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5)화 (5/366)



〈 5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주인공에게는 늘 조력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조력자란 늘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등장하는 법.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위기..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스무리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그렇다는 건?

'각이네.'

누군가 등장할 타이밍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예비 히로인이 되겠지.

'어디..'

우리의  히로인 후보는 어떤 분인지  번 느긋하게 감상해보기로 할까?


"헤헤헤헤헤.."

"흐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얼굴 위에 매단 채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통통이와 홀쭉이를 바라보며 살짝 얼굴을 굳히고 있으니..

척-


'얼씨구?'


그래도 꼴에 주인공이라는 건지 아니면 그동안 먹인 밥값을 하겠다는 건지 진이 날 뒤로 보내며 앞으로 나섰다.

 꼴을 보며 그래도 헛돈 쓰지는 않았구나..하고 속으로 코밑을 슥슥 문지르고 있던 순간.


"잠깐-!"


날카로운 고성이 우리가  있는 골목길을 꿰뚫었다.


"거기 지금 뭐하는 거지?"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절그럭절그럭하고 금속이 끼리끼리 부딪히는 소리였다.

타이밍 좋게 어둑어둑한 골목길 안으로 쨍하고 쏟아지는 햇살.


그것을 등진 채 골목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곳에 철판을 덧대어 만든 경갑으로 무장하고 있는 금발의 여기사였다.

역광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실루엣과 목소리만으로 여자라는  짐작할 수 있을 뿐.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을 하나로 모아서 묶은 그녀는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부하들을 보내놓고는 뒤에 서서 거대조직의 여보스같은 느낌을 뿜뿜 뿜어내며 생글생글 웃고 있던 빨간머리의 여자가 칫하고 혀를 차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을 말이다.

 마치 '귀찮은 년한테 걸렸네.'라고 한탄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상대방의 반응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묵직한 발자국 소리를 사방으로 퍼뜨리며 단숨에 일행 사이를 가로지른 금발의 여기사가 우리를 등뒤에 두고 빨간머리를 향해 돌아섰다.

빨간머리로부터 우릴 지켜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 순간 주인공 놈의 어깨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모습이 시야 속으로 박혀든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년이 바로 주인공과 처음으로 연을 맺게 되는 히로인 후보라는 걸.

얼핏 본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깎아지른 듯한 이목구비하며 척봐도 강직함이 느껴지는 시린 빛을 품은 신록의 눈동자하며 신이 세심하게 공을 들여 빚어낸 듯한 생물체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를 향해 가녀려보여도 굳건함을 품고 있는 등을 내보인 채로.

그래도 나름 이 개같은 짓거리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면서 각양각색의 매력을 갖춘 히로인들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저건 좀 충격적이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구애하는 세계다보니 히로인 후보들의 미모에도 자연스럽게 버프가 들어간 것일까.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반응이 덤덤해?

저 정도면 첫눈에 반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얼굴 정도는 붉힐 법 하지 않나?


생각외로 주인공 놈의 반응은 덤덤했다.

아니 저건 덤덤하기 보다는..

'관찰하는 느낌인데?'

이 놈은 또  이러는 걸까.


속으로나마 짧게 의문을 표하고 있는 사이,  여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말이 대화지 금발녀가 빨간머리를 일방적으로 추궁하는 형태였지만.

"앨리스 토르쟈."

저 년의 이름의 앨리스였구나.

그나저나 이름까지 알 정도면 둘이 어느 정도 안면이 있다는 소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솔직히 짐작이 되질 않았다.

그만큼 둘의 속성은 판이했으니까.

한쪽은 누가봐도 올곧음의 화신으로 보였고, 다른 쪽은 누가봐도 뒷골목 인간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사이에 접점이 있다는 건..

그만큼  빨간머리가 사고를 많이 치기라도 한 걸까.

기사로 보이는 여자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금발녀가 다시 한  빨간머리의 이름을 불렀다.


"앨리스 토르쟈. 왜 대답이 없지?"

그 소리가 골목을 타고 울려퍼진 순간, 나는 그 안에 깃들어있는 묘한 느낌을 캐치해낼 수 있었다.


그 묘한 느낌이란 다름아닌..


짬내였다.


예비 범죄자를 부르는 느낌이라기 보단 선임이 후임을 갈굴 때나  법한 그런 목소리라고 해야할까.

그런 게 여기사의 목소리에 깃들어있었다.


"네에에."

"이 둘을 데리고 뭘 하려고 했지?"


"아니이.. 별건 아니고 우리 귀여운 신입이들이 길을 잃은  같길래 말이죠."

"안내해주려고 했다?"

"그렇죠! 그게 선배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 덕분에 알  있었다.


저 뒷골목 깡패같은 느낌을 풀풀 풍기던 빨간머리도 나와 진이 입학하게될 '학원'의 학생이라는 걸.


그 말은?


저년또한 히로인 후보일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정상적으로 엮인  아니라 좀 요상하게 엮인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되었건 엮인 건 엮인 거니까.


'어쩐지..'

히로인을 부각시켜주기 위한 용도의 엑스트라 치고는 미모가 범상치 않더라니.

한 순간에 두 명이나 되는 히로인 후보와 마주치게 된 나는 잠시 둘을 비교해보았다.

여기사 쪽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빨간머리도 어디가서 빠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얼굴도 그렇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도 탄탄함을 갖춘 몸매도 그렇고 침대에서 굉장히 화끈해질 것만같은 타입이라고 해야할까.


그에 비해 여기사쪽은 일단 얼굴은 합격이긴 해도 몸매 쪽이 아직 미지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슴 쪽에 덧대어진 철판이 그녀의 몸매를 꽁꽁 숨겨주고 있었으니까.


하체야 뭐..

검술하면 하체 아니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내 취향?

나야 둘 중 한 명을 고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여기사 쪽이었다.

난 기본적으로 미드가 아닌 바텀 파인데다가 여기사 쪽의 미모가 워낙 넘사벽이니까.

꾸미지 않은 게 저정도인데 제대로 작정하고 꾸미면 어느 정도일지 어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마무리 되려나?

길을 잃은 것 같아 안내를 해주려 했다는 빨간머리의 증언(?)과는 다르게 그녀의 일행이 우릴 보며 지었던 표정은 누가봐도 단순히 안내만 해주려는  아니었지만 여기사가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니까.

뭣보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인데 같은 학원 소속인이상 더 추궁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보고 있으니..

"그래? 그러면 그 선배역할이라는 거 내가 대신해도 상관없겠지?"

여기사가 선언했다.


이 둘은 내가 데려갈테니 넌 이만 신경끄라고.


그에 빨간머리가 무어라고 항변하려 했지만..

"애초에 그게 내 역할이니 말이야."

그 말 한 마디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를 향해 등을 보이고 있어 금발녀 쪽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앨리스라 불린 쪽이 분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순순히 포기의사를 밝힌 걸 보면 분명 보통 표정은 아니었으리라.


"네에네에, 그러시겠죠."


그렇게 앨리스라는 여자가 제 패거리를 데리고 사라지고, 그렇게 막혀있던 길이 트이고 나서야 여기사는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이번에 학원에 입학하기로  예정자들 맞나?"


통성명이나 그런  없었다.


짙게 풍기던 짬내 만큼이나 대화방식도 군인의 그것에 가까운지 다짜고짜 우리의 정체부터 묻는 그녀의 발언에 속으로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한다..


여태껏 주인공 놈을 상대로 해놓은 이미지 작업을 생각하면 여기서는 나서기 보단 사리는 게 맞긴 한데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주인공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입을 쳐 다물고만 있었다.

아까는 별 반응이 없더니 페이스  페이스를 하고 나니 여기사의 미모에 새삼 홀리기라도 한 걸까.


뭐, 예쁘긴 하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나라도 나서야하나?

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여기사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이런 내 소개부터 했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만 깜빡했다는 것처럼 쓴웃음을 지어보인 그녀가 스스로를 소개했다.


"내 이름은 디아나 앨런이다. 대충 눈치챘겠지만 너희가 입학하게된 학원의 기사부 소속이고.."


이렇게 검까지 찬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던  우리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신입생들을 찾아서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이 표식을 본 적 있나?"


그러면서 방패 위에 칼과 완드, 그리고 펜이 교차하고 있는 문양이 새겨진 패같은  꺼내서 내미는데 그거라면 주입된 기억 속에도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입학 통지서에 혹시나 수도에 도착해서 길을 잃었을 경우 저 패를 가진 이한테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그랬었지.

그럼 저 패의 모양을 그대로 위조해서 학원의 인물을 사칭하는 무리가 튀어나오면 어쩌나 싶었지만 학원 측에서도 다 생각이 있으니 그런 방법을 택한 거겠지.

그리 생각했는데 과연 디아나가 꺼내보인 패는 단순히 생김새만 요란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 세계판 위치추척기라고 해야할까.


알고보니 디아나는 별 이유없이 골목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다.


신입생, 그중에서도 남자 신입생들에게 배부된 입학 통지서에는 그 패와 감응하는 술식이 새겨져있고, 그래서 디아나가 가진 것과 같은 패의 보유자는 신입생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다는 것.

'어쩐지..'

과할 정도로 입학 통지서를 지참할 걸 강조하더라니만.


다 이걸 위해서였나?

물론 저 패의 존재이유가 단순히 길잃은 신입생을 찾아내어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닐거다.


 패는 이 세계에서는 매우 희귀한 존재인 남성을 그들을 노리는 모종의 세력들로부터 보호하기 수단임과 동시에 남성들을 감시하기 위한 물건이기도 할테니까.

모든 남자들이 순순히 국가의 부름에 응하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때도 저 패가 사용되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덕분에 다시 한 번 실감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남자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 지를.

'자원 취급이라.'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다.

가본 적도 없고, 주입받은 기억에도 그와 관련된 건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와 주인공 놈이 적을 두고 있는  나라만큼은 남자라는 존재를 그런 느낌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걸 과연 좋아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취급에 쓴웃음을 지어야하는 걸까.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상황에 속으로 혀를 차고 있으니 나와 주인공 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디아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튼 목적지가 있다면 안내해주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얼른 말하라며 턱을 까딱이는 그녀의 모습은 여자라기 보단 잘 훈련된 기사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고.


원래 저렇게 올곧은 타입일수록 한 번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변하는 편이니까.


솔직히 눈앞에 있는 디아나가 그런 표정을 지어보인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됐지만 그래서  구미가 당겼다.

원래 어렵고 희소한 것일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뭣보다..'

돈이  있어보인단 말이지.

확인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 악세사리 같은 게 아니라서 확신까진   없었지만,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는 검도 그렇고 입고 있는 갑옷도 그렇고 흔히 구할  있는 물건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돈에다가 권력까지 있어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냄새가 솔솔 풍긴달까.

몸매는 아직 확인해보지 못해 미지수였지만 압도적인 미모에 이런 중요한(?) 임무를 배정받게  정도로 윗선의 신뢰를 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재력적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다는 점까지.

그녀만큼 내 노후를 맡기기에 적합한 인재가 또 있을까?


'문제는..'


저 완고해보이는 여자를 어떻게 꼬시냐는 건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디아나의 취향은 나보다는 주인공 놈 쪽인 듯 했다.


그래도 여자라고 귀여운  좋아하는 모양인지 아까 우리 둘을 번갈아볼 때 나보다는 주인공 쪽에 시선이 좀  오래 머물렀으니까.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그녀의 관심을 내쪽으로 가져오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불가능할 터.

해서..


"그.. 혹시.."

얼른 목적지를 대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받으며 입밖으로 내뱉었다.

"며칠동안만 선배 집에서 신세  질  있겠습니까..?"


그녀 입장에서는 폭탄 발언이나 다름없을 발언을.


아니나 다를까  말에 디아나의 눈썹이 거칠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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