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9)화 (29/366)



〈 2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제가 저지른 만행을 들켰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나조차도 가슴이 이렇게 두근두근 뛰는데 가해자는 클레어는 어떨까?


그야 당연히 불안하겠지.

'걸리면 안 되는데..'


클레어를 생각해서 그런 걱정을 하는 아니었다.

여기서 걸려버리면 계획했던 게 다 어그러지고 마니까.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걱정을 중얼거렸지만..

그게 그다지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아, 그거?"


방금 날 상대로 그런 짓을 벌인 이와 동일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태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클레어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별건 아니고 오늘부터 얘도 내 제자 하기로 했다."

사람 죽이는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클레어는 연기 쪽에도 꽤 소질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자신의 제자가 되었음을 밝히는 클레어의 표정만 보고 있으면 나까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팔뚝 쪽에는 아직까지 그녀의 감촉이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런 짓을 당한 나조차 그럴진데 디아나는 어떻겠는가?


그녀는 제 스승의 발언에 껌뻑 속아넘어갔다.


정확히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말이 클레어의 입에서 새어나온 것이니까.

"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하는 얼굴로 반문하는 디아나를 향해 클레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 아니었어? 그럼 무를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디아나도 내심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 정도는 해봤을 것이다.

그래 딱 상상 정도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많이 낮다고 보고 있었겠지.


그도 그럴 것이 클레어는 검사고 나는 창잡이니까.

그런데도 제자로 받아들이다니.


그러한 의문이 디아나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묻어났다.


"뭐, 내가 창질하는  가르쳐주진 못하겠지만 싸우는 법이야 얼마든지 가르쳐줄  있으니까."


창질이야 지 스스로 익히든 다른 사람한테 따로 배우든 하면 되지 않겠냐는 클레어의 발언에 디아나가 살짝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납득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제게도 나쁠 게 없는 상황인만큼 이대로 넘어가겠다는 느낌?

그 와중에 방금 막 쿠사리를 먹은 상황에서 기뻐하는 티를 내선  된다고 생각한 건지 그녀는 표정관리에 상당히 힘을 쓰고 있었다.


턱에 순간적으로 경련까지 일 정도로 힘을 꽉 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네가 좀 잘 챙겨줘라. 보나마나 남자니 어쩌니 하면서 골빈 년들이 쓸데없이 텃세를 부려댈게 뻔하니까."

"아, 넵."

그거야 맡겨만 달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디아나를 보며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어느새 그녀의 안에서 나와 클레어가 왜 붙어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 했으니까.


'안타깝다 안타까워.'


앨리스만으로도 상당히 버거워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스승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

사람이 약질 못하고 올곧기만 한 디아나가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


나야 일단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다.


클레어한테 약점 비스무리한 걸 잡힌만큼 무턱대고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개인지도를 하려면 등록인가 뭔가를 해야한다고 안 그랬나? 분명  들일 때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네? 아, 네. 개인지도 신청을 해야.."


"그래?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싸리 그것도 오늘  끝내버리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를 향해 턱짓을 해대는 게 누가봐도 '뭐해? 얼른 안 다녀오고?'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신호를 알아차린 디아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오늘 안으로 일처리를 끝낸다면?

내일부터는 나와 같이 훈련을   있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렇게 클레어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디아나가 문쪽을 향해 돌아선 순간.


꽈아악-


뭔가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뭔가라고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딱 한 명 뿐이었지만.

'시펄?'


아니 이 여자가?


뒤로 돌아선 상태라고는 하지만 디아나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딴 짓을 한다고?

심지어 그냥 움켜쥐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곳의 감촉을 손에 담아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손으로 조물조물대는데..

이러다가 잘못하면 정말 침대로 끌려가서 따먹히게 생겼다 싶었다.

그래서일까?


살짝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런 입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와중에 은근 잘만져서 웃겼다.

노골적으로 주물대기만 했으면 아무리 나라도 거부감이 들었을텐데 대신  자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해대는데..


'여기서 서기라도 하면..'

진짜 끌려가서 따먹힐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엄습해왔고,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 스승님."

대체 언제 거기까지 간 것인지 연무장 입구 쪽에 도착한 디아나가 다시금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클레어가 요망하게 놀려대고 있던 손을 떼어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응?"


"이안도 같이 가야할  같습니다. 아무래도.. 경우가 경우다보니 대리로 신청하는  인정해주지 않을  같아서.."

"그래? 그러면 데리고 갔다 와."


디아나의 말에 클레어가 내 등을 살짝 떠밀었다.


꼭 마치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것처럼.


덕분에 클레어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안심이 되기 보다는 쓴웃음이 앞섰다.


이렇게 순순히 보내준다는 건 오늘만 날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 말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방금과 같은 일을 저지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고.

'그래도..'


일단 지금 당장은 넘겼으니까.


 사실에 위안을 두도록 하자.

그렇게 클레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명분을 얻게된 나는 즉시 디아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엽게 비춰지기라도 했던 걸까.

날 바라보며 디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앞으로 같이 훈련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부대낄 생각을 하니 새삼 흐뭇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말 그대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디아나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불쌍한 여자 같으니라고.


어쩜 이렇게 주변이 경쟁자들 투성인지.

아니 앨리스야 내가 끌여들였다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디아나와 함께 연무장을 빠져나온 나는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 때쯤 입을 열어 클레어에 대해 물었다.

확인해보고 싶은  있기도 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거 그녀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둬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클레어님은 어떤 분이세요?"

그 와중에 클레어를 스승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살짝 거리를 두듯 님자를 붙여서 부른 건 디아나를 향해 보내는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언제 알아차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렇게 미리미리 떡밥을 뿌려둬야지.

그래야 혹시라도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을   결백(?)을 주장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으음, 스승님?"


내 말에 디아나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잠시 멈춰서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고민의 순간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만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까.

'아니 평소에 대체 어떻게 살길래..'

다른 이도 아니고 저 디아나조차 말을 망설이게 하는 것일까.

까면 깔수록 기가 차게 만드는 클레어의 행테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자니..

"..잘 싸우시는 분이시지."

쉬지않고 말을 고르던 디아나가 간신히  마디를 내뱉었다.

성격이 어떻다도 아니고  싸우는 사람이라.

 말은 그것 외에는 딱히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다는 소린가?

'하긴..'

성격이 좋아보이진 않았지.

"그, 그래도  분 밑에서 배운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전투 경험만큼은 왕국 전체에서 손에 꼽히시는 분이니까. 그 탓에 혼기를 놓치시긴 하셨지만.."

뒤늦게 디아나가 자신의 발언을 수습키 위해 그런 발언을 입에 담았지만 글쎄..


이미 클레어의 진면목을 확인한 나로서는 쉬이 공감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뭣보다 전투 경험이라면  클레어라는 년보다 내가  압도적일 것이다.


디아나의 발언에서 그나마 주목해볼만한 정보가 있다면 클레어가 전장을 전전하느라 혼기를 놓쳐버렸다는  정도?

'노처녀 맞았네.'


어쩐지 남자 몸 못만져서 환장한 티가 팍팍 나더라니만..


그 부분만큼은 확실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진짜 아차하는 사이에 잡아먹혀버릴지도 모르니까.


클레어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날 추행하려 드는 게 살짝.. 젊은 여자에 환장한 아저씨 느낌이 들어서  그렇긴 하지만..

'예쁘긴 해.'

미녀가 하니 그런 짓도 다 용서가 되더라.

앨리스나 디아나하고는 그 타입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달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까 그녀가  몸을 조물조물댈 때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분명 기분이 나빠야하는 상황인데 그렇지가 않았으니까.

오히려 남자로서 살짝 만족감마저 드는 것이..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설마 나..'

그런 쪽 성향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이안이라는 놈이 그런 취향이었던 걸수도..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마 못생긴 년이나 하다못해 평범한 년이 그랬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도 않았겠지만.

'아무튼 문제는..'

클레어가 하는 짓이 앞으로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을 거라는 건데..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은 어떻게 해결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제 성욕을 억눌러왔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라는 존재가 떡하니 등장해버린 거다.

더는 참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겠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것 참..'

그런고로 당분간 클레어 앞에서는 주의를 좀 해야할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 있을 만한 상황이 생기면?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지간하면 디아나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좋겠지.


그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건 오롯이 클레어의 인내심에 달린 것이니까.

그래도 당장은 확실히 통할 것이다.


날 데려온  디아나인데다가 디아나가 누가봐도 내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알 수 있는 행동을 몇 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디아나의 시선만큼은 의식하는 듯 했으니까.


'거참..'

설마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걸로 고민하게  줄이야.

조연으로 충실히 구를 때는 이런 분에 겨운 상상을 할 기회조차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런  격세지감이라는 놈일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디아나를 따라 걸음을 내딛었다.

어찌되었건 그 개인지도 신청인지 뭔지를 하러 나온 것이니만큼  건 해야했으니까.

'어째 얼른 잡아먹어달라고 어필하는 느낌이긴 한데..'

맨몸으로 굶주린 암사자가 도사리고 있는 굴 속으로 몸을 들이미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짓을 스스로 하고 있다 생각하니 절로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응? 왜?"


내 기색이 디아나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일까.

그녀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해보였다.


"아뇨, 아닙니다. 얼른 가시죠."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녀를 재촉했다.


얼른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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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놈이란 말이지.

클레어는 여전히 손에 남아있는 듯한 누군가의 감촉을 떠올리며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분명 그렇게 하면 어떤 식으로든 제 본모습을 드러낼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살살 긁어봤던 것인데..

'설마 참을 줄이야.'


그 탓에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졌다.

꼭 성적같은 것을 빌미로 선량한 학생을 억지로 추행하는 악덕 교수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설마 진짜로 결백한 건 아니겠지?

남자로서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을텐데 그것을 받아들이던 이안의 모습을 떠올리니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럴 리 없지.'

그래 그럴  없었다.

분명 뭔가 목적이 있을 거다.


마음껏 드러내도 모자랄  실력을 꽁꽁 숨기기까지 해가며 디아나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 하는 이유가 말이다.


'그게 뭘까..'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보면 될 터.

디아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온통 지루함 뿐이었던 학원에서의 생활에 모처럼 활기가  것만같은 예감에..

'재밌겠네.'


왕년의 기억을 떠올린 클레어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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