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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57)화 (57/366)



〈 5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렇게 욕구불만 상태에 빠져버린 클레어가 폭주비슷한 상태 직전까지 간다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넘기면서 내 생활은 월말 평가 전으로 회귀하는 듯 했다.

그래, 바로 어제까지는 말이다.

'시발..?'


지금 내가  들은 거지?

대충 그런 느낌으로 눈앞에 있는 교수를 바라보니 교수 눈에는 그게 좀 다르게 보이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혹시라도 더 궁금한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렴."

아니,  궁금하고 자시고를 떠나서 애초에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야되는 건지 그 근본적인 이유 자체가 궁금한데요.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걸 그대로 내뱉긴 좀 뭣해서 완곡하게 돌려서 묻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파견근무라는  대체.."


"말 그대로란다. 원래라면 2년차부터 나가는 것이긴 한데.."


그러니까요.


그 2년차부터 나간다는 걸 왜 신입생인 제가 나가야 하는 건데요.


아니, 그건 그렇다 치자.

짐작가는 바가 아예 없는  아니니까. 분명 이번에 내린 신탁하고 관련있겠지.

문제는 그런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새끼랑 한 조라는 거지.'

나는 내 옆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주인공 놈을 바라보았다.


그래, 다른  아니라 이 놈의 문제였다.

파견근무?

솔직히 나가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 놈과 함께해야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찮아질 가능성이 99.9%정도 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인공이지 않나?


차라리 여행갔는데 옆방에 머무는 꼬마 이름이 코난인게 더 안전할 거다.

그쪽은 그래봐야 살인사건이지만 이쪽은 무슨 일이 터질지 감히 예측조차   없으니까.


주인공이란 그런 존재다.


일단 놈이 살아숨쉬는 것만으로도 사건이든 사고든  중에 하나는 무조건 터진다고 보면 된다.

어쩌면 둘다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 된다면?


옆에 있던 나는 당연히 거기에 휘말리겠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여기서  엿같은 건 그렇다고 좆까라고 하고 배를 쨀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거부해도 괜찮다. 파견근무는 본인의 의지가 최우선이니까. 단.."

다음 월말평가에서 그만큼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만.


참고하라는 듯 덧붙여진 발언에 속으로 입매를 비틀었다.

저러는데 어떻게 안 가냐고.

 가면 다음 월말평가에서 점수가 대폭 깎일 게 뻔한데 말이다.


'하..'

이게 뭔..

월말평가만 끝나면 당분간은 좀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로 정해져있었다.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레이시아하고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놨는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해서 속으로 이를 악물면서 교수를 향해 그리 물었다.

난 이미 파견나갈 준비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파견지가 수도라는 점이지.'


덕분에 멀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새내기에다가 남자라고 학원 측에서 편의를 봐준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디아나하고 앨리스는 어디로 걸렸으려나.

분명 둘도 파견지를 배정받았을텐데 말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수가 하는 말을 열심히 머릿속으로 주워담았다.


그리고는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디아나부터 찾아갔다.


그렇게 확인해본 결과..


안타깝게도 디아나하고는 파견지가 겹치지 않았다.

그녀가 배정받은 곳은 동부였으니까.

"파견지가 수도라고?"

"네."


디아나도 파견지가 겹치지 않은 걸 살짝 아쉬워하는 눈치긴 했지만 그보다는 안도하는 기색이 더 컸다.


아무래도 내가 위험한 곳으로 가게 될까봐 내심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저렇게까지 안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순찰 업무가 주가 될 거다. 단번에 큰 공적을 쌓기는 어렵겠지만 성실하게만 임한다면.."


그 뒤로 이어진 디아나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이미 수도에서 파견 근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  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해주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척을 하다가..


"그런데 이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를 약올리듯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가 말이지?"

"아니, 이러다가 제가 또 1등하는  아닌가 싶어서요."


어찌보면 도발이나 다름없는 내 발언에도 디아나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지."

얼굴 가득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디아나를 보며 생각했다.

'머리끈은 출발하는  전해주면 딱이겠네.'

라고.

안 그래도 언제 전해줄지가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만큼 그걸 전해주기에 완벽한 타이밍도 또 없을 터.

"출발하기 전날에 꼭 말씀해주셔야 돼요?"

해서 몇 번이고 그리 당부하니 디아나는 의아하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동부로 2주동안 파견을 떠나게된 디아나하고 다르게 앨리스의 파견지는 놀랍게도 수도였다.

근래 부쩍 성실해지긴 했지만 땡땡이를  기간이 워낙 길다보니 실전에 바로 투입하기에는 좀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아무튼 같은 곳으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되었다는  알게 되고 나서 그녀와 그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그, 혹시 말이야.."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던 앨리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얘는 또 뭘 물어보려고 답지않게 눈치를 보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니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오물대던 그녀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놓았다.


"이번에 받은 지명권 말이야. 혹시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지 궁금해서.."


'아.'

뭔가 했더니 그거였나?


어쩐지 답지 않게 눈치를 보더라니만..

확실히 쉽사리 꺼내들만한 화제는 아니니까.

하물며 지금처럼 상대가 이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언제고 받게될 질문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지명권이요? 이미 썼는데요?"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변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그런 내 대답이 그리도 의외였던 것일까.

앨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누, 누구한테.."


그 상태로 더듬더듬 그리 묻는데.. 흔들림이 너무 심해서 머릿속으로 오만 상상을 다 하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그걸 디아나한테 썼다고 지레짐작한 모양.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살짝 배신감마저 느끼는 듯한 표정까지 짓고 있는 그녀를 상대로 친히 그녀의 착각을 수정해주었다.

"네? 그야 당연히.."


"..."

"저한테 썼죠."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들킬 가능성?


내가 볼 때는 없었다.

애초에  지명권이 어떤 식으로 소모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나와 레이시아 뿐이니까.

난 입을 열 생각이 없으니 결국  사실이 밝혀지려면 레이시아 쪽에서 입을 여는 수밖에 없는데..


글쎄 그녀가 그럴까?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렇기에 진실을 알아낼 방법이 없는 이들은 내가 다른 이들의 지명을 거절하기 위해 그걸 소모했다고 알아서 지레짐작하고 넘어갈 것이다.

디아나가 그랬고, 다른 지명권 보유자들이 그랬듯 말이다.


'남자도 얼마든지 여자를 지목할 수 있는 건데 말이지..'


그럴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다니,  세계의 남자놈들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들인지 참..


속으로 툴툴대며 앨리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자니 꽤나 초조해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이번에도 먹혔다는 것을.

'이렇게 되면..'


앞으로 지명권 관련해서 비슷한 의심을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것 같았다.

레이시아하고 둘이 있는 모습을 현장에서 적발당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는 건?


더 거리낌없이 그걸 사용할 수 있게 될거라는 뜻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은 견고해질테니 말이다.

그래서였다.

다행이라는 듯 웃고 있는 앨리스를 상대로 마주 웃었던 건.

'아니, 그나저나 잠깐만...'

앨리스까지 수도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거면 나하고 주인공 놈하고 앨리스까지 이렇게  조가 되려나?

설마 수도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것이 우리  뿐이겠냐만은 왠지 그렇게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마냥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소리지.'

그래서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혹시라도 셋이서  조가 된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 주인공 놈과 앨리스를 떨어뜨려놓을까하고.

그런 식으로 내 나름대로 파견근무를 준비하고 있자니..

디아나가 동부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디아나는 내가 당부했던 것을 착실하게 지켰다.

 덕분이었다.


내가 디아나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서 그녀를 배웅하러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절차를 중시하는 기사부이니만큼 출발하기 전에 연병장같은 곳에 모여서 간단한 행사같은 걸 한 뒤에 출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런  건너뛰고 바로 역으로 소집을 때리더라.


그래서 나도 아침 일찍 역까지 나가야했다.


덕분에 상당히 오랜만에 디아나와 처음으로 만났던 골목에도 들릴 수 있었다.


그랬었지하는 느낌 외에 딱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그렇게 디아나와 처음으로 마주쳤었던 골목을 지나쳐 역 내부로 진입하니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하고는 다르게 역사 내부는 굉장히 한적했다.


덕분에 별로 헤매지 않고 디아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침 그녀도 비슷한 타이밍에 날 발견한 것 같길래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손하고 고개만 내밀어서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생도들 눈에 띄면 귀찮아질 게 뻔했기에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로 기다리고 있으니 뚜벅뚜벅하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소리에 속으로 타이밍을 헤아리다가..


"선배."

아까 디아나를 호출할 때처럼 슬쩍 기둥 옆으로 몸을 내밀었다.


설마 내가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걸까.

나와 불과  한 걸음 정도만을 남겨둔 채 딱 마주치게된 디아나가 움찔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아깝네..'

한 걸음만 더 내딛었다면 분명 닿았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멈춰서버린 그녀의 손을 잡고 내가 숨어있는 기둥 뒤로 끌어들였다.

"앗, 자, 잠.."

그래도 공적인 행사로 떠나는 것이라서 그런 걸까.


디아나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제복을 풀 세트로 착용하고 있었다.

 모습이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니..

"읏.."

디아나가 작게 숨을 삼키며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런 그녀를   부끄러움 속으로 몰아넣는데에는 딱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음, 멋있네요."

내가 다 흡족하다는 것처럼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디아나의 두 볼 위로 홍조가 어렸다.

"그, 여, 여긴 어쩐 일로.."


그 낯간지러운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걸까.


디아나가 황급히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음, 글쎄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보고 싶어서?"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해보았다.

그에 디아나의 눈이 확 커진 순간, 잽싸게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그때 디아나의 얼굴은 뭐랄까..

음..

여러가지를 합쳐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감히 묘사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디아나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다가 기숙사에서부터 들고온 것들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한  확인해보시겠어요?"


디아나는 그런 내 제안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부스럭부스럭-


디아나의 손이 상자 속을 드나드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등장한 것은 그녀가 특히 잘 먹던 샌드위치를 곱게 포장해서 넣어놓은 도시락과 저번에 레이시아와 외출했을 때 구매했던 머리끈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종이봉투였다.


역시 작은 것보다는 큰쪽에 먼저 시선이 가는 걸까.

샌드위치를 넣어둔 도시락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이건 웬거냐고 눈으로 물어보길래..


"제가 저번에 타고 오면서 보니까 기차에서 파는 메뉴들이 영 부실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시는 길에 드시라고.."

멋쩍은 듯 말끝을 흐리면서 볼을 긁적이니 '아.'하고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디아나의 입에 살짝 벌어졌다.


그것만봐도 알 수 있었다.

디아나가 상당히 감동받았다는 것을.

"다른 선배들한테는 주지 말고 선배만 드셔야 돼요?"

내가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직접 싸준 것이니만큼 꽁꽁 숨겨놓고 혼자 몰래 먹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러 그렇게 덧붙였다.

주변을 의식하는  살짝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효과는 확실했다.


"아, 알겠다."

디아나의 얼굴 위에 맺혀있던 홍조가 귀까지 번져나가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디아나가 샌드위치를 다시 상자 속으로 밀어넣는 걸 보고 있으니..


"그럼,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년들한테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샌드위치가  상자를 품안으로 꽉 끌어안은 디아나가 반대쪽 손을 들어올렸다.

"아, 그건.. 음.."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머리끈이 담겨있는 종이봉투를 보며 속으로 고민했다.


말해줄까 말까하고.

그러다가..

"비밀이에요. 나중에 한 번 확인해보세요."

살짝 웃으며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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