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49)화 (49/366)



〈 4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드디어  날이 왔다.

무슨 날이냐고?

그야 내가 이 학원에서 1위 자리에 올라서는 날이지.

그나저나 요 며칠 아침 구보  뛰었다고 고새 몸이 일찍 일어나는데 적응해버린 것일까.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음에도 눈이 저절로 떠지더라.

침대에서 더 뭉개고자 하면 그러지 못할 것도 없긴 했지만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는?

'완벽하네.'

너무 완벽해서 이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 이 컨디션이면 클레어 년하고 붙어도 압도적으로 발라버릴 수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정도였다.


역시 어제 하루 대련을 스킵한 보람이 있구만.


이 정도면  꼬꼬마들이랑 대련쯤이야 눈감고도 뚝딱이지.


'시간도 좀 남는데..'

잠깐 한 바퀴 돌고 올까?

평소라면 아침부터 뭔 뜀박질이냐며 질색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몸에 힘이 흘러넘치는 것이 조금 빼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았으니까.

겸사겸사 몸도 미리  풀어두고 말이다.

해서 가벼운 복장으로 환복하고 나서 그대로 기숙사를 빠져나가려 하니..


부스럭-

주인공 놈도 일찍 일어난 것인지 놈의 방 앞을 지나치는데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흠..'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주인공 놈의 상태도 좀 체크해봐?

그 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지 않았던가?


아마 높은 확률로 놈과 1회전을 치루게  텐데 그 전에 상태가 어떤지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막말로 이놈이 간밤 사이에 대오각성해서 실력이 확 늘었을 수도 있으니까.

"진? 일어났어?"


그래서 확인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문을 두들겼더니..


문틈 사이로 들려오던 부스럭대는 소리가 뚝 멎었다.

그리고는 아무 반응 없더라.

'이거 지금 설마..'


자는 척 하는 건가?


방금 전까지 그렇게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놓고?

이 새끼 보게?

그렇다면 더더욱 대답하게 만들어줘야지.

"진?"

그래서 다시   두들겼다.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랬는데..


끼이이익-

"..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사이로 주인공 놈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렇게 확인하게된 놈의 얼굴은 뭐랄까..


"어디 아파?"


그렇게 묻지 않고서는 배기기 힘들 정도로 식은땀에 푹 젖어있었다.


그냥 땀에만 젖어있었다면 안에서 준비운동같은 거라도 하고 있었는갑다 생각하고 넘겼을텐데 얼굴까지 창백한 게 누가봐도 환자더라.

"그냥 좀.. 컨디션이  좋을 뿐이야."

"그래?"

그냥 안 좋기만  게 아닌 것 같은데.


대화 중간중간에 표정이 찌푸려지는 걸 보면 통증도 상당한 것 같은데 말이다.


어디서 뭐 흠씬 얻어맞기라도  걸까.

'아, 진짜..'


이러면 곤란한데..


주인공의 컨디션 난조는 내게도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1회전에서 압도적으로 놈을 찍어누르면서 같은 남자라도 급이 다르다는 걸 증명할 생각이었던만큼 더더욱 그랬다.


'쯧..'


발판으로 삼을라고 했더니만 쓸데없이 아프기나 하고 지랄이야.

속으로 작게 혀를 차던 것도 잠시, 걱정하는  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약은?"

"..괜찮아."

내가  괜찮은데.

약을 빨리 먹어야 빨리 나을 것이고 그래야 내게 깔아주더라도 제대로 깔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컨디션이 어쨌느니 하는 뒷말이 도는 건 딱 사양이었다.


그래서였다.


"괜찮기는.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

"나 지금  좀 풀겸 간단하게 한 바퀴 돌고 오려는데 약 필요하면 받아다줄까?"

놈을 상대로 그런 제안을 했던 건.


이것마저 사양하면 포기하고 그대로 가려던  갈 생각이었는데..

"..부탁 좀 해도 될까?"

의외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만큼 한계였던 걸까.

아무튼 그래서 놈한테 증상에 대해 물으려 했더니 잠깐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말없이 종이 하나를 건네주더라.

그래서 거기 적힌대로 찾아가 봤더니 튀어나온 건 나름대로 학원 지리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로서도 처음보는 건물이었다.


학원 북쪽에 조성되어 있는 자그마한 숲.


건물은 그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있었다.

아니, 숨겨져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있었다.

숨길 정도로 중요한 장소라면 저렇게 허름한 상태로 내버려둘  없으니까.

'흐음..'


그렇게 정체불명의 오두막을 마주하게된 순간 직감했다.

그동안 주인공 놈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향했던 곳이 바로 이곳일 거라고.


'딱히 특별해보이진 않는데..'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지.


일단 주인공 놈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는 시점에서 이곳에 뭔가 있다는 건 증명된 거나 다름없으니까.


 놈은 여기서 대체 뭘 한 걸까.


호기심이 마구마구 솟구치는 걸 느끼며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니까.. 들어가기 전에 꼭 노크를 하라고 했었지?


그렇다는  안에 누가 있다는 소린데..

뭐, 은거기인이라도 안에 숨어있나?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상대는 주인공이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놈을 재단해선 곤란했다.


그럼 결국 피를 보는  내쪽이 될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문을 두들겼다.


쿵쿵-

문의 재질이 재질인지라 소리까지 조심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문을 두들기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늬예에에."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그래서 잠기운이 덕지덕지 붙어서 쭉쭉 늘어지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어딘가 살짝 앳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꼭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나 낼법한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고 있자니..


끼이익-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그 너머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렇게 확인하게된 문 너머에는..

'응?'

 분홍머리 꼬맹이 하나가  몸보다 큰 흔들의자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목소리를 듣고 애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 애가 튀어나올 줄이야.


아니, 애초에 이제 한 14~15살쯤 되어보이는데 저 나이에 학원에 들어올 수가 있나?


학원에 들어올 수 있는  짤없이 성인만 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나갑니드아아.."

그 와중에 더 혼란스러운 건 꾸벅꾸벅 졸며 내뱉어지는 저 목소리가, 그리고 저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 꼭 어딘가에서 보기라도  것처럼 말이다.

'어디서 봤더라..'

그 기시감의 근원을 찾기 위해 미간을 좁힌 채 내게 주입된 이안의 기억을 뒤지고 있자니..


"으우.. 진이야..?"

그런 내 기척을 느낀 건지 의자의 흔들림에 맞춰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소녀가 눈을 비비며 고양이 세수를 해댔다.

그 순간 소녀의 입에서 주인공 놈의 이름이 튀어나온 걸로 봐서 일단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인공 놈과 눈앞의 소녀의 관계를 유추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히로인 후보 쪽이 가능성이 있긴 했는데 그리 보자니 소녀의 나이가 너무 어렸으니까.


둘다 성인이라면 다섯살쯤이야 그리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저건 암만봐도 애새끼잖아.

'이 놈 설마..'

취향이 그쪽인 건..?


어쩐지 디아나한테 영 시큰둥한 눈치더라니..

취향이 이쪽이었구나 이 로리콘 쉑..!


나름대로 진지하게 주인공 놈의 정관을 강제로 묶어버려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기운이 가시질 않는지 한참동안이나 고양이 세수를 반복하던 소녀가 마침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응..? 누구..?"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씀입니다만 선생님.

귀하께서는 대체 누구시길래 저한테 이런 기시감을 선사하시는 거죠.

 정체에 대해 묻는  말에 뭐라 반응하면 좋을 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잠시 침묵하고 있자니..


"으으음.."

소녀도 내게서 같은 느낌을 받기라도 했는지 안 그래도 잠기운으로 반쯤 잠겨있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그리고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어? 너, 혹시 이안이니?"

소녀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며 누가봐도 날 반가워하고 있다는 걸  수 있는 목소리가 그 조막만한 입술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맞지? 이안!"


아니, 제가 이안이 맞긴 한데요..

"어머,  진짜 많이 컸다. 순간 못 알아볼 뻔 했잖아."


그러는 선생님이야말로 많이 크셔야할  같습니다만..

그래도 주인공과 괜히 연관이 있다는 게 아님을 알려주는 소녀의 외모는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아마 이대로 몇 년만 지난다면 디아나나 앨리스 뺨치는 외모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날 두근거리게 했던 다른 히로인 후보들과는 다르게 소녀에게서는 두근거림이 개미 코딱지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저  어디에서 매력을 느끼겠냐고.


주인공 놈은 저런 몸이 취향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아니었다.

나는 디아나나 앨리스처럼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하게 나온 몸매를 선호하니까.


레이시아 급 정도 되면 쌍수 들고 환영이었고.

아니, 그래서 대체 누군데?

소녀는 나, 아니 이안을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지만 난 그런 소녀의 반응이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암만 기억을 뒤져봐도 눈앞에 있는 소녀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가 없었으니까.

더 당혹스러운 건..

"옛날에는 누나~ 누나~ 하면서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코찔찔이였는데 말이지.. 대체 언제 이렇게 컸담.."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이안이 코찔찔이였던 시절에 정자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년이 뭐?


아님 설마 저런 외모로 사실 30대라는 개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니겠지?

이게 소설도 아니고 말이다.


아니지.


소설도 그 따위로 쓰면 욕먹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발..'

진짜였어?

아니, 현실이 소설보다  소설같다더니만..

혼자 신나서 떠들어대는 소녀를 보며 '그게 뭔 쌉소리세요.'라는 표정을 하고 있자니 그런 내 표정을 확인한 소녀가 '아.'하고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잠깐만 밖에 나가있어줄 수 있냐고 그러길래 순순히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더니..

"이제 좀 기억나?"

아까 보았던 소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웬 농염한 인상의 미녀 하나가 살짝 사이즈가 작아 꽉 끼는 옷에 백의를 걸친 채 소녀가 앉아있었던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더라.


다리를 살짝 꼬아서 척봐도 탱탱해보이는 허벅지를 치마 아래로 드러낸 채 말이다.

 상태로 싱긋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소녀를  때마다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와 눈앞에 있는 여성의 정체를.


"카트린느 누나..?"


"응, 맞아. 이제 좀 기익이 나나 보네?"

카트린느 리즈벳.

분명 주입된 기억 속에 있는 여자였다.


그것도 꽤 인상적인 모습으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안과 주인공 놈이 사는 동네에서 골목대장같은 역할을 하던 여자랄까.

애초에 워낙 코딱지만한 동네라서 애들도 몇 명 없는데다가 나이차도 상당해서 주인공 놈과 함께 친동생처럼 귀여움을 받았던 것이 이안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방금  꼬맹이는 그럼 누군데?


의아함을 느낀 즉시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그녀를 향해 던지니 그런 내 시선을 받은 카트린느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 약을 잘못 먹어서 말이야."

뭐요?


"이번에는 분명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내 몸에 직접 테스트를 해봤는데.."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하는 걸까.


짜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바로 조금 전의 농염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카트린느가 어깨를 살짝 움츠린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실험에 미친 매드사이언티스트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부작용이 있더라고. 그래서.."


중화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아까 봤던  꼬맹이 모습이 되어버린단다.

아니  그런..


'아.'

기억난다.

원래 이런 여자였다는 게.

그 증거로 주입된 기억 중에는 독에 대한 면역을 기르겠답시고 산에서 뱀을 잡아와서 제 팔을 물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던 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살짝 맛이 간듯한 모습과는 별개로 능력만큼은 뛰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마을 사람들의 병을 돌보다가 수도 학원에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떠났을 정도니 말 다했지 뭐.


'아니..'


이런 중대한 사실을  이제서야 떠올린 걸까.


어렸을 적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여자라니.


이거 누가봐도 소꿉친구 겸 히로인 포지션이잖아.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기억해내지 못한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기억 주입이라는 건 만능이 아니니까.

아마 오늘 주인공 놈한테 약을 부탁받지 않았다면 영영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마주칠 수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살짝 횡재한 기분이기도 했다.

 뿐인줄 알았던 히로인 후보가 넷이  상황이니까.

고를 수 있는 선택지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야? 진이 알려준거야?"


"아."

그러고보니 그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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