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8)화 (18/366)



〈 18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이게 지금 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인 걸까?

응?


디아나 앨런은 올곧고 의리있는 타입의 히로인 아니었어?

아니었냐고.


눈앞에서 사기를 당한 느낌이라 황당한 마음에 질문을 던져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속으로만 던진 것이었으니까.


그리 행동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 자체가 나서기가 애매했다.

주인공 놈의 제안에 대해 이미 디아나가 'OK!'를 외친 시점에서 그걸 뒤집기 위해 끼어든다?

명분이 없다 아입니꺼 명분이.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번 마음을 정하면 어지간해선 잘 바꾸지 않을 것 같은 타입의 디아나가 갑자기 내가 아닌 주인공 쪽 노선으로 갈아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가 대체 뭘까.

내가 사람을 잘못보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충실한 조연으로 구르면서 주인공 놈의 옆에서 온갖 인간군상들을  지켜봤던 게 바로 나다.

그렇기에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게 있어 디아나는?

일단 한  마음을 정하면 그 대상이 어지간히 트롤짓을 하지 않는 이상은 끝까지 마음을  타입이었다.

쉽게 말해 타고난 충견 타입이랄까.

'그러고보니 살짝 강아지 상이긴 하네.'


투견장에 팔려가고도 주인 찾아 삼만리를 떠났던 백구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가 뭐 디아나를 가지고 엄한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딱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무언가 의도를 품고 주인공 놈의 제안을 받아들인 걸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그 증거로 그녀는 주인공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내게 밤에 문단속 잘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던가?

어떤 계기로 내게 마음이 떠난 거라면?


그런 발언도 하지 않았겠지.


아, 디아나가 왜 그런  것도 아닌 부분을 강조했는지는 후에 행해진 기숙사 OT에서 설명을 위해 나선 남자 선배 덕분에 알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숙사는 섹스를 위한, 섹스에 의한, 섹스의 건물이 맞았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밤에 남자가 방문을 잠궈두지 않는 건?


말하자면 여성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오늘 밤 난 'OK.'니까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시그널 말이다.


기초적인 설명이 끝나고 선배가 혹시 알아두면 좋을 거라고 말하면서  사실에 대해 언급했을 때 솔직히 얼척이 없었다.

아니 시발 여기가 빡촌도 아니고 그게 대체 뭔가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남자라면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같은 건 아니었다.

그런 자처하는 건 포인트가 떨어진 이들이 주로 그런다는 게 선배의 설명이니까.


학원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런 행동을 한 이에게 오히려 포인트까지 지급하는 건 이 학원의 목적 자체가 그쪽에 있기 때문이고.


한 번 할 때마다 지급되는 포인트의 양도 상당해서 굳이 포인트가 부족하지 않음에도 학원 내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매년 한두 명씩은 꼭 있단다.


그만큼 여러 여자를 상대할  있다는 건 남자로써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에 일단 증명하기만 하면 상당히 괜찮은 혼처를 잡을 수도 있다는  선배의 설명이었고.

'약간..'


옴므파탈 뭐 그런 걸까.

대신 그래버리면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 평판은 씹창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혹하긴 했다.

내가 뭐 이 세계의 다른 놈들처럼 여자를 꺼리는 것도 아니고, 욕구까지 풀면서 겸사겸사 포인트까지 수급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그렇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디아나나 앨리스 중에 한 명만 노릴 거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어찌어찌 비비는 게 가능할 것 같았지만..

그 둘을 넘어 세 번째 히로인 후보로 추정되는 레이시아까지 노리려면 일단은 정조(?)를 지킬 필요가 있을테니까.


아무리 남자로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명했어도 그런 식으로 좆대가리를 막 놀려댄, 순결하지 않은 놈을 왕실에서 과연 왕족의 배필로 들이려 할까?

심지어 레이시아는 유력한 왕위계승권자인데?

나같아도 그런 놈은 일단 제끼고 볼 거다.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나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그림 속의 떡과 같은 무언가였다.


그렇지만 기억 정도는 해두기로 했다.


혹시 또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그딴게 아니라 디아나는 기숙사 내의 그런 문화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내가 혹시라도 무지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막기 위해 부끄러움까지 무릅써가면서 내게 충고까지 건넸다는 점이었다.

그게  의미하겠는가?

'아직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디아나는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꼭 내게 보란듯이 말이다.


'잠깐만..'

'보란듯이'라고?

설마 이거.. 질투심 유발작전 같은 건가?


내게 일부러 다른 남자한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 질투심을 유발해 내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만들려는?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뭣보다 디아나는 학원에 들어온 후로 내게 몰리는 여성들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몰려드는 시선 때문에라도 불안함이 들 수밖에 없었겠지.


딱히 결혼생각이 없는 그녀에게도 나라는 존재는 매력적인 상대다.


그런데 결혼할 생각으로 만반인 이들에게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할 상대로 느껴질 가능성이 컸다.


 사실을 디아나라고 모를까?


그럴 리 없었다.


그래서 기껏 점찍은 상대를 다른 년한테 낼름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무언가 수를 내야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고민한 결과가 아까 내 앞에서 주인공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면..


'그래도 살짝 이상한데..'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본 디아나는 다른 부분이라면 몰라도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나무늘보같은 타입이었다.

둔감하고 느리달까.

그런 나무늘보 타입이 이런 식으로 수작질을 부린다?

그럼 내가 디아나라는 여자에 대해 잘못 판단했던가 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부추겼을 수도 있지.'

그래 그럴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부추겨서 행하게 한 행동이 디아나한테는 딱히 도움이 안 될 것같아보인다는 것정도?


내가 이 세계 기준으로 특이한 놈인데다가 히로인 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디아나가 그딴 식으로 행동한 순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대놓고 양다리 각을 재? 어? 열받네?'하면서 돌아섰을 것이다.


'남자'로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랬겠지.

그렇기에 감히 추측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디아나에게 되도 않는 충고를 건넨 이가 과연 누구일지를 말이다.


'짚히는 사람이 딱  명 있긴 한데..'

심지어 그 사람은 디아나에게 굉장한 신뢰를 받고 있지 않았던가?

본인이 이런 쪽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는 디아나가  사람의 충고대로 행동할 계기는 차고 넘쳤다.


아마 내가 디아나라도 그랬을테니까.

살짝 퇴폐미가 느껴지는 인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사님, 아니 레이시아는 약간 연애의 고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이른바 인비저블 썸띵이 있으니까.

'뭣보다..'

딱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자니 속이 살짝 쓰리긴 했지만, 레이시아는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으니까.

내가 디아나에게서 떨어져나가도록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맞지 않는 충고를 건넸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중요한 건 디아나가 높은 확률로 레이시아가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말도 안되는 충고에 따라 일을 벌였고,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런 디아나의 행동에 대응해야만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떠올려봤다.

그동안 내가 거쳐온 주인공 놈들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했었는지를.


워낙 흔치 않은 경우다보니 비슷한 케이스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히로인이 그런 식으로 질투심을 유발하는 작전을 사용했을 때 주인공이라는 놈들이 보여준 대응은 크게 둘 중에 하나였다.


그 의도에 맞춰서 질투심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히로인의 기분을 흡족하게 만들어주거나..

'맞불을 놨었지.'


전자는 주로 한 명의 히로인만 바라보는 일편단심 타입의 주인공 놈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후자는 입만 열면 하렘, 하렘거렸던 하렘무새 새끼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편단심보다는 하렘파였다.


디아나가 내 본심을 알았다면 뒷목잡고 쓰러졌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 하나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모처럼 일부다처가 합법인 세상에 떨어졌는데 삼처사첩까지는 무리더라도  닿는데까지는 가봐야하지 않겠는가?


고로 여기서 내가 선택해야할 쪽은..

'맞불로 간다.'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디아나에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디아나가 내게 매달리게 만들겠다고.

그걸 위해서라도 한  정도는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맞불을 놓냐는 건데..

다행히 그건 그리 어려울  같지 않았다.

맞불이라고 하니 마침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이가 있었으니까.

불을 연상시키는 새빨간 머리칼을 가진 또다른 히로인 후보가 말이다.


그래서 곧바로 그녀를 찾아나섰다.

어차피 오늘 입학한 처지라서 딱히 특별한 일정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입학한 꼬추새끼들을 학원에 적응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는 내일부터 시작될 예정이기에 오늘만큼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어디보자..'


어디 있으려나?

기사부 소속이니만큼 일단 거기부터 한 번 가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패스했다.


내 직감이 속삭였으니까.


거기로 가봐야 만나고자 하는 만나지 못하고 디아나만 마주치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래서 일단 다른 곳부터 먼저 뒤져보기로 했다.

'어디가 좋으려나..'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앨리스의 얼굴을  번 떠올려봤다.

색기가 감도는 고양이 상의 얼굴.

관상학적으로다가 성실하게 학원의 행사에 임하기 보다는 조용한 곳에 짱박혀서 땡땡이 치는 걸 선호할 상이었다.


'조용한 곳이라..'

틈만나면 이리저리 짱박혀서 땡땡이를 치던 고참병사 놈들을 찾아내며 길러진 내 지휘관으로서의 짬이 속삭였다.



??? : 도서관.. 답은 도서관이다..



그렇단 말이지.


다행히 도서관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아침에 디아나의 안내를 받으며 학원 안을 돌아다닐 때 들린  있는 곳이니까.

'그러니까..'


식당 기준으로 왼편에 있는 건물이었지 아마?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디아나와 함께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살짝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먼저 선전포고를 날린 건 디아나였다.

그렇게 살짝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주며 도서관 안으로 입성하니..


남자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학원에 발을 들이는, 학원의 학생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벤트가 있는 날이라서 그런 걸까.

도서관 안은 인적 하나 없이 고요했다.


오죽하면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사서마저도  고요함을 배겨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다시 한 번 감이왔다.


만약 숨는다면 여기일 거라고.

그만큼 땡땡이를 치고 짱박혀서  한숨 때리기에  좋은 분위기랄까.


'나 같으면..'

이 안에서도 구석을 택했겠지.

입구하고 너무 가까워버리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방문객에게 꿀같은 단잠을 방해받게될 가능성이 크니까.


그래서 텅 비어있는 입구 쪽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니?

  있었다.


낮잠 자는 고양이마냥 커다란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한몸에 받으면서 테이블 위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는 앨리스의 모습을 말이다.

 베개는 따로 챙겨다니기라도 하는 걸까.


꽤나 본격적인 모습으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서 놀래켜줄 생각으로 그리했던 것인데..

스르륵-

"..뭐야."


'허미 시발.'

이걸 눈치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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