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4)화 (4/366)



〈 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환-이나 -빙-중 둘 중 하나라는 판단이 섰다면 둘 중 어느 쪽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내가 볼땐 환이나 빙이나 솔직히 둘다 거기서 거기니까.

'나쁘지 않아.'

그리고 놈이 환생자나 빙의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내게도 좋은 소식이라 할  있었다.

놈이 이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과 합치되지 않는 자기만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이 놈의 눈을 가리는 안대가 되어줄테니까.

쉽게 말해 속여먹기 딱 좋은 타입이랄까.


아마 이 놈은 내가 예비 히로인들의 곁에서 대놓고 얼쩡거려도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놈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이 세계의 '남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그렇게 만들어줄테니까.

그만큼 선입견이라는 놈은 굉장히 무서운 놈이다.


한편으로는 나무 뿌리 같기도 해서 일단 한 번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뽑아내기가 무진장 어려운 놈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나는 놈에게 '좋은 놈'이자 이 세계의 일반적인 '남자'의 이미지로 남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보다 확실하게 놈의 눈을 가릴 수 있을테니까.


해서..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속으로 타이밍을 재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놈이 편히 휴식을 취할  있도록 놈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효과는 확실했다.

날 바라보는 놈의 눈빛이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으니까.


그렇게 포인트를 따내는 데 성공한 나는 그 다음부터 호감을 쌓는데 주력했다.


솔직히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자그마한 지출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좌석을 두 개나 차지한 걸 보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


'하긴..'

생각해보면 이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놈은 고아였다.

그나마 남자라서 마을 전체의 도움으로 저렇게 번듯하게 자랄  있었던 거지 만약 여자였다면?


그러지도 못했겠지.

아무튼 그런 처지니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좌석표를 두 개나 구매한 것도 상당한 지출을 감수하고서 저지른 일이겠지.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렇게 대책없이 저질러서야 되겠는가?

안 그래도 지갑사정이 빠듯할텐데 말이다.

속으로 끌끌하고 가볍게 혀를 차면서 눈앞에서 내가 사준 음식을 정신없이 들이키고 있는 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차가 목적지인 수도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 나에 대한 놈의 호감도는 연일 상한가를 그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밥을 사준 덕분이었다.

물론, 놈을 배려하는 척 적당한 핑계를 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당칸은  여자들로 가득했기에 혼자 먹기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더니 놈은 그대로 속아넘어갔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애초에 부모가 없는 건 '이안'이라는 놈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안과 놈은 사정이 달랐다.


놈이 친척하나 없는 천애고아인 반면에 이안에게는 결혼한 형이 있었으니까.


그런 형이 보내준 돈으로 이안의 주머니는 빵빵하지는 않아도 꽤 여유가 있었다.


주문할 때 1인분 정도 추가하는 건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정도로.

'그나저나..'


진짜 잘 먹네.

이게 맛있나?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내 앞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았다.


접시 안에는 허여멀건한 파스타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비쥬얼만 보면 크림파스타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냥 소금 좀 친 물에 파스타를 삶은 듯한 맛이었다.

이게 뭐가 그렇게 맛있다고 저렇게 흡입을 해대는지..

관상학적으로 아무 거나 줘도  먹을 상이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이런  맛있게 먹을  있다니 막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수준이었으니까.

뭐, 나야 덕분에 편했다.


어지간하면 다 잘먹는 덕분에 놈의 몫으로 들어가는 식비가 줄었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몫의 접시를 깔끔하게 비워낸 놈이 내 앞에 놓인 걸 힐끔거리길래..


"먹을래?"


살짝 웃으며 권해봤다.


그래도 얻어먹는 입장에서 양심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내 제안에 혹한 듯한 눈빛과는 다르게 놈은 일단 사양을 표했다.


"아, 아냐.."

"내가 입맛이 별로 없어서 그래. 그리고 이렇게 많이 남기면 아깝잖아?"


"그, 그렇긴 한데.."


거절할거면 끝까지 거절하던가 재차 권했더니 언제 사양했냐는  귀를 팔랑대는 놈을 보며 내 몫의 접시를 놈의 앞으로  밀었다.

동시에 깔끔하게 비워진 놈의 접시를 내쪽으로 끌어당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졸지에 비웠던만큼 고스란히 리필을 받게 된 놈이 연신  얼굴을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보다가 그대로 제 앞에 놓여진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많이 먹고 쑥쑥 크렴.

나는  먹는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부모의 심정으로 놈의 흡입을 바라보았다.


지금 체구는 솔직히 너무 여리여리했으니까.

저 몸으로 사람 하나 죽일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앞으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갈 주인공이라는 놈의 몸이 저렇게 비리비리 해서야 쓰겠는가?


'뭐..'


남녀역전 세계임을 감안하면 적과 싸우는  주로 주인공 옆에 붙은 히로인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일단 피지컬을 키워놔서 나쁠 건 없으니까.


고로 이건 일종의 투자나 다름없었다.

주인공 놈의 안에서  이미지를 좋게 만듦과 동시에 주인공의 피지컬까지 키워주는 일석이조의 투자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잘도 쳐먹는 주인공, 아니 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혹시 걱정되서 그래?"


자길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듯 흡입을 멈춘 놈이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무엇에 대한 걱정인지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탄 기차는 이제 수도를 코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아마 오늘 오후 쯤이면 수도에 도착하게될 터.


수도에 도착하고 나서는?

학원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는 따로 있었다.


학원에 다니고 있는 여성들과 교류하며 그들 사이에서 배우자감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와 주인공 놈이 수도로 향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한 마디로 학원이라는 장소는 국가에 의해서 차려진 대규모 맞선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를 따먹고 싶어서 안달이난 한창 때의 여성들이 득실거리는 장소라고 해야할까.


그런 곳으로의 도착을 앞두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초식속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 세계의 '남자'라면 걱정이 되서 입맛이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주인공 놈의 시선 속에 깃들어있던 묘한 확신이 한층 더 강화되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쯤 놈은 내가 이 세계의 다른 남자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준다면야 나로서는 땡큐였다.


놈의 머릿속에 그런 인식을 박아놓기 위해서 요 며칠동안 이렇게 열심히 작업을 쳤던 거니까.


"걱정하지마. 별 일이야 있겠어?"


"으음.."


애매한 표정을 한채 고개를 끄덕이니 놈이  잠깐 사이에 바닥이 드러난 접시를 옆으로 밀어서 치웠다.


그리고는 휴지를 뽑아들어 입가에 묻은 것을 문질러 닦는 놈을 향해..


"아, 그러보니까 진."


"응?"

"기숙사 입사날까지 지낼 곳은 정했어?"


언제 꺼낼지 속으로 타이밍만 재고 있었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놈의 반응은 딱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난감해하는 듯한 반응.


"음, 글쎄..? 너는?"

그것을 잠깐동안 얼굴 위로 내비췄던 놈이 은근슬쩍 화살을 내게로 돌렸다.

"나?"


나야 뭐, 이번에도 이 몸의 형님께서 힘을 좀 써주셨다.


이안의 형은 제법 유명한 상단의 주인을 부인으로 두고 있었기에 동생이 며칠동안 지낼 숙소를 잡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수도에 입성하게 되면 곧장 그곳으로 향해 짐부터 풀 예정이었다.


학원이라는 곳이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학원 내부야 굳이 서두를 필요 없이 앞으로 질리도록 보게될 테니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지금 중요한  그런 게 아니라 요 며칠동안 행해왔던 호감도 작의 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그래서 말인데.."

"응?"

"너만 괜찮다면 내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건 어때?"


해서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드니 놈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놈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였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달까.


그렇게 자존심을 살리고 싶으면 계속 거절을 하던가 이 놈은 그럴 듯한 핑계만 손에 쥐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싹 바꾸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고로 이번에도 핑계거리가 필요하신 모양이다.


뭐가 좋을까.


어떤 핑계를 대야  놈에게 마음의 빚이라는 놈을 지워둘 수 있을까.


솔직히 여태껏 밥을 사준 거야 마음의 빚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거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갚으라고 하기도 애매한 금액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숙박비까지 더해진다면?


마음의 빚이 되기에는 충분하겠지.


고로 어떻게든 이 놈을 숙소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나도 남자라서 이왕 숙소를 같이 쓸 거라면 시커먼 남정네 놈보다는 잘빠진 몸매의 여성 쪽이 좋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야 못 참아줄 이유도 없겠지.

참으로 다행히도 내게는 놈 한정으로 만능에 가까운 핑계거리가 쥐어져있었다.

"그게 실은.."

무슨 뜻이냐는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는 놈의 시선을 받으며 멋쩍은 척 볼을 긁적거렸다.


"아무리 수도라고는 하지만 우리한테는 외지나 다름없잖아? 그런 곳에서 혼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좀 걱정이 되서 말이야."

"아.."


"너도 그렇지 않아?"

"그, 그렇지."

그렇지는 무슨.

그런 걱정 따위는 요만큼도 안한 눈치구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놈의 표정연기를 눈에 담으면서 살살 놈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며칠동안만 같이 좀 지내자고.

"그렇지만.. 음.."

그러자니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놈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에이,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치, 친구?"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

부정하자니 내게 얻어먹은 밥이 아직 완전히 소화되기도 전일테니까.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놈을 내 숙소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니..


뿌우우우우-

타이밍 좋게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통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걸 알려왔다.


수도가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나와 진 놈은 미리 짐을 챙겨놓은 상태였기에 기차가 멈춰서자마자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날아와꽂힌 것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성들의 시선이었다.

'어, 음..'

설마  정도로 남자가 귀한 걸까.

 번에 몰려든 시선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 정도는 아닐 거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흔치 않은 외모의 남자 둘이 나란히 붙어있으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몰린 거겠지.

사람이 많다 못해 넘치는 장소다보니 딱히 위험한 일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여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티나지 않게 은근히 여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진 놈도 이렇게 시선이 대량으로 몰린 건 처음이었는지 살짝 당황한 눈치였고.


"이, 일단 나가자."

해서 그리 제안하니 놈이 그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주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역을 벗어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니..

"어.."


막다른 골목이 튀어나왔다.


막다른 골목과 주인공이라니.

보통 이런 경우에는 불량배 무리에게 위협받는 히로인을 발견한 주인공이 그걸 보고 구해줌으로써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여태껏 겪어왔던 상황들과는 다르게 골목 안은 텅 비어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싶어서 진 놈과 함께 그대로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어머나~? 못 보던 얼굴들이네?"


나긋나긋한 음성과 함께 골목 사이사이에서 껄렁껄렁해 보이는 여자들이 튀어나왔다.

얼굴 위에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한가득 베어문채로.

'아하..'


그 모습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남녀의 입장이 서로 바뀌어버린 바람에 주인공과 히로인의 역할도 뒤바뀌어버렸다는 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우리가 위협받는 쪽일줄이야.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전개에 골이 욱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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