔 피어났다.


"..한 잔만입니다."

결국 그에 굴복한 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며 바로 조금 전까지 음료가 담겨있던 잔을 리파를 향해 내밀었고..


그렇게 그녀와 대작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끝내주긴 했다.


한 잔이 순식간에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자연스럽게 세 잔이 될 정도로.


도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세긴 했지만, 그럼에도 술술 넘어갔다.

이제는 완전히 안주가 되어버린 음식하고도 상당히  어울렸고.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저것만 있어도 충분히 술술 넘어갈  같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안주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리파였다.

취기로 발그레하니 달아오른 얼굴을 한채 자그마한 잔 안에 담긴 액체를 홀짝홀짝거리는데 그것만봐도 입맛이 미친듯이 돌았다.


그래서였다.

이쯤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멈추지 못했단 건.

그렇게 내어주는대로 넙죽넙죽 받아마시고 있자니..


"아, 그러고보니 말이야."

아까보다 조금  취한 것인지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던 리파가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또 뭔 소리를 하려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지니 그런 내 시선을 받은 리파가 나와 시선을 맞추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연분홍빛 입술이 슬며시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그거 아나? 그대들이 우리를 야만적이라고 말하는 이유 말이야."

영 의미심장한 발언에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왕국에서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리파같은 이들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니.


그딴 걸 내가 알리가 없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서로의 풍습이 다르다보니 그렇게 된  아닐까요."

해서 적당히 둘러댔는데 놀랍게도 그게 정답이었다.

"그래, 맞아. 풍습의 차이 때문이지."


그래서 그런 말은 갑자기 왜 꺼낸 걸까.


한참 분위기 좋았었는데 말이다.


 깨져버린 분위기에 속으로 그리 툴툴대고 있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초원에서는 말이야.."


스륵하고 리파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님에게 자신의 배우자를 붙여주는  최고의 대접으로 치거든."

그와 함께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건 쉬이 간과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혼자라서 말이야.."

저기요 선생님?

왜 옷에 손을 가져가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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