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레이시아의 품이 주는 감촉은 분명 행복했다.
행복했지만..
언제까지고 그 안에 갇혀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히 즐겼다 싶어서 탈출을 시도해봤는데..
꽈아아악-
'아니, 뭔 놈의 힘이..'
혹시 내가 차에 탔던 그거..
'냄새만 술이고 사실은 다른 거였나?'
이를테면 마시면 힘이 세지게 만들어주는 포션이라던지 말이다.
약에서 포도맛 탄산음료 맛이 나는 세상이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내 허리를 휘감은 팔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통감했다.
내게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슬슬 숨까지 살짝 막혀오는 상황.
해서 날 품 안에 가두고 있는 당사자한테 나름 정중하게 요청해봤다.
"그.. 회장님? 팔에 힘을 좀 풀어주시면.."
해봤는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적한테 위협당한 복어마냥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라고.
"..싫어."
동시에 입술 사이를 뚫고 튀어나온 목소리는 새침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나 새침한지 새침함의 대명사 점순이가 '어휴, 시발 뜨거라.'하고 그 맛있다는 봄감자를 내던지며 빤스런을 놓을 기세였다.
아니, 그래서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데.
잠수하다가 고개를 들어올리듯 낑낑대면서 가슴골 사이에 파묻혀있던 얼굴을 간신히 끄집어내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대신 불만에 가득 차서 뾰루퉁하게 변한 레이시아의 얼굴을 맞이하게 됐지만 말이다.
볼이 어찌나 빵빵하게 부풀어있는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뿝!'하는 소리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회장님, 혹시 뭐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안 불러줬잖아."
앞뒤 다 잘라먹고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보고 대체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걸까.
그래, 취한 사람하고 대화를 시도한 내가 멍청이고 머저리지.
암, 그렇고 말고.
취하니까 왕녀로서 위엄같은 건 벗어던지고 대신 귀여움과 새침함으로 무장한 레이시아를 보며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자니 그녀가 자기 PR을 시작했다.
"누나라고.. 안 불러줬잖아.."
아, 그래서 삐졌던 거였어?
"카트린느는 누나라고 불러주고.. 왜 나는 안 불러줘?"
이쯤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얘는 대체 이 업보를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는 걸까.
필름 끊겨서 기억이 싸그리 날아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내일 술에서 깼을 때 지가 한 짓들이 전부 다 기억날텐데 말이다.
약 반나절 뒤에 제가 맞이하게될 미래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레이시아를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었으니까.
그녀는 반나절 뒤가 문제지만 난 당장 지금이 문제 아닌가?
"아니 그.. 카트린느 누나는 어렸을 적부터.."
"또또, 카트린느만 누나라고 부르고."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누나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건데.
설마 남녀가 역전되어버리면서 원래 세계의 남자들이 오빠라는 단어에 환상을 품었던 것처럼 여자들이 누나라는 호칭에 환상을 품게 됐다던지 뭐 그런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그게 아니면 지금 레이시아가 보여주는 누나라는 호칭에 대한 집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누, 누나.."
원하는대로 한 번 더 불러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쓰읍하고 혀차는 소리를 낸 그녀가 짧게 덧붙였다.
"레이시아 누나라고 해야지?"
"레, 레이시아 누나.."
그래서 그것도 들어줬더니...
"흐흐흐흫.."
아까보다 조금 더 헤퍼진 웃음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아, 진짜 귀여워 죽겠네.
왕녀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함인지 평소 그녀의 표정은 기본적으로 딱딱한 표정이 베이스였다.
그랬던 얼굴이 지금은 발그레하니 물이 든채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있는데..
"누나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술 사이를 뚫고 그런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꺄아-"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작게 비명을 내지른 레이시아가 안 그래도 단단히 끌어안고 있던 내 몸을 제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몸을 배배 꼬아대기 시작했다.
"우풉..!"
덕분에 다시 그녀의 가슴팍 사이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 마저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레이시아가 몸을 좌우로 꼬아댈 때마다 압도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두 개의 언덕이 생생하기 그지없는 바스트모핑을 보여주며 내 얼굴을 툭 건드렸다가 떨어져나가길 반복했으니까.
이것이 오직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던 젖치기인가..
아프다기 보다는 볼에 와닿는 감촉이 젤리와 푸딩을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탱탱하고 몰캉몰캉해서 황송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얘 이거..'
아무래도 취해서 내가 누군지 까먹어버린 것 같은데..
아니면 그런 척을 하고 있던지 말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이던 나야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업보를 감당하는 건 오롯이 그녀의 몫이니까.
그건 그렇고 원하는대로 누나라고 불러줬으니까 이제 좀 놓아주려나?
맘 같아서는 이대로 쭉 그녀의 품 안에 안겨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세가 영 아닌지라 슬슬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으니까.
뭣보다 곧 있으면 앨리스가 등장할 예정이기도 했고.
"그.. 누나 이제 좀 놓아주시면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요청해봤다.
원하는대로 다 맞춰줬으니 이번만큼은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한 거였는데..
"왜?"
이번에도 정답이 아니었나 보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볼을 살짝 부풀린 그녀가 날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자꾸 자기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거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선생님 곧 있으면 손님이 온다니까요?
지금 이 헤프닝이 나와 레이시아 둘만의 일이라면 그녀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제 3자가 끼어들게 된다면?
문제 많~이 복잡해진다.
하물며 그 제 3자가 클레어 건으로 인해 정신상태가 많이 불안정했다가 간신히 진정된 앨리스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래서 벗어나려는 거다.
이 상태로 앨리스한테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걸 술 취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 조리있게 풀어서 설명해보려고 고심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정리를 끝내는 것보다 레이시아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게 훨씬 빨랐다.
"아하."
아하는 또 뭐야.
뭘 깨달은 건데.
사람 불안하게 스리 말이다.
그런 내 불안감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레이시아가 가슴 사이로 간신히 눈만 내밀고 있는 낼 내려다보며 히죽히죽대며 웃었다.
그러더니..
"그랬구나아."
대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지금 그녀의 표정은 누가봐도 이해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살짝 가학심까지 느껴지는 게..
'어우..'
괜히 등골을 오싹오싹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기대감 반 불안감 반의 심정을 느끼고 있자니..
"배고팠지?"
상당히 뜬금없는 발언이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
범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그 사고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벙찌고 있으니..
"잠깐마안~"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린 레이시아가 대뜸 몸을 뒤틀어대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누나가 맘마줄게~'하는 전개가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진짜로?
그런 내 기대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앉은 채로 몸을 꼼질대던 레이시아가 등을 쫙 폈다.
그에 안 그래도 압도적인 그녀의 볼륨감이 한층 더 부각되었다.
그 상태로 레이시아가 내 허리를 휘감고 있던 팔을 풀어서 천천히 내 머리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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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맛있는 쿠키에요~"
그럼 그렇지.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갑자기 그런 전개가 될 리가 있나.
한껏 부풀어올랐던 기대감이 바람빠진 풍선마냥 한없이 쪼그라드는 걸 느끼고 있자니 레이시아가 테이블 쪽에서 챙겨온 쿠키를 내 앞에서 보란듯이 흔들어댔다.
먹고 싶으면 아까처럼 누나라고 불러보라는 걸까.
'확실히..'
맛있어 보이긴 하네.
초콜렛이 알알히 박혀있어서 그런지 살짝 떨어져있음에도 초콜렛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입 안에 군침이 돌 정도로.
심지어 난 공복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뭐 할 거 없나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카트린느의 오두막을 방문했고, 거기서 이런 꼴이 된 거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섭취한 거라고는 날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버린 포도맛 탄산음료와 굉장히 유사한 맛을 내던 정체불명의 약이 전부였다.
'맛은 있더만 시발..'
아무튼 그래서였다.
내가 쿠키를 볼모로 잡은 레이시아의 요구에 굴복했던 것은.
"누나 쿠키 주세요~ 해야지?"
"주, 주세요."
얘 눈에는 대체 내가 몇 살로 보이는 걸까.
심히 궁금해졌지만 일단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어쩔 수 없었다.
공복인 걸 자각하고 나니 감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공복이 날 덮쳐왔으니까.
자존심 좀 챙기자고 굶어죽을 수는 없잖아?
암, 그렇고 말고.
절대로 쿠키를 쥔 레이시아의 손가락이 탐스러워 보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로.
아무튼 그렇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건만 내 눈앞의 인질범은 굉장히 악랄했다.
고작 이걸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듯 즉시 추가적인 요구를 건네왔으니까.
"이대로는 손을 못 쓸테니까 어쩔 수 없네에.."
아니, 그런 말을 할 거면 팔부터 풀어주고 말을 하던가.
아까하고는 다르게 팔 하나로 내 몸을 휘감고 있는데도 힘이 장난 아니었다.
"누나가 먹여줄게? 자, 아~"
그러셨구나아.
먹여주기가 하고 싶으셨던 거구나.
자길 보고 따라해보라는 것처럼 레이시아가 척봐도 촉촉해보이는 연분홍빛 입술을 슬며시 벌려보였다.
그와 함께 드러난 촉촉함으로 가득 찬 풍경에 나도 모르게 넋놓고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흐흥.."
그런 날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인 레이시아가 손에 들고 있던 쿠키 끄트머리를 살짝 베어물었다.
와삭-하고 분홍빛 입술 사이로 살짝 파고든 쿠키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그 부스러기가 레이시아의 몸을 감싸고 있는 제복 위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이렇게 맛있는데 안 먹을 거야~? 응~?"
나름대로 어필이었던 걸까.
대체 얼마나 먹여주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그냥 해주기로 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아.."
그래도 조금 부끄럽긴 했다.
해서 살짝만 벌려봤더니 그런 날 내려다보며 레이시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여워 죽겠다는 것처럼.
그리고는..
저금통에 동전 집어넣듯 바로 조금 전에 제가 베어문 쿠키를 내 입술 사이로 쏘옥하고 넣어주는 그녀였다.
쿠키는 꽤 컸다.
몸이 줄어들며 덩달아 작아진 입으로는 한 입에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게다가 손도 쓸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입술을 이용해 그걸 고정시켜놓고 끝부분을 조금씩 갉작갉작 갉아먹었다.
그러고 있자니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 모양이다.
아까처럼 레이시아의 얼굴 위로 헤실헤실거리는 미소가 번져나가더니..
"어디, 나도.."
그녀가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뒤로 넘기며 내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
저기요 선생님?
너무 가까워지시는 거 아닙..
와삭-!
쿠키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입술 사이에 물고 있던 쿠키가 반토막이 났다.
나머지 반은 어디갔냐고?
그야 어디있겠는가?
저기있지.
날 따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만 이용해 쿠키를 베어물고 있는 우리 왕녀님 입술 사이에 말이다.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방금 전에 분명 살짝 닿았던 것 같..
반사적으로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 순간 아주 잠깐 입술 끝에 닿았다가 떨어져나간 촉촉하고 말캉한 감촉이 기다렸다는 듯이 되살아났다.
그에 나도 모르게 벙찌고 있으니..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며 웃은 레이시아가 입술 끝에 머금고 있던 쿠키를 그대로 낼름 집어삼켰다.
"음, 역시 맛있네. 사라 솜씨는 최고라니까."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냐고?
계속 쿠키를 나눠먹었다.
접시가 텅 비어서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말이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챙겨올 걸..
속으로 한탄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똑똑-
방 안으로 울려퍼진 노크소리가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서 녹아내리고 있던 내 정신을 일깨웠다.
손님이..
"회장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앨리스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