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0)화 (30/366)



〈 3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내가 기사부로의 전과를 신청했을 때만 하더라도 친절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마주해주었던 행정실 직원들은 내가 또다시 디아나를 대동하고 찾아가니 의아해하면서도 경계했다.


아무래도 내가 신청을 취소하기 위해서 찾아온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모양.

그런 그들이 뒤집어진 건 나를 대신해서 나선 디아나가 지도신청과 클레어의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였다.

"에.. 그러니까 클레어 교수님께서 데일군의 개인지도를 희망하신다는.."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디아나를 상대하던 직원의 얼굴 위로 떠오른  '대체 왜? 어째서? 뭣 땜에?'라는 표정이었다.

덕분에  수 있었다.

클레어의 이름값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이라는 걸.


설마 뭐 구국의 영웅이라던지 그런 거라도 되는 걸까.

직원의 반응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럴 리 없지.'

그 정도였으면 이런 곳에서 애들이나 가르치고 있겠는가?


그럴 시간에 전선에서 열심히 사람 대가리를 수확하고 있었겠지.

'남부가 야만족 떄문에 난리도 아니라던데..'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떠올리며 난 딱히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데 필요한 절차들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됐다. 돌아가자."

디아나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얼핏 보이는 직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직감했다.


내가 클레어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사부 내에 퍼져나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걸.

저렇게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 사실이 지켜질리 있겠는가.

나와 디아나가 빠져나가기만 하면 바로 뛰쳐나가서 소리라도 지를 기센데 말이다.


'흠..'

이게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솔직히 가늠키 어려웠다.


기사부라는 집단에 대해 아는  많이 없으니까.


그나마 그동안 먹은 짬밥에 기대서 생각을 좀 해보자면..

'반반 정도?'


확실한 건 내가 원하는 구도는 아니라는 거다.


디아나나 앨리스를 통해서 본 기사부라는 집단은 짬내를 풀풀 풍기는 군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내가 군대와 관련해서 기억하고 있는 최고의 진리는 군대에서는 무조건 중간이 최고라는 것이고.

평소에는 무조건 중간만 가다가  보여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만 잘하면 돼.'


군대에서 튀어봐야 '관심병사'나 '부려먹기 좋은 놈'중에 하나로 낙인 찍힐 뿐이다.

그런데 클레어 때문에 시작부터 쓸데없이 주목을 받게 생겼으니..

'쯧.'


그나마 실력 문제 때문에 시비가 걸릴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줄어든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하나?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되지?

보통이라면 클레어가 기다리고 있을 아까 그 연무장으로 돌아가는  맞겠지만..


'돌아오라고 안 했잖아?'

약점을 잡혔다고 해서 순순히 굴복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럼 그쪽도 '맛'이 없다 느낄테니까.

마침 시간도 딱 점심시간대고 하니..

"선배."

"으응?"

마음 속으로 결정을 내린 나는 그녀답게 곧장 클레어에게로 돌아가려 하는 디아나를 불러세웠다.

"나온 김에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요?"

그리고는 그런 제안을 툭하고 던지니 디아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갈등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성과 본능이 충돌할 때 나오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해야할까.


이성은 클레어에게로 돌아가서 시킨 일을 끝마쳤다고 보고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데 본능은 얼른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라고 외치고 있나 보다.

그래서..


"아.. 혹시  그러시면은.."

그녀의 입장은 고려치 못했다는 것처럼 살짝 물러나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치열하게 고민하던 디아나가 즉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에는 말이다.

"아, 아니다! 가지. 나도 마침 네게 알려주고 싶은  있었으니까.."


알려주고 싶은 거라.

그게 뭘까.

설마 단둘이 있는 틈을 타서 앨리스의 뒷담화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내게 먼저 식사제안을 받은 게 많이 기뻤던 모양이다.

얼른 가자는 것처럼 성큼 걸음을 내딛는 와중에도 입꼬리를 쉬지않고 움찔대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위를 향해 움찔움찔거리던 디아나의 입꼬리가 무브먼트를 멈춘 건..

"어머, 디아나?"

식당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때였다.

귓속으로 파고들어온 달달한 미성.

들은 순간 알아차렸다.

그 미성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레이시아.

또다른 히로인 후보로 추정되는 그녀가 학생회 소속으로 추정되는 인원을 대동한채 모습을 드러냈다.

'허..'


진짜  번을 봐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미모였다.


원래부터 매혹적이었던 원석을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장인이 세심하게 공을 들여 벼려낸 걸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아름다운 수준을 넘어서 찬란하게까지 느껴지는 느낌이라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동시에 주인공이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가 다시  번 내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 새끼는 대체 전생에 무슨 착한 짓을 하고 다녔길래 디아나도 그렇고 앨리스도 그렇고, 심지어 레이시아 정도 되는 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운명을 타고난 걸까.

'하..'


누구는 조상 놈이 저지른 잘못 하나 때문에 이렇게 대대손손 고통받고 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번에 마주쳤을 때보다 레이시아의 경계심이 한층 덜해진 것 같았다.


저번에는 '으르렁!'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살짝 째려보는 느낌은 들긴 해도 저번처럼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정도는 아니랄까.

그녀까지 사정권에 넣기로 한 상황이니만큼  향한 경계심이 옅어진  충분히 반가운 상황이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의아한 건 의아한 거였다.

저번에는 딱히 아무 것도  했는데 경계부터 하고 보더니 이번에는 또 내가 뭘 했다고 경계심이 누그러진 것일까.


"왕.. 회장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디아나를 따라 레이시아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 디아나의 인사를 레이시아는 찬란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받아주었다.

그 미소는 뭐랄까..


'미쳤네.'

파괴력이 엄청났다.


심지어 남녀를 가리지도 않았다.


이쪽을 흘깃흘깃 훔쳐보다가 그대로 그 미소에 직격당한 이들의 얼굴이 일제히 볼을 붉혔다.

어렸을 때부터 레이시아를 봐왔을 디아나라면 그런 모습에 면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디아나도 영 맥을 못췄다.


남들처럼 얼굴을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흠칫하긴 했으니까.


그렇게 주변에 있는 이들을 향해서 가리지 않고 매혹을 시전한 레이시아가..

"점심 식사하러 가는 길이었나요?"


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눈치챘다.

'이 년 이거..'


그렇다고 하면 따라올  같은데?


나와 단둘이서 식사할 생각으로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디아나한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거라면 나야 환영이지.


 그래도 소속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 레이시아하고는 어떤 식으로 접점을 만들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판국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그녀 쪽에서 먼저 접근해온다면?

그런 걸로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뭐..'

무슨 생각으로 끼어들려고 하는 건지 대충  것 같기도 하고.

보나마나 디아나하고 내가 단둘이 식사하는 광경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 모습을 수많은 이들에게 보이게 되면 나와 디아나 사이에 모종의 썸씽이 있다는 걸 빼도 박도 못하게 될테니 말이다.

디아나를 노리고(?) 있는 레이시아로서는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터.


디아나도 그런 레이시아의 기색을 느꼈나 보다.

"..네."


아까하고는 다르게 레이시아를 향한 목소리에 경계심이 깃든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경계심은 앨리스를 상대할 때처럼 연적을 향한 경계심은 분명 아니었다.

그보다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방해하려 하는 친구를 따라오지 못하게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어하는 느낌?

물론, 그거에 당해줄 레이시아가 아니었다.


"마침 잘 됐네. 나도 아직 식사 전이었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만난 김에 나도 함께해도 괜찮겠지?


일부러 생략한 듯한 물음이 실제로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디아나의 얼굴 위로 '어?'하는 표정이 떠올랐고..

사실상 게임은 거기서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당황한 디아나는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레이시아를 막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우리 둘은 어어하는 사이에..

"그럼 들까?"

레이시아와 얼굴을 맞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왕족인만큼 따로 마련된 방같은 곳에서 식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레이시아는 생각외로 평범하게 식당을 이용했다.

의외로 권의의식같은 건 없는 타입인 걸까.

다만 자리 선정은 좀 부담스럽긴 했다.

주변에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중앙이라니.

덕분에 시선이 엄청 몰렸다.

어쩌면 이걸 노리고서 일부러 중앙에 자리를 잡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부담  느끼라고 말이지..'


이 세계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편이니 말이다.

하물며 이렇게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마 심약한 이들은 금방 멘탈이 터져서 핼쑥해진 모습으로 뛰쳐나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은 이라 할지라도 안절부절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높은 확률로 실수가 터졌겠지.

같이 앉아있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이런 자리에서의 실수는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왕족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이니만큼 자그마한 실수라 할지라도 평소보다 더 많은 포인트가 깎여나갈 테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세계의 평범한 남자들이 그럴 거라는 소리고..

난 딱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긴장이 되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전적으로 레이시아와 디아나의 미모로 인한 것이었지 레이시아의 지위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지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으니까.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이런 식으로 내가 디아나의 옆에서 떨어져나가게 만드시겠다?


디아나의 옆에 붙어있을수록 내게 손해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아무래도 레이시아의 눈에는 내가 디아나의 지위를 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평민 남자애처럼 비춰졌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더욱 찰싹 달라붙어 줘야겠지.


아주 보란듯이 말이다.

그리되면 레이시아한테 눈총을 사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돼.'


그래 그렇게라도 해야한다.


그만큼 나와 레이시아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은 크고 넓으니 말이다.

그걸 넘을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선?

그녀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내쪽을 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설령 그게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부정적인 거야..'

나중에 기회를 봐서 뒤집어버리면 그만이다.

부정적일수록 그것이 뒤집혔을  더욱 극적일테니까.


중요한 건 관심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냐고?


그야 옆에서 봤으니까.


주인공이라는 놈이 신분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자기보다 월등히 높은 신분에 있는 여자를 어떤 식으로 쟁취해내는지를 말이다.

'그럼 일단은..'

간단한 수작질부터 걷어내보실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식사예절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랬더니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길래..


"오늘 메뉴가 괜찮네요."


"그, 그런가?"


계속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도  그래서  번 살짝 긁어주기로 했다.

마침 상황도 괜찮았다.


내가 선택한 메뉴의 맛이 궁금하기라도 한 건지 디아나가 티나지 않게 내 접시를 흘깃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 드셔보실래요?"


한  그런 제안을 해봤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누군가에게 들으란 듯이 말이다.

아, 참고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앉아있냐면..

나란히 앉은 나와 디아나의 맞은 편에 레이시아가 앉아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레이시아 쪽에서 자신과 디아나가 나란히 앉고 내가 그 맞은 편에 앉는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지만 디아나 쪽에서 반대했다.

아무리 학원 안이라도 그렇지 모시는 이와 나란히 앉을 순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앉게 되었는데..

'딱 좋네.'

맞은 편에 홀로 앉아있는 누군가를 약올리기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떡밥을 던져놓고 디아나가 반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내 말을 듣고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입술을 o자 모양으로 모은 채 다물고 있던 디아나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되겠나?"


꿈틀-


그림같은 미소를 그리고 있던 레이시아의 볼이 작게 경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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