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70)화 (70/366)



〈 7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레이시아의 품이 주는 감촉은 분명 행복했다.

행복했지만..

언제까지고  안에 갇혀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히 즐겼다 싶어서 탈출을 시도해봤는데..

꽈아아악-

'아니, 뭔 놈의 힘이..'


혹시 내가 차에 탔던 그거..


'냄새만 술이고 사실은 다른 거였나?'


이를테면 마시면 힘이 세지게 만들어주는 포션이라던지 말이다.


약에서 포도맛 탄산음료 맛이 나는 세상이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내 허리를 휘감은 팔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통감했다.

내게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슬슬 숨까지 살짝 막혀오는 상황.


해서 날 품 안에 가두고 있는 당사자한테 나름 정중하게 요청해봤다.


"그.. 회장님? 팔에 힘을  풀어주시면.."


해봤는데..


뭐가 그리 마음에  드는지 적한테 위협당한 복어마냥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라고.

"..싫어."

동시에 입술 사이를 뚫고 튀어나온 목소리는 새침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나 새침한지 새침함의 대명사 점순이가 '어휴, 시발 뜨거라.'하고 그 맛있다는 봄감자를 내던지며 빤스런을 놓을 기세였다.

아니, 그래서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데.

잠수하다가 고개를 들어올리듯 낑낑대면서 가슴골 사이에 파묻혀있던 얼굴을 간신히 끄집어내니 그나마 좀  것 같았다.


대신 불만에 가득 차서 뾰루퉁하게 변한 레이시아의 얼굴을 맞이하게 됐지만 말이다.


볼이 어찌나 빵빵하게 부풀어있는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뿝!'하는 소리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회장님, 혹시 뭐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안 불러줬잖아."


앞뒤 다 잘라먹고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보고 대체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걸까.

그래, 취한 사람하고 대화를 시도한 내가 멍청이고 머저리지.

암, 그렇고 말고.

취하니까 왕녀로서 위엄같은 건 벗어던지고 대신 귀여움과 새침함으로 무장한 레이시아를 보며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자니 그녀가 자기 PR을 시작했다.

"누나라고.. 안 불러줬잖아.."


아, 그래서 삐졌던 거였어?


"카트린느는 누나라고 불러주고.. 왜 나는 안 불러줘?"

이쯤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얘는 대체 이 업보를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는 걸까.

필름 끊겨서 기억이 싸그리 날아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내일 술에서 깼을 때 지가 한 짓들이 전부 다 기억날텐데 말이다.

약 반나절 뒤에 제가 맞이하게될 미래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레이시아를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었으니까.

그녀는 반나절 뒤가 문제지만 난 당장 지금이 문제 아닌가?

"아니 그.. 카트린느 누나는 어렸을 적부터.."

"또또, 카트린느만 누나라고 부르고."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누나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건데.


설마 남녀가 역전되어버리면서 원래 세계의 남자들이 오빠라는 단어에 환상을 품었던 것처럼 여자들이 누나라는 호칭에 환상을 품게 됐다던지 뭐 그런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그게 아니면 지금 레이시아가 보여주는 누나라는 호칭에 대한 집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누, 누나.."

원하는대로  번 더 불러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쓰읍하고 혀차는 소리를  그녀가 짧게 덧붙였다.


"레이시아 누나라고 해야지?"

"레, 레이시아 누나.."


그래서 그것도 들어줬더니...

"흐흐흐흫.."

아까보다 조금 더 헤퍼진 웃음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아, 진짜 귀여워 죽겠네.


왕녀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함인지 평소 그녀의 표정은 기본적으로 딱딱한 표정이 베이스였다.


그랬던 얼굴이 지금은 발그레하니 물이 든채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있는데..


"누나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술 사이를 뚫고 그런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꺄아-"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작게 비명을 내지른 레이시아가 안 그래도 단단히 끌어안고 있던 내 몸을 제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몸을 배배 꼬아대기 시작했다.


"우풉..!"

덕분에 다시 그녀의 가슴팍 사이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 마저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레이시아가 몸을 좌우로 꼬아댈 때마다 압도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두 개의 언덕이 생생하기 그지없는 바스트모핑을 보여주며  얼굴을 툭 건드렸다가 떨어져나가길 반복했으니까.


이것이 오직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던 젖치기인가..

아프다기 보다는 볼에 와닿는 감촉이 젤리와 푸딩을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탱탱하고 몰캉몰캉해서 황송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얘 이거..'

아무래도 취해서 내가 누군지 까먹어버린 것 같은데..

아니면 그런 척을 하고 있던지 말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이던 나야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업보를 감당하는 건 오롯이 그녀의 몫이니까.

그건 그렇고 원하는대로 누나라고 불러줬으니까 이제 좀 놓아주려나?


 같아서는 이대로 쭉 그녀의 품 안에 안겨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세가 영 아닌지라 슬슬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으니까.


뭣보다 곧 있으면 앨리스가 등장할 예정이기도 했고.


"그.. 누나 이제 좀 놓아주시면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요청해봤다.

원하는대로 다 맞춰줬으니 이번만큼은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한 거였는데..


"왜?"

이번에도 정답이 아니었나 보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볼을 살짝 부풀린 그녀가 날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자꾸 자기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거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선생님 곧 있으면 손님이 온다니까요?


지금 이 헤프닝이 나와 레이시아 둘만의 일이라면 그녀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제 3자가 끼어들게 된다면?

문제 많~이 복잡해진다.


하물며 그 제 3자가 클레어 건으로 인해 정신상태가 많이 불안정했다가 간신히 진정된 앨리스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래서 벗어나려는 거다.

 상태로 앨리스한테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걸 술 취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 조리있게 풀어서 설명해보려고 고심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정리를 끝내는 것보다 레이시아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게 훨씬 빨랐다.


"아하."


아하는 또 뭐야.

뭘 깨달은 건데.


사람 불안하게 스리 말이다.


그런 내 불안감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레이시아가 가슴 사이로 간신히 눈만 내밀고 있는  내려다보며 히죽히죽대며 웃었다.


그러더니..


"그랬구나아."


대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지금 그녀의 표정은 누가봐도 이해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살짝 가학심까지 느껴지는 게..

'어우..'

괜히 등골을 오싹오싹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기대감  불안감 반의 심정을 느끼고 있자니..


"배고팠지?"


상당히 뜬금없는 발언이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런 결론에 다다를  있는 것일까.

범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그 사고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벙찌고 있으니..

"잠깐마안~"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린 레이시아가 대뜸 몸을 뒤틀어대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누나가 맘마줄게~'하는 전개가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진짜로?

그런 내 기대감을 느끼기라도  것일까.

앉은 채로 몸을 꼼질대던 레이시아가 등을 쫙 폈다.

그에 안 그래도 압도적인 그녀의 볼륨감이 한층  부각되었다.

그 상태로 레이시아가 내 허리를 휘감고 있던 팔을 풀어서 천천히 내 머리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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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맛있는 쿠키에요~"

그럼 그렇지.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갑자기 그런 전개가 될 리가 있나.

한껏 부풀어올랐던 기대감이 바람빠진 풍선마냥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끼고 있자니 레이시아가 테이블 쪽에서 챙겨온 쿠키를 내 앞에서 보란듯이 흔들어댔다.


먹고 싶으면 아까처럼 누나라고 불러보라는 걸까.

'확실히..'

맛있어 보이긴 하네.

초콜렛이 알알히 박혀있어서 그런지 살짝 떨어져있음에도 초콜렛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입 안에 군침이  정도로.

심지어 난 공복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뭐   없나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카트린느의 오두막을 방문했고, 거기서 이런 꼴이 된 거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섭취한 거라고는 날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버린 포도맛 탄산음료와 굉장히 유사한 맛을 내던 정체불명의 약이 전부였다.

'맛은 있더만 시발..'


아무튼 그래서였다.


내가 쿠키를 볼모로 잡은 레이시아의 요구에 굴복했던 것은.


"누나 쿠키 주세요~ 해야지?"

"주, 주세요."

얘 눈에는 대체 내가 몇 살로 보이는 걸까.

심히 궁금해졌지만 일단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어쩔 수 없었다.

공복인  자각하고 나니 감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공복이 날 덮쳐왔으니까.

자존심 좀 챙기자고 굶어죽을 수는 없잖아?

암, 그렇고 말고.


절대로 쿠키를 쥔 레이시아의 손가락이 탐스러워 보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로.

아무튼 그렇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건만 내 눈앞의 인질범은 굉장히 악랄했다.


고작 이걸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즉시 추가적인 요구를 건네왔으니까.

"이대로는 손을  쓸테니까 어쩔 수 없네에.."


아니, 그런 말을 할 거면 팔부터 풀어주고 말을 하던가.

아까하고는 다르게  하나로 내 몸을 휘감고 있는데도 힘이 장난 아니었다.


"누나가 먹여줄게? 자, 아~"

그러셨구나아.

먹여주기가 하고 싶으셨던 거구나.

자길 보고 따라해보라는 것처럼 레이시아가 척봐도 촉촉해보이는 연분홍빛 입술을 슬며시 벌려보였다.

그와 함께 드러난 촉촉함으로 가득  풍경에 나도 모르게 넋놓고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흐흥.."


그런 날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인 레이시아가 손에 들고 있던 쿠키 끄트머리를 살짝 베어물었다.

와삭-하고 분홍빛 입술 사이로 살짝 파고든 쿠키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부스러기가 레이시아의 몸을 감싸고 있는 제복 위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이렇게 맛있는데 안 먹을 거야~? 응~?"


나름대로 어필이었던 걸까.

대체 얼마나 먹여주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그냥 해주기로 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아.."

그래도 조금 부끄럽긴 했다.

해서 살짝만 벌려봤더니 그런 날 내려다보며 레이시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여워 죽겠다는 것처럼.

그리고는..

저금통에 동전 집어넣듯 바로 조금 전에 제가 베어문 쿠키를  입술 사이로 쏘옥하고 넣어주는 그녀였다.

쿠키는 꽤 컸다.

몸이 줄어들며 덩달아 작아진 입으로는 한 입에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게다가 손도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입술을 이용해 그걸 고정시켜놓고 끝부분을 조금씩 갉작갉작 갉아먹었다.

그러고 있자니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 모양이다.

아까처럼 레이시아의 얼굴 위로 헤실헤실거리는 미소가 번져나가더니..


"어디, 나도.."


그녀가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뒤로 넘기며 내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


저기요 선생님?

너무 가까워지시는  아닙..

와삭-!


쿠키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입술 사이에 물고 있던 쿠키가 반토막이 났다.

나머지 반은 어디갔냐고?


그야 어디있겠는가?


저기있지.

 따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만 이용해 쿠키를 베어물고 있는 우리 왕녀님 입술 사이에 말이다.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방금 전에 분명 살짝 닿았던 것 같..


반사적으로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 순간 아주 잠깐 입술 끝에 닿았다가 떨어져나간 촉촉하고 말캉한 감촉이 기다렸다는 듯이 되살아났다.

그에 나도 모르게 벙찌고 있으니..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며 웃은 레이시아가 입술 끝에 머금고 있던 쿠키를 그대로 낼름 집어삼켰다.

"음, 역시 맛있네. 사라 솜씨는 최고라니까."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냐고?

계속 쿠키를 나눠먹었다.


접시가 텅 비어서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말이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챙겨올 걸..

속으로 한탄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똑똑-

방 안으로 울려퍼진 노크소리가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서 녹아내리고 있던 내 정신을 일깨웠다.

손님이..

"회장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앨리스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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