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6)화 (26/366)



〈 2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흐음..?'


요것 봐라?

나한테는 분명 오늘 하루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했으면서 실제로는 여기와서 전과 절차를 밟고 있었단 말이지..

왜 숨긴 걸까?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보아하니 막 신청을 끝내고 나오던 것 같은데 덕분에 원래 계획대로 관심과 견제를 눈앞의 녀석한테 몰아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쩐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자들의 반응이 살짝 시들하더라니.


주인공이라는 이름의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서 그런 거였구만.


나한테  숨기려고 했는지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전과 신청한거야?"


"..응. 너도?"


"나야 뭐 원래 기사부 지망이었으니까."

"아, 그랬었지."


일단 신청부터 하자.

그나저나 상황이 살짝 오묘하긴 했다.


원래라면 놈의 옆을 맴돌고 있어야할 두 여자가 지금 내 옆에 나란히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궁금해졌다.


지금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가.

'그래도..'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걸보면 앨리스는 몰라도 디아나한테는 확실히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놈이 디아나를 향해 화살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선배."

"어, 어.."

"모처럼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서 어쩌죠."

"어, 어쩔 수 없지. 학원에서 지시한 일이니까."

딱히 별거 아닌 대화인데도 디아나의 반응이 상당히 격렬했다.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해야할까.


주인공 놈의 말에 더듬더듬 대꾸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연신 내쪽을 흘깃 거리는데..

'왜? 눈치가 보이나 보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그 모습만 봐도 알  있었으니까.

디아나가 주인공 놈과 나 중에서 어느 쪽을 우위에 두고 있는 지를.


'가슴이 웅장해지네 정말로.'


이것이 짬의  아니겠는가?


엿같긴 하지만 이럴 때보면 그동안 주인공이라는 놈들의 행동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온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했다.


그것 덕분에 적어도 뭘 해야되고  하면 안 되는 지 정도는 구분이 가능했으니까.


물론, 지금 우위에 서 있다고 해서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주인공이라는 놈들을 지켜봐왔던 나이기에  알고 있었으니까.

주인공이라는 놈들은 존재 자체가 사기적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암만 차이를 벌려놔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차이를 좁히는 것도 모자라 추월까지 할 수 있는 놈들이 바로 주인공이란 족속들이다.

방심하면?

아차하는 사이에 따라잡히겠지.


그러니까..


'벌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벌려놔야지.'


우선 전과 신청부터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우리의 주인공 놈께서는 가봐야할 곳이라도 있으신 모양이다.

연신 내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문을 힐끔거리는 걸 보면 확실했다.

'흐음..'

대체 어딜 가려는 걸까.

궁금함이 마구마구 솟구쳤지만, 붙잡긴 애매했다.

상황 자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떠나가는 놈을 굳이 붙잡지 않고 순순히 보내주었다.

나중에 어디로 향한 건지 한 번 확인해봐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주인공 놈을 떠나보내고 나서 시작된 전과 신청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쉽게 말해 틱틱대는  없었다는 소리다.

이미 주인공이라는 선례가 휩쓸고 지나간 뒤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신청 마감 24시간 전까지 지원자 0명이라는 여러모로 기록적인 사태 때문에 패닉에 빠져있던 기사학부 교수들이 행정실에 단단히 언질이라도 해뒀던 걸까.

어쩌면 내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디아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사학부 행정실에서는 내 전과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그런 그녀들의 노력에 힘입어 내 전과 수속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리고 나니?


"이제 스승님께 가자."


더는 참을  없다는  디아나가  팔을 잡아끌었다.


덕분에 굉장히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날 소개시켜주지 못해 안달인 건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니까.

그렇게 디아나를 따라나서기 전에..


옆에 서 있던 앨리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떻게 할 거냐는 뜻으로.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디아나의 스승이 있는 곳까지 따라올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내 시선을 받은 앨리스가 쓰게 웃으며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에 봐~"

물론 순순히 물러나지만은 않았다.


디아나로 하여금 들으란듯이 나중을 기약하는 말을 내뱉는  물론, 보는 순간 열이 받을 수밖에 없는 손인사까지 해가며 자리를 빠져나갔으니까.


내가 앨리스의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디아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멀어져가는 앨리스의 뒤통수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으로 흘겼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럼, 저희도 얼른 가요. 선배. 분명 기다리고 계실텐데."


"어, 어.. 그래 그렇지."

그녀의 손가락 끝을 살짝 잡고 잡아당기니 언제 그랬냐는  시선이 다시 내쪽으로 돌아왔으니까.


그 별거 아닌 터치가 그렇게도 민망했던 것일까.

얼굴을 사르르 붉힌 디아나가 그것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그녀를 따라서 움직이니?

눈앞으로 나타난 건 자그마한 실내 연무장이었다.

크기로 보아 교수가 자기 제자를 개인지도할 때 사용하는 곳인 모양.


"잠깐만.."

디아나가 내게 양해를 구한 것은 바로 그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내게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 그녀가 내부의 풍경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문을 아주 살짝만 열고 그 안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뭔가를 숨긴다는, 여러모로 그녀답지 않은 행동에 관심이 안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슬며시 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니..

"스승님..! 또 벗고 계시면 어떻게해요..!"


"나 아직 귀 안 먹었다."


"아까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손님 데려올 거라고. 근데 이러고 계시면.."


"수련할 때 벗고 하는 게 제일 효율이 좋은 걸 어떻게 해? 그냥 들어오라고 해. 같은 여자끼리 무슨.."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니까요!"

뭔가 혼돈과 파괴, 그리고 망가를 절묘하게 뒤섞어놓은 듯한 대화가 귓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뭐..?'

순간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내 귀를 의심하게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


디아나의 스승이라는 여자가 벗고 있다는 소리지?

디아나는 손님 맞이할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스승을 상대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알몸 수련이라니.


하긴, 이안의 것 말고 내 기억을 뒤져보면 특이한 방식으로 수련하는 놈들이 꼭 한두 명씩은 있었으니까.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하면 뭐..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이 찾아올 거라고 귓뜸을 해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알몸 수련을 고수한 저 뚝심은  특이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나저나..'

목소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데?


스승이라는 사람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디아나가 온몸으로 존경심을 뿜뿜 뿜어내는  보고 보나마나 나이 지긋하게 잡수신 여검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목소리만 들어보면 이제 30대에 갓 진입했을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냥 목소리만 젊은 걸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건 굉장히 특이한 인물인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옷을 입네마네를 두고 디아나와 그 스승이라는 여자는 열심히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알몸을 훤히 드러낸 채 당당하게 서 있는 스승과 그런 스승에게 어떻게든 옷을 입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제자라니.


'오우 쉣..'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그 요상한 기분 속에 빠져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그,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디아나가 들어간 이후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디아나가 뺴꼼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일단 고개를 내민 것으로 보아 어찌어찌  스승이라는 사람한테 옷을 입히는데까지는 성공한 모양.


어쩐지 자기가 왜 옷을 입어야 하냐면서 툴툴대는 듯한 목소리가 배경음악마냥 들려오는 것만 같아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들어와도 괜찮다."

살짝만 열려있던 문이 완전히 열리며 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 너머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는 디아나의 스승이라는 사람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난 총 두 번 놀랐다.


 번째는 그녀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보인다는 사실에 놀랐고, 두 번째는..


"뭐야? 반했냐? 뭘 그렇게 쳐다봐."

분명 초면일텐데도 빠꾸없는 돌직구를 날려대는 그 태도 때문에 놀랐다.


확실히 내가 좀 뚫어져라 쳐다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했냐라니.


눈 깔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걸까.


일단 빤히 쳐다본 건 맞았기에 일단 사과를 건네려고 하니..

"뭐, 몸은 마음에 드네."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추가타가 정면으로 날아와 꽂혔다.


덕분에 그녀에 대한 정보도 수정해야만 했다.


조금 특이한 년이 아니라 미친 년인  같다고.


다짜고짜 성희롱이라니.


지금 여기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다른 남학생이었다면 학원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교수들또한 여성인 건 마찬가지기에 혹시라도 교수들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남학생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부분에 대해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아니까.

 사실을 디아나라고 모르지 않았던 걸까.

그야말로 순식간에 내게 날아와꽂힌 제 스승의 2연격에 디아나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스승니임..!"


그래도 스승이라고 차마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었던 걸까.

디아나의 입에서 이를 악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충 번역해보자면 '그쯤 하시죠?'쯤 되겠지.


"왜? 먼저 쳐다본 건 저쪽인데."


"스승님 제발..!"

"쯧, 알겠다. 알겠어. 테스트 좀 해본 거 가지고 유난떨기는.."

못마땅하다는 듯 작게 혀를  그녀가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한채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뭐, 배짱은 마음에 드네. 분명 질질 짜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배짱 테스트를 하겠다고 초면부터 그렇게 성희롱을 박는다고?

 여자는 혹시 예의라는 단어를 모르는 걸까?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게 생겨먹긴 했다.


예쁘긴 한데 그보다는 사나운 느낌이  강하게 드는 듯한 외모였으니까.

특히나 왼쪽 볼쪽에 작게 나 있는 흉터가 그런 느낌을 한층 더 부각시켜주고 있었고.


나는 주로 어떤 놈들이 저런 분위기를 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구를대로 구른 끝에 사람을 죽이는 도를 터득한 살인의 스폐셜리스트들.


그런 이들이  저런 분위기를 내곤 했었지.

그렇다는 건?

눈앞에 있는 여자도 그들과 같은 '진짜'라는 소리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여자는 그런 부류들 중에서도 특히나 위험한 케이스였다.

고로 여기서 함부로 깝쳤다간?


병뚜껑마냥 목이 뽁하고 따일 수도 있었다.


물론,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개미 코딱지만큼도 없지만.

"아무튼 그래서? 갑자기 쟬 소개시켜주는 이유가 뭔데? 혼자 지내는 이 스승님이 외로워보이기라도 했던?"

위험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녀는 나랑 꽤 코드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도 알고 있는 듯 했으니까.


디아나를 놀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를 말이다.


"농담인데 정색하기는.."

그 말 뒤에 내뱉은 말이 진짜로 가관이었다.

그렇게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남자들한테 인기가 없을 거라나?


덕분에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반듯한 디아나의 이마 위로 핏줄이 툭하고 불거져나오는 모습을 말이다.


"그쯤 하시죠?"

 상태로 디아나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그래, 얘가 너랑 비볐다고?"

그 즉시 태도를 바꿔먹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얄밉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제 3자인 나도 그럴진데 실컷 놀림당한 당사자인 본인은 어떻겠는가?

디아나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네."


그렇지만 상대도 상대고 나도 지켜보고 있는만큼 그걸 차마 겉으로 끄집어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디아나가 입꼬리를 파들파들 떨며 스승의 물음에 긍정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어진 건..

"그래? 그럼 둘이 다시 한 번 붙어봐.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이나 해보게."


디아나는 물론 나까지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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