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1)화 (31/366)



〈 3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호오..'


이년 보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격한 반응이었다.


일순간이지만 표정관리에 실패할 정도라면 그만큼 빡이 쳤다는 소리니까.

그러면 어디 이것도 견딜 수 있을지 한 번 확인해보실까?

'그나저나..'

엄청 부끄러워 하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일인가 싶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디아나가 내보이는 부끄러움이 격할수록 그걸 지켜만 봐야하는 레이시아의 못마땅함도 더 커지지 않겠는가?


"자요."

그래서 해봤다.

미리 생각해놨던 행동을 말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내 입 안을 드나들던 포크로 내 몫의 해시브라운을 찍어서 디아나를 향해 내미니 그녀의 얼굴이 과연 이이상 붉어질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빨갛게 변했다.


꿈틀-


레이시아의 얼굴이 다시 한 번 파르르 경련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 가운데..

"그, 그럼.."

디아나는 내 성의를 사양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됐던 걸까.

디아나가 손가락을 움직여 옆머리를 걷어올렸다.


그리고는 제 앞으로 들이밀어진  포크를 향해 조심스레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는 포크와 얼굴.

그와 함께 디아나의 연분홍빛 입술이 슬며시 벌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냥 단순한 먹여주기일 뿐인데 왜 자꾸만 손에 땀이 차는 걸까.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낸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심스레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지니 볼 수 있었다.


자꾸만 무너지려고 하는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디아나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레이시아의 모습을 말이다.

뺨이 분홍빛으로 상기되어 있는 것이 그녀만 따로 떼놓고 보면 몰래 야한 거라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절세라는 단어로도 모자란 레이시아가 그러고 있으니..


'미쳤네..'


입술이 바짝 마르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포크는 무사히 디아나의 입 안에 안착했다.


 순간 볼 수 있었다.

분홍빛 입술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선홍빛 살덩이가 포크의 아래쪽을 티나지 않게 '핥는' 모습을 말이다.


'허허허..'


그 스승에  제자라고 해야할까.

기회가 생기니 놓치질 않는구만.

간접키스를 만끽하고 있는 디아나의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져서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으니..

땡그랑-!

요란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나와 디아나 사이로 흐르던 묘하디 묘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그 뒤로 이어진 건..


"어머."


영혼이라고는 개미 코딱지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누군가의 탄성이었다.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잔잔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나와 디아나를 향해 짧게 사과를 건넨 레이시아가 떨어뜨린 것을 집어들기 위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와 함께 순간적으로 제복에 감싸여있던 그녀의 압도적인 가슴이 테이블과 그녀의 몸 사이에 끼어 찌부러지는 게..


'미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덕분에  힘들었다.


시선이 자꾸만 디아나가 아닌 그쪽을 향하려 했으니까.


그렇지만 나도 할 말은 있었다.


저건 성욕이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아마 여자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이 세계의 남자들이라도 저건 어쩔  없지 않을까.

그만큼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흉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지 피곤했나봐. 안 하던 실수를 해버렸네."


그렇게 잠시 테이블 밑으로 모습을 감췄던 레이시아는 미소와 함께 복귀했다.

 모습을 보며 훔쳐보던 건 안 들켰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나저나  덥네.."


레이시아가 앞섬을 잡고 살짝 흔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얼굴 위로 걸린 묘한 미소를 확인한 순간 깨달았다.

'아니네. 들켰네.'


훔쳐보던 걸 들켰다는 걸.

동시에 눈치챘다.

그녀가 작전을 바꿨다는 것도.

아무래도 평범한 방식으로는  디아나에게서 떨어뜨릴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유혹을 한다고?'

그렇지만 이해가 안 가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본인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상대를 유혹해서 떨어뜨린다는, 남들이라면 섣불리 시도할  없는 작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아니겠는가?


"후우.. 식당 시설을 좀 손보라고 해야하나?"


"많이 더우십니까?"


"응, 좀 그러네. 너는? 괜찮아?"

"저야  더운 곳에서 훈련하니까요."

그나저나 확실히 위력적이긴 했다.


간단하게 앞섬을 펄럭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으니까.


자꾸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려 하는데..

옆에 앉아있는 디아나를 의식해 눈이 돌아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런 내 기색을 느낀 걸까?

레이시아는 제 작전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안 되겠다."

짧게 읊조린 한 마디.

그 뒤로 이어진 건 툭하고 뭔가가 끊어지는 것과 유사한 소리였다.

그 소리가 내게는 마치 내 이성이 끊어지며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소리와 함께 레이시아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앞섬이 살짝 벌어지며 그 아래 숨겨져있던 새하얀 살결이 빼꼼하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더 압권인 건..

'오우 쉣..'


수줍게 드러난 가슴골의 모습이었다.

그래봐야 끄트머리였을 뿐이지만 사이즈가 사이즈다보니 그것마저도 엄청 깊어보였다.


심지어 그 사이에 땀방울까지 맺혀있는데..


맘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사이로 혀를 밀어넣어 맛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랬다간 난리가 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추행이라는 단어가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게 일반적인 이 세계에서 남자가 여자를 추행할 경우 그에 따른 처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애초에 기소가 되긴 하려나?'


솔직히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세계로 떨어지고 나서  여자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남성에게 역추행을 당했을 경우 이게  떡이냐 하면서 다리를 벌려줄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지만 레이시아를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왕족이니까.

까딱 잘못하면 왕족 모독죄니 뭐니 하면서 왕족의 몸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댓가로 손모가지가 댕강 날아가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참아야 한다..


겉모습만 보고 천사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천사의 탈을 뒤집어 쓴 서큐버스였을 줄이야.


어쩐지 몸매가 범상치 않더라니만..

다 남자를 쥐어짜기 위함이었구만 이 년!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며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노력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레이시아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으니까.


'저기에 넘어가봐야..'


맞이하게될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림받겠지.


애초에 레이시아가 저렇게 날 유혹하는 이유는 내가 탐나서가 아니라 나라는 남자를 디아나의 옆에서 떨어뜨리기 위함이니까.

고로 지금 레이시아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녀 좋은 일만 하는 것이다.

 모습을 보고 실망한 디아나가 다시 내게 마음을 줄 리 만무하니까.

'참아야 하느니..'

이 놈의 식사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접시가 모두 바닥을 보여야 끝나는 걸까.

그렇다면 일단 이것부터 해치운다.


남은 양이 꽤 되긴 했지만 다행히 그것들을 처리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우 입맛 돌아.'

그 어떤 음식보다 군침도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있다보니 입맛이 미친듯이 돌았으니까.

그렇게 내 앞에 놓여진 접시를  비워내니..


"그럼 다들 식사도 끝난 것 같으니 이만 일어서는 건 어떻겠습니까? 회장님께서도 바쁘실테니."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지 디아나가 조심스레 그 말을 꺼내들었다.

 순간 나는 봤다.

레이시아가 칫하고 작게 혀를 차는 걸 말이다.


제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분한 걸까.


아까보다 입술이 조금 더 튀어나온 것 같은게 맘같아서는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자리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파장 쪽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아, 그러고보니.."

아까 덥다고 벗어서 옆의 의자에 걸쳐놓았던 제복 상의를 집어들던 레이시아가  생각났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둘이 이제 동문이라던데 맞아?"

이제 한 시간이나 됐을 법한 일을 레이시아가 알고 있어서 살짝 놀란 걸까.

디아나가 레이시아를 따라 몸을 일으키다 말고 그대로 멈칫했다.


"네, 어쩌다보니.."

"흐음, 그래?"


아니, 천사님 왜 그렇게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그러시면 가슴이 떨린다구요.

어쩜 저렇게 눈빛 하나까지 매혹적일 수가 있는지.


부정맥이라도 온 것처럼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댔지만, 그와 별개로 머릿속은 차분했다.


방금  눈빛은 누가봐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누구한테 보여주냐고?


그야 내 옆에 있는 사람이겠지.

날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는 레이시아의 모습을 보며 디아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측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당황스럽게 만들 때를 제외하면 어지간해선 동요를 드러내지 않는 디아나가 당황으로 눈을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아마 디아나 입장에서는 철렁하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온 관계기에 그녀는 레이시아라는 인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불안한 마음이  수밖에 없겠지.


'아하..'


과연 이렇게 나오시겠다?


레이시아의 의도가 무엇일지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날 유혹함과 동시에 디아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속셈 아닐까?

원래 관계라는 건 사소한 의심을 계기로도 벌어지곤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끝낼 리가 없는데..'


그렇지만 오늘은 더이상 어쩔 수 없을 거다.

더 비벼볼만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레이시아는 깔끔하게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억지로 비비려 했다면 아무리 천사님이라도 살짝 좀 그랬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잘 하네.'

그야말로 완벽한 치고빠지기였다.


그렇게 생각치도 못하게 레이시아가 끼어들긴 했지만, 디아나와의 식사는 비교적 무사하게 끝이났다.

아, 참고로 식사가 끝나고도 클레어에게 돌아가진 않았다.

이왕 튕기는  제대로 튕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았으니까.


물론, 디아나에게 따로 할 일이 있다는 말로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내 말에 디아나는 살짝 의아함을 표하긴 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순순하게 날 보내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특별부 건물이 있는 동관이 아닌 서관 쪽으로 향했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말이다.

'아..'


해도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판국에 뭔 놈의 구보를 뛰겠다는 걸까.

그 개같은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시간에는 자도록 내버려두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구보하면 역시 알통 구보인데 말이다.


여기서도 그렇게하고 뛰려나?

가슴이 기대감으로 두근두근 거리는 걸 느끼면서 내 옆에서 걷고 있는 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만 자고 일어나. 그러다가 나무에 얼굴 박겠다."


밤에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잘 자던 것 같던데..'


밤에 몰래 뭔가를 했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옆방이니까.

나도 나름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니 놈이 몰래 어딜 나가기라도 했다면 내가 눈치 깠을 거다.


'그냥 아침잠이 많은 건가?'


어쩌면 저혈압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걷기와 졸기를 동시에 하고 있는 주인공 놈의 등을 팡팡 두들겨가며 걸음을 재촉하니 마침내 도착할  있었다.

웃통을 시원하게 까고 있는 여성들로 가득 찬 운동장에 말이다.

저마다 차이가 있긴 했지만 살갗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 괜시리 마음이 흡족해졌다.


그런데 왜..


'땀냄새가 나는 것 같지..?'


버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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