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4화 〉42.반은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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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 전 대통령이 갇혀 있는 곳은 막 개조되고 있는 청와대 지하.
본래는 벙커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그마저도 개조되고 있다.
비록 강을 하나 끼고 있다지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 곳.
한사랑과 서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체화를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건가요? 수술인가요?”
“수술이긴 하지만 사람이 직접 집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음. 설명드리자면 긴데, 지하에 거대한 지하기지가 있고, 거기에 인공지능으로 관리되는 일종의 공장 같은 것이 있죠.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원자단위로 설계를 만들거나 재해석해서 순식간에 구조를 짤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런 게 있었다니…겉으로 드러난 전력은 빙산의 일각이네요.”
“후후. 그렇죠. 참고로 보지니아도 거기서 탄생했답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구경시켜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정도면분명 기밀일 텐데.”
“이제 주인님의 부인이 되실 분인데 기밀이 무슨 의미겠어요.”
“…그러네요. 그럼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어느덧 지하의 감옥.
분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세련된 벙커였을 텐데, 지금 풍기는 분위기는 무슨 중세시대 감옥 같은 모습이다.
인권이라고는 전혀 존중하지 않는 모습.
그 안에 전 대통령이 초췌한 몰골로 앉아 있었다.
“…호.”
간수가 철창을 열어주고 두 여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멍한 얼굴에 표정이 보였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약한 기쁨.
하지만 동시에 자잘한 떨림도 있었다.
한사랑은 서현과 함께 가져온 의자에 앉아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그날 지하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데, 이유는 이 혐오스런 얼굴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죽일 것만 같아서다.
최대한 죽지 않도록 살려두면서 영원한 고통을 주어야 하는데, 감정조절 못해서 죽여버리면 너무나 아쉽지 않은가.
“왜 자살하지 않았지?”
대뜸 던지는 질문.
“예?”
“처음엔 화밖에 안 났는데, 생각해보니 궁금해지더라고. 저 양반은 뭘 믿고 자살하지 않았을까 하고.”
“….”
“기회는 많았잖아. 그때 그 지하에서. 전철에 머리를 박을 수도 있었고, 고압전류에 손을 넣을 수도 있었지. 그도 아니면 혀를 깨물거나. 물론 고통스럽긴 했겠지만 글쎄. 앞으로 겪을 것에 비하면 그게 과연 고통일까?”
비릿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모든 걸 각오한 최민 조차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제 나름의…속죄라고나 할까요. 그냥 죽어버리면ㅡ,”
“지랄하고 자빠졌네!!!”
속죄?
어디서 이런 개소리를 배워왔을까?
“그딴 소리 할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지.”
“제겐 민족을 구해야 하는 시대적인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하려 하지 않는, 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죠.”
“그건 당신 생각이고. 누가 그렇게 하래?!”
잔뜩 격양된 한사랑이 폭력적인 기세로 말을 퍼부었으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옆에 있는 사람이 말렸을 텐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만만치 않게 폭력적인 인간이다.
“우리 아버지는 왜 끌어들였는데? 내 가족들은? 그렇게 숭고한 사명 같으면 혼자 하다가 뒤지시던가 왜 죄 없는 사람을 끌어들여?”
“….”
할 말이 없었는지, 최민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더 자극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안 움직일 거 같아서? 그럼 거기서 끝인거지! 자기 힘으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무슨 시대적 사명이니 이딴 소릴 하고 있어!”
“…제게 힘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죠. 저로서는 민족을 구한다는 위대한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입을 여는 그.
그러나 좀전보다 더 짜증나는 소리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시대적인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개소리하네.”
“그럼 묻겠습니다만, 당시 힘 가진 자 중에서 그 누가 우리 민족을 위해 희생하려 했습니까? 국회의원? 모험가? 한국에서 우수한 모험가들, 특히 유은씨라던가 당신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죠. 그러나 그들 중 진정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걸 바치려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어떤 형식으로든 무언가를 바꿀 힘이 있으면서 의지또한갖고 있었던 건 제가 유일했단 말입니다.”
“그건 당신 망상이고.”
“한봉철 대장 역시 제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그것 밖에 없다고요.”
“이…”
감히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인 주제에 그 이름을 입에 담다니.
반사적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자, 서현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그 기세로 때리시면 이녀석 죽어요. 그걸 원하시진 않잖아요?”
“….”
그녀의 말에 한사랑이 주먹을 내리자, 이번에는 서현이 차분하게 선고했다.
“뭐, 대화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거든요 우리.”
“….”
“무슨 숭고한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당신이 한 행동이죠. 평소에도 계속 우리 주인님을 이용하려 했었죠? 그때부터 정말 너무 짜증이 났답니다.”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짜증’대목에서 이를 악무는 것이 그녀도 속이 끓어오르는 모양이다.
두 사람의 서슬퍼런 적의를 받으면서, 최민은 벽에 등을 기댔다.
“어차피 미련은 없습니다. 전부 각오했으니까.”
“글쎄요. 과연 각오가 됐을까?”
서현이 비릿하게 웃었다.
아마 고통스럽게 고문을 받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당연하지만 그딴 건 은하제국에서 고통도 아니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끔찍한 고문 같은 걸 기본적인 ‘교육’으로 다루는 곳이 은하제국인데, 작정하고 벌을 주기 위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지금 그녀들이 하려는 것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때 대통령이었는데, 무슨 짓을 당할지 말이라도 해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겠죠? 우린 당신을 여자로 만들 거예요.”
“?”
처음으로 그의 표정이 알만하게 찌푸러졌다.
“여자…로 만든다고?”
“그래요. 아, 그렇다고 주인님께 상납한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건 승은인데 절대 용납할 수 없죠. 그냥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평범한 외모로 만들 거예요.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
대충 감이 잡힌 모양이다.
그의 안색이 좋지 않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런 말 들어보셨죠?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좀비로 날뛰기 시작하셨으니, 마무리도 좀비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허….”
마침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군요. 인정합니다. 제가 당신들을 과소평가 했네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무슨 소리에요.지금 제가 말씀드린 건, 최종적으로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론이 안 나서 일단그렇게 해두는 거예요. 아무것도 결정된 거 없어요.”
“….”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여자로 만들어서 좀비한테 던진다는 것 같은데, 뜯어먹히면서도 살 수 있게 장치를 해둔다는 건지, 아니면좀비를 개조해서 돌림빵을 놓는다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쪽이든 달갑지 않다.
도대체 이런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걸까.
뇌를 해부해보고 싶다.
“그럼 미리 설명도 해드렸으니 이제 이동해도 될까요?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한사랑에게 하는 물음.
“아니요. 할 말은 없어요. 근데,”
뻐억!
“컥!”
번개와 같은 발차기!
우당탕 소리와 함께 최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30분만 기다려 주세요. 적당히 팰 테니까.”
“그러시죠.”
+++
“응? 여자로 만들어서 좀비들한테 던져줬다고?”
“네.”
“와…누가 생각한 거야?”
“…주인님께서 여자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셨잖아요.”
“근데 좀비한테 돌릴줄은 몰랐지. 그건 어떻게 한 거야?”
내가 추천해주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좀비들은 식욕에 미친 괴물이잖아요? 혹시 몰라서 그걸 좀 바꿔봤죠.”
“…왜?”
“혹시 몰라서요.”
….
확실히 얘도 정상은 아니야.
“그래 알았어. 그건 이제 사랑씨한테 맡기고…그, 너한테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
“네?”
“이리와서 앉아봐.”
고개를 갸웃하며 내 옆에 앉는 그녀.
뭔가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귀여운 표정이다.
내가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냐면…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
“너 소령씨랑 사이 안 좋지? 엄청나게.”
“아….”
뭔가 팍 식어버린 얼굴.
“네…그건…시정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혼나는 줄 아나보다.
그건 아닌데.
“아냐. 사람이 어떻게 모든 사람이랑 친하겠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싸우지만않으면 돼. 싸우지만 않으면.”
“네….”
“근데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
“전에 무림에 갔을 때 기억나지? 내기했던 거.”
“내기요? 아 설마….”
“그래 그 설마다.”
“….”
좋지 않은 걸 떠올렸는지, 마침내 서현의 표정이 푸르죽죽하게 죽어버렸다.
얼마전 무림에 있었을 때, 남궁세가 여자애들이랑 같이 내기한 적이 있었지. 야자권을 두고…
그거에 그렇게 죽자사자 달려들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게임은 꽤 불타올랐고, 결과 최종 승자는 루크레시아랑 소령씨가 되었단 말이지.
루크레시아는 뭐…아직 별 말이 없는데 소령씨가 요새 은근히 눈치를 주고 있다…약속을 지키라면서.
“소령씨가 하루동안 너 빌려달라더라.”
“…큿.”
내 앞에서조차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진짜 어지간히도 싫어하나보다.
“그래도 너무 걱정마. 나도 최대한 곁에 있어줄 테니까.”
“주인님….”
“뭐, 야자타임이라 나도 신분이 바뀌긴 하겠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근데 언제부터에요?”
“내일 00시부터.”
“….”
즉 이따 밤부터란 말이지.
덕분에 아까 본 소령씨는 계속해서 히죽거리며 웃고있다.
대체 뭘 시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