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6화 〉41. 헬게이트
“일단 아버님께 연락을 넣어보시죠. 상황을 파악하기엔 그게 제일 빠르지 않겠어요?”
“….”
매우 간단한 방법인데도 한사랑은 망설였다.
뜸을 들인다고 해야하나. 뭔가 꺼리는 분위기다.
“왜 그러시죠?”
“아니…전화해본 적 없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키우던 강아지들은 전부 본가로 보내두셔놓고 설마 가족과 연을 끊었다던지 그런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죠?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셜리의말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한사랑이 결국 폰을 들었다.
당연하지만 예전에 지구에서 사용하던 폰은 몇 개월간 방치된 탓에 사용할 수 없었고, 자신의 문명에서 제작한 것을 사용하는 중이다.
아주 기본적인 컬러링.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연결음이 그녀의 귀에 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가지 않아 신호가 끊기면서,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끊은 건가?”
“그런 녀석과 연애하는 년은 내 딸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걸까요.”
“시끄러. 너 좀 건방져지는 거 같은데?”
“설마요.”
가증스런 셜리의 표정을 대충 흘겨보며 다시 전화를 걸어보는 그녀.
이번에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만이 들려왔다.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연락을 거절했거나,
아니면 뭔가 일이 있는 것이다.
“문자로 오는 건 없나요?”
“어. 아예 전원이 꺼졌다는데. 그래서 더 이상한데.”
그녀는 다른 번호로 시도해 보았다.
아버지가 안 된다면 어머니, 어머니도 안된다면 형제자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녀의 전화를받는이가 없었다.
모두 전화기가 꺼져 있는 상태.
“왕따라니 세상에….”
“뭐지?”
이쯤되니 그녀는 진심으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모두가 합심하여 전화를 안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아니 애초에 그녀의 전화만을 받지 않을 목적이라면 그냥 차단을 걸어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모두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라면 무언가불미스러운 일을 예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이 미친놈 설마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가득 담은채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
당장이라도 본가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셜리, 당장 대통령위치 파악하고, 본국에 연락 넣어. 아무래도 군대가 필요할 거 같다.”
“예, 사령관님.”
시종일관 장난스럽던 셜리가, ‘명령’에는 깍듯하게 순종했다.
곧바로 본국에그녀의 말을 전했다.
“사령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본가로 가보고…대통령 그 양반도 좀 만나봐야겠어.”
“혹시 모르니 은하제국쪽에도 연락을 넣어둘까요?”
“아니 됐어.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알겠습니다.”
+++
“아니 씨발 이거 도대체 뭔데?”
한사랑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중령을 달게 된 은율령.
단지 은소령의 여동생이자 유은의 여자 중 한 명이라는 이유로 승진한 것은 아니었다.
인천사태 당시 인천의 상황을 누구보다 빠르게 하렘궁에 전달하여 사태를 회복시킨 1등공신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어린 나이에 승진할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그녀도 쿠데타 여파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몸담고 있는 조직이 조직이다보니 정면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동기들과 총을 겨누는 상황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것.
혼란스럽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
“반란군의 신원이 대강 파악됐다. 모두 읽어보도록.”
“이,이거 진짜입니까?”
간부 중 한 명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 진짜다.”
“아니…ㅆ….”
은율령도 욕이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심상치 않은, 자칫 잘못하면 나라가 두쪽나거나(엄밀히 따져 북한도 있으니 세쪽) 아예 통째로 작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봉철 대장이라니!”
일단 가담하고 있는 별들의 숫자부터 심상치 않다.
무려 67명이나 되는 장성들이 쿠데타에 가담하였고, 그 중 사단장만 20명이 넘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최중요 전력이자 이전에 은율령도 복무했었던 제 7 기동군단과 수도방위사령군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건지 의문.
‘이게 가능한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했다.
‘이거 뭔가 뒷수작이 있는 거 같은데?’
은율령은 뭔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게 그냥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적어도 엄청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뒤에서 세밀하게 공작을 부려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터.
아니, 그래도 불가능하다. 도대체 저 많은 수의 장성을 언제 어떻게 구워삶았단 말인가?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이미 서울 인천은 넘어갔다고 봐야 하고, 당연히 최우선 목표는 서울이다.”
“미친.”
한국전쟁도 아닌데 또다시 서울 수복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다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저…사단장님.”
“뭐야.”
“한봉철 대장이면 그…그년의 아버지 아닙니까?”
“…그래.”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되는 거 아닙니까?”
“뭐? 뭔 개소리야!”
“아니….”
“짜식들이 빠져가지고 말야. 군인은 그냥 하라는 것만 하고 목표만 이루면 돼. 쓸데없는 거 생각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사단장은 그를 호되게 야단쳤지만, 그러는 본인도 살짝 걱정됐다.
이세계로 갔다가 몇 개월만에 우주선을 몰고온 한사랑은 둘째치고, 은하제국이 심히 걸렸기 때문이다.
명분이야 어차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데, 유은의 여자의 가족을 건드렸다는 걸 명분으로 이것저것 잡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노답이다.
안 그래도 세계통일 관련으로 시끄러운 판국에괜히 어그로를 끌게되는 것이다.
“지금 서울에 있는 것들은 국회의원들을 잡아다 처형시키고 대통령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미친놈들이다. 언제 그것들이 미쳐 날뛰면서 시민들을 학살할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 피해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서울을 수복한다. 그게 제 1의 목표다.”
사단장은 이것저것 얘기하더니 각 연대별로 세부목표를 전달했다.
‘씨발 이거 진짜 좆된 거 같은데.’
+++
은율령의 예상대로,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
아니, 이미 최악의 결과로고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 자신의 본가를 찾으려 했던 한사랑은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폰으로 문자 하나가 날아온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막는 방법은 알고 계시겠죠.
라는 해괴한 문자.
발신자는 아마도 대리인일 것이고, 그마저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추측할 수 있는 건 대통령의 전령.
“미친새끼.”
이젠 대놓고 욕이 나올 정도의 광기. 완벽하게 선을 넘어섰다.
“사령관님, 한국군 내부정보 캡쳐했습니다.”
“보내봐.”
거기에 이어 셜리가 보내준 정보.
거기엔 한국군이 파악한 반란 가담자들의 명단이적혀 있었다.
“하…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리고 거기엔 예상대로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도 기술되어 있었다.
이제 그녀의 아버지는 명백한 반란군의 수괴로서, 잡히면 사형이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체를 점거하여 법을 뜯어 고치거나, 아니면 그의 반란이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다.
아마도 대통령이 원하는 건 이를 빌미로 한사랑이 대한민국을 싹 밀어버리고 은하제국에 가맹하는 것이겠지.
한 가지 의문이라면, 그녀의 아버지는 대체 왜 이런 일에 가담했고, 또 그의 휘하 장성들은 왜 반란에 가담했냐는 것이다.
“뭐, 별 이유 있겠어요? 사령관님의 아버님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성공할 거 같으니까 가담하지 않았을까요?”
“하. 현대시대에, 그것도 어디 약소국도 아니고 이 대한민국에서 반란이 성공할 거라고? 그런 망상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 안 되는데.”
“그야 평범한 세력이라면 그렇겠지만, 무려 사령관님의 아버님이 머리가 되어 일으킨 거잖아요. 아마도 사령관님이나 혹은 은하제국쪽에서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겠죠.”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묘하게 설득이 된다.
확실히 은하제국을 생각한다면 걸어볼만 하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한 귀족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한사랑은 한참동안 방 내부를 거닐었다.
뚜렷하게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떡하시겠어요? 일단 제압만이라도 해두시는 게?”
“쯧…기다려봐.”
무력으로야 얼마든지 점령이 가능하겠지만, 그래서는 대통령의 손에 놀아나는 것 같아 심히 뭣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자니 반군이 진압되는 건 시간문제.
“으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때,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 사랑씨! 소식 들었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시든 저는 사랑씨를 지지하니까 부디 다른 건 생각하지 마시고 사랑씨에게 중요한 걸 택하도록 해요.
무슨 게임 선택지 같은 메세지.
유은의 문자였다.
“…글 진짜 못쓰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은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대통령 그 인간부터 족치고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