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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14)화 (14/366)



〈 1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디아나 시점****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디아나는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 더 당황스러운 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 장본인이 버젓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이었다.

얼굴의 열기가 가라앉을만 하면 아까 있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나는 건.


'으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방금 있었던 일인 것마냥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경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다시금 볼이 뜨끈뜨끈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꼭 엄청 추운 겨울날에 바깥에서 훈련을 하다가 따뜻한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화악하고 올라오는 열기에 디아나는 슬쩍 맞은 편에 앉은 이의 눈치를 살피다가 볼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하니 그나마  나았다.


 달아오르기 시작한 얼굴에 비하면 서늘하기 그지없는 손이 뺨의 열기를 진정시켜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볼에 손을 얹은 채로 디아나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힐긋거렸다.


저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두 뺨이 달아오를 연료를 제공한 장본인은 마차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게 그렇게 신기한 걸까.


누군 얼굴이 화끈거려서 죽을 맛인데 말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구경에만  빠져있는 후배, 아니..


'이안.'

남자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름을 속으로 읊조린 순간, 디아나는 얼굴이 전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어느새 그녀의 안에서 이안에 대한 불만은 흔적도 없이 증발한지 오래였다.


직접 육성을 내서 부른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자의 이름을 불러본 게 사실상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기분이 되게 이상했다.


가슴 사이게 간질간질한 것 같기도 하고, 찌르르 울리는 것 같기도 하달까.

왠지 모르게  짜르르 울리는 느낌이 손끝으로까지 전염된 것 같은 느낌이라 디아나는 괜스레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풀길 반복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상한 느낌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까.

'대체..'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일까.


준비운동이라도 하는 것마냥 기계적으로 손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보았다.


계기랍시고 떠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개중에 제일 강렬한 빛을 발하는  다름아닌 지금 올라타있는 이 마차 안에서 벌어졌던 일이었고.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을 한채 서스럼없이 자신의 발에 손을 대던 이안.

 광경을 떠올리니 다시금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중요한 건 그런  아니었다.


'역시..'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디아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생각해보니 웃겼으니까.


며칠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누가 알았을까?


전에는 딱히 관심도 없었던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민하게 될 거라는 걸.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생각만해도 귀찮고, 대체 왜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해야만하는 것이었다.


기사로서 출세를 꿈꾸고 있었기에 승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변 평판을 고려해서라도 결혼을 해야했으니까.

그렇기에 여자구실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만하는 세태를 불만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우스운 일 아닌가?

기사는 결국 칼잡이를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억지로 욱여넣고 좋게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칼잡이는?


칼만 잘쓰면 그만이다.

그러러고 있는 게 칼잡이니까.


그런데 그런 칼잡이로서의 능력 증명과 결혼 사이에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랬던 결혼관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결혼은 해야만하는 상황.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하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한 것.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주 떠오르는 건 지금 맞은 편에 앉아있는 이안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아니다.

자신의 안에서 이안의 이미지는 어쩌다가 돌봐주게된 후배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처음 본 자신에게 의탁을 청한 게 적잖은 당황을 선사해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랬던 이안의 이미지가 뒤집어진  연무장에서 그와 대련을 하고 난 후였다.

대련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안이 기사부로의 전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밝혔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  생각 없었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자에게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게 바로 기사부의 문턱이다.

기사부 입학만 노리고서 십 년이 넘도록 준비해도 떨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일진데 그걸 남자가 통과하려든다?


어찌어찌 학원 측에서 내건 조건을 만족시킨다 할지라도 어마어마한 저항에 부딪힐 거다.


뭣보다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같지도 않았다.


학원 측에서 내걸 조건이 결코 쉬울 리 없으니까.

중간에 전과하는 것이니만큼 정상적으로 입학을 시도할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건이 내걸릴 것이고,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그걸 넘어서기 힘들 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안이 쌓아올린 무는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었다.

스스로 금칠하는  같아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화끈거리긴 하지만, 자신과 대등하게 대련을 펼칠 정도라면 일단 기사부 내에서도 중견 수준은 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런 무력을 가지고도 골목에서는 왜 그리 쩔쩔맸는지가 살짝 의문이긴 하지만, 그 때는 무기라고 부를만한 게 없었으니까.


대련할 때 썼던 봉같은 거라도 쥐어져있었다면 모를까 빈손으로 세 명이나 되는 여자들과 맞서려니 겁이 났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바로 그 대련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안이 어지간한 여성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속된 말로 욕심이 났다.


학생들의 급을 나눠서 높은 등급을 받은 이들끼리 연결시켜주는 학원의 세태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입장에서 스스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가문을 이어야할 의무를 짊어진 귀족이었고, 그렇기에 가문과 스스로를 떨어뜨려서 생각하기가 힘들었으니까.


가문이 후대까지 영광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뛰어난 능력을 가진 후계를 배출하는 건 필수였다.

그리고 뛰어난 후계를 배출하려면?


당연히  토양이 되는 씨가 좋아야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치고 범상치 않은 무력을 가진 이안에게 관심이 생기는 건 귀족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확실하진 않았지만 이안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무인으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자신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 걸로 추정되기까지 하는 상대.


'게다가..'

심지어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다.


귀여운 쪽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잘생김이긴 했지만, 그래도 잘생긴 건 잘생긴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뭣보다 훤칠하기 그지없는 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성치곤 제법 큰 편인 자신이었기에 옆에 서는 남자의 체구가 볼품없으면 그만큼 꼴사나운 모습도 또 없을테니까.


헌데 이안이라면?

잘 어울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림으로 그린 듯한 광경이 될 것만 같았다.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학원을 산책하는 광경을 상상한 탓일까?

디아나의 안에서 망상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디아나는 이안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에게 검을 가르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받은 아이는 뛰어난 재능을 자랑했고, 굉장히 흡족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딸을 바라보는 자신에게로..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망상에 퐁당 빠져버린 디아나는 알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절찬리에 진행중인 망상의 또다른 주인공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디아나는 망상을 이어나갔다.

할머니~~하고 손자와 손녀가 자신에게 달려와 안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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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은 의외로 수도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점유하고 있는 부지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안은 수도와는 별개의 공간이라 말하는 것처럼 흰색의 담벼락이 학원과 수도 거리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나와 디아나가 타고 있던 마차가 멈춰선 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흰 담장이 끝을 고했을 때였다.


학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듯 세 개로 나눠진 거대한 문이 우릴 반겨주었다.

"도, 도착했군."

말은  왜 더듬는 걸까.

어쩐지 나와 시선을 맞추질 못하는 디아나 쪽을 흘깃거리고 있으니 그녀가 한  앞서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 그녀를 따라서 마차에서 내리니 수많은 마차들이 학원 담벼락을 따라 늘어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

이거 완전 불법 주정차구역 뺨치는데.


디아나처럼 기숙사에 머무르지 않고 저택에서 통학하는 이들이 은근 많은 걸까.

길게 늘어선 마차 행렬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으니..

"그, 이안? 잠시 이쪽으로 오도록."


디아나가  호출했다.


들어가려면 간단한 절차가 필요하다나?


다행히 내 옆에 버티고 선 디아나는 일종의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서 있는 자세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꼿꼿한 것이 척봐도 깐깐할 게 분명한 병사들도 디아나가 나서니 순한 양이 되어버렸으니까.


"나중에 입학식 끝나고 학부 사무실에 반납해주시면 됩니다."


"네에, 고생하세요."

덕분에 어렵지 않게 진입을 허락받은 나는 수고하라는 의미로 병사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옅은 미소는 덤이었다.


딱히 별 생각없이 저지른 짓이었는데..

"아, 아닙니다!"

생각외로 후폭풍이 엄청났다.


내게 인사를 받은 병사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소리를 빽 내지른 탓이었다.

아마 제가 만날 수 있는 최고 상급자가 와서 고생많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해도 저정도 소리는 안 나오지 않을까.

덕분에 다시 한  깨달아버렸다.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생각치도 못했던 사건이었지만 그로인해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디아나가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하고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입구를 지키던 여병사한테 친절하게 대한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 생각한 건지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디아나의 모습을 보며 터져나올 뻔한 웃음을 다시 속으로 삼켰다.

그나저나..

"웅장하네요."


"음, 학원의 자랑이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거대한 대로를 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디아나가 맞장구를 쳤다.


그것도 잠시, 그녀가 뭐라도 마려운 강아지마냥 묘하게 끙끙대기 시작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갑자기 왜 그러나 싶어 주변으로부터 날아와 꽂히는 시선을 느끼면서 디아나 쪽을 바라보니 연분홍빛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아직 시간도 남았는데 잠깐 산책이나 하는 건 어떤가?"


"산책이요?"

갑자기?


그런 뉘앙스로 반문하니 어차피 자신도 시간이 남아서 지금이라면 학원 내부를 안내해줄  있으시단다.

왠지 급하게 지어낸 티가 팍팍 풍기는 답변이었지만..


"그럼 그럴까요?"


모처럼 디아나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준 상황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음..! 그럼 일단 식당부터 안내해주도록 하지."

하긴 식당이 중요하긴 하지.


그 왜 먹기 위해서 사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고로 앞으로  신세를 지게될 식당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건 필수나 다름없었다.


해서 기꺼이 디아나를 따라나서니..

'흐으음?'


저번과는 살짝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일전에 그녀의 저택까지 안내를 받을 때 디아나는 말 그대로 안내라는 목적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헌데 오늘은 달랐다.

일단 간격부터가 그랬다.

살짝 앞에서 걷던 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바로  옆에서 나와 나란히 걷고 있었으니까.

보폭까지 맞춰가면서 말이다.


꼭 마치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과시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수많은 경쟁자들이 도사리는 학원 내부로 들어오니 새삼 위기감이 들기라도 한 것일까.

뭐, 나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어차피 히로인 후보가 아니라면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그들로 인해 디아나가 조금이라도 더 내게 절박해진다면 나야 땡큐니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디아나가 그녀답지 않게 열심히 떠들어대는  들어주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음? 디아나 경?"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제멋대로 뛰게 하는 목소리가 아는 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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