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56)화 (455/517)



〈 456화 〉39.춘추무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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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그자를 따르시는 건가요?”

여세린과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수현이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비록 유은과 몸까지 섞은…심지어  남자였지만 그의 본질을 알고나니 느껴지는 건 애정 따위가 아닌 혐오였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주인이라 섬길  있겠는가.

세린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곤 피식웃었다.

“그의 본질에 실망했느냐.”
“…실망 정도가 아닙니다.”
“본녀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데 본녀는 괜찮은 것이냐?”
“궁주님은….”


수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세린은 강호에서 알아주는 악녀  악녀.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수현이 배신할까 끊임없이 충성에 대한 시험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충성은 언제나 굳건.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본녀 역시 처음 본성을 알게 되었을 적에는 적잖이 놀랐느니라. 하지만 어쩌겠느냐. 이 또한 운명인 것을.”
“….”

세린은 알  없는 말을 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강호가 넓다넓다 했는데 정녕 이리도 넓을 줄이야.”
“예?”
“아니다. 혼잣말이니라. 그보다, 우수린 그년과 검을 맞댔다면서?”
“아….”


유은을 데리고 항주에서 일주일간의 여행을 하던 도중, 보타문과 만나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 일이 원인이 되어 결국 유은을 장로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호색한에 초강자인 유은이 원했던 각본인 것 같았지만, 그땐 정말 그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영단을 취했음에도 밀린 것을 보면, 그년도 어지간히 강한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는 군사이지 않느냐. 그만하면 됐다.”
“…예.”
“그런 것보다 지금은 이곳에 적응하는 것이 시급하겠구나. 일단은 본녀를 따라다니면  것이다.”

수현은 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세린은 그에게 깊이 빠진 모양.

처음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과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정말…그가 그렇게 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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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이 지휘하는 하렘궁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닝보에서는 백성들을 동원해 궁을 건설하는 한편, 사방으로 간부들을 내보낸 것이다.


그 첫 타자는 루크레시아. 그녀가 닝보의 포위망을 뚫어야만 임무를 속행할 수 있다.




“궁수 위치로!!!”
“궁수 위치로!!!”


끼이익.


와다닥 움직이며 대열을 갖춘병사들이 활을 당기자, 소름돋는 소리가 울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그리고 당장이라도 무엇이든 꿰뚫을 것만 같은 화살촉.


수백의 관군과 대치하는 여인은,  살떨리는 광경에도 태연했다.

“발사!!!”

장수의 명령과함께 놓아지는 활시위.
투박하면서도 날카로운 파공음이 루크레시아를 향해돌진했다.
이대로라면 무수한 화살에꽂혀 사망.



“흩날려라 만본앵.”


그러나 그녀는 태연했다.
샤르륵 흩어지는 검신을 믿고 의연하게 화살들을 바라봤다.
찰나의 순간임에도 그녀에겐 마치 영겁.
꽃잎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검은 그녀의 앞을 겹겹이 둘러싸며 하나의 거대한 꽃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즈음 빗발치는 화살이 도착.
맹렬한 기세를 내뿜던 그것들은 거대한 꽃에 닿자마자 무수한 가루로 갈려 사라졌다.


마치 화살을 빨아들이는 듯한 형상.
닿는 부위부터 가루로 갈려 사라지기에 화살과 같은 발사체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무,무슨…?!”


장수는 생전 처음 보는 무공에 당황했다.
뛰어난 무사는 종종 화살을 튕겨내거나 피하곤 하지만, 이번처럼 요상한 기술로 파훼하진 않았다.
도대체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시시하군.”


짤막한 한 마디.
거대한 꽃이 순간적으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가, 루크레시아의 손을 향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뭉쳐 본래의 형상을 이루었다.

“정의13대 총대장이자 1번대 대장 루크레시아. 은하제국 황제의 명에 따라, 귀관들을 도륙하겠다.”

서슬퍼런 말을늘어뜨린 그녀가 이번에는 만본앵을 사용하지 않고 모습을 감추었다.
서현을 비롯한 시녀들처럼바닥이 부숴지지도, 먼지가 흩날리지도 않았다. 그저 공기가 극도로 압축되며 발생한 굉음만이 사방을 강타할 뿐.

“공격이다!! 총원-! 전ㅡ,”

장수는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외쳐보려 했지만, 그의 입술이 열렸을 땐 이미 목에 금이 가 있었고, 몇 음절을 지났을 땐 솟구치는 피와 함께 목 위로 비스듬히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ㅡ투….”

툭.

허무하게 떨어져 굴러가는 장수의 목.
루크레시아는 실망가득한 눈으로 내려보았다.

“장수란 자가 병사들보다 먼저 쓰러지다니. 한심하군.”


푸화악!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어있던 병사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나서야 힘없이 쓰러지는 수백 구의 시체.

1초도  되는 시간에 수백 명을 학살한 그녀였지만, 루크레시아는 아무런 감흥 없이 후두둑 쏟아지는 핏물을 맞으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피의 비가 그치자, 기를 터뜨려 몸과 옷에 묻은 핏자국을 날려버린 그녀는 다음 타겟을 향해 이동했다.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은 닝보를감싸고 있는 관군들을 처리하는 것.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지만 아마도 1각 정도면 완수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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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시아는 1각이 채 되지 않아 닝보를 둘러싼 관군을 전멸 시켰다.
비상사태인 만큼 닝보에 파견된 관군은 절강성 전체 관군의 절반을 넘기고 있었고, 이는 절강성의 전력을 그녀 혼자 절반이나 깎아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1각 만에.


 초유의 사태는 아직 절강의 도지휘사에게 전달되진 않았지만, 만약 전달된다면 절강을 넘어 명 전체가 뒤집힐만한 사건이었다. 고작  명에게 관군 수천이 떼몰살하다니.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시작.

절강은 항주를 비롯한 넓은 평야지대를 갖고있고, 자연스레 인구도 많아 도시와 마을, 고을의 수도 상당했다.
유은은 1차적으로 이 모든 곳을 평정하고 자신의 휘하에 넣고자 했다.
물론문파들 역시 포함해서.

절강에서 유명한 문파라 하면 크게 4개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화궁이고, 그 뒤로 보타문, 절강흑도문, 칠륜보 등이 있었다.


유은은 미리 일러둔 대로 여인들을 파견하고, 본인은 세이코와 하루나 카렌 까지, 육변기들만 데리고 보타문으로 향했다.
항주에서 배를 타고 가야하는 만큼 꽤 번거로운 여정이었지만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주인님, 절강확보가 15%정도 완료됐다고 합니다.”


둥둥 떠 있는 배 위에서, 무전을 받은 세이코가 보고하자, 유은이 흐음. 하고 고민에 잠겼다.

“15%라…오래걸리네 생각보다.”
“아무래도…큰 곳이니까요.”
“하긴. 남한만한 땅인데 정예들만으로 점령하는 건  무리가 있는것도 같다.”


처음에는 점령이라는 걸 굉장히 쉽게 생각했다. 어차피 전투력은 넘사벽이니까.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고보니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점령하고 점거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어져야 가치가 있는 것. 제대로 된 점령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백성들을 관리하고 세금도 걷고 중앙의 명령을 전달하고 이행할 관리들을 파견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현재하렘궁엔 그런 전력이 매우 소수였고, 이는 절강을 전체적으로 점거하는 것만해도 인력난에허덕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사용하자니 전문성과 전투력이 떨어지고, 그나마 나은 것이 이화궁의 무사들인데, 그마저도 은하제국에 소속된 시녀와 비서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전투력이 떨어져 일당백의 전략병기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하렘궁의 장점인 ‘소수의 절대정예 투입’이 사라진다는 것.
생각해보면 현대나 이세계에서도 유은은 제대로 된 점령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서현을 비롯한 시녀들을 대충 떨구는 정도랄까.

중국을 점령했을 땐 보지니아를 터뜨려 정복했고, 일본의 경우는 지도부를 협박하여 강제로 조약을 맺게하고 통째로 삼켰다.
땅 하나하나 일일이 점령해가며 싸워본 적이 없는 것이다.

“왠지 고구려가  더 넓게 정복을 안 했는지 알 거 같다.”
“?”

전 일본인 세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땅을 넓히면 뭐해. 파견할 관리가 없는데. 절강 하나만 해도 이 모양인데 중국 전체를 먹으려면…진짜 보지니아 써야되나? 그거말고 답이 안 보이는데. 아니면 스탯을 왕창 가지고 오거나.”

유은은 두 가지를 심히 고심했지만, 어느쪽도 무림이 아니라는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사이 어느덧 그가 탄 배는 보타문이 있는 섬에 도달했고, 소식을 듣고 나와있는 보타문의 무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맨 앞에는 굳은 얼굴로 유은들을 응시하는 우수린이 있었다.



“뭐, 좋아.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도록 할까.”

유은은 바지를 벗고 배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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