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44)화 (443/517)



〈 444화 〉38. 절세미공자(絶世美公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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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혁(南宮弈).

현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家主) 남궁거휘(南宮巨彙)의 동생이자, 남궁유이(南宮由利)의 삼촌인 그는 사십 평생을 무공(武功)만을 위해 살아왔다.
오로지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에만 집중했고, 남자 무인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색도 철저히 멀리했다. 심지어는 연애마저도.

덕분에 형인 남궁거휘(南宮巨彙)의 딸 남궁유이(南宮由利)가 18세가  되어갈 동안, 그는 여인의  한 번 만져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인생이란 무공(武功)이었고, 그 외의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형은 천하십대고수(天下十代高手)로 손꼽히는 남자.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재능도 경력도 딸린 만큼 모든 것을 무공(武功)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高手)  한 명이 되었고, 현재는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장로로서 무림맹(武林盟)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하아….”


평소라면 무공연마에 한창일 시간.
그는 답지않게 마루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최근들어 한 가지 근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은…안 오는 건가?”

아니, 이걸 근심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봄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난생 처음으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무공(武功)밖에 몰랐을 적에는 왜 여인 같은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 전 그는 이해할  있었다.


인간의 본능(本能).
그것은 인간의 의지 따위로 거스를  있는  아니었다.

여인을 탐하는 사내의 마음.
남궁혁(南宮弈)은 본인에게 그것이 없다 여겼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
단지 인생을 바치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여인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보자마자 아랫도리가 쭈뼛하고 서면서, 동시에 끄트머리가 축축해지는 아찔한 경험.
그야말로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그 여인은 이후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그의 나이 사십.
어떻게 봐도 이십대를 넘어서지 않은 여인을 차지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설령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위세를 빌린다 하더라도 그만한 미녀라면 얼마든지 거대세가(巨大世家)의 젊은 자제들을 고를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황실의 눈에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에 빠짐과 동시에 절망했다.
그리워함과 동시에 괴로워했다.


이루어질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멀리서, 아니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하루하루 감사했다.
오늘은 또 어떤 향기를 풍기며 다가올까,
 어떤 옷을 입고 걸어올까.
 어떤 표정으로ㅡ,



-장로님, 하렘궁의 일호법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상념에 잠겨있던그를 번쩍 깨우는 목소리.
그토록 애태우며 듣고 싶어했던 여인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소식이었다.
하렘궁의 일호법이라면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여인이다.

절세가인(絶世佳人) 임서현.


등장과 동시에 무림맹(武林盟) 최고회의를 정적으로 채워버린 여인.
그녀가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얼마 되지않았지만, 그 충격은 벌써 중원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인을 뜻하는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는 사자성어가 강호명으로 붙었을까.
그녀는 압도적인 미모로, 고위 장로에게 대들었다던가, 심지어는 패버렸다던가 하는 좋지않은 소문 따위는 일순간에 묻어버렸다.
화산파(華山派)의 장로를 일격에 무너뜨린 그 엄청난 무위(武威)도 묻혔다.
정파인 보다는 사파인에 가까운 성격 역시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저 존재 자체를 빛으로 여기는 분위기.

직접적으로 그녀와 대립했던   명의 장로들을 제외한다면 그녀의 출몰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어,어서 모시거라!”


말까지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안절부절 못하며 방에 있는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딱히 난잡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었다.

이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발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


세상이 멈추는 느낌.
옆머리를  뒤로 스윽 넘기며 걸어오는 그녀는 가히 세상을 멈추는 능력이 있었다.


시간은 느리게.
심장은 가쁘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듯 꽤나 달라붙는 복장을 입고 있었다.
환상적인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숨이 막힐 지경.

서현이 멋대로 자리에 앉고 나서야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어,어서 오시지요. 거기에 앉…이미 앉으셨군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이가 상당히 많이 차이나는 윗사람을 상대로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에겐 좋게만 느껴졌다.


“예.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그는 과장되게 반응하며 시녀에게 차와 다과를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이 장로께서 수련하시는 시간이라 들었습니다. 시간을 과히 뺏을 생각은 없으니 다과는 물리셔도 됩니다.”
“아…그렇군요. 수련…그렇지요.”

서현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는 남궁혁.
그는 내심 실망했지만 서현의 말대로 다과를 물렸다.
그녀 입장에서 혼인하지 않은 남자와  둘이 오래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 심히 좋지 않을 테니까.

서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남궁세가(南宮世家)가 안휘성에 있다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사파(邪派) 세력권에 조금 가깝긴 하죠.”
“그리고 잔살마(殘殺魔)가 있는 이화궁(梨花宮)은  근처에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음…근처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마냥 가깝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중원 전체를 따지고 본다면정말 가까이 있긴 하지요.”

그는 최대한 친절하게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잘 보이려는 것도 있었지만, 딱히 어려운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 이화궁(梨花宮)과 관련하여 들려온 소식은 없으신지요?”
“소식이라면…?”
“여세린(余勢躪)이 이미 궁(宮)으로 들어갔다던가 하는 소식 말입니다.”
“흠….”


과연.
생각해볼 만한 문제였다.


그녀가 있는 하렘궁의 궁주(宮主)가 납치된 지도 벌써  달을 향해 가고있으니,  시간이면 이화궁(梨花宮)에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
어쩌면 남궁세가(南宮世家) 본가(本家)에선 관련정보를 이미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그와 관련해서제게 들어온 정보는 없습니다. 하지만 알아낸다면 반드시 알려올 것이니, 그때가 되면 호법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서현은 그 말에 작게 미소지었다.
그걸 어떻게 이해했는지, 남궁혁은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렘궁의 궁주(宮主)는 절세미공자(絶世美公子)라 불리는 남자다.
한 번도 그의 눈으로 직접  적은 없지만, 세간에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미색이 심히 강해 같은 남자도 질투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여자라면 말할 것도 없을 터.


서현 역시 여자.
그토록 아름다운 남자를 궁주(宮主)로서 모시고 있다면 더더욱 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절망에 절망이 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방금의  표정.
궁주(宮主)를 구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자, 조금의 웃음기도 없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애정을 나눠본 적이 없는 남궁혁이라 할지라도 그 표정이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있다.




분명, 절세미공자(絶世美公子)라는 인간은 서현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

문득 살심(殺心)이 솟아올랐다.
서현의 저 미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천하십대고수(天下十代高手)인 자신의 형을 이기겠다는 마음보다,
서현의 마음을 가져간 남자에 대한 살심(殺心)의 정도가 더 컸다.


무려 사십년을 키워온 향상심보다,
한낱 색정을 위한 살심이 더 크다니.

자괴감이 동시에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그는 살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저버리기에는 코앞에서 복도한 서현의 미모가 너무나 눈부셨다.

가질 수만 있다면….
손에 쥘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못 하겠는가.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에게서 답을 들은 서현은 깔끔하게 일어섰다.
일말의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 얼굴에, 남궁혁(南宮弈)은 서운함과 함께 어두운 생각이 불끈거렸다.

가지 말라고, 이대로 있으라고,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강제로라도 팔을 붙들어 당기면서 이곳에 남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지금 가지고 있는 일말의 관계마저 끝.

서현은 미모로 유명하지만, 화산파(華山派)의 장로를 일격에 제압한 무서운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 정도의 무공(武功)은 남궁혁(南宮弈)이라 해도 쉽게 해낼 수 없는 것이니 어찌보면 그녀의 실력이 그보다도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서현을 차지할  있는 기회를.

“안녕히…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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