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운동으로 단련된 여자의 허벅지만큼 만지기 좋은 건 또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이 가진 특유의 부드러움과 운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탄력이 어우러지며 탄생하는 감촉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며 매혹적이니까.
왜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
그야..
'시발..'
디아나의 허벅지가 그만큼 끝내줬으니까.
손가락으로 꾸욱하고 누른 순간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이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젤리는 젤리인데 너무 탱탱한 나머지 모든 걸 튕겨낼 것같은 그런 젤리를 만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인데 심지어 풍겨져나오는 향기마저 끝내줬다.
분명 땀을 엄청 흘렸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복숭아 향기와 꼭 닮아있는 달큰하기 그지없는 냄새가 코밑을 맴돌았다.
그래서였다.
아주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건.
'어우.'
마성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디아나의 매력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것도 잠시, 이럴 때가 아님을 깨달은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던 걸 이어나가려 했다.
아까 멈칫한 시점에서 자연스러움은 물 건너간지 오래긴 했지만.
"네네, 그렇게 힘을 주신 상태에서 엉덩이를 천천히 뒤로 미는 느낌으로.."
내 딴에는 정말 순수하게,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주고자 내뱉은 말이었다.
문제는 나와 디아나의 자세였다.
지금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기 위해 그녀의 등 뒤로 돌아와있는 상황.
각도에 따라 백허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나는 디아나의 후방에 바짝 근접해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디아나가 '엉덩이'를 '뒤로' 미는 듯한 느낌으로 몸을 움직인다면?
"이, 이렇게..?"
스으윽-
어어하는 사이에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는 사과 모양의 엉덩이가 내 하복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접촉사고가 일어나는 걸 막기에는 말이다.
꾸욱-
허벅지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감촉을 지닌 부위가 헐렁한 바지에 감싸여있던 내 하복부를 꾸욱하고 짓눌렀다.
그 사이에 몰래 숨어있던 건 덤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듯 나는 지금 내가 들어와있는 이안이라는 놈의 피지컬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피지컬'중에는 가운데 다리의 사이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난 아니었지.'
기차에 있을 때 볼일 보러 가는 척 화장실로 들어가서 바지를 들춰봤었는데 왠 고구마 하나가 들어있더라.
그것도 그냥 쬐깐한 놈이 아니라 캐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놈이 말이다.
그렇기에 방금 디아나도 느꼈을 것이다.
내 다리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거대 고구마의 존재를 말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변한 디아나의 얼굴이 그 증거였다.
내 지시에 따라 엉덩이를 뒤로 내밀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린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다가 말고 굳어버린 나.
그런 우리 둘 사이로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걸 깨드린 건..
끼이이익-
"소가주님~? 여기 계십니까~?"
연무장과 연결된 쪽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집사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집사가 등장한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소가주님..?"
디아나를 부르며 연무장 안으로 들어서던 집사가 살짝 떨어져 서 있는 나와 디아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뒤따라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실수!'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창 분위기가 좋은 와중에 자기가 눈치없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한 걸까.
디아나의 결혼이 무슨 가문의 숙원사업이라도 되는 지 어제 보여주었던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는 집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집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수습한 집사가 예의 그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간밤동안 잘 쉬었냐고 질문을 던져왔고..
"신경써주신 덕분에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집사의 얼굴 위에 맴돌고 있던 흐뭇함은 내가 그리 말한 순간 배가되었다.
그런 나와 집사의 대화만 떼놓고 보자면 이건 뭐, 내가 디아나와 결혼하는 게 확정이라도 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오해를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게 디아나의 역할이건만 그녀는 그러질 못했다.
처음 느낀 남성기의 감촉이 그리도 충격적이었는지 그녀는 여전히 당황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무슨 일이지?"
그래도 이대로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걸까.
힘겹게 당황을 수습한 디아나가 집사를 상대로 방문 목적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진 집사의 답변에 다시 침몰해버렸다.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실지 여쭈러 왔습니다만.."
집사가 살짝 말끝을 흐리면서 내쪽을 힐끔거렸으니까.
꼬꼬마들끼리 소꿉장난을 하는 걸 보며 흐뭇해하는 듯한 눈빛은 덤이었다.
그런 집사의 태도는 디아나가 간신히 머릿속에서 지워낸 어떤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이제 막 붉은 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다시금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디아나가 금붕어마냥 입을 벙긋거렸다.
그리고 집사는 거기에 대고 아예 쐐기를 박았다.
"귀찮으실텐데 차라리 이곳에서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말씀만 하신다면 편하게 드실 수 있는 메뉴로 준비하도록 주방에 따로 언질해두도록 하겠습니다."
"..."
디아나는 답을 하지 못했고, 집사는 그걸 '긍정'이라 받아들였다.
"이런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그럼 전 이만.."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퇴장을 위해 뒤로 물러나면서도 끝까지 나와 디아나를 그쪽으로 몰아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이어지던 집사의 콤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디아나가 입을 연 건 집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아침은 이곳에서 해결하게 생겼군."
"그러게요."
쓴웃음과 함께 내뱉어진 그녀의 발언에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니 디아나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디아나의 의견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집사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활약 덕분에 어색해진 상태로 굳어버릴 뻔 했던 분위기가 풀어졌으니까.
다만 굳어지기 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할 수가 있겠는가?
누가봐도 아까 있었던 접촉사고를 신경쓰는 듯한 디아나를 상대로 나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고를 의식하는 '척'을 선보였다.
그렇게 서로를 신경쓰는 상태에서 디아나에게 몇 가지 운동법을 추가로 가르쳐 주다가..
"혹시 봉같은 건 없을까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밥이 올 때까지 제대로 운동이나 해볼 생각으로 그리 물었다.
"봉?"
"네, 한 이 정도 길이면 되는데."
양팔을 좌우로 벌려보이니 그런 날 보며 '흠..'하는 소리를 내던 디아나가 연무장 구석에 달려있던 종으로 다가가 그것을 두들겼다.
땡땡땡-!
그 소리에 반응해 등장한 사용인에게 내가 부탁한 길이의 봉을 찾아오라 지시하던 디아나가 대뜸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구, 굵기는 어느 정도면 되지?"
또 무슨 상상을 하셨길래 저렇게 말을 더듬는 걸까.
뭐,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뻔했다.
굵기라고 하니 굵은 게 생각난 거겠지.
그렇다면?
더 생각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음.. 한 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면 좋겠는데요."
"그, 그런가? 알겠다."
저저저 당황하는 꼴좀 보라지.
묘하게 허둥지둥거리는 디아나의 모습을 보며 고소를 삼키고 있으니 디아나의 말을 귀담아 듣던 사용인이 이내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디아나가 흘깃흘깃 내 눈치를 살피며 검을 휘두르고 있던 바로 그때.
그녀의 지시를 받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던 사용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그녀의 키보다 살짝 큰 봉 하나가 쥐어져있었다.
"확인해보겠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봉이 사용인과 디아나를 거쳐 내 손으로 들어왔다.
'표면이 살짝 까슬까슬하긴 하지만..'
이거야 천이라도 감으면 되는 거고.
사이즈도 그렇고 굵기도 그렇고 딱 내가 요구한 그대로였다.
흡족한 마음에 그것을 양손으로 나누어 잡고 허공을 향해 겨누니..
"흐음?"
내가 그걸 가지고 뭘 할지가 궁금했는지 내쪽을 쳐다보고 있던 디아나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창술.. 인가?"
"맞습니다."
"보아하니 대충 배운 솜씨는 아닌 것 같은데."
당연히 아니지 그럼.
창질로만 먹고 살았던 때도 있는데 말이다.
디아나의 발언에 쓰게 웃으며 허공에 대고 창을 몇 번 더 찔러넣었다.
"실은.. 기사부로 전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혔다.
그에 대한 디아나의 반응은..
"으음.."
애매~했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언젠가 지금 디아나가 하고 있는 눈빛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봤던 때가 있었으니까.
'언제였더라..'
3회차인지 4회차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아무튼 그때 나는 주인공 놈을 도와 한 기사단의 부기사단장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어쩌다가 여기사들의 훈련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훈련에 매진하는 여기사들을 바라볼 때 지었던 눈빛이 딱 저랬다.
암만 노력해봐야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안쓰럽게 여기는 그런 눈빛이라고 해야할까.
그도 그럴 것이 암만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여기사들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바라볼 때는 몰랐는데 정작 그렇게 바라봐지는 입장이 되니 뭐랄까..
'참..'
기분이 요상했다.
더러운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까리한 기분이랄까.
'어차피 기사로 일할 마음도 없긴 하지만.'
애초에 기사부로의 전과하겠다는 계획은 내가 생각해낸 게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 몸의 원래 주인, 그러니까 '이안 데일'이 품고 있었던 계획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따라가기로 결정한 건 다른 남자들마냥 일반부에 가만히 앉아있는 편보다는 그 편이 예비 히로인들에게 접근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명색이 주인공이란 놈이 다른 평범한 남자 놈들처럼 일반부에 가만히 눌러앉아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언제 어디서 디아나같은 예비 히로인이 툭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놈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모로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따라갈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솔직히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 조건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으니까.
그 계획의 원래 주인인 '이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런고로..'
알아봐야겠지.
마침 바로 앞에 그걸 알만한 상대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바로 어제 일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디아나의 부름에 응해 등장했던 갈색머리의 여기사가 그녀를 부장이라 불렀던 걸 말이다.
그 말은 디아나가 다른 학생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에 그녀라면 일반 학생은 알지 못하는 고오급 정보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해서..
"그런 의미에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디아나에게 대련을 청했다.
"흐음?"
내 요청에 디아나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약간 가소로워하는 느낌?
진짜 가소로운 건 자기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고개까지 숙여가며 말했는데 은근 배려심이 깊은 디아나가 거절할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살짝 쓴웃음을 지어보인 디아나가 잠시 허리춤에 끼워놓았던 목검을 뽑아들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제 주제를 모르는 후배한테 현실을 가르쳐주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알겠다."
고개를 끄덕여 내 요청에 대한 수락의사를 밝히는 디아나를 바라보며 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더 얹었다.
"그런데.. 혹시 천같은 걸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음? 봉에 감을 게 필요한 건가?"
"네, 그것도 있지만.."
디아나의 눈치를 살피듯 살짝 말끝을 흐리다가..
"끝부분에도 좀 감아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조심스럽게 도발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