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44)화 (44/366)



〈 4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자, 그럼..

우선 카드부터 분배해보실까?


'싸늘하구만..'


그래도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같지는 않았다.

눈보다 빠른 손은 없지만 그동안 먹은 짬밥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나, 둘, 셋, 넷.. 우선 내 몫으로  장.

그리고 밑에서 다섯 장을 꺼내서 디아나한테도  장.

그리고 다시 위에서 앨리스한테  장.


다시 내 앞에 여덟 장.

디아나의 앞에도 여덟 장.

그리고 남은 일곱장은 앨리스한테.

분배를 끝냈으니 이제 패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디아나와 앨리스가 수북하게 쌓인 패를 향해 손을 뻗는 걸 확인하고는 나도 내 앞에 생겨난 카드의 산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확인들어갑니다잉.


따라라 따라란 따라라 쿵짝짝 쿵짝짝-

과연 어떤 카드들이 들어왔..

[광대 : ㅎㅇ]


아니, 니가  나오는데?


첫 장을 오픈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은 미소를 보내오는 광대 카드의 모습에 순간 표정이 흔들릴 뻔 했지만 재빠르게 다잡았다.

그리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겹치는 카드를 테이블 중앙에 버렸다.


그러는 사이 두둑했던 패는 점차 홀쭉해졌고..

테이블 중앙에는 카드가 수북하게 쌓였다.

그렇게 덱압축을 끝낸 순간 나는 미리 정한대로 앨리스를 향해  패를 내밀었다.

"자, 뽑으시죠."

처음부터 광대가 들어와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만  들고 있으면 되는  아니겠는가?


광대를 뽑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떠느니 차라리 든-든하게 내가 들고 있다가 마지막에 떠넘기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앨리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 패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녀가 그런  시선을 확인하고는 히죽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자.. 뭘 뽑는 게 좋으려나아~"


저저 말꼬리 늘리는 꼬라지 좀 보소?

날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앨리스의 검지손가락이 공작의 꼬리깃마냥 쫙 펼쳐져있던 카드패를 손가락으로 쭉 훑었다.


개중에는 일부러 맨 끝에다가 꽂아놓은 광대 카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 아니면... 이거?"

아하, 이렇게 하나씩 찝어보면서  반응을 확인해보시겠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고인물이거든.


이 정도로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그녀가 뭘 건드리던 꿋꿋하게 미소를 유지한채 역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읏.."

그런 내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나 보다.

작게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앨리스의 붉은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날 향해 뻗어있던 그녀의 검지손가락 끝이 움찔하고 떨렸다.

"빨리 좀 하지?"

그 모습이 꼴보기 싫었던 걸까.

보다 못한 디아나가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재촉 좀 하지마세요. 이런 건 원래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고요."

글쎄.


그런 것치고는 뽑아간 카드가 하필이면 '그' 카드인데.

여덟 장이 넘는 카드 중에 하필이면 맨끝에 있던 광대를 뽑아가버린 앨리스를 보며 내심 쓴웃음을 짓고 있자니 디아나와 투닥거리다가 한 발 늦게 제가  뽑았는지를 확인한 앨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지만 딱 그게 전부였다.

"에이.."


겹치는 카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듯 작게 혀를 찬 앨리스가 그것을 제  사이로 끼워넣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패를 한 번 섞어준 뒤..

"자, 뽑으세요."

디아나를 향해 내밀었다.

쫘악하고 펼쳐진 채 내밀어진 앨리스의 패를 디아나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저런다고 뭐가 보이긴 하는 걸까.


앨리스를 재촉하던 것 치고는 굉장히 신중한 태도였다.

"빨리  하시죠? 손목 아프거든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앨리스가 아니었다.


받은 만큼 갚아주겠다는 것처럼 앨리스가 디아나가 자길 재촉할 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내가 봐도 얄밉게 느껴지는 이죽대는 표정은 덤이었다.


'저저..'


저러다가 꿀밤에 머리가 깨져봐야 정신 차리지.


디아나도 그런 앨리스가 얄밉긴 했나 보다.

뿌득하고 살짝 이를  디아나가 이내 앨리스의 카드 중 하나를 픽했다.


그리하여 그것이 앨리스한테서 디아나의 손으로 넘어간 순간.

볼  있었다.

둘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소리로 표현해보자면 '쿠궁!'쯤 되지 않을까?


뽑은 카드를 확인하고는 충격에 빠져버린 디아나와는 다르게 앨리스의 얼굴에는 아까보다 더 얄미운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저 표정 어쩔 거냐고.

누가봐도 광대 뽑은 표정이잖아.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디아나의 표정에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끄응하고 침음성을 삼킨 디아나가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제 패를 다시 섞었다.

그리고는  향해 조심스레 내미는데..

덕분에 알  있었다.


디아나가 이런 쪽으로는 아예 젬병이라는 걸.


그러니까 연기나 제 표정을 숨기는 것 말이다.

 뽑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디아나의 패중에서 제일 가운데 있는 놈쪽으로 손가락을 가져가봤다.

그랬더니..


화아아악-

긴장으로 굳어있던 디아나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쫘악 펴졌다.


살짝 올라간채 미친듯이 움찔거리는 입꼬리는 덤이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도라고?


설마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살짝 옆으로 옮겨봤다.

그러자 활짝 펴졌던 디아나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급격하게 쭈그러들었다.

그 모습을 목도한 순간 나는 미래를 봤다.

디아나가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낑낑대는 광경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꽤 선명한 모습으로.


'이거..'

말해줘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말해준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으니까.

저걸 고치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고쳐질 때까지 맞는 것.


그 왜 맞으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마 디아나도 이마가 몇 번 터져나가다보면 자연스레 표정을 감추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더 맞기 싫어서라도 말이다.

'아님 말고.'

솔직히 나만 아니면 되는 거지 뭐.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늘 든든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던 디아나가 저러는게  귀엽기도 하고.

디아나를 데리고 노는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아니, 솔직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손가락 한 번 까딱할 때마다 표정이 확확 바뀌는데 말이다.

그렇게 손패가 줄어들수록 디아나의 표정은 차츰 절박해졌다.

그리도 지기 싫은 걸까.

'아, 하긴..'

지면 나뿐만 아니라 앨리스한테도 딱밤을 맞아야 되니까.

여태껏 쌓은 업보가 적지 않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렇지만..


'그렇다고 뽑아줄 수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니겠는가?

승부의 세계는 냉정해야 되는 법이다.


어느덧 디아나의 손에 남은 카드는 세 장 뿐이었고, 내 손에 남은 건 두 장 뿐이었다.

앨리스쪽도 얼추 비슷했고.

그렇다는 건?

'겜 끝났다는 소리지.'

디아나의 약점을 눈치챈  나뿐만이 아니었다.


앨리스또한 디아나가 표정관리에 영 소질이 없다는 걸 눈치챈 상황.

그렇기에 이건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디아나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뜻이기도 했고.


"자아.."

이번에도 그녀의 표정변화를 이용해 무사히 함정 카드를 걸러낸 나는 겹치는 카드를 버린 뒤 유일하게 남은 것을 앨리스를 향해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걸 앨리스가 뽑아가면서..


싸움은 디아나와 앨리스의 이파전이 되었다.


말이 일대일이지 디아나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흐음.. 뭘 뽑을까.."

앨리스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얼굴이 활짝 펴졌다가 시무룩해지길 반복하는 디아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좀 안쓰러울 정도였다.

앨리스는 그저 즐거운  했지만.

'저러다가..'


얼굴에 쥐나는  아니겠지?


그렇게 디아나가 앨리스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

디아나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손에 남아있는  장의 카드에  박히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앨리스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꼴찌시네요?"

제게 닥쳐온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버린 디아나를 향해 앨리스가 보란듯이 이죽거렸다.


그러더니..

"벌칙이 딱밤이었죠? 아마?"


제 입쪽으로 손을 가져가 가운데 손가락에 대고 후하고 가볍게 입김을 불어넣는 게 아닌가?

'널 죽이겠다.'

그리 말하는 듯한 분위기로 가득  있는 앨리스의 모습에 그것을 확인한 디아나의 시선이 내쪽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이 얼굴로 날아와 꽂혔지만..

"벌칙은 벌칙이니까요."

가볍게 무시했다.


나까지 그리 나오니 결국 디아나는 우리에게 이마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대시죠?"

첫 타자는 다름아닌 앨리스였다.

상쾌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내뱉어진 앨리스의 말에 디아나가 조심스레 제 앞머리를 걷어올렸다.

그리하여 드러난 디아나의 반듯한 이마를 향해..

앨리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렇게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앨리스의 손을 디아나가 부릅 뜬 눈으로 응시했다.


'아니..'


딱밤  대 때리는건데  이렇게 비장한 건데?

적당히 때릴 법도 한데 손을 앞뒤로 움직여가며 신중하게 거리를 가늠하는 앨리스도 그렇고 눈을 부릅  채 그걸 똑바로 응시하는 디아나도 그렇고 비장함이 흘러넘쳤다.

그렇게 쓸데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둘 사이로 흐르고 있던 순간.

빠악-!


강렬한 타격음이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던 강의실 내부를 휩쓸었다.


아니, 무슨 딱밤때리는데 저런 소리가..


저거 시발 마빡에 금간  아니겠지?


내가 상상한 건 '따악-!'이었는데 이건 뭐..

가끔 소리만 요란한 경우도 있는데 앨리스 거는 롸끈하기 그지없었던 소리만큼이나 고통도 롸끈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고 말겠다는 것처럼 눈을 부릅 뜬채 앨리스를 노려보고 있던 디아나가 양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으.."

반응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니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디아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앨리스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그쪽을 확인해보니..


"저런, 많이 아프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개미 코딱지만큼도 미안해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더라.

오히려 살짝 개운해보이는 느낌?

아무래도 방금  한 방에 그동안 쌓인 앙금들을 모조리 녹여냈던 모양.

'어이구..'

그러니까 왜 갈궈서는.


어찌보면 지금 디아나가 느끼고 있는 고통은 그녀 스스로가 쌓은 업보라 할 수 있었지만 저렇게 고통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안쓰럽긴 했다.


"괜찮으세요? 선배님?"


"으, 응.. 괘, 괜찮다."


전혀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으이구, 그 놈의 자존심이 대체 뭔지.


아니면 설마 나한테 안 맞으려고 시간을 끄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이대로 내버려두면 언제까지고 저러고 있을 기세라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닿은 순간 디아나가 몸을 흠칫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제 몸을 일으켜세우는 내 손길에 굳이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확인하게된 디아나의 얼굴은 뭐랄까..

'귀엽네.'

평소에는 기본적으로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이 살짝 울상이 되어있는 게 갭이 상당했다.

그래서 더 귀엽게 느껴졌고.


"괜찮아요? 손좀 떼봐요.  번 학인해보게."


다른 이도 아니고 앨리스한테 당한 수치스러운 상처를 내게 보이긴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디아나가 이마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봐야 내가 쓰읍하고 혀차는 소리를 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내려갔지만.

아무튼 그렇게 확인하게된 디아나의 이마는..

"어이구.."

솔직히 그런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진짜 제대로 맞았는지 맞은 부분이 그 잠깐 사이에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으니까.

"이건 좀.."


그걸 보며 슬쩍 말끝을 흐리니 디아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그치그치!'를 남발하며 맞장구를 쳐왔다.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린 앨리스는 말없이 시선을 피했고 말이다.


"다행히  붓지는 않을 것 같은데.."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을 얼굴 한가득 베어문 채 부어오른 부분을 자세히 확인하려는 척 얼굴을 바짝 들이밀면서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으니 살짝 느낌이 이상했는지 디아나가 귀여운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

"옆에 때려야겠다."


아니 왜 그런 얼굴로 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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