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사교도 떴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남 장기자랑 시키는 거하고 악신한테 기도하면서 '헤으응 악신 누나.. 세상이 이상해요..'밖에 없는 새끼들 떴냐고!!
저저 시커먼 로브 뒤집어 쓴 꼬라지 좀 보라지.
딱봐도 사악함이 철철 흘러넘치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한동안 잠잠해서 완치된 줄 알았던 사교도 혐오증 겸 흑마법사 혐오증이 재발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벽을 부수고 뛰쳐나가서 놈들의 뚝배기를 터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바들바들 떨렸다.
흡사 생체 바이브레이터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나중에 누가 됐든 관계를 맺을 때 해주면 아주 좋아 죽.. 아니, 이게 아니라.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잠시 삼천포로 빠졌던 의식의 흐름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자꾸자꾸 솟아오르는 욕망의 고삐를 틀어쥐고 그대로 찍어눌렀다.
동시에 주황머리한테 약조한대로 곧바로 구출에 나서려는 앨리스를 멈춰세웠다.
지금 뛰쳐나간다면?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놈들이야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 뿐이다.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잔챙이 몇 마리.
절대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할테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저 놈들의 뚝배기를 까부수고 싶어도 참아야하는 거다.
그래야 저 바퀴벌레같은 놈들을 한 번에 뿌리 뽑을 수 있을테니까.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좀 더 참아주지 않을래?
주황머리 년아?
일단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달려올 시간을 벌어줄 생각인 걸까.
예상과는 다르게 주황머리의 반응은 잠잠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해서..
"진, 기억하고 있지?"
미리 정해둔대로 주인공 놈을 치안대 본부를 향해 출발시켰다.
'어디..'
우리 보좌관님 반응은 어떠려나?
진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는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냐며 뜨악한 표정을 지을 레아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다시 납치현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보나마나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지 지켜보고 평가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아주 경악할 거다.
뭐라도 건지면 좋고 아님말고라는 생각으로 보냈던 짬찌들이 고작 반나절만에 사건의 꼬리를 잡은 셈이니까.
경악한 표정을 한채 병력을 끌고 달려올 레아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지 주황머리가 몸부림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이미 몸이 포대자루 안에 반 정도 들어가있는 상태라서 한계가 분명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주황머리의 반항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년놈들 중 하나가 뿌린 가루같은 걸 맞더니 테이저건이라도 맞은 사람마냥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으니까.
사람들을 납치할 때 쓰는 수면제같은 걸까.
수면제라니..!
'역시..'
악신을 숭배하며 사람들한테 강제로 장기자랑을 시키는 게 취미인 사교도 놈들다운 사악함이었다.
그렇게 축 늘어진 채 자루 속으로 수납되는 주황머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자루 입구 부분을 단단하게 동여맨 놈들이 그것을 어깨 위에 짊어졌다.
딱 그 순간 나는 앨리스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이제 출발하자고 말할 생각으로 그랬던 것인데..
'엉..?'
얘는 또 왜 얼굴이 새빨개져있는 걸까.
속으로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눈으로 들어온 건 꼬옥하고 곱게 포개져있는 한쌍의 손이었다.
'아.'
아까 뛰쳐나가려는 걸 붙잡는다고 손 잡았었지.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손에 뭐라도 바른 걸까.
이제보니 앨리스의 손은 꽤 부드러웠다.
전해져오는 온기도 마음에 들었고.
물론, 그것 때문에 아직도 놓지 않고 있는 게 아니다.
진짜로.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미끼가 되길 자처했던 주황머리를 구하러 가야하지 않겠는가?
"일단 출발하죠."
해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부끄러워하는 앨리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니 정신을 차린 그녀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야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출발할 때 살짝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놈들의 뒤를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놈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느릿하게 움직였을 뿐더러 이쪽에는 근처 지리를 줄줄 꿰고 있는 앨리스가 있었으니까.
덩치가 덩치인지라 은밀함과는 거리가 백만광년쯤 먼 나였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놈들의 뒤를 쫓는 대신 놈들을 쫓아 움직이는 앨리스의 뒤를 따랐다.
살짝 거리를 둔채로.
동시에 일정한 간격마다 정해둔 표식을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찾아내기 편하도록 특별히 흰색으로다가 표시를 해두었으니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우릴 쫓아올 수 있을 터.
그렇게 벽이나 문따위에 표시를 해가며 거리를 옮기다보니 앞서 걸어가던 앨리스가 모퉁이 뒤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빼꼼하고 내밀고 있더라.
해서 그녀의 옆으로 가서 합류했다.
"어떻게 됐어요?"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그에 그녀를 따라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보니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면 확연히 큰 덩치를 가진 건물 하나가 눈으로 들어왔다.
확실한 건 빈 건물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불이 켜져있었으니까.
저긴 또 뭐하는 곳일까.
"뭐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그나마 알 가능성이 있는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영 시원찮았다.
"글쎄.. 원래는 슬럼가를 관리하는 조직 중 하나가 사용하던 곳이었을텐데.."
말끝을 흐리는 건 건물에서 풍겨져나오는 음산한 기운 때문이겠지.
그것 덕분에 난 확신했지만.
저 건물 안에서 뭔가 사악하기 그지없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하냐는 건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물어봤다.
나야 이대로 돌입하든 지원이 오길 기다라든 딱히 상관없었으니까.
그러니 앨리스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물어봤는데..
"음.. 둘이서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 지도 모르는데.."
그녀도 이대로 돌입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있는 듯 했다.
그럼에도 선뜻 그쪽을 택하지 못하는 건 내가 걱정되서 그런 걸테고.
말끝을 흐리면서 내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던 걸 생각하면 확실했다.
'거참.'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원..
월말평가에서 내가 여자들을 모조리 찍어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걸 고새 까먹기라도 했나?
나로서는 그런 앨리스의 걱정이 굉장히 가소롭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흡족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걱정까지 한다는 건 그 정도로 날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아무튼 이대로는 위험할 것 같다고 하니 그 걱정을 좀 덜어줘야겠지.
뭐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자니 혹시 몰라 치안대에서부터 챙겨왔던 병 하나가 주머니 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흩뿌렸다.
자길 써달라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처럼.
알코올이라.
마침 또 놈들이 들어간 건물이 한 번 불이 붙으면 롸끈하게 잘 타게 생긴 목조건물이긴 한데..
이럼 어쩔 수 없지 뭐.
불로써 정화해주는 수밖에.
"선배."
"응?"
"조금만 도와주세요."
나는 가지고 있는 것만 쓰고 끝내려 했다.
거기에 대고 한술 더 뜬 것은 앨리스였다.
"잠깐만."
기다려보래서 기다려봤는데 잠시 사라졌던 앨리스가 웬 궤짝 하나를 짊어진 채 돌아왔다.
그리고 그 궤짝 안에는 갈색의 병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물론, 그 내용물은 말할 것도 없이 기름이었다.
아니 그 잠깐 사이에 이건 또 어디서 구해온 것일까.
시선으로 해명을 요구하니 앨리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답해줄 생각은 없다는 걸까.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어찌되었건 정화작업에 쓰라고 가져다 준 것들이니만 써줘야하지 않겠는가?
'근데 이제 천이 없는데.'
천도 구해다달라고 하면 구해다주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걸릴지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하면 나중에 주황머리가 칼 빼들고 달려들지도 몰랐으니까.
해서..
부욱-!
입고 있던 정복의 소매를 걷어올려 그 아래 받쳐입고 있던 셔츠의 소매자락을 그대로 잡아찢었다.
"지, 지금 뭐..!"
"쉿."
그런 내 행동에 앨리스가 기겁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들킬지도 모르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더니 눈으로 천이 필요하면 말을 하지 왜 애꿏은 네 옷을 찢냐고 눈빛으로 격렬하게 항의를 해대는 앨리스를 스리슬쩍 외면하며 바로 조금 전까지 내 팔을 감싸고 있던 천을 잘게 찢었다.
그리고는 앨리스가 가져다 준 궤짝을 채우고 있는 병들의 뚜껑을 일일히 뽑은 뒤 칵테일 만드는 심정으로 치안대 주방에서 챙겨온 독주를 조금식 첨가해주었다.
여기에 마무리로 뚜껑을 대신 잘게 찢어놓은 천쪼가리들을 돌돌 말아서 쑤셔넣으면?
'완벽하구만.'
탄생하는 것이다.
홈메이드 화염병이.
좀더 롸끈한 화력을 위해 병을 살짝 뒤집었다가 원래대로 되돌리니 병 입구 부분을 틀어막고 있던 천쪼가리가 기름을 머금으며 진한 기름 향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염병 한 박스를 제조하고 나니 내심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에다가 라이터까지 하나 있었으면 그야말로 완벽했을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여기서는 아쉬운대로 파이어 스틱으로 참는 수밖에.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화염병 담당은 앨리스가 하기로 했다.
단검 던지는 거하고 화염병 던지는 거하고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보단 훨씬 나을테니까.
그렇게 앨리스가 건물 곳곳에 화염병 토핑을 하며 시선을 끄는 사이에 나는..
'잠입액션 간다.'
몰래 건물 후문 쪽으로 잠입해서 내부도 털고 주황머리도 구출하고 할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 디아나한테 단검 하나도 빌렸다.
물론 주황머리한테 쥐여줄 것이었다.
짐짝을 달고 움직이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렇게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찢어지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깐만.'
저 새끼들은 또 뭐야.
앨리스가 알려준 후문 쪽으로 향하기 위해 그대로 골목을 따라 움직이려던 순간 눈으로 파고들어온 광경에 나는 즉시 자세부터 낮췄다.
아까 들어갔던 놈들하고는 다르게 척봐도 심상치 않은 기세를 흩뿌리는 놈 세 명이 갑자기 튀어나왔으니까.
특히나 맨 뒤에서 걷는 놈한테서 풍겨져나오는 기세가 가히 압권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목덜미가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비인간적인 사악함을 물씬 풍기는데..
놈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놈은 최소 간부 정도는 되는 놈이라는 걸.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물이 걸린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저 놈을 사로잡았을 때 보상도 더 커진다는 소리겠지.
높은 위치에 있는 놈인만큼 알고 있는 것도 많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새롭게 등장한 세 놈이 건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앨리스를 향해 시선을 한 번 주고는 그대로 그녀가 일러주었던 위치로 향했다.
덩치가 있다보니 좁은 골목을 따라 몰래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앨리스가 일러준 위치에 도달하고 나니 보초 한 명이 후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이제 그러면 저쪽에서 시선을 끌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쨍그랑-!
뭔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고요하던 골목을 꿰뚫었다.
동시에 반대쪽에서 불꽃이 확 치솟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뭔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매캐한 냄새가 주변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고요 속에 잠겨있던 건물 내부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건물 벽에 불이라도 붙은 걸까.
닫혀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이가 다급하게 보초를 호출했다.
아무래도 사태를 수습할 일손이 부족한 모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계를 소홀히하면 쓰나.
덕분에 어렵지 않게 건물 내부로 잠입할 수 있었다.
보초가 후문 앞을 떠날 때 문단속을 한답시고 문을 걸어잠구긴 했지만 자물쇠를 영 부실한 걸로 달았는지 창대로 몇 번 내리찍으니까 자동문마냥 스르륵 열렸으니까.
그렇게 생겨난 틈으로 몸을 밀어넣어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매캐한 연기가 천장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대체 화염병을 어디다가 던져넣었길래 벌써부터 이 정도인 걸까.
창문이 열려있기는 했는데 설마 거기다가 던져넣은 건 아니겠지?
왠지 앨리스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아서 침대에서 쉬고 있다가 불의 세례를 받았을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혀를 차고 있으니..
"침입자ㄷ..!"
지나가던 놈한테 들켜버렸다.
확실히 잠입이나 은밀함따위하곤 안 어울리는 몸이긴 한데 설마 이렇게 바로 들킬 줄이야.
나름 숨는다고 숨어봤는데 역시 소용없었던 걸까.
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가볍게 손을 내질렀다.
퍼억-!
목에 시원하게 바람구멍이 생긴 놈이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제 목을 부여잡았다.
끄르르르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놈의 입가에 피거품이 일었다.
그렇게 목을 부여잡은 채 뒈져버린 놈을 붙잡아 내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으니..
"침입자다!"
그걸 또 들켜버렸다.
빼애애액하고 소리지르는 모습이 꼴보기 싫어서..
"응, 아니야."
앨리스한테 빌려온 단검을 로켓배송으로다가 선물해주었다.
생전 선물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놈이었던 걸까.
많이 기뻐하더라.
얼마나 기쁜 지 기뻐서 몸을 못 가누는데..
쿵-!
결국 중심을 잃은 놈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놈이 뒤로 넘어가며 난 요란하기 그지없는 사운드에 반응한 걸까.
방 안 곳곳에 숨어있던 놈들이 풀숲 안으로 들어온 트레이너를 발견한 주머니 괴물들마냥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운 채 날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다 불끄러 나간 거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