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2)화 (22/366)



〈 22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디아나 시점****

'전과라..'


무슨 조언을 해줘야할까.


디아나는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비록 그 의도 자체는 순수하지 못했지만, 어찌되었건 도와주겠다고 말한 만큼 할 수 있는만큼은 할 생각이었다.


'진이라고 했던가..?'


그랬다.

원래 그녀는 진이라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후배의 부탁을 들은 순간  자리에서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생각을 바꿔서 그 부탁을 받아들인  뒤에서 이안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존경해마지 않는 한 사람이 참고하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 귓뜸해준 조언 때문이었다.

'디아나, 명심하렴. 남자라는 생물은 상대가 너무 쉬워보이면 금방 흥미를 잃어버린단다.'


나긋나긋하지만 절대 거역할 수 없는 마성을 가진 목소리로  말이  순간 머릿속으로 울려퍼졌고, 그 순간 이안과 함께 학원에 발을 들였을  그를 향해 수많은 시선들이 몰려들었던 것도 같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안과 함께 학원으로 들어온 이후 내내 불안했다.

이안이라는 남자가 가진 가치와  학원의 여자들이 얼마나 남자에 미쳐있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이안에게 기숙사를 안내해주기 위해 그곳에 잠깐 들렸을  한층 더 몸집을 불렸다.

대낮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가 내지르는 달콤한 신음소리, 그리고 그것이 묻혀 잘 들리지 않던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침음성까지.

그 소리들을 들은 순간, 이안이 그의 가치를 알아보본 다른 여자들이 그를 유혹하는 광경이 자연스레 눈앞으로 그려지는 듯 했다.

심지어 이안은 어린 시절을 내내 시골에서 보내서 그런 지 몰라도 굉장히 순수하기까지 했다.


제 스킨십이 여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조차 알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한창 때 여성의 몸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손을 가져다대는  태도가 증거였다.

아차하는 사이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입학식 때문에 이안과 헤어지고 나서 오후 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괜찮아 보이는 수단이 눈앞으로  떨어졌고, 그래서 엉겁결에 받아들이고 만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뒤에서 그 현장을 빤히 지켜보고 있을 이안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살짝 후회가 되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다행히 효과는 나쁘지 않은  같았다.


 때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마음에 황급히 자리를 뜰때 얼핏 눈에 들어왔던 이안의 표정과 눈빛은 누가봐도 질투하고 있는 남자의 그것이었으니까.

'후우..'

그렇지만 마음에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의 만족 때문에  진이라는 후배의 절박함도 이안의 마음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면 모를까 따지고 보면 그 진이라는 후배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니만큼 받은 만큼 갚아줄 의무가 있으니까.


그러다가  친해지면 겸사겸사 고향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이안에 대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문제는 도움을 주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학원에 들어올 때부터 기사부 소속이었고, 다른 부에 딱히 관심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만큼 전과에 대해 딱해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려고도 해봤다.

딱히 성과는 없었지만.

'여성'이 다른 부로 옮겨간 경우는 많았다.

그렇지만 특별부에 속해있던 남성이 다른 부로 소속을 옮긴 경우는 최근으로만 따지면 사실상 전무했다.

엄청 옛날로 거슬러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정도?

심지어 그 중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사부로 소속을 옮긴 경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난감한 것이었다.

시험이 어떻게 치뤄지는지를 모르는데 그걸 어찌 준비한단 말인가?

그나마 추측을 해보자면 전과 시험이 대련이라는 형태를 빌려 이루어질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는 것 정도?


사실 그게 학원 입장에서도 제일 깔끔한 방법일테니까.

'대련 방식이라면..'


이안이라면 모를까 진이라는 후배는 합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겠지.


아니, 이안이라도 힘들 거다.

남자가 전과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부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이 우르르 나설테니까.

이유?

당연히 건방지게 자신들의 성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남자를 징벌코자 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이 학원의 기사부만큼이나 보수적이며 꼴통스러운 집단도 또 없으니까.


게다가 자존심도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근거가 있는 자존심이라서  문제였고.

그도 그럴 것이 수도 학원의 기사부는 기사를 지망하는 이들 중에서 최상위권의 재능을 가진 이들만 입학할  있는 곳이니까.


그런 곳에 남자가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당장 교수들에게서부터 '어디 남자가..!' 소리가 튀어나올 것이고, 뒤이어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학생들도 분노를 터뜨리겠지.


그걸 이겨내려면?

압도적인 실력으로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질 못한다면?

시험 내내 농락만 당하다가 끝날 거다.


농락만 당하면 다행이지 대련을 빙자해 희롱까지 당하게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이곳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처음 느낀게 실력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까.

전과 시험에 대련 상대로 나설만한 최상위권 실력자들 중에서는 어디 한 군데가 망가진 것같은 양반들이 즐비했다.


그런 년들의 앞에 이안을 세운다?

'안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질끈 감길 정도였다.

그런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만 했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이안이 그런 험한 일을 버터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그렇게 보면 그 진이라는 후배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후배가 먼저 전과에 도전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그 후배가 된통 당하고 나면 학원 내에 기사부에서 너무 과했다는 여론이 일어나게 될테고, 그리 되면 그걸 빌미로 전과 시험을 손볼 걸 주장하거나 하다못해 대련 상대로 인성이 검증된 이들만 내세우는 것이 가능해질테니까.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진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디아나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그녀가 생각에 퐁당 빠져있던 순간이었다.

"뭐? 정말?"

"진짜라니까? 내가 봤어."


다소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상념 속에 허우적대던 그녀를 끄집어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녀는 검 휘두르는 소리와 기합소리 외에는 조용해야할 연무장에서 감히 떠들어댄  명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들려온 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이안이라는 애 디아나 선배하고 만나는 거 아니었어? 걔가 왜 앨리스 같은 년이랑.."

"내 말이."

지금 저년들이 대체 뭐라고 한 걸까.

누가  어쨌다고?

저들의 대화에 이안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흘려들을 수가 없었는데  뒤에 따라붙은 이름이 더 신경쓰였다.

앨리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기사부를 통틀어 그런 이름을 사용하는 이는 딱   뿐이었으니까.

앨리스 토르쟈.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기사부의 골칫거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그녀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그 년의 이름이 왜 이안의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일까?


끓어오르는 궁금함과 불안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 둘."

"네, 넵!"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방금  얘기 다시 한 번 해보도록."


얼른 말해보라 했더니 서로 흘깃흘깃 눈치만 보면서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모습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됐고. 너."


 명을 콕 찝어 지목했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이안과 앨리스가 정문에서 만나 학원을 빠져나갔다는 걸.

후배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전해들은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가 덜컥하고 흔들렸다.


 후에  사실을 전해준 후배가 이안에 대해 뭐라뭐라 떠들어댄 것 같았지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이안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있었으니까.

왜?

이안은  앨리스와 함께 학원을 나선 걸까?

그런 의문부터 시작해서 앨리스와 관련된 온갖 안좋은 소문들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생되었다.


원래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 생각해서 한 귀로 듣고  귀로 흘려버렸던  소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소문들은 하나같이 남자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앨리스가 누구를 데리고 놀다가 버렸다던지..


그런 소문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렇게 제멋대로 술렁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한참동안이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이안의 얼굴을 봐야했다.

얼굴을 본다고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할  같았다.


그래서..

자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혹은 이상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후배가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건 말건 그대로 연무장을 뛰쳐나왔다.

그녀 인생에서 첫 번째 땡땡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안의 방으로 향한 디아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런 기약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렇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를 더해가는 초조함에 젖은 채 하염없이 이안을 기다렸다.


기숙사 정문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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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소개해준 대장간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주인이랍시고 나선 아줌마가 끄뉵끄뉵한 몸매에다가 쓸데없이 호탕한 점이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이 있었으니까.


해서 전과 시험을 볼 때까지만 임시적으로 사용할  한자루까지 주문을 끝냈다.


"언제 받아볼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학원 쪽에서 허가를 얼마만에 내주냐에 따라 달라서 말이지."


씨익하고 웃으면서 덧붙이는 말이 완성되면 학원 측에 전달해둘테니 이런저런 절차가 끝나면 자연스레 받아볼  있을 거란다.

"아하.."


"그래,  더 주문할 건 없고?"

대장간 주인, 퍼지의 말에 관심없는 척 하며 은근히 옆을 지키고 있던 앨리스의 표정이 살짝 엄해졌다.

아무래도 아까 창을 주문할 때 퍼지가 내 신체 사이즈를 알아둬야할 필요가 있다며 내 몸 곳곳을 건드려댔던 걸 은근 마음에 담아뒀던 모양.


'그래봐야 팔뿐인데 말이지.'

말이  곳곳이지 퍼지가 주로 체크한  팔길이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누가보면 내가 성추행이라도 당한 줄 알겠네.

낯선 이를 향해 하악질을 해대는 고양이마냥 퍼지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게 그렇게 귀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뭐라도 사주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진짜 하나 사줄까?'

마침 돈이 조금 남기도 했고..

자금이 얼마 되지 않는 만큼 거창한 건 무리겠지만 간단한 선물 정도라면야.


마침 명분도 있었다.

이렇게 솜씨좋은 대장간을 소개해줬을 뿐더러 내가 무기를 주문하는 동안 잠자코 기다려줬으니까.


'뭐가 좋을까..'


그렇다고 또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기는 귀찮아서 근처에 뭐 적당한 건 없을까하고 가게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오."


꽤 괜찮은 물건에 눈에 띄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을  같았고.

해서 곧장 그쪽으로 다가가 벽에 걸려있던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건 얼맙니까?"

"음? 그거? 어디보자.."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예산 내였다.

그렇다면?


못 사줄 것도 없지.

어차피 학원에 있으면 돈도 안 쓰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쓸데없이 주머니를 무겁게 만드는 짤짤이나 털어내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그것을 들고 앨리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랬더니..


"무, 뭐."


뒷걸음질을 치더라.

그 모습을 보고 퍼지가 파안대소를 터뜨린 건 덤이었다.


그래봐야 앨리스의 눈빛 한 방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긴 했지만.

"아, 가만히 좀 있어봐요."

제가 얼마나 민첩한지 자랑이라도 하는 것마냥 쓸데없이 몸을 요리조리 빼길래 답답한 마음에 어깨를 부여잡아  자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벽에서 챙겨온 물건을 그녀의 몸을 향해 들이밀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단검을 여러자루 꽂아서 휴대할 수 있게 해주는 나이프 시스라는 이름을 가진 물건이 앨리스의  위로 덧대어졌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손도 자연스럽게 닿게 되었다.

어디가 닿았냐고?

글쎄 어딜까?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보드랍고 말캉한 느낌을 모르는 척 하며 진지하게 가져다 댄 물건이 앨리스와 잘 어울리는지 체크하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이거 주시겠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손님."

그것을 그대로 앨리스의 몸에 채워주며 그리 말했다.

"가, 갑자기 이건  뭔.."


"음.. 그냥 잘 어울릴  같아서요. 정 마음에 걸리시면.. 으음.."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은 곳을 안내해주시고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선물이라고 치죠 뭐."


그렇게 데이트를 마무리짓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이안."


디아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빨갛게 변한 눈을 한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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