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07)화 (406/517)



〈 407화 〉35.우주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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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친 짓입니다.”


연설을 끝낸  자신의 방에서 정비를 하고 있던 야렌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자위대 파벌’과 함께 우국부흥회를 크게 양분하고 있는 ‘모험가 파벌’의 수장, ‘하시모토 쿄자키’였다.


그는 무능하고 현실감각 없는 자위대와는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다.
모험가가 되기 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고, 호주나 유럽에서의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모험가가 된 후로 꾸준히 실력을 쌓아 공방 1만 후반대의 준수한 스탯을 올렸다.

지금이야 강남에서 스탯이 많이 풀린 관계로 개나소나 3만 4만을 넘나들고 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 정도의 스펙이면 세계적으로 먹히는 수준이었다.

“으응? 또 그 소린가?”


야렌 중장은 그의 말에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과 반대되는, 정확히는 ‘극우’를 혐오하는 ‘정상인’인 쿄자키와는 성향이 정반대.
덕분에 그저 보고만 있어도 껄끄러웠다.


대일본의 부흥을 위해 잠시 손을 잡고 있다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난다면 서로 삿대질하며 쌍욕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저 가증스러운 것들이 감히 신성한 고쿄를 더럽히려 하는데 가만있으란 말인가?!”
“장소가 신성한 것이 아닙니다. 신성한 건 사람이지요! 아직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나섰다간 떼죽음입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팡팡치는 쿄자키.
야렌 중장이 그를 껄끄러워 하듯, 그 역시 야렌 중장을 껄끄러워했다.
아니, 극우를 혐오하는 만큼 그 역시 혐오했다.

하다못해 야렌 중장이 제대로 된 능력이라도갖추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에겐 무엇 하나 재능이 없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연설이랄까.
그마저도 궤변과 요깃거리로 가득 차 있었으니, 알맹이는 없는 셈이었다.

“허허. 떼죽음이라니!  사람아. 그곳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겠는가? 족히 수만은 될 것이네! 그뿐인가?  순간 순간이 전 세계로 생중계 될 것이 분명한데 제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쉽게 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터! 이럴 때 우리가 독립을 외쳐지 못한다면 언제 외칠 수 있겠는가!”
“예. 수만 명이나 되지요.그런데 그들이 중국을 상대로 한 짓을 잊으셨습니까?”
“여기서 중국이 왜 나오나? 우린 대 일본, 야마토 민족이라고!”
“아니….”

순간 깊은 빡침이 몰려왔다.


“비록 현대로 오면서 많이 희석되었다곤 하지만, 우리 야마토 민족은 천황 폐하의 은을 항상 잊지 않는 위대한 민족이네. 우리가 먼저 만세를 외치면 머지않아 수만의동포들이 동조할 테지. 그리되면 제 아무리제국이라 해도 감히 우릴 탄압할  없는 것이네. 어찌해야   몰라 허둥대겠지. 그럼 우린 그 틈을 타 천황 폐하를 구출해 내고  일본을 다시 선포하면 되는 것이네.”
“그게   없지 않습니까!!”

허무맹랑한 소리다.
아니, 그냥 개소리다.

천황 폐하의 은혜라는 대목부터 개소리지만,  뒤의 말은 그냥 들을 필요도 없는 잡소리다.
이미 중국에서 10억 명을 학살한 제국인데, 고작해야 수만 명을 추가로 죽이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우리가 먼저 나서면 동포들이 동조할 거라고?
그래. 한다 치자.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조리 몰살이다.

그리고는 쓸데없이 우국부흥회의 존재가 만방에 알려져 일본열도 전역이 제국에 의해 불바다가 될 것이고 독립은 먼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간단한 걸 대체 왜 모른단 말인가.

“아무튼! 이런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으니 자네는 두  하지 말게. 그래, 그리도 걱정이 되면 자네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가만히 있게나.”


마치 겁쟁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매도하며 축객령을 내리는 야렌.
쿄자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방을 나왔다.

살다보면 도저히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도대체 어떻게 저딴 멍청한 사고방식이 튀어나오는  대가리를 열어보고 싶어지는 인간들이 있다.
그게 야렌 중장이었다.


“저딴 게 중장이었다니…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쿄자키는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번 작전에 전면 불참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죽음일 뿐인데 소중한 생명들을 그렇게 멍청하게 소모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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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고쿄에 마련된 커다란 광장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본래 고쿄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 훨씬 많은 곳이었다.

이곳도 그  하나였으나, 고쿄를 총독관저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이나 시설을  밀어버리고 광고 및 선전을 위한 대국민 광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용인원은 대략 5만 명.
마음 먹고 무리를 한다면 능히 8만 명도 가능할 정도다.

지금도 사람이 빽빽 들어차있다.
약 1만 명이 후지산 자치령에 부임된 시녀와 보지니아였고, 나머지 대략 6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모두 후지산 자치령의 신민들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은 강제동원된 사람들.
아무리 일본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고 순종적이라지만 나라를 빼앗은 이들의 행사, 그것도 ‘총독 취임식’이라는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을 도와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절대다수가 강제동원된 이들이었고, 자발적으로 이곳에  이들은 극히 소수였다.

그리고 그 극히 소수 중에는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들을 알리고 일본의 재부흥을 알리고자 하는 우국부흥회의 일원도 있었다.

정상인이라면 너무나 멍청한 작전이라는 걸  수 있었기에 참가자는 꽤 적었다.
하지만 그래도 수백 명.
야렌 중장을 위시로 한 자위대 파벌이 커다랗게 참여했고, 모험가 출신 중에서도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저 구경  번 해보기 위해 참여한 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수백 명.
이들은 긴장한 심장을 느끼며 광장에 마련된단상으로 시선을 야부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1대 총독으로 부임할 서현과 취임식에 참관하기 위해 방문해온 유은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두드리며 행사를 시작했다.
유은이 들어올 때 엄청 요란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평범한 행사였다.


여러 순서가 지나고 1대 총독으로 부임한임서현이 단상에 섰을 때, 그동안 가만히있던 우국부흥회가 그제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서현이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두어 번 두드렸을 때, 갑자기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품에 넣어둔 일장기를 높이 펼쳐 보이며 외친 것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드넓은 광장이 모두 울릴 정도로  목소리.
막 입을 떼려던 서현이 순간 멈칫했다.

 찰나를 이어 또 저편에서 누군가가 일장기를 높이 펼치며 만세.


“덴노 헤이카 반자이!!!”





 번째 외침.
그것 역시 커다랬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

그리고 연달아 이어지는 함성.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일장기와 욱일기를 펼쳐 보이며 반자이를 외쳐댔다.



“뭐야 쟤들.”

황당해하는 유은의 목소리.
그것은 서현에게 마치 번개처럼 들렸다.


유은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를 섬기는 서현에겐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리는 어떻게 보면 유은이 그녀에게 선물을 주는 장소!
너무나도 신성하고 절대적인 장소인 것이다.

그런 곳에서 감히 분탕질이라니.
그녀의 마음 속에서 말릴  없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걸 모르는 건지, 우국부흥회의 반자이는 계속되었다.

점점 한 두명씩 여기저기서 올라왔고,
곧 광장에는 수십 개의 일장기와 욱일기라 펼쳐졌다.

그리고  즈음해서, 우국부흥회가 아닌, 강제로 이곳에 끌려온 일본인들이 반자이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러는 덴노 헤이카 반자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아예 ‘천황’이라는 존재자체에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의문이나 거부감 등은 타오르는 분위기와 함께 사그라들었고, 그저 일본인으로서 하나되어 천황을 부르짖었다.

그것은 마치 산불.
걷잡을  없이 번져나가 수만의 불빛을 태운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처음 작았던 목소리가, 어마어마한 함성이 되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도쿄 멀리서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다.

수만의 외침.
수만의 갈망.

압도적인 그 광경 속에서, 서현은 멀뚱히  있었다.

물론 그들이 망상하는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그러는  아니었다.


그저 이 신성한 장소를 더럽히는 잡것들에게 참을  없는 분노가 피어올랐을 뿐이다.

“야. 저거 알아서 해봐라.”

그 와중에 유은은 킥킥대며 서현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마이크에 대고 나지막히 말했다.




“오늘부터 일본어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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