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3화 〉42.반은연맹
위화감이 드는 소개.
정보부 장관?
그게 대체 뭐지?
그 뜻이야 알고 있다지만 왜 뜬금없이 D10의 총회장인 아녜스를 『정보부 장관』이라 소개하는 걸까?
물론 한 사람이 여러 직책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
아녜스 정도 되면 독일에서 장관 비스무리한 직책을 부여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게 과연 D10 총회장보다 높은 급일까?
보통 누군가를 소개할 땐 역임하고있는 것 중 가장 높은 직급으로 소개하는 게 맞지 않나?
-들어와.
그녀의 머리가 복잡해져갈 때, 안에서 몇 번인가 들었던 유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현은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이더니 거대한 커다란 문을 밀어 젖혔다.
“꽤 늦었네. 원래 오기로 한 날짜는 좀더 전 아니었나?”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화창한 날의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거대한 방.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여러 홀로그램들이 시선을 끌만 했지만, 애석하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앙에 마련된 길쭉한 소파에 앉아있는 인물.
그에게로 온 신경이 쏠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아득한 스탯.
억 따위는 단위부터 제쳐버리는 압도적인 클래스다.
과연 이게 인간의 스탯이 맞긴 한 걸까?
‘이게…스탯 카지노의…주인….’
항간에 그런 소문이 있다.
스탯 카지노를 창설하고 그 주인이 된 유은은 단지 전 세계로부터 수수료를 빨아먹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무한정으로 찍어낼 수단까지 갖춘 것이 아닐까 하고.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찍어내듯이, 유은도 스탯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믿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게 가능할 리 있겠는가.
만약 정말로 스탯을 돈처럼 찍어내는 게 가능하다면, 은하제국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는것은 어려운 걸 넘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럴 리가 없다.
스탯은 오로지 던전을 탐험하고 몬스터를 토벌하여 레벨을 상승시킴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제한적으로나마 아이템을 활용하여 높일 수 있다…그게 전부일 것이다…
라고 믿었는데.
‘정말…그 루머가…사실인 거야?’
눈 앞에 저런 게 있으면,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태창>
이름 : 유은
직업 : 귀두의 황제, 쾌락제.
성향 : 악
레벨 : 401
체력 : 1,978,890,714,755,660
마나 : 2,241,350,549,416,090
[스탯]
힘 15,051,460,069
민첩 13,170,027,578
지력 8,466,446,276
행운 18,814,325,058
성욕 19,788,907,145,897
정력 22,413,505,492,504
매력 7,525,766,523
총스탯 42,265,440,663,904
색기상승률 : 32753690429%
기품 상승률 : 59917934694%
조정 상승률 : 1400000066%
크리티컬 확률 : 1978890716703%
크리티컬 데미지 : 22413505516435%
공격속도 5%
공격력 1,120,675,274,625,200
방어력 989,445,356,794,827
숫자를 세는 것도 어렵다.
몇 초간 쳐다보고 있어야 비로소 저것이 조단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때의 절망감은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다.
총 스탯만 42조.
앞서임서현이 보여주었던 수백억의 스탯만 가지고도 온 몸이 덜덜 떨려왔는데, 저것은 아예 애초부터 근본이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흉악한 게 생겨날 수 있었던 걸까?
스탯을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스탯만 42조에…공격력 1,120조라고? 체력은 거의 2천조 가까이 되고? 이게 말이 돼?’
몇 번이고말하지만, 스탯이 많이 보급된지금도 공방 10만을 넘기면 세계적인 모험가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유은은 42조다.
월드클래스 컷보다 무려 4억 2천만 배나 높은 것이다.
게다가 체력은 거의 2천조.
당연한 말이지만 저 2천조나 되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모두 깎아내지 못하면 유은은 죽지 않는다.
모든 모험가는 자연 회복력을가지고, 이는 유은도 마찬가지. 자연 회복 hp가 틱당 1%라 쳐도 무려 20조에 가까운 체력이 회복된다.
현재 은하제국 소속을 제외하고 한 틱이 되기 전에 20조의 체력을 깎을 수 있는…아니 20억을 깎을 수 있는 모험가가 존재하기는 할까?
“아아….”
더 이상 떨림을 숨길 수 없다.
그야말로 규격 외.
시녀들과 서현의 압도적인 스탯을 보고 ‘숫자는 좀 다르지만 어차피 우린 양동이야!’라는 생각으로 애써 눈을 돌렸지만, 저건 숫자가 다른 정도가 아니다.
말 그대로 급이 다르다.
양동?
도대체 무슨 개소리일까.
그딴 게 가능할 리 없잖아.
희망은 무슨 얼어죽을 희망.
전 인류의 모든 스탯을 다 합쳐도 유은보다 낮을 것 같은데, 어디 그런 게 있단 말인가.
설령 가르강튀아를 탈취하고 유은이 있는 이곳을 직접적으로 타격한다 해도 흠집 하나 나지않을 것 같다.
핵?
그건 그저 애들 장난일 뿐.
털썩.
온 몸의 피가 빨려나간 듯한 느낌에 주리엘은 힘없이 무릎꿇었다.
“뭐야 쟤는 왜 저래?”
주륵.
흘러내리는 눈물.
항거할 수 없는 두려움 앞에서 그녀는 깨달았다.
그 어떠한 저항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가르강튀아 탈취를 위해 달로 가는 것이나,
양동을 위해 하렘궁에 들어온 것이나,
총공세를 위해 대만에 대기하는 것이나,
하나같이 그저 개죽음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한다.
눈 앞 의 신 같은 녀석은 아마 ‘그런 게 있었어?’ 정도의 감상으로 끝내겠지.
치직.
-주리엘 대장, 긴급사태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는 와중, 인이어를 통해 통제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강튀아로 향한 팀이 연락두절되었다. 아무래도….
어쩌라고.
그래서뭐 어쩌라고.
연락두절?
당연하잖아.
이런 괴물들인걸.
일개 시녀에게 일반 모험가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스탯들을 펑펑 퍼주면서도 여전히 수십조의 스탯을 갖고 있는 남자.
그런 그에게 대항하는 건데 죽는 게 당연하잖아.
“죄송…죄송…합니다아…용서해주세요…!”
-…주리엘?
신념은 사라졌다.
용기는 바스라졌다.
남은 것은 공포와 후회뿐.
단 한 톨의 희망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자신이 무의미하게 죽을 거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사무치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바들바들.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로 땅바닥에 두 팔을 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
“아앙? 뭐야. 쟤 왜 저래?”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다니.
대체 뭐냐.
“통찰 재능이라도 갖고 있나보지.”
“오. 과연.”
심드렁한 얼굴로 톡 내뱉고는 내 반대편에 앉는 아녜스.
언제 봐도 먹고 싶은 여자다.
저 도도한 얼굴에 정액을 뿌려주는 건 최고지.
근데 이렇게 바로 반말 까도 되는 거냐?
일단은 같은 편이라고 속이면서 들어온 거 아니었어?
“….”
흠. 쟤 보니까상관 없을 거 같네.
아녜스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나?
“그 미국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인재라길래 재밌을 거 같아서 데려온건데. 홀랑 꼬리내리네. 재미없어라.”
“헤. 미국에서.”
“A-Force라고 불리는 잡것들이었죠.”
히끅.
서현의 말에 여자가 움찔 놀랐다.
떨림이 더 커졌다.
흐흐.
저건 달래줘야겠구만.
“아으….”
가까이 다가가니,그녀가 더욱 떨었다.
마치 추위에 떠는 햄스터.
오돌오돌 거리는 게 귀엽다.
툭.
“어이.”
“히익!”
발로 볼을 살짝 건드려주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완전 쫄았네.
“너 뭐야?”
“네…네헤…?”
“너 뭐냐고. 뭔데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저…아….”
완전히 얼었는지 제대로답도 못한다.
“주리엘이라고, A-Force 대장이야.”
“엥. 대장? 얘가?완전 쫄보같은데?”
“하. 너 스탯에 대한자각은 없니? 누가 그걸 보고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있겠어?”
“그치만 우리 아녜스짱은 언제나 나한테 싸늘하잖아. 지금처럼. 그게 더 흥분되는 거지만.”
“넌 내 원수니까.”
뭐, 저렇게 말은 하지만 이미 그녀도 9할은 넘어왔다.
적의가 많이 수그러들었거든.
예전에는 진짜 찢어죽일 거 같은 눈이었는데. 이젠 모든 걸 다 포기해버린 듯한 눈이 되어 버렸어.
마치 소령씨처럼.
“그래. 니가 누군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죄송한 거야?”
“….”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도저히 스스로 말할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알면서 뭘 자꾸 물어보고 그러냐. 그냥 하던대로 해.”
“어허. 우리 아녜스짱은 다 좋은데 로망이 없어 로망이.”
“하. 로마앙?”
“눈 앞에 바들바들 떠는 어린양이 있다면 왜 그런지 물어봐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냐.”
“퍽이나.”
“어이, 말하라니까.”
몇 번이고 재촉하자,결국 주리엘이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술술.
진짜 두려움에 먹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아.
“그래. 수고했어.”
“……”
“그러니까 상줄게. 입 벌려.”
“…예?”
“너 자꾸 말 반복하게 할래?”
“죄,죄송합니다!”
살짝 언성을 높여주자, 주리엘이 헉 하면서 바로 입을 벌렸다.
쌔끈한 미녀가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상황.
게다가 그녀는 적으로서 침입해온 여자다.
그렇다면 해줄 건 하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