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1)화 (21/366)



〈 2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앨리스 시점****


참 신기한 놈이라고 앨리스는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안.

이안 데일.

이름만 놓고보면 참 흔해빠진 이름이었다.


아마 당장 밖으로 나가서 좀만 뒤져봐도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 흔해빠진 이름과는 다르게 눈앞의 남자는 특이하다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기묘한 존재였다.


처음 골목에서 만났을 때는?


흔해빠진 남자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막다른 골목과 음흉한 미소를 얼굴 한가득 베어문 채 다가오는 여자들.


평범한 남자라면 공포에 질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그때 눈앞의 남자가 보였던 모습은 충분히 상식 내에 속해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기에 그 때는 눈앞의 남자 말고 다른 쪽에 더 눈길이 갔었다.

보통이라면 쫄아야할 상황에서 오히려 지지 않고 눈을 부릅뜨며 앞으로 나서는  보통 배짱으로는 할  없는 행동이니까.

배짱이 두둑하다는 건?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뭣보다 생긴 것도 나쁘지 않았다.

취향을 따지자면 솔직히 그렇게 여리여리한 타입보다는 지금도 눈앞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남자처럼 어느 정도 근육이 있는 쪽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런 타입은 많이 봐왔으니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취향과는 정반대쪽에 놓인 모습을 하고 있는 쪽이 살짝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서 조금 알아본 다음에 데리고 놀아볼만하다 싶으면 잠깐 데리고 놀아볼 생각으로 그 여리여리한 꼬맹이 쪽에 접근했던 것인데..


'거기서 두 번째로 만났지.'


자신과는 다르게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기에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하고는 다르게 살짝 당당해진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긴 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골목에서는 그렇게 쫄아놓고서는 자신의 정조(?)를 위협하듯 접근했었던 상대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마냥 말을 붙이는 게 살짝 특이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리여리한 쪽으로부터 느낀 흥미를 이길 순 없었으니까.

생각이 뒤집혔던 건 식당을 빠져나와 골목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였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뒤를 따라오는 것 같길래 모퉁이 쪽으로 유인해서 벽까지 몰아붙였었는데..


'눈 하나 깜빡 안했지.'


그때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쳤던 이와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확 달라진 모습.

그렇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내숭을 떨며 제 본성을 숨기는 놈들이야 많이 봤으니까.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건 담담한 모습이  모습과 가까워 보인다는 것 정도?

장난삼아 위협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고아라는 사실을 입에 담는 모습이 나름 인상적이어서 과연 언제까지 담담할 수 있을지 남자라면 기겁할 수밖에 없는 행동까지 해봤는데..

'그 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었지.'


다른 남자였다면?

비명을 지르던 하다못해 경멸하는 표정을 짓던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스스로의 감정을 숨긴다거나 그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감정이라는 건 재채기와도 같아서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소리였고, 그때 약간이지만 흥미가 생기는 걸 느꼈다.

그게 조금  커진 건 본인도 기사부로의 전과를 노리고 있다고 밝혔을 때였고.


자신의 조력을 구하는 대가로 몸을 내세운  출세지향적인 남자들과 똑같아서 살짝 실망감이 들긴 했지만, 이유 자체가 특별했기에 실망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고 나서 그쪽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다.

학원 내에 기사부만 있는 게 아닐진데 왜  몸까지 희생해가며 기사부로의 전과를 노리는지가 궁금했으니까.


그걸 알아낼 수만 있다면 후에 다시 협상을 하게 되더라도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고.


해서 나름대로 인맥을 동원해 알아보고 있었는데..

소문을 듣게 되었다.

디아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말이다.

 순간 기껏 싹을 틔웠던 흥미가 파사삭 식어내리는 걸 느꼈다.

도덕적으로  그렇다거나 그래서가 아니었다.


그런  일일히 따지면서 살았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겠지.

그냥 상대가 좀 그랬을 뿐이다.


앨런 가의 디아나라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그녀는 몇  되는 진짜배기 귀족이니까.


심지어 디아나 본인은 1왕녀인 레이시아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기까지 했다.

그런 상대의 심기를 거스른다?


미친 짓이다.

그렇기에 관심을 껐고, 막 끓어오르기 시작했던 관심을 억지로 꺼뜨린 대가는 제법 컸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강의고 뭐고  귀찮게 느껴져서 그곳에서 낮잠이나 실컷 잘 생각이었는데..


마침 신입생들 들어온다고 다 몰려나간 덕분에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구석에 짱박혀서 잠을 청하고 있으니 누군가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사서인줄 알았다.

저번에도 이곳에서 자고 있는데 찾아와서 주의를 준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고 있었던 게 아니라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척을 하며 돌려보내기 위해 감고 있던 눈을 떴는데..


그곳에 있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얼굴 한가득 베어문채 다가오다가 말고 어정쩡하게 멈춰선 이안이 말이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다.

더는 자신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는 디아나라는 끈을 잡지 않았던가?


기사부 부장에다가 학생회장인 레이시아의 신임은 물론 교수들의 신임까지 듬뿍 받고 있는 디아나다.

기사부로의 전과를 노리는데 있어 그녀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존재는  없을 터.


그렇기에 의아했다.

이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데이트까지 제안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왜?'


그러한 물음이 끊임없이 귓가를 맴돌았고 그래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진지하게 데이트에 임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봐야 헛물만 켜는 꼴밖에  될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식당으로 안내해달라는 말에 본심이나 알아볼겸 남자들이라면 꺼려할만한 허름한 외관을 가진 곳으로 데려온 거였는데..

'왜..'


좋아하지?

평소에 굶고 살았나?


너무 잘먹어서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 그럴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굶고 살았다면 저런 몸이  수가 없으니까.


"안 드세요? 선배?"

"어, 어..?"


"그러지 말고 얼른 드세요. 자."

뭐라 답하기도 전에  몫의 빵을 살짝 뜯어서 스프에 살짝 담근 다음에 자신 쪽으로 내미는 이안의 행동에 앨리스는 사고가 정지하는 걸 느꼈다.

그 와중에 몸만큼은 솔직했다.


'혹시..'하는 마음에 오랫동안 정문 앞에 방치되어 굶주릴대로 굶주린 몸이 제멋대로 입을 벌렸다.


그 안으로 스프에 젖은 빵이 쏘옥하고 들어왔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던 이안의 손가락이 입술을 살짝 스치며 안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이안의 손가락이 입술을 스치며 빠져나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닫아 그것을 붙잡을 뻔 했으니까.


방금 내가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스스로의 몸인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때문일 거다.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제멋대로 박동하며 얼굴 위로 열기가 서리는 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당황스러운 건..


평소에 먹던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게 분명함에도 어쩐 일인지 평소에 먹던 것하고는 비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들이었다.


아까 특별히 신경 써준다고 하더니 요리하는 와중에 살짝 꿀같은 걸 섞기라도 한 것일까.

입 안에서 뭉개지는 빵 한조각이 그렇게 달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음부터는 솔직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배가 고픈 건 맞았기에 앞에 놓여져있는 것들을 습관적으로 떠먹으면서 흘깃흘깃 맞은 편에 앉은 이안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놀랐다.


아까 나온 제몫의 접시를 깔끔하게 비워내고 새로 주문한 두 번째 놈을 거진 다 비워가고 있는 이안의 식성과...


그걸 보며 자신이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의식적으로 앞에 놓여진 접시를 비워내고 있으니..


어느새 식사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주인이 가져다 준 천으로 입가를 꼼꼼히 닦아내던 이안이 그것을 내려놓으며..

"그럼, 배도 얼추 채운 것 같으니까 이제 뭐할까요?"


그리 물은 순간 앨리스는 비로소  실책을 깨달았다.

그 실책이란..


'어, 어디로 가야..'


가망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데이트 준비같은 걸 딱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패닉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파도가 그녀의 몸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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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딜 갈 거냐고 물은 순간 그대로 굳어버린 앨리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치깠다.

'아, 이 년 데이트 준비 하나도 안 하고 그냥 나왔구나'


라는 걸.

그런 의미에서 앨리스는 내게 몇 번을 절해도 모자랐다.

만약 지금 그녀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상대가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면?


저런 반응을 보인 순간 바로 파국이 도래했을테니까.


아니, 애초에 식당이랍시고 허름한 곳으로 안내한 시점에서 그대로 데이트가 끝나버렸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패닉에 빠져있느니 어쩌겠는가?


나라도 나서야지.


"그러고 보니까 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해서 스리슬쩍 그리 내뱉으니 당황한 듯 흔들리던 앨리스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혹시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답?


말할 것도 없이 'Yes.'였다.

지금 앨리스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어딜 가보고 싶냐고 묻길래..

작게 웃으며 친절하게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거길 가보고 싶다고?'

꼭 그리 말하는 듯 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의외였던 걸까.

내가 주인공 놈처럼 기사부 전과를 노리고 있다는 걸 그새 까먹은 건 아닐텐데..

'아.'

하긴, 데이트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장소는 아니긴 하지.

그렇지만 가긴 해야하니까.


솔직히 그거 하나 사러 다시 학원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도 귀찮고.

그래서 안내해달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던 앨리스가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로 따지면  20cm는 될까.

내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가까이 붙었는지 앨리스가 움찔하며 살짝 거리를 벌리는 모습은  귀여웠다.


'아까부터..'


영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지.


아무래도 시험삼아 시도해봤던 먹여주기의 파괴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던 모양이다.

저렇게까지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보면 말이다.

볼도 살짝 불그스름한 것이..

'가슴이 두근두근 하나 보지?'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앨리스가 그런 식으로 풋풋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스킨십에는 면역이 없다는 걸.

'그렇단 말이지..'


이건 기억해둘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된 사실을 머릿속에 새기며 또 어떻게 건드려볼까하고 속으로 히죽히죽대고 있는 사이..


"여긴가요?"

"..응."


내가 안내를 부탁했던 장소가 눈앞으로 나타났다.

땅땅-하고 크게 울려퍼지는 망치소리.

앨리스가 안내해준 대장간은 아까 들렸던 식당만큼이나 허름해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드나드는 손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괜찮다는 뜻이겠지.


자신이 안내한 곳이니만큼 앞장서야겠다고 판단한 것일까.


손님으로 추정되는 이가 떠나가며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 앨리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자 날 반긴 것은..

쇠와 기름냄새가 물씬 풍기는 남자..


아니 이 세계 기준으로다가 '여자'들만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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