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화 〉41. 헬게이트
후웅 - !
거대좀비가 한웅큼 쥐어 던진 좀비무리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키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좀비가 던진 만큼,그 사거리는 매우 길었고, 이는 수에즈 운하를 넘어 50미터 규모의 수에즈 장벽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너,넘어온다!!!”
성벽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경악하며 총을 높이 치켜올린 채 사격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명령이 떨어지진 않았음에도 그리 해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내리는 것들이 총탄에 맞는다 하여 궤도가 틀어질 리는 만무. 곧 수백 구의 좀비들이 장벽 안의 군영으로 추락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떨어진 좀비들은 땅에 닿는 즉시 기능정지. 하지만 그들이 지닌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한 전염이 가능하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당장 치워!!”
“포병!!”
“저것들을 당장 처치해라!!”
군영은 순식간에아수라장이 되었다.
좀비투척을 받은 장벽 안에선 장벽 위로 병사들과 각종 병기들을 올려보내는 한편, 떨어져 으깨진 좀비들을 즉시 소각하고 주변을 소독하는 과정을 실시했다.
- 투쾅!
후방에 있던 자주포 수백문이 불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를 기점으로 군영 사방에 있던 온갖 포들이 포격을 개시하고, 장벽 위에서도 병사들의 사격과 전차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좀비떼와 거대좀비가 있던 곳은 순식간에 불바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륙한 폭격기부대가 백린탄을 투하하면서 내세의 지옥을 만들어냈다.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전의를 상실하기에 충분한 상황.
그러나 좀비는 두려움 따위 알지 못한다.
수만 구의 좀비가 합쳐진 거대좀비라면 더더욱.
- 그҈̨̮̥̲͔̙̈̋̕아̯아̝아҈̧̤̣̥̾͋̆̿̀͞ͅ아̰아҈̨̫͕̍̓́̈́̌͠아̸̨̟͕̗̗҇̌͒́͂̽ -҈̮͖̰̞͚̐͆͢͡ !̶̢͙͙̯̖͇̆̀́͡!҉̧͕̝̝̝͋́̇͆̏̕ !!!
불바다 속에서 괴성을 질러댄 거대좀비가 마치 영화에 나오는 괴수처럼 진격했다.
전신이 불타고 있으면서도 고통 하나 내색하지 않고 달려오는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도합 네 구의 거대좀비가 장벽을 향해 뛰어왔다.
키가 무려 200미터나 되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는 물론이고 50미터 규모의 장벽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벽을 건설하느라 국력을 소진한 이집트로선 대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폭격기는 폭탄을 떨구고, 전투기는 미사일을 날리며, 각종 자주포와 전차와 대전차미사일과 심지어는 미국에서 빌려온 순항미사일까지 때려박았지만,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거대좀비들은 멀쩡하게 뛰었다.
“씨발…대체 뭐야…뭐냐고!!!”
공포에 휩싸인 병사들.
고작해야 D급 던전에서 시작한 좀비일 뿐인데, 진화라도 하는 건지 이젠 전차의 포격도, 미사일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후웅 - !
가장 앞에서 달리던 거대좀비가 장벽을 뛰어넘었다.
“으,으아아아악!!!!”
그 여파라고나 할까, 그 장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변이했다.
“미친!”
스치지도 않았는데, 그저 0.1초가량 근처에 있었을 뿐인데 감염되어 좀비가 되다니.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전염력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또 저 방어력은 무엇이고.
절망이 퍼지기 시작한 장벽 안으로, 나머지 세 구의 거대좀비가 착지하더니, 두 구는 장벽을 바깥으로 밀어 넘어뜨렸고, 나머지 한 구는 먼저 온 한 구와 합류하여 군영을 초토화 시켰다.
불과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집트 군영은 좀비소굴이 되었고, 좀비들을 막아내는데에 큰 공헌을 하던 수에즈 운하는 무너진 장벽 파편으로 다리를 놓는 거대좀비로 인해 무력화 되었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진군.
족히 수백만에 이르는 좀비떼가 몰려와 이집트로 향했고, 수백기에 달하는 폭격기의 폭격과 무수한 미사일세례에도 불구하고 불과 한 시간만에 이집트 최대의 인구밀집 지역이 쓸려나갔다.
+++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예요!!”
“…전에도 말해주지 않았니?”
“그럼 뭐해요 납득이 안 되는데!”
뉴스는 연일 특보를 내보냈다.
장벽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시키는 거대좀비의 출현. 그리고 그것들의 동시다발적인 진격으로 인한 고립붕괴.
좀비들을 중동에 가두기 위한 장벽들이 모조리 무너졌고, 그것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시아 뿐만 아니라, 터키를 위시로 한 유럽, 이란과 파키스탄 등을 시작으로 한 아시아까지 위험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이렇게까지 퍼져버린 이상 장벽 같은 걸 치는 건 불가능. 오로지 모든 좀비를 소탕해야만 사태가 끝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끔찍한 사태에 국제기구에서는 계속해서 보지니아 연방제국과 은하제국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유은이 없는 지금 최고 결정권자인 소냐의 거절로 인해 두 제국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유은이 무림에 있다곤 해도 얼마든지 연락을 취해 뜻을 물어볼 수 있지만, 유은은 정치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소냐에게 맡기는 편이었기에 소냐가 개입하지 않겠다 한다면 그냥 그에 따르라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그러했고.
“인류는 한 번 크게 데여봐야 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유나는 꾸준히 소냐를 찾아와 항의했다.
“벌써 십 억에 가까운 사람이 희생됐다고요!”
“그래. 벌써 10억 명이나죽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깨닫지 못했잖아.”
유나는 벽이 있는 걸 느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악의 세력이 되었다 해도 사람이 수억 명 씩 죽어나가는데 이걸 그냥 방관한다니?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렴. 인류는 스스로 재앙을 헤쳐나갈 힘이 없어. 그들이 사는 방법은 오만한 콧대를 부러뜨리고 우리 밑으로 들어오는 거지. 하지만 누구하나 그러지 않아. 상황파악을 못하고 주제파악을 못하는 거야. 고작 지구적 재난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그들이 우주적 재난을 만났을 땐 어떨 거 같니? 그때도 또 아쉬운 소리나 하면서 도와달라 하지 않겠어?”
무슨 말인지는 안다.
인류가 총력을 기울여도 재앙을 이겨내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때, 은하제국에서 손쉽게 처리해서 아예 저항의지 자체를 꺾어버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 등이 널리 퍼져있는 이 시대에서 자연스럽게 유은을 추종하고 섬기게 하는 그런 의도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다.
은하제국이 비할바 없이 강하다는 건 이젠 전 세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와달라’가 아니라 ‘살려주세요’라고 해야 하는 거야 유나야. 그래야 비로소 개입할 이유가 생기는 거고.”
“….”
유나는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통하지 않는 거, 설득은 불가능하고, 이젠 그럴 시간조차 없다.
“됐어요. 그럼. 저 혼자서라도 개입할 거니까.”
그녀 역시 1억의 보지니아를 거느린 군왕.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군사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다만 유은이 없는 지금, 소냐를 통한다면 은하제국의 자원과 병력도 활용할 수 있고, 그럼 정말 순식간에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계속 찾아와 설득했던 것이다.
소냐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유은과 있을 때엔 한없이 허물어지는 표정이었지만, 본래 그녀의얼굴은 그 미모만큼이나 매섭기 그지없어서 보는이를 압도한다.
하지만 유나역시 그녀의 딸. 아직 부족하지만 그 유전자를 받은 몸이다.
한 치도 지지않고 맞부딪히는 시선에 결국 한숨을 내쉬는 소냐.
“…어차피 조만간 개입할 거야. 그 조금도 못 기다리니?”
“조금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사람이 계속 죽잖아요!”
“우리랑 상관 없는 자의 죽음을 왜 그리 신경쓰니?”
“아니….”
“조만간 핵을 쓰기 시작할 거야. 한동안 마구 터뜨리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될걸? 그때 가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깨닫는거지. 지구에 우리..아니 그이가 없으면 인류의 생존이라는 것이 성립되지않는다는 것을.”
“…그런건 이미 충분하다고요. 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만족할 거예요?”
“말했잖니. 곧이라고. 어차피 한계야. 저들도 아주 바보는 아니니까.”
유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쳤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미쳤어요.”
“그렇게 생각하든가.”
+++
핵이 떨어졌다.
더 이상 방사능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보지니아 연방 제국과 은하제국은 묵묵부답이고, 좀비들은 계속해서 밀려오는 이런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시간을 지체할 때마다 수십 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니 핵이고 뭐고 일단 때려박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좀비떼가 있는 지역 한정으로 핵공격에 대한 묵인이 성립되었고,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은 무자비하게 미사일을 부어댔다.
전차의 포격을 견뎌내고 무수한 폭격도 무시하던 거대좀비조차 핵에는 당해낼 수 없었는지 강렬한 빛과 함께 증발하였고, 그렇게 수백 발의 핵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좀비랠리는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늦춘 것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직도 머나먼 이야기.
여론에선 은하제국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움직이지 않느냐면서 시위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일개 국가의 장관쯤 되는 사람조차 직설적으로 비난에 동참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물론 뒤에서는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