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500)화 (499/517)



〈 500화 〉41. 헬게이트

이런 지하공간에서 담배를 핀다는  좋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는 초연하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그나마 밝은 전철 내부로 뿜어졌다.


“이제 남은 변수는…분노한 그녀가 어떻게 해서든 내 의지를 따르지 않으려 하는 것인데…그건 기도하는 수밖에 없나? 그가 잘 해주기를.”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한사랑은 극도로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분노가 너무도 심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통령의 뜻 만큼은 잇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이 이후의 일은 그저…운명일 뿐인 게지.”


만약 그리 된다면, 결국 한민족의 운은 거기까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욕할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은하제국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면 부흥과는 영영 멀어진다. 그렇다면  가능성이라도 높여야 하지 않겠냐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이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말하자면 최대한 노력한 것이다.

그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설령 닿지 못했다 해도 후회는 없다는 그런 이야기.

최대한 노력했다.
엄청난 피해도 감수했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으며,
공동체의 해체와 국가가 파탄나는 것까지 모두 감안하여
희대의 도박을 치렀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해낸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이 시대 마지막 남은 길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결국 거기까지인 것이다.

“살아남아라…민족이여…!”




+++




불타오르는 서울.
비록 아직 일부일 뿐이고 또 던전 사태 등으로 인해 도시가 타오르는 모습이 익숙하다지만 그래도 무수한 생명이 사라지는 광경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민간인의 피해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한국인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의외로 방어력이 좋아서  틀어박혀 있다면 생각보다 안전하다.

지금 민간인의 피해가 적은 것도 이 덕분.

그러나 어쨌든 이 사태가 지속된다면 당연히  민간인들도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인 점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것일까.
한사랑도 개입한데다 유은의 친위대 또한 은율령을 구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도권에 전개하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한국군이 강해도 이 둘을 상대로 버티는 건 불가능.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생각 없이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거 같아요.”
“….”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한사랑.
반쯤 미쳐버린 군인들을 제압하고 건물 안으로들어가니, 온통 피투성이였다.

마치 안에서 자기들끼리 전투라도 벌인 것처럼.


물론 전투야 있었겠지. 국회를 강제점거 했으니.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는 양이 아니다.


“얼마 전 중동에서 좀비사태가 대대적으로 일어나 10억이 넘는 인류가 희생되었다고 들었는데…어쩌면 여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요?”
“좀비라면 외형적으로도 뭔가 변화가 있지않나? 너무 곱게들 죽었는데?”


한 대원의 말에 한사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그때 등장했던 좀비들은 한  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쿠데타를 일으킨 이들처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소통하며 움직이는 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상하긴 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벽 상태를 보면 분명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뭐, 국회니까. 경비병력 정도는 있었을 테니 그 흔적인지도 모르지. 일단 간단하게 생각하자고.”

한사랑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을  켠에 접어두고 병사들을 시켜 건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본인 또한 간부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헤짚었는데, 그럴수록 의문은 커져만 갔다.


Tv 전파를 바꿔치기해서 전국적으로 범죄성명을 내고 공개처형까지 한 일당인데, 외부 병력을 제외하면 지금껏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스캔 결과 생명반응이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좀 상당히 커요.”
“크다고? 얼마나?”
“방 하나 정도는 다 차지하는 거 같아요.”
“인간이 아니잖아 그럼. 몬스터인가? 그새 던전 역류가 일어났다던가.”
“아니면 한 곳에 모조리 몰려 있던가요.”
“흠. 가보자.”


피스톨 하나를 쥐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한사랑과, 그런 그녀의 뒤에서 소총을 쥐고 따라가는 간부들.
어느덧 소식을 들은 병사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렇게 무리를 이루어 생명반응이 감지된 곳, 국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회의장의 웅장한 문을 열었다.


“뭐야 이건.”



드디어 눈 앞에 드러난 지옥도.
분명 국회의원 공개처형도 이곳에서 했었지.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넓은 공간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인체의 덩어리.
그리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살덩어리.

일견 죽은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으나, 외부에서 꿀렁거리는 혈관은 보기만 해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흉측한 모습에 간부들을 비롯한 병사들은 쉴드를 전개하는 한 편, 총을 들어 겨냥했다.
언제라도 사격하여 소멸할 수 있도록.


그에 비해 한사랑은 냉담한 표정으로 괴물을 쏘아보고 있었는데, 딱 보기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이랬던 거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던 그녀가 돌연 발을 이동하며 말을 건냈다.
그러자 요동치던 거대 덩어리가 눈을 뜨는 것처럼 진동했다.

『 …왔느냐…늦었구나…내 딸아… 』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잖아요.”

놀랍게도 그 정체는 그녀의 아버지.
대한민국의 육군대장 중  명이자, 한때 육군을 쥐락펴락했던 사나이.
그러나 현재 그의 몰골은 그저 괴물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분명 가면을 뒤집어쓰고 tv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멀쩡한 인간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된 걸까.
아니, 그 전에 왜 이런 꼴이 되어 있는 걸까.


『그래도  알아보는 구나. 다행이야.』
“대통령 그 양반이 당신을 이런 꼴로 만든 거예요?”
『숭고한 뜻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하. 숭고는 무슨 얼어죽을.”


사랑의 말이 거칠어지자, 괴물의 몸이 한 차례 요동쳤다.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세상에 피흘림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고.』
“됐으니까, 그 쓸데없이 거대한 주둥아리 닥치고 있어요.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한사랑 문명(대한제국)의 기술력으로 원상복귀가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은하제국의 힘을 빌리면 확실히 괜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거기엔 없어진 팔 조차 되살려내는 성녀(유소라)가 있으니까. 그녀의 조력을 얻어낼 수 있다면 아버지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그때 가서 알아내면 된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리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아니, 대통령의 수가 더 깊었다고 해야 할까.

거대한 지방덩어리주제에 뭔가 고개를좌우로 젓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을 땐, 이미 일이 시작된 후였다.


“사령관님!! 피하십시오!”

갑작스런 괴물의 팽창.
간부들이 쉴드를 칭칭 감은  한사랑을 껴안더니 그대로 천장을 부수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엄마아!!”
“얘! 보면  돼!”
“택견V! 택견V!”

창가를 바라보며 떼쓰는 아이.
주부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아이를 품에 안고는 커튼을 치려 했다.
지금처럼 폭력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걸 아이가 보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뭐야?!”
“택견 브이이!!”

까르르 좋아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그가 외쳐대는 그놈의 택견V
일이 있어 아이를 보기 힘들 때마다 틀어 주었던 애니속의 로봇이 지금 현실화 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등장씬이 멀리 여의도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쪼개지는(정확히는 부숴지는) 국회의 돔과,  사이로 일어서는 거대한 거인.
그 모습은 흡사 택견V의 출동과 같았다.


“세상에….”




+++




“무슨! 갑자기!!”
『말했지! 희생이 필요할 거라고!!』


부화라도 한 걸까.
어엿한 인간, 언제나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이긴 했지만, 키가 최소 1Km는 되어 보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치 서울 시민들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외쳐댔다.

『나야말로  시대의 제왕! 무능하고 멍청한 의원놈들의 시대는 지났다! 지금부터는 오롯이 나와 유능한 참모들에 의해 치리될 것이다!!』

체구 만큼이나 웅장한 외침.
그 소리로 인한 파동 만으로 유리창이 깨져나갈 정도였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뭐긴! 숭고한 뜻에 따라 민족을 부흥시키는 중이지.』
“무슨 개소리야!!  크게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미 전국에 퍼져있는 나의 군대는 최종 형태로 변화되었다. 평범한 군대로는 막을 수 없지. 무능하고 혐오스런 민주정을 내리고, 유능한 엘리트에 의해 치리되는 지상 최고의 엘리트 국가가 되는 거다!!』

열정있게 외치던 그가 거대한 주먹을 꽉 쥐고 휘두르자, 강력한 강풍이 휘몰아치며 지근거리에 있던 빌딩 하나를 통째로 허물었다.

“……이거냐…이게…진짜 의도였냐.”

그제서야 대통령의 계획을 온전히 파악하게 된 한사랑.

그녀의 아버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사실을 퍼뜨림으로서 대한민국의 사법을 무너뜨려야만 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의 의도대로 놀아나지 않기 위해  그대로 사법만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대통령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버지가 하나의 뜻을 위해 목숨과 명예까지 버렸다면?

『자! 나를 막아봐라 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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