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51)화 (450/517)



〈 451화 〉39.춘추무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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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파도가몰아치는 바다.
 파도를 타며떠다니는 배들.

수현은 새벽녘의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어젯밤, 그녀는 결국 유은과 일을 치르고 말았다.
그와 장로들이 뒹구는 것을 엿들으며 자위했고,  중에 유은이들어와 덮쳤다.

이유야 어쨌든 15년간 지켜온 정절을 잃어버린 것은 매한가지.
그녀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자괴감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다.

“후우….”



하지만 한편으론 뭔가 홀가분하기도 했다.
말이 쉽지, 얼굴도 볼 수 없는 정인을 기리며 15년을 지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녀는 알게모르게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었고, 이것이 강제적으로 해소된 지금,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미안해요 덕배씨.”


지금쯤 자신처럼 서른이 되었을 그를 생각하며, 수현은 모래를 한웅큼 쥐고 바다에 뿌렸다.
이젠 더 이상 그를 정인이라 칭할 수 없다.
진정한 이별이다.



“이제 어쩌지?”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며 정인과의 이별을 선고한 그녀.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음을 떠나보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할  뭔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껏 하던대로 여세린을 섬기며 사는 것이야 변치 않겠지만…중요한 건 유은을 어떻게 대하느냐.


아마도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그는 여세린의 안주인이 되어 이화궁의 주요인물로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여세린은 자신의 최측근인 수현에게 그에 대한 수발과 관리를 맡기겠지.
그런데 수현은 유은과 잠자리를 가졌으니 그와 혼인해야 하는 입장이다. 적어도 대고려인인 그녀는 그랬다.

“허락…해주실 리가 없겠지.”

장로들과의 공유를 금지했을 정도로 유은에 대한 독점욕을 불태우고 있는 그녀인데, 수현이라고 허락해 줄 리가 없다.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걸 알게되면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명의 장로들이 유은과 신나게 뒹굴었다는 점일까. 여세린이 막나가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지금처럼 사정간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장로 셋과 군사 한 명을 처분할 정도로 뇌가 장식은 아니었다.

“…바보같아.”

자기도 모르게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란 수현.
자괴감 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군사님!!!”







그때, 급히 달려오는 이화검수 한 명.
그녀는 헐레벌떡 뛰어와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이었다.


“큰일났습니다!!”
“큰일이요?”
“본궁이…본궁이 불타고 있다 합니다!!!”
“?!”

본궁이 불타다니?
순간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수현이 갸우뚱하자, 여인이 얼른 가봐야 한다며 수현의 팔을 잡아 끌었다.

“세분 장로님들과 함께 돌아갈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속히 가셔야 합니다.”
“아니…본궁이 불타고 있다고요?”
“외적의 침입을 받은 모양인데, 연락도 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본 게 전부라는데…아무튼 좋지 않습니다.”
“???”


그 이화궁이 불타고 있다니.
그것도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

어디 남궁세가라도 쳐들어온 걸까? 아니면 무림맹의 보복?

깊은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부리나케 경공을 펼쳐 일행이 머무는 객잔으로 향했다.

일각 내내 경공을 펼쳐 객잔에 도착하자, 이미 장로들과 이화검수, 유은은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팔장로!”
“빨리도 오셨네요. 일군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본궁이 불타고 있다니.”
“저도 방금 들었어요. 일단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것 같으니 얼른 돌아가죠.”

장로들도 못지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그럼 먼저 가시지 그랬어요.”
“하. 그랬다가  보타썅년들한테 우리 유은씨랑 일군사가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아….”
“쯧쯧쯧…명색이 군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곤 해도 아직 열 명이 넘는 장로와 오백에 가까운 이화검수가 상주하고 있어요. 쉽게 무너질 리는 없으니 안심하셔요. 군사님.”
“….”


뭔가 비아냥 거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긴급상황이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알았어요. 이제 출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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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악!

“꺄악!”


줄줄이 소세지처럼 마당으로 끌려나오는 여인들.
이화궁이 전소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당연하지만 구예나의 공격은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화궁 전역이 폭삭 주저앉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서현은 비서들을 동원하여 미녀들 위주로 최대한 수습했고, 결과 사망자를 열 명 안팤으로 조절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정의 3번대 대장 키라라 사토미의 역할이 매우 컸다.

본래 D-10 일본지부의 고위 스카우터로서 활동하던 그녀는, 잦은 학대와 노예취급으로 인해 극도로 소심한 성격에 말까지 더듬는 안습한 여인이었지만, 현재는 그런 모습을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그저 방관하면서 이지메에 동참까지 했던 일본지부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한 편이라 자신을 구해준 유은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의 활약 덕에 쓸만한 여인들은  모아서 수습할 수 있게 되었다.


“어허. 발이 느리다.”

어디선가 구해온 채찍을 휘두르며 교관노릇을 하는 소령.
그녀는 한 손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이화궁의 여인들을 갈궈댔다.
어차피 죄다 인간말종들인지라 양심의 가책은 전혀 없었다.


“크윽…궁주님만 오시면…!”
“시끄러 이년아. 범죄자썅년들 주제에 말이 많아.”
“너무 험하게 다루지 마요. 다 시녀가 될 년들이니까.”
“으응???”

지나가며 툭 말을 던지는 서현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는 소령.

“우와. 우리 비서실장님에게 그런 말도 다 듣고. 어이가 가출하신 거 같다.”
“왜요. 그게 싫으면 당신한테 했던대로 해줘요? 물론 당신도 포함이고.”
“지랄.”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그머니 물러서는 소령.
이곳에 와서 꽤나 틱틱대긴 했지만 그래도 서현은 그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괜히 건드려서 좋을  없다.

“시녀드론이 배송되는대로 전부 시녀로 만들 거예요. 그 장로들이라는 년들부터.”
“아. 걔네들은 꽤 먹어주던데. 여기 인간들은 어떻게 된 게  이뻐.”
“무공을 익힌자들은 대체로 신체관리가 잘 되니까요. 간단하게 교육 해주시고, 인원파악도 제대로 해주셔야 돼요.”
“그래그래. 까라는데 내가 까야지 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짜증나니까 집어치워요.”
“쁏.”

입으로 요상한 소릴 내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은소령.
서현은 순간 욱했지만 한숨을 내쉬고 떠나갔다.


다음 서현이 도착한 곳은 루크레시아가 있는 곳.
그녀는 한창 바닥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정의 13대 총대장님.”
“?”

오타쿠답게 풀네임으로 불러주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서현의 부름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앞으로 이곳을 무림의 근거지로 삼을 것 같으니, 청소  해주실래요?”
“청소?”
“예. 무너져있는 것들만 대충 치워내면   같은데.”
“어렵지 않지.”


그녀는 훌쩍 일어나더니 조심스레 검을 뽑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얼굴 앞에 검집을 놓고 스으윽 하고 뽑는 것이 어지간히도 폼잡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뽑힌 검.
루크레시아는 몇 번인가 검을 휘두르더니 얼굴 앞에 세우고 조용히 외쳤다.


“흩날려라 만본앵.”

서현조차 움찔할 정도의 오글거림이 있었지만, 그래도 위력은 확실했다.
무수한 꽃잎이 된 그녀의 검이 이화궁 전역을쓸고다니며 무너져내린 잔해라던가 하는 것들을 먼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술 더 떠 지반까지 평평하게 만들고는 꽃잎들을 회수했다.
완전한 평지.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며칠은 걸릴듯한 놀라운 경지!

그녀는 보란듯이 고개를 들며 폼나게 꽃잎들을 회수했다.

“더 필요한  있나?”
“지금은 없네요. 일단기본적인 건물을 좀 지었으면 좋겠는데….”

화려했던 이화궁은 모두 사라졌다. 그 자재들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연히 이곳은 허허벌판.

“건물이라면 이곳 사람들을 징발하면 되지 않나. 족히 10만은 되어 보이는데.”
“그랬다간 관이랑도 척을 져야해요. 어제만 해도 관에서 찾아왔잖아요.”
“그게 상관이 있나? 어차피 이곳도 점령할 텐데.”
“그건…그렇긴 한데….”

물론 언젠가는 관이고 뭐고 싹 쓸어버린 후 점령지로 삼을거다. 하지만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유은의 의도를 알지 못하니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하…얼른 오셔야 할 텐데.’

아마 지금쯤이면 그를 데려간 이화궁 무리에게도 소식이 갔을 터.
유은이 오면 그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움직일  있다.



“흐음…뭘 생각하는 지 잘 알겠군.”

루크레시아가 고민에 빠진 서현쪽으로 몸을 돌렸다.

“주인이 없어서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한다는 건가.”
“…맞아요.”

루크레시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서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주인님은 그런 걸 가지고 우릴 버리지 않으신다. 믿음을 가져라.”
“아니…그런 문제가….”
“그런 문제가 맞지. 그대는 지금 주인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뭔가 핀트를 잘못 잡았지만 루크레시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깨에 올렸던 손을 떼고 몸을 돌리며 마치 명상하듯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게는 두 가지 믿음이 있다.”
“아니….”
“그대와 나를 비롯한 모든 시녀들은  마음과 몸을 다해 주인을 섬기고,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믿음.”
“….”
“그리고 우리주인님은 그런 우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서현은 왠지 잘못 걸린 것 같아 한숨을 내쉬었다.

스윽.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건지, 마치 영화속  장면처럼 루크레시아는 적당한 속도로 서현을 돌아봤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주인을위한 일이라면 밀어 붙이면 된다.”
“아니…제가 그거때문에얼마나 많은 말들을 들어먹는지 아세요? 마마님들이라던가. 안 그래도 저사람 제어 좀 해야 하지 않냐는 말들이 저는 물론이고 주인님한테까지 들어간다고요. 그리고 지금은 주인님이 뭘 원하시는 건지, 무슨 계획이신건지도 모르고요.”
“흠. 과연. 그런 의미였군.”
“하….”

드디어 알아먹은 건가.
안도의 한숨.

하지만 서현의 그런 마음은 마치 ‘해치웠나?’와 같았다.

“그럼 그대는 그냥 흔해빠진 시녀로 남으면 되겠군. 평생.”
“뭐라고?”
“왜 화를 내는 거지? 그대가 한 말은 그야말로 충실한 시녀들이 할법한 말이 아닌가. 그게 싫나?”
“아니 당신이 말을ㅡ,”
“내 말을듣고 화가 난다는 것은 시녀 이상을 바란다는 것이고, 그럼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위축돼 있으면 안 되지.”
“….”


루크레시아는 다시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평생 평범한 시녀로 남길 원한다면 지금 이대로도 좋다. 오히려 예전의 그대보다 훨씬 낫겠지. 일도 안 벌리고, 문책도 안 당하고,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시키는 것만 잘하고. 본디 시녀란 그런 존재니까. 하지만.”

그리고 다시 서현을 돌아봤다.

“시녀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 머리속에 있는것을 그냥 밀어 붙이는 편이 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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