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16)화 (16/366)



〈 1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혼숙 기숙사라니.


남녀가 사용하는 층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건 어쩔  없었다.


그래서였다.


디아나가 기숙사랍시고 거대한 건물 앞으로 날 안내해줬을 때  눈에는 그 건물이 섹스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건물 외벽도 핑크핑크한 것이 살짝 그런 느낌이 들도록 의도한 것 같기도 하고..

-흐으응..


기분 탓인지 신음소리까지 들리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남녀가 같이 생활한다 이거지..


 학기가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 학기 동안은 신세를 지게될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흐으.. 아, 아직.. 싸지..


다시   예의  환청이 들려왔다.


아니 환청 맞나?


그 소리를 들은 게 나 혼자라면 환청일 수도 있겠지만..


화아악-

'환청 아니네.'

바로 옆에  있는 디아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남녀를 같은 건물에서 지내게 한 것일테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달린다고?'

수업같은 것도 없는 걸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건물을 둘러보는 '척'을 했다.

신음소리같은  듣지 못한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디아나의 모습이 꽤 귀여웠으니까.

손대면 그대로 펑하고 터질 것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금붕어마냥 입을 벙긋벙긋대는데..

-더어..!  찔러줘..!

그러는 와중에도 신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까 전보다 옥타브가 반 정도 올라간 게 슬슬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는 모양.


여러 명이서 생활하는 공간이니만큼 방음처리가 아예 안 되어있는 것도 아닐텐데 이렇게 소리가 들려올 정도면..


'1층 아니면 2층인데.'

맘같아서는 창문이 열려있는 곳을 찾아내서 얼마나 격렬하게 해대고 있을지 직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서 참았다.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디아나 앞에서는 최대한 순진한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있으니까.


과감해지는 건?

그 앨리스라는 빨간머리의 도동년 앞에서면 충분했다.


그래서..

"선배?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가신데.."

디아나가  그러는지 눈치채지 못한 척 의뭉을 떨었다.


그랬더니 더욱 어쩔  몰라하더라.


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거리는데..

'크으으..'

 모습을 더 보고 싶어서 혹시 기숙사 안까지 들어가 볼 수 있을지 물어봤다.


기숙사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기숙사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한다는 소리고 그 말은 지금도 간간히 들려오는 이 신음소리가  커진다는 소리니까.


마침내 내가 신음소리를 들은 듯한 반응을 보이게 되면 디아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런 마음으로 안내를 부탁해봤지만 안타깝게도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다.


대앵~

어느 순간 울려퍼지기 시작한 종소리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안내는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군."


'쩝..'

종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디아나가 내뱉은 말에 속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어쩌겠는가?

입학식이 시작된다는데.


아쉬워하는  디아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좋은 분위기에서 학원 내를 돌아다니는  꽤 마음에 들었던 걸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스스로가 아쉬워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입학식 장소는 이쪽이다."

입학식이라길래 강당같은 걸 상상했는데 의외로 운동장에서 하더라.

디아나와 헤어진 건  앞에서였다.

기사부 부장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는 그녀였기에 나는 아쉬움을 무릅쓰고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자자, 신입생 여러분들은 앞사람과 줄을 맞춰서 서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학생회 소속일 것으로 추정되는 제복차람의 여성들이 열심히 떠들어대는 걸 싹 무시하며 운동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제복을 차려입은 한 소년을 말이다.

'역시 주인공!'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놈은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존재감이 어찌나 강렬한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움직이며 신입생들을 통제해야할 학생회 소속의 학생들마저도 넋을 잃고 놈을 쳐다볼 정도였다.

솔직히 배알이 꼴렸다.


그래서 곧장 놈쪽으로 향했다.


놈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나눠먹을 생각으로.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고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놈의 옷 곳곳에 져있는 주름같은 것이 말이다.


'어이구야..'


여기가 군대였고 놈에게 선임이 있었다면?

저 꼬라지를 본 순간 바로 니위내밑을 부르짖었을 거다.


저저 제복이 주름진 꼬라지좀 보라지.

5회차 시절 기사단에  들어가서 막내였을  내 선임이었던 놈이 봤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놈의 복장 상태를 보며 천천히 놈을 향해 다가가니..

"웅성웅성."

"수군수군."

주인공 놈의 미모에 압도되어 쥐죽은  조용했던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동시에 이쪽을 향해 몰린 시선이 배는 많아졌다.

살짝 부담스러우면서도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가게 만드는 그 시선을 만끽하면서 주인공 놈의 어깨를 가볍게 툭 건들였다.


"일찍 왔네?"


"어? 으응.."


어제 식당에서 봐놓고서는 쓸데없이 낯가리기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기차 역에서 받았던 것의 배는 되는 시선이 한 번에 쏟아지니 새삼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부담스럽지?"


"응?"


"사람들 시선 말이야."

살짝 목소리를 죽여서 작게 속삭이니 놈이 살짝 얼떨떨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을 향해 살짝 웃으며..


"그래도 입학식 시작되면 좀 나아질 거야."


아까 전부터 자꾸만 눈에 밟히던 놈의 구깃구깃한 옷의 끝부분을 잡고  잡아당겼다.


다림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가지고 저 구깃구깃함을 어쩔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놈의 반응이 살짝 이상했다.

"뭐, 뭐하는 거야!"


무슨 치한이라도 당한 것마냥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내 손을 거칠게 탁 쳐내는데..


워낙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황당함이 앞섰다.

황당함 뒤로 이어진 건 내 안에 있는 배려심과 오와 열의 요정이 흑화하면서 내는 '이 시벌놈이?'라는 감탄사였고.

그쯤에서 나는 방금 내가 한 행동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도 자각치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실례를 저질렀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하나씩 체크해봤다.

내가 한 행동에 실례가 될만한 부분이 있는 지를.



??? : 가슴이나 엉덩이같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되는 곳을 건드렸습니까?

'놉.'

??? : 그럼 당하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낄만한 행동이나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전혀요?'

??? : 인류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뭔데 이 새끼야.'


??? : 그럼 왜 맞았누.


'그걸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닐까요? 선생님?'

하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손등을 쳐맞아야만 했는 지가 말이다.

아니 내가  스킨십같은 거라도 시도했다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나같았어도 남자 새끼가  상대로 함부로 스킨십을 시도했다면 죽빵부터 갈기고 봤을테니까.

그렇지만 내가 건드린 건?


애초에 몸도 아니었다.


옷, 그 중에서도 옷 끝자락만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고..?


생각할수록 왜 얻어맞아야 했는지 이해가 안 가서 빡치는 와중에  빡치는 부분이 있다면 괜히 주인공이 아니라는  증명하듯 놈의 손이 쓸데없이 맵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매운지 얻어맞은 손등이 놈의 손 모양대로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누가보면 시발 단풍잎 모양 도장 찍은 줄 알겠네.




??? : 야이 ㅋㅋㅋ 그래서 화낼꼬얌? 응? 화내실 거냐고요? 상대는 주인공인데?


그래, 제일 빡치는 부분은 그거다.


하필이면 그런 짓을  게 주인공이라서 화도 못낸다는 거.


그게 젤 빡쳤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저 놈은 주인공이고 나는 조연따리인 것을.

꼬우면?

주인공 하면 된다.


그러질 못해서 참아야하는 것이고.

'참아야 하느니..'


참을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던데..


내가 볼  참을   번이면 살인을 면하는 게 아니라 홧병으로 뒷목잡고 쓰러지기  좋았다.

'으아아아아아!!!!!!!!!!'

속으로 발버둥을 쳐대면서도 겉으로는 손등을 부여잡고 놀란 '척'을 했다.


그리고는 놈을 향해..


정말로 하기 싫었지만...


"그, 미, 미안.. 옷이 구겨져있길래 펴주려고.."

사과했다.

그래도 이번 주인공 놈은 그렇게까지 경우가 없는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걸 인정할 양심 정도는 있는 지 자기가 너무 민감했다면서 역으로 사과를 건네왔으니까.

"남이 내 걸 건드리는 거에 좀 민감해서.. 미안, 많이 놀랐지?"


"아.."


그러셨구나.

그런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


는 개뿔 시발 두 번 건드렸다간 칼침놓을 새끼일세 이거.


놈의 손에 무기같은게 들려있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검같은 거라도 쥐여져있었다면 그대로 장기자랑 각이었을 거다.

위장부터 시작해서 십이지장에 이르기까지 아주 골고루 꺼내가면서 자랑했겠지.

아니면 그전에 쇼크사로 7회차를 향해 직행했던가.

그나저나 쇼크사라 하니 전생에 뒤지기 전에 마지막에 보았던 전 성녀였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충고해준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러는 게 여러모로 신상에 좋았을텐데 말이다.


'알게 뭐야.'

어차피 그 세계는 글렀다.


용사라는 새끼가 지 혼자 살겠다고  시점에서 인류의 명줄은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필이면  빡치게 만든 주범이 바로 앞에 서있다보니 자꾸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런 식으로 생각을 억지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것이 척봐도 이사장이나 교장쯤 되어보이는 인물이 단상 위로 올라와 입학식의 시작을 선언했다.

입학식은 말 그대로 입학식이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는 소리다.

사실 입학식이라는 행사의 속성상 특별한 뭔가가 있기도 어렵긴 하지만.


그나저나 나이 지긋하시고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양반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연설을 길게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돋보기를 안 쓰고 있어서 신입생들의 얼굴 위에 떠올라있는 지루하고 다리아파 죽겠다는 표정이 보이질 않는 걸까.

어쩌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걸지도 모르지.

새디즘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한창 때의 파릇파릇한 남자들이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고.


'위험한 년이네 저거.'


"에- 그럼 또.."


이곳이 무한히 반복된다던 무간지옥인 걸까.

애초에 조연의 저주라는 놈에게 묶여있는 시점에서 내 인생 자체가 무간지옥이긴 하지만.

이건 나도 버티기 힘들었다.


아니, 버티기 힘든 건 재학생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들의 얼굴에도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신입생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미리 준비해둔 의자에 앉아있다는 점이랄까.


'이 십새기들이?'

지들끼리만 편히 앉아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길들이기 일 것이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만 하는 여자 입장에서 남자들이 그 점을 이용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걸 이런 식으로라도 억눌러 보겠다는 생각인 거겠지.

"거기! 졸지 마라!"


간간히 으름장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확실했다.

그렇게 입학할 것을 통보받아 모인 남자 신입생들이 지루함과 슬슬 아려오기 시작한 발바닥의 고통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자자, 좋은 연설 잘 들었구요~ 다들 신입생들을 위해 열정적인 연설을 해주신 이사장님께 환호와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세주가 등장했다.

입학식을 준비하는 와중에 몰래 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지루함에 면역이 없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도 방금의 연설은 고역이었던 걸까.

아까 부회장이라는 여자에게 뒷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갔던 레이시아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연설에 열중하고 있던 이사장이라는 여자의 손에 들려있던 마이크 역할의 도구를 압수하면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신입생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한데 심지어  당사자가 여신처럼 아름답기까지 한 상황.


단상 위에 당당히 버티고  그녀를 향해 신입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녀가 요구한 박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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