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7)화 (37/366)



〈 3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이안 데일! 혹시 식사 전이라면 나와..!"

해도 이제  뜨기 시작했는데 뭔 놈의 식사 타령이세요.


뭐,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곧 디아나와 함께하는 즐겁지만 땀내나는 아침 구보 시간인데 배에 뭘 쑤셔넣는다?


구보 6.9km 뛰고 '메시'하기  좋았다.

"이안 데일, 너만 원한다면 우리 가문의 비전 창술을 전수해주도록 하지.  대신.."

응, 관심 없으니까 너도 저리 꺼지시구요.

분명 상쾌해야할 아침인데 그렇지가 못했다.


이 년들은 왜 기숙사까지 찾아와서 이 지랄들인 걸까.


그것도  새벽부터 말이다.


사감들이 다른 학생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숙사 방을 빠져나오자마자 이 꼴을 봤을 거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방까지 밀고 들어오고도 남았을지도 모르지.


잠궈놓은 자물쇠까지 따면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겠냐만은 요즘 학원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차마 부정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만큼 근래 학원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이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시발.'

 세계판 신도림역이 바로 여기 있었네.


그것도 출근 시간대의 신도림역이 말이다.

왜 다들 여기와서 길막을  하고 계시는 걸까.


덕분에 따로 몸을 풀지 않아도  것 같았다.

딱봐도 '나 이안 못 보내 나 이안  놓쳐.'를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게 떨어뜨린다고 한들 그대로 다시 철썩 달라붙어올게 눈에 뻔히 보였으니까.

1대 100 컨셉의 팬감사제물을 찍던 우에하라 아이좌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나는 날 한 번 따먹어볼 생각으로 가득찬 여자들을 피해 그들 사이로 요리조리 움직였다.

움직였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한 명을 피해서 움직이면 두 명이 튀어나와 길을 쳐막고, 그걸 또 피하면 이번에는  명이 튀어나와 '히히 못가!'를 외칠 정도로.

'어쩐지 시발..'


따로 들릴 곳이 있어서 먼저 가라고 하더라니만 어그로를 나한테 몰아주기 위함이었구나 이 교활한 주인공 놈!

아침 구보에 늦지 않으려면 진작에 모습을 드러내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인 걸보면 아무래도 내가 시선을 잡아먹는 사이 다른 루트로 튄 게 분명했다.


어디 창문같은 곳으로 몰래 빠져나가기라도 했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근육 빵빵한 이 몸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지만 주인공 놈의 몸은 호리호리한 편이니까.


심지어 나름 유연하기까지 한 것 같으니 창문  통과해서 토끼는 것정도야 일도 아닐 터.


아무튼  옆에서 어그로를 분담해줄 서브 탱커 놈이 마이웨이를 타버린 탓에 평소라면 둘이서 나눠받았을 관심이 오롯이 내게 몰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신경쓰이게 만드는 건..

쿡쿡-

 신경이 분산되어 있는 틈을 타서 내 팔뚝을 쿡쿡 찔러대는 누군가의 손가락이었다.

아니, 시발 고기 육질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애꿏은 팔뚝은 왜 찔러댄단 말인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봤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범인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쯧.'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면서도 내게 이런저런 '조건'들을 제시하기 바쁜 여자들 사이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으니..

"이안!"


날 구원해줄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디아나의 등장한  마디로 기적과도 같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름을 입에 담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 발칙하기 그지없는 여자가 누군가 확인하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던 이들이 모세를 맞이한 홍해 앞바다마냥 좌우로 갈라졌으니까.


"선배님.."

하늘에 맹세컨대 여자들 사이를 가르고 날 향해 다가오는 디아나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심정을 얼굴 위로 고스란히 담아내봤다.

"아침부터 참.."

그런  표정을 확인한 디아나의 얼굴 위로 쓴웃음이 걸렸다.


내 심정을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구보 준비는 어쩌시고.."


의아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평소라면 운동장 안으로 하나둘 씩 기어들어오는 이들을 맞이하며 아침 구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야할 그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그래서 물어봤더니..

"..곤란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디아나가 살짝 대답을 회피했다.

아무래도 교관 역할은 잠시 다른 이한테 부탁하고 여길 찾아온 모양.

말이 부탁이지 대답을 피한 걸 보면 떠넘기기였을 확률이 99.9%지만.


그나저나 내가 곤란해할 것 같아서 찾아왔다라.

디아나가 대답이랍시고 내놓은 것을 입에 담고 곱씹다가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뭐, 그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닐테니까.

디아나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묘하게 꾸민 티가 나는 얼굴.


평소의 그녀를 생각하면 감히 상상도 할  없는 광경이었다.


꾸미면 예쁠  같다는 언질을 몇 번이나 줘도 죽어도 안 꾸미던게 바로 디아나니까.

어차피 땀 흘리는 게 일상인데 꾸며봐야 의미 없다나?

늘 그렇게 주장하던 그녀였는데..

'오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입술에 뭔가를 바르고 나오셨다.

볼도 평소보다 생기가 넘치는 게 살짝 터치가 들어간 것 같았고.

하지 않던 짓까지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초조함을 느꼈다는 거다.


'하긴, 그럴만 하긴 해.'

그만큼 요즘 학원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에 대해 한탄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아무튼 저들로서는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디아나가 '디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니 호시탐탐 날 노리던 승냥이 떼들이 일제히 쭈구리가 되었다.

그들 사이를 디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했다.


날 옆에 세운 채로 말이다.

아쉬운 눈빛을 보내면서도 차마 아까 전처럼 붙잡을 생각은 하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자기 일까지 내팽개쳐가며 날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디아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곤란했는데 덕분에 살았다는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워보이는 건 덤이었다.


"아, 아니다."

그런 내 감사인사에 디아나는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얼굴을 살짝 빨갛게 물들여가며 손을 이리저리 젓는데..

'쯧쯧..'

그 안쓰럽기 그지없는 모습에 혀를 차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다른 여자들 같았다면 여기서 당연하게 감사인사를 받는 건 물론 너와 내 관계를 생각하면 이 정도야 당연한 일이라며 은근슬쩍 어필까지 했을텐데 말이다.


하긴, 이런 게 또 디아나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거죠."


그러니까 사양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빙긋 웃으며  잘라 말하니 디아나가 '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러는지야 뻔했기에 굳이 그걸 지적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방금 전 디아나의 행동은 어찌보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자기 선에서 잘라내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기도 했으니까.


분명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난 딱히 상관없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학원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음, 확실히 혼란스러운 상황이긴 하지."

혼란스럽다?

지금 학원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간단한 말이었다.


남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고.

그렇기에 떠올려  수밖에 없었다.

디아나의 말마따나 학원이 '혼란스럽다'라는 말에 어울리는 분위기였을 때의 상황을.

처음 시작은 소문이었다.

기사부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 시작했을 무렵 한 가지 소문이 학원 내로 은밀하게 퍼져나갔다.

소문이야 하루가 멀다하고 퍼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큼은 달랐다.


누구랑 누구가 연애를 한다느니 누가 누구하고 떡을 쳤냐느니 하는 가볍기 그지없는 내용이 아니라  세계가 앓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으니까.

'뭐라고 그랬더라?'

앞으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영웅과의 동침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세계를 구원해줄 열쇠가 될 거라는 내용이었나?


그래 분명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나도 딱히 관심이 없었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누구의 입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없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학원 내로 은밀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말 그대로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그 소문을 전해듣고는 누가 또 어디서 헛소리를 주워듣고 왔나 보구나하고 넘겼을 뿐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니까.

분명 그랬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긴 침묵에서 깨어난 교국의 선포였다.


지금 내가 있는 수도 학원이 자리잡고 있는 수도보다도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아마도  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나라보다 자그마할 나라의 선포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럴 수밖에.

이 세계의 인간들은 대부분 여신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여신교도이고, 그런 메이저 종교의 최정상층에 군림하고 있는 곳에서 무려 세상의 '멸망'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온 것이었으니까.

다만 혼란이 패닉으로까지 번지지 않은 것은 교단의 대빵인 성녀를 통해 내려왔다던 신탁의 내용이 '느그들 이제 곧 멸망할 예정이니까 심판 딱 대고 있어라.'가 아니라 '사실 니들 이대로면 멸망각이었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생김.'이었기 때문이었고.


그랬다.


학원 내에 은밀하게 돌던 소문의 출처는 무려 교국이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발표 전까지 교국 내에서도 최상층에 속한 인간들만 알고 있었을 내용이 어떻게 이 멀리 떨어진 학원 내에서 소문이 되어 돌았는지가 살짝 의문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그러한 내용의 신탁이 내려온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마  초인, 아니 주인공 님께서  세상에 강림한 것 아닌가?


그에 따른 혼란과 변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주인공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 리 없는 교국의 인간들은 처음 신탁을 들었을 때 이게 뭔 쌉소리인가 했겠지만.

아마 그 성녀라는 여자도 그 신탁을 듣자마자 그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게 누군데!!! 알려주고가!!'

아무튼 학원이  모양 요 꼬라지가 된  다~ 성녀에게 내려왔다는 그 신탁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선포만 없었다면, 하다못해 그 영웅이라는 놈이 대체 누구인지 딱 꼬집어서 점지해주기만 했어도 여자들이 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명예롭고 영광된 이름에 취해 예언 속의 남자일지도 모르는 이를 찾아다니며 '마! 함만 대도!'를 부르짖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문제는..

"누구일까요? 그 영웅이라는 사람은."


"글쎄.."


잘 모르겠다는  말끝을 흐린 디아나였지만, 그런 그녀의 시선은 연신 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다.


이 학원에 속한 이들 한정으로 많은 이들이 내가 그 예언 속에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 세상을 통틀어 유일하게 예언 속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처음 그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 그건 또 뭔 신박한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이유를 들어보니까 나름 그럴  하더라고.'


또 그렇더라.

그런 일이 벌어진 데에는 역시 클레어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컸고.

영웅이란 기본적으로 강한 자한테 붙는 칭호다.


그런데 나는 정예 중의 정예만 뽑아서 구성했다는 기사부 내에서도 유일하게 디아나만이 통과했던 클레어의 커트라인을 통과해 그녀의 제자가 되지 않았던가?


'뭐, 말이 통과지..'


사실은 붙잡힌 거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겠지.

아무튼 클레어의 인정을 받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데다가 영웅이라는 호칭이 썩 잘 어울리는 그럴 듯한 외모까지.


그것들이 내가 최근 들어 기숙사를 나설 때마다 팬감사제 물을 찍는 우에하라 아이좌 마냥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이유였다.


'솔직히..'


처음 며칠 동안은 나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동안은 주인공이라는 놈한테만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주목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특히나 이성들의 관심같은 건 더 그랬다.


늘 아리따운 여성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주인공이란 놈들의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곤 했었는데..

비로소 그 관심의 대상이라는 것이 되어보니  수 있었다.


여자들한테 관심을 받는다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를.


'짜릿해,  새로워. 관심받는 게 최고야.'


그래서 쏟아지는 관심을 만끽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랬다는 소리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는 소리고.


'시발..'

그랬다.


 간과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여자들이 얼마나 권력지향적이며 남자라는 생물한테 미쳐있는지를.

남자랑 기분 좋은 일만해도 세계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니.

그건 안 그래도 어떻게 하면 남자를 따먹을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있던 여성들이 그나마 쥐고 있던 이성의 끈이라는 걸 놓아버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가서 사람이 밥을 먹던 말던 수업을 듣던 말던 휴식을 취하던 말던  목적들부터 꺼내드는데..

'어휴.'

솔직히 하나같이 원패턴이라서 이제 솔직히 지긋지긋했다.

문제는 지금이 초기라는 거다.

초기라서 그나마 이 정도지 나중에 가면..

'이거 진짜 자다가 덮쳐지는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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