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60)화 (60/366)



〈 6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러고 보니까 둘이 머리색이 똑같네? 신기하다 그지?"

"우, 우리 엄마랑 아빠도 나랑 똑같아요!"


"정말?"


"네!"


오케이 확인.


아무튼 부모 둘다 빨간머리라는 걸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으니 분홍빛 입술을 귀엽게 오물대던 에반젤린이  마디를 더 내뱉었다.


"그런데 고모는 막 까매요!"


살짝 TMI였지만.


앨리스한테서 자기와 닮은 점을 찾아낸 덕분일까.


에반젤린의 경계심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혹시 목은  마르니?"

그 와중에 입술이 살짝 말라있는게 눈에 띄어서 물어봤더니 에반젤린이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 말라요.."

"그래?"


그렇다면 그것부터 해결해줘야겠네.

근처에 뭐 적당한  없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좌판에서 과일주스를 팔고 있더라.

해서 앨리스한테 에반젤린을 부탁한 뒤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앨리스 몫까지  세 잔을 구매해서 둘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자."


"어,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으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연신  손에 들린 주스를 힐끔거리는 것이 목이 꽤나 마른 눈치였다.

"오빠하고 언니가 사주는 건 괜찮아. 그죠? 선배?"

아무래도 고새 앨리스를 상대로 동경을 품게 된  같길래 적당히 맞장구를 좀 쳐달라는 뜻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하니 '크흠..'하고 작게 헛기침을 한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에반젤린이 주스를 건네받게 만들기에는.

진짜 목이 많이 마르긴 했나 보다.

꼴깍꼴깍하는 소리를 내며 소녀가 거의  얼굴만한 컵을 정신없이 비워냈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제 어쩌죠?"

에반젤린한테는 들리지 않도록 살짝 목소리를 죽인  물었다.

"음, 일단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분명 부모 쪽이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을테니까."

"그래도 본부에 가서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그쪽으로 향했을 수도 있는데.."

뭣보다 지금 이 자리가 에반젤린이  부모와 헤어진 자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사자한테 물어보면 확실해지겠지만..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았다.

이제 막 달래둔 참이니까.

다시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지.


그래서 제안했다.

내가 얼른 다녀오겠다고.


"네가? 그러지 말고 내가 가는 편이.."


그에 앨리스가 난색을 표했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치안대 본부로 향하니..

운 좋게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방문했다는 부부와 조우할 수 있었다.

'맞네. 빨간머리.'

에반젤린의 부모로 추정되는 이들은 꽤나 부유해보였다.

딱봐도 있어보인달까.

'이거 어쩌면..'

이번 건이 여태껏 취객하고 드잡이질을 하며 쌓은 것보다 대박일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둘을 향해 다가가 찾고 있는 아이의 이름이 에반젤린이 맞냐고 물으니 아빠 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득달같이 내게 매달려왔다.

"저, 저희 아이는.."


간절한  이해하는데 매달리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기껏 잡아놓은 각이 흐트러지니까.

"저희가 찾아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안심하라는 뜻으로 싱긋 웃으며 내게 매달린 에반젤린의 아버지를 최대한 정중하게 떼어낸 뒤 에반젤린의 증언대로 빨간머리를 곱게 땋아올린 여성 쪽으로 눈을 돌렸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몸에 배어있는 귀족적인 태도와 아까 그녀를 상대하던 치안대 직원이 보여주던 살인사건이라도 제보받은 것 같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던 응대태도가 맞물리면서 가정은 확신이 되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박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에반젤린을 데려오기 위해 아까 둘과 헤어졌던 곳으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그지?"


의외의 인물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얘가 왜 여기서..

연무장 밖으로 안 나오는  아니었어?

뜨악한 눈으로 눈앞으로 튀어나온 클레어를 보고 있자니 그런 내 표정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씩하고 미소를 지은 그녀가 바로 옆에 있던 골목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리 오라는  날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데..

'비밀 들키고 싶지 않으면 알지? 따라와.'

 그리 말하는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골목 안으로 진입했다.


저번처럼 최대한 빨리 끝내버리자고 다짐하면서.


클레어는 그런 나를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지금부터  일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는 일이라고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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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시점****


기본적으로 그녀는 아이라는 존재가 거북했다.


특히나 고아는 더욱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리를 떠도는 꼬맹이들의 모습을 보면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났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옆에 있는 에반젤린이라는 이름의 꼬맹이는 아이치고는 드물게도 거북하지 않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일곱 살치고는 살짝 조숙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언니, 언니."

이번에는 또 뭐가 궁금한 것일까.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는 손길에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앙증맞은 이마를 훤히 드러낸 채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붉은 머리 소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으로 박혀들어왔다.

열에 아홉은 귀엽다고 말할 외모를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그녀는 새삼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수많은 빨간 머리들을 봐왔지만 저렇게 자신의 것하고 꼭 닮은 색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에..'

자신이 자식을 낳는다면 머리색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는 황급하게 부정했다.


말도 안 된다면서.


"앗, 언니 얼굴 빨개졌다."

이래서 애들은..

대체 그게 뭐가 그리도 웃긴 건지 히히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끙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 이안 오빠다!"

아까 셋이 있을 때는 부끄러워서 이름도 못 부르더니 대체 언제 오빠가 된 것일까.


아무튼 이안이 돌아온 것을 알리는 그 목소리에 앨리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녀의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그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여자의 뒤를 따라서 어두침침한 골목 사이로 들어가는 이안의 모습을.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어째서?'


 년이 여기 있는 걸까.

'설마..'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불길한 상상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언니?"

"으응?"

"이안 오빠도  잃었나봐요. 우리 여기 있는데..."

어른들의 사정을   없는 꼬맹이는 그저 천진할 따름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마주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려고 해서 그녀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맘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둘을 따라가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 년을 응징하든 이안을 보호하든 말이다.

그럼에도 차마 그러지 못했던 것은..


일말의 망설임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했다가 이안에게까지 피해가 간다면?

그러면 어떻게  건데?


그러한 물음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며 둘이 들어간 골목을 향해 뻗어나가려는 발을 자꾸만 멈춰세웠다.

"..그러게."

"찾으러 가야되는 거 아니에요? 길 잃으면 무서운데.."

"..이안은 어른이니까. 금방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쿵쾅쿵쾅하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며 초조함이 미친 듯이 몰려오는 느낌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어두컴컴한 골목 안의 풍경이 제멋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걸 털어내기 위해 그녀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제멋대로 머릿속을 차지하고 앉은 것들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어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제멋대로 펼쳐지는 상상을 털어낼 때마다 그건 더욱  끔찍한 광경이 되어 돌아왔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안이 다시 골목 밖으로 나올 때까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5분?


10분?

15분?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안에서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것일까.

이안은 뭔가를 체념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도 아니었다.

비릿한 미소를 얼굴 위에 머금고 있는 그 년이 이안의 옆에 보란듯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 증오스럽기 짝이없는 얼굴 위로 떠올라있는 묘하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목도한 순간..

뿌드득-


앨리스는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들어  년의 미간에 꽂아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안쪽에서부터 미친듯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사람 많은 곳으로 나왔으면 좀 자제할법도 한데  년은 한술  떴다.


흡사 뱀처럼 느물느물 움직인 손이 이안의 허리를 휘감았다.


 상태로 살짝 까치발을 든 클레어가 슬며시 입을 벌려 이안의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었다.

당황한 듯 살짝 몸부림을 치면서도 차마 격렬하게 떨쳐내진 못하고 말없이 이빨자국이 남았을 게 분명한 목덜미를 손으로 가리는 이안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히잉.. 손.. 아파요.."

손을 마주잡고 있는 꼬맹이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일까.

귓가로 파고들어온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황급히 손에 힘부터 풀었다.


"괘, 괜찮니..?"

"이이잉.."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와락 일그러져 있는 얼굴.


그걸 목도한 순간 가뜩이나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해버린 탓에 뻣뻣하게 굳어있던 머리가 한층 더 뻣뻣해졌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온 것은..


"선배..!"

다름아닌 이안이었다.

바로 이쪽으로 달려온 것일까.

귓속으로 파고들어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순간 앨리스의 눈으로 들어온 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클레어 교수님?"


그 년이 보란듯이 이안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로."

"아, 그냐앙.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잘 하고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겸 따라왔지이. 그나저나 오랜만이다? 이제 도망  치기로 했나봐?"

히죽히죽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건네는 그 얼굴이 그렇게 증오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손끝이 덜덜 떨릴 정도로 살심이 솟구치는  느끼고 있던  순간.


"..고모?"

생각치도 못한 단어가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분위기를 갈라놓았다.


그 순간 처음으로 보았다.


"에반젤..?"


증오스럽기 짝이 없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드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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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대체  일이람.

골목 안에서 거침없이  탐하던 여자와 동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클레어와 그녀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있었다.


-그런데 고모는 막 까매요!

TMI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소녀의 한 마디가 방금 듣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아니..'


고모라는 게 클레어였어?

이게 뭔..

진짜 생각치도 못했던 사태라서 머리가 띵했다.

그래서 살짝 멍때리고 있으니 제 일곱살짜리 조카의 주변에 마땅히 보여야할 이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는  깨달은 클레어가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을 지우지 못한채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어, 언니.. 아니 엄마는?"


아마 그것말고도 묻고 싶은  많을테지만 당장 급한  역시 그거겠지.

그런  고모의 물음에 소녀는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모르겠썽.. 히잉.."


아니, 이 인간은 왜 힘들게 진정시켜놓은 애를 울리고 난리람.

처음봤을 때처럼 금방이라도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릴  같은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돌아간 에반젤린을 보며 잽싸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친절히 고지해주었다.


소녀의 부모가 치안대에서 그녀가 당도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는 걸.

효과는 확실했다.


"그, 그래? 다행이네.."

 말에 답지 않게 당황하고 있던 클레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소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빵긋 웃었으니까.

덕분에 안심이 되었던 것일까.

에반젤린이 이 자리에서 가장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상대의 품에 포옥하고 안겼다.

그런 소녀를 받아드는 클레어의 모습이 퍽 자연스러워서..

'의외네.'


솔직히 좀 그랬다.

아무리 프로 인간도살자라 해도  가족은 아낀다는 걸까.

의외로 그녀는 조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으니까.

에반젤린을 꼬옥 끌어안은  정말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면서 제 조카의 등을 쓸어내리는 클레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만 이거..'

기회 아닌가?

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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