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43)화 (43/366)



〈 4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 그냥 돌아가기 뭐해서 산책을 좀..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여기 불이 켜져있는 게 보여서.."

"아.."

그래서 확인해보려고 들어오셨다?

암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나름 그럴 듯한 변명이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디아나의 표정이나 이 상황을 유도한 게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들렸을 거라는 소리다.

'거참..'


일부러 대놓고 낚시질을 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3일도 못버티고 미끼를 덥썩  줄이야.

분명 기사부가 있는 서관에서부터 나와 앨리스의 뒤를 졸졸 쫓아왔을  분명한 디아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년은  어떻게 자리에 눌러앉힐까하고.

다행히 그리 어려울  같지는 않았다.


내 말에 답을 하는 와중에도 디아나의 눈동자는 연신 앨리스가 있는 쪽을 스캔하고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해 가능한 반응이었다.

디아나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을테니까.

내가 어쩌다가 앨리스와 이런 걸 하게 되었는지가 말이다.

'어떻게 한다..'

알려줄까?

아니면 조금 더 속을 태워봐?

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살짝 웃긴 것은 앨리스가 보인 반응이었다.

처음 디아나가 들이닥쳤을 때만 하더라도 임자있는 남자랑 바람피우다가 현장에서 딱 걸린 여자같은 표정을 하고 있더니..


'귀엽네.'


지금은 또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디아나를 살짝 노려보는 게..

꼭 제 영역을 침범당한 고양이 같더라.

그렇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밝혔다.


내가 어쩌다가 앨리스와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지명권을 위해 필기 쪽을 공부하고 있었다고?"


"..네."


여기서 의미심장함을 한 스푼 첨가해주고, 살짝 말끝까지 흐려가며 디아나의 얼굴을 힐끔거리니 간신히 당황 속에서 빠져나왔던 디아나가 몸을 흠칫하며 슬며시 얼굴을 붉혔다.

입꼬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아무래도 내가 그걸 자기한테 쓰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착각해버린 모양.


'글쎄..'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쁘진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지명권은 이미 예약이 꽉  있는 상태였다.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게 진실이었지만 굳이 디아나의 오해를 바로 잡으려들지 않았다.

알아서 착각을 해준다면야 내게 나쁠  없었으니까.

'뭣보다..'


진실이 드러날 일도 없었고.

지명권이 누구한테 '사용'되었는지에 관해선 학원 측에서 책임지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그랬으니까.

하물며 내가 지명키로 마음먹은 이는 레이시아 아닌가?

그녀의 신분을 고려하면 비밀이 새어나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최악의 경우가 있다면 레이시아가 디아나에게 그에 관해 털어놓는 것인데..


그것도 솔직히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레이시아라는 여자를 제대로 본  맞다면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디아나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할테니까.

고로 내가 지금부터 해야할 건 음..


눈앞에 있는 여자까지 여기에 눌러앉혀서 세 명이서 알콩달콩하고 스릴 넘치게 시간을 보내다가 월말평가에서 1위를 낼름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디아나에게도 알려주었다.

이것에 대해 먼저 제안한 쪽은 다름아닌 앨리스라고.

도서관에 공부할  참고할  있을만한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런 제안을 받았고 생각해보니 혼자 하는 것보다는 지루함도 덜할 것 같아서 승낙했다고 말했더니..

"뭐?"

돌아온  기가 차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코웃음이었다.

 마치 '네까짓게 뭘 한다고?'라고 기막혀하는 느낌?

얼핏 오연하게까지 느껴지는 디아나의 눈빛에 앨리스의 기세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디아나는 부장 자리까지 맡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도인 반면에 앨리스는 음..

'건강하면 됐지 뭐.'

게다가 당초 제안했던 것하고는 다르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게 배우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양심에 많이 찔리긴 했을 터.

그래도 가만히  손 놓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래도 저 수석입학자였거든요?"

앨리스가 살짝 발끈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래서 최근 성적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내뱉어진 디아나의 한 마디에 본전도  찾고 그대로 깨깽하긴 했지만.

"..선배는 그것도 못 해보셨잖아요."

"그래서 최근 성적이 어떻게 되냐니까?"


서로를 향해 '그님티?'대신 '그님성?'을 시전하고 있는 둘의 공방을 구경하는 건 의외로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원래 제일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하고 싸움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싸우고 있는 이들이 디아나와 앨리스처럼 미인인데다가 둘이 싸우는 이유가 다름아닌 나 때문이라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재미는 물론 눈요기도 제공해주고, 심지어는 흡족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둘의 투닥거림을 난감해하는 표정을 얼굴 한 가득 베어문  구경하고 있으니..


"이안."


"..네?"

디아나가 제안해왔다.

자기가 도와줄테니 이런 도움  되는 년은 버리고 자기 옆으로 오라고.

 말에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 이전처럼 발끈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래도..'


아예 양심이 없지는 않나 보네.

어쩌면 어차피 할 말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동정심을 끌어내 보겠다는 수작일 수도 있었고.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디아나와 열심히 투닥거리던 앨리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한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꼴을 보니 살짝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으니까.

'뭐..'


다른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디아나의 말만 놓고 보자면 그게 최선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부'만 바라볼 때의 이야기고..

'그럼 재미가 없잖아.'

이왕이면 성적과 재미를 다 잡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야 공부 효율도 올라갈테니 말이다.

그래서였다.

초롱초롱한 눈을 한채 내가 고개를 끄덕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디아나를 상대로 난감하다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인 것은 말이다.


"으음.."


아예 볼까지 보란듯이 긁적여주니 디아나의 표정 위로 '어어..?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내 반응이 제가 예상했던 것하고는 달라서 당황한 걸까.

뭔가 불안한 예감같은 거라도 느낀 건지 자신만만한 태도를 벗어던진 디아나가 허둥지둥하며 날 설득하기 위해 입을 털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앨리스는?

제 패배를 직감하고  죽어가던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나있었다.


그런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탄성을 터뜨렸다.


그에 둘의 시선이 날 향해 몰린 순간.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솔로몬에 빙의한 것만 같은 느낌을 만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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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아나는 무사히 우리 스터디그룹에 안착하게 되었다.

다 내가 솔로몬 귀싸대기 후려갈기는 공정함으로 둘 사이를 중재한 덕분이었다.

물론, 애를 반으로 가르라는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인 솔가 놈과는 다르게 나는 그딴 소리는 지껄이지 않았다.


대신 이왕 이렇게  거 좋은  좋은 거라고 다같이 노력해보자라는 말을 내세웠을 뿐.


처음 둘은 그런 내 중재안을 마뜩치 않아했다.

그렇지만 내 눈치를 본다고 차마 그걸 겉으로 티내진 못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둘을 살살 밀어붙였더니..

"그게 아니라니까."

"..."


"하, 정말.. 수석입학은 대체 어떻게 했니?"


결국 이렇게 되더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앨리스를 확실하게 찍어눌러 버리겠다고 작심이라도  것일까.

디아나는 기회만 생기면 앨리스를 쥐잡듯이 잡아댔다.

앨리스가 뭐 하나 실수를  때마다 '어휴, 수석입학자님 슈둔..'이라느니 '아니 이런 머리로 어떻게 수석입학을 하셨죠? 혹쉬..?'라는 느낌으로 사람을 살살살살 긁어대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내게는 나름 신선한 모습이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누군가를 살살 긁어대는 디아나의 모습은 말이다.


아무튼 그런 디아나의 갈굼에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몇 번은 그래도 반항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게  실패로 끝나버리면서 일찌감치 깨달아버린 탓이었다.

저항해봐야 아무 소용없을 뿐더러 한 소리 들으면 끝날 것을  심하게 당할 수도 있다는 걸.

뭐,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갈굼과는 별개로 앨리스는 하루가 멀다하고 쭉쭉 성장했다.

'역시..'


괜히 히로인 후보 중 한 명이 아니라니까.


오죽하면 최근 들어 디아나가 앨리스를 은근히 경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러다가 앨리스가 제 위에 올라서기라도 하는 날에는 말 그대로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실기 성적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그리 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긴 하지만.

'그나저나..'

슬슬 좀 쉴까?

랩이라도 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독설을 쏟아내는 디아나 때문에 앨리스의 멘탈도 한계인 것 같으니 말이다.

모랄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한 번 쉬어가주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짝짝-!


박수를 쳐서 아까부터 쉬지않고 이어지고 있는 디아나의 독설을 중간에 잘라냈다.


"저희 조금만 쉬었다가 할까요?  오래한 것 같은데."


"음."

 정도면 충분히 갈군 것 같은데 아직도 할 말이 남았던 걸까.

살짝 아쉽다는 듯 디아나가 입맛을 다셨지만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시달리고 있던 앨리스야 뭐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휴식시간이 확정된 순간 둘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것처럼 내게로 날아와꽂혔다.

그 시선을 느끼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아무리 내가 그동안 휴식시간을 핑계로 이런저런 걸 꺼내놓긴 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기대감이 담긴 시선이라니.


'부담스럽구만.'

부담스럽지만 둘이 내게 기대를 하고 있다면?


마땅히 부응해줘야겠지.


그것이 '남자'니까.


어제는 기숙사에 딸린 간이주방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챙겨왔었지만 오늘 챙겨온 건 먹는 게 아니었다.


'좋아해줄지 모르겠네..'


그래도 둘다 승부욕이 엄청난 편이니 재밌게 즐겨주지 않을까?


간단하기도 하고.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걸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웃으며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카드?"


어제처럼 간식거리가 등장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둘의 얼굴 위로 약간의 실망감이 떠올랐다.


"선배들이랑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포인트 주고 사왔는데.."


그런 둘을 향해 그리 말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지만.

"잘 됐네. 마침 지루하던 참이었으니까."

"머리 식히기엔 좋을 것 같군."


글쎄, 과연 그럴  있을까?

아닐 것 같은데..


혹시라도 상대에게 뒤쳐질세랴 허둥지둥  말에 맞장구를 쳐대는 둘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삼켰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연기를 펼치는 둘의 모습이 말이다.

"그래서 뭘 할 생각인데?"

  생각이냐고?

그야 도둑잡기지.

카드를 이용한 게임은 이 세계에도 존재했지만, 내가 아는 것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아무튼 둘에게 신선한 느낌을 선물해줄 수 있으면서도 간단한 규칙을 가진 놀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도둑잡기였다.


"자, 우선 이걸 좀 봐주시겠어요?"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카드 뭉치의 맨 윗장을 집어들어 그대로 뒤집었다.


그러자 활짝 웃고 있는 광대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카드의 전면이 우릴 반겨주었다.

"규칙은 간단해요. 마지막까지 이 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지는 겁니다."


일단 핵심부터 짚어준  자질구레한 규칙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다행히 둘은 어렵지 않게 내 설명을 이해했다.

애초에 이해하고 자시고  것도 없이 굉장히 간단한 규칙이었지만.


"두 분 다 이해하셨나요?"

설명을 끝내고 확인차 물으니 둘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첫 판은 연습삼아 가볍게 시작해볼까요?"

착착착착-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카드뭉치를 집어들어 섞기 시작했다.

그렇게 골고루 섞은 카드를 분배해주기 전에...

"음.. 그냥하면 좀 심심할테니까 간단한 벌칙같은 거라도 걸고 할까요?"


은근 슬쩍 제안해봤다.


"벌칙?"

"뭐 할건데?"

그런 내 말에 둘의 귀가 일제히 쫑긋거렸다.


그러더니..

또 무슨 엄한 상상이라도  것인지 둘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의 얼굴 위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뭔 상상을 했길래..'

하여간에 진짜  한 마디도 함부로  수가 없다니까.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내가 생각한 벌칙을 입에 담았다.

"간단하게 딱밤 어때요?"

그랬더니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실망하더라.

'아이고..'

요년들아..


대체 뭘 기대한 거니..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딱밤으로 둘의 머릿속에 깃든 마구니를 쫓아버리고 말겠다고.

그러니까..


'시발, 딱 대.'


아주 진짜 깡소리가 나오게 때려버릴라니까.


그렇게 자존심 넘치는 두 사람과 함께하는 이 세계 최초의 도둑잡기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알지 못했다.

 생각없이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벌린 일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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