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화 〉34. 발악.
만약 순조롭게 1억 개를 모으게 된다면 그 가치는 무려 1조 달러. 1년 국방예산과 거의 비등한 수준이 된다.
“흠…일단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가라앉은 얼굴로 신음하더니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단 1명에게 이 모든것을 몰아줘야 한다면 적용해야 할 심사기준이 너무나 강화된다.
일단 효율이 높아야 함은 물론이고, 절대적으로 미국을 배신해서도 안 된다. 또 미국에 충성한다 하더라도 유은 같은 망나니 성정을 지녀서도 안 된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스탯을 계속 모으면서 각지에서 올라오는 인재정보를 토대로 후보를 고르도록 하죠.”
“그 후보하니까 생각난 겁니다만, 현 아녜스 총회장은 어떻겠습니까? 현장에 나가있지 않아서 그렇지, 유은이 등장하기 전에는 인류 최강의 모험가였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유은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이보다 확실한 후보가 있을까요.”
한 상원의원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미국 지부장은 즉각 부정했다.
“그녀는 안 됩니다.”
“왜 그렇죠? 국적이 문제라면 회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그녀는 지극히 오만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총회장이 된 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흠….”
아녜스가 총회장을 죽여버리고 그 자리를 찬탈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소속 기관에 정보를 전달하려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행동을취하기 전에 아녜스의 정보통에 의해 모조리 숙청당했고, 당연히 그 윗선도 모두 짤려나갔다. 덕분에 고위간부직에 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의문사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 역시 묻힌 상태.
물론 완전히 틀어막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정보력이 강한국가에서는 알고 있지만이미 권좌에 오른 D10의 회장을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었기에 쉬쉬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권력투쟁의 일환 아닙니까. 우리 미국에 충성한다고 하면 까짓거 D10 회장쯤 계속 하게 두죠.”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있으니까 문제지요. 그리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남편은 궁에 의해 살해됐다지만, 그 딸은 오히려 궁에서 일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궁에서 일하고 있다면 설마 시녀란 말입니까?”
“예. 그쪽도 생각이 있으니 하렘플에는 뜨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우 신빙성이 높은 정보이기 때문에 아녜스 회장은 최소한 궁에게서 모종의 협박을 받는 상태라 보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녜스는 절대 후보로 둘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궁에 약점이 잡혀 있다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니까.
“그럼 참으로 막막하군요. 언제 그녀와 같은 인재를 찾아 후보를 선출한단말입니까.”
“그 이전에 D10의 총회장마저 궁의 입김을 받는 상태라면…정말이지 절망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될 것 같군요.”
“전에 그녀가 방한한후 궁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나왔지 않습니까? 혹시 그때….”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되었겠습니까?”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D10이 이미 궁에 넘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자. 진정들 하시죠. 그게 정말 확실한 정보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매우 신빙성이 높다지만 100퍼센트 확실한 게 아닌 이상 쓸데 없는 걱정은 삼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어차피 그녀는 궁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미국의 적이 될 인물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회장을 조용히 시키며 말을 이었다.
“D10의 중심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앞으로 본국과의 갈등이 심해질 것은 자명하지요. 어쩌면 던전시티내 화폐를 달러가 아닌 유로로 바꾸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니 설사 그녀가 궁과 한 몸이 되었다 한 들, 동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흠….”
그의 말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스탯을 모으는 것과 인재 확보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다른 일이 터지면 그때 대처하도록 하죠.”
“예.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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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강당.
단상 뒤 벽에는 커다란 일장기가 걸려 있었고, 좌우에 4분의 1정도 크기의 욱일기가 걸려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그 깃발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 물었다.
엄숙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한 공간.
그런 가운데 한 중년인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강당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들 잘 와주었다.”
첫 마디는 그것.
그것 만으로 이곳에 모인 이들이 얼굴을 숙이며 어깨를 떨었다.
일본이 식민지가 되어 한낱 자치령으로 추락한 후, 제국에서는 일본 전역에 일시적인 집회금지령을 내렸다.
학교나 회사와 같은 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10명 이상 모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계엄령처럼 내려진 이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구국을 위해 하는 운동.
지배자에게 있어 그것만큼 거슬리는 게 없다.
그렇기에 이 집회금지령을 어긴 자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위해 모인 자들.
찬탈된 국권을 되찾고 옛 일본의 영광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자리했다.
“현재 우리 일본은 저 가증스러운 유은의 무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파렴치한 방법으로 나라를 빼앗겼다.”
“크흑!”
중년인의 말은 마치 스위치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고, 여기저기서 울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은 위대한 황실을 모독하고 세이코 왕녀님을 볼모로 잡은 것도 모자라 무자비하게 능욕하고 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개새끼들!”
“그뿐인가?! 우리 대일본의 국기를 억지로 내리게 하고, 일본이라는국명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 저들은! 지금 우리를 ‘후지산 자치령’이라는 웃기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되지 않습니다!!”
“궁놈들을 쳐 죽여야 합니다!!!”
자위대가 해체수순을 밟으면서 가장 먼저 해임된 ‘무타구치 야렌’ 중장은 열성적인 스피치를 하며 사람들의 공감과 분노를 끌어모았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치가라는 놈들은 그깟 자기 잇속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잠자코 앉아서 저 가증스런 무리들이 이끄는대로 나라를 팔고! 국민을 팔고! 국명을 팔고! 국기마저 팔아치우며 이 야마토 민족을 뿌리째 넘기고 있다!!!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우리가 일어서 저들의 악함과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 국민들을 깨우쳐 맞서 싸우는 것이 마땅하다!”
“맞습니다!!”
“우워어억!!”
갈수록 격해지고 거칠어지는 중장의 연설은 30여분이 지난 뒤에야 끝이 났다.
대부분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애매한얼굴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가를 구해내는것에는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우익스러운 발언에는 반감을 가진 것이다.
“’우국부흥회’라는 이름부터 뭔가…느낌이 안 좋아.”
“그래도 일단은 우리나라를 다시 되찾기 위해 힘을 합쳐야지.”
“그건 그렇지만….”
무타구치야렌 전 중장을 중심으로 뭉친 ‘우국부흥회’는 중장의 인맥을 바탕으로 전 자위대 장교들을 규합하고 은밀하게 방위산업체의 지원을 받으며 무장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D10에 소속돼 있던 일본 모험가들을 대거 영입하여 덩치를 키우는데에 주력했다.
비록 집회금지령이 떨어져 있었지만, 일본은 독일보다도 국토가 넓기 때문에 작정하고 숨어 모이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정말로 제국이 몰라서 그냥 두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본이 식민지가 되고나서 구국을 위해 일어선 단체는 ‘우국부흥회’뿐만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국부흥회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다른 단체에 비해 규모가 넘사벽으로 거대한데다 야렌중장이라는 군부거물이 있었기에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너무나 많은 사공이 한 단체에모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했고, 특히 군부 인물들을 이끄는 리더이자 우국부흥회의 회장인 ‘무타구치 야렌’ 중장과 모험가 출신 인물들을 이끄는 ‘하시모토 쿄자키’의 갈등은 매우 심했다.
야렌 중장은 우익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극우 인물이었고, 쿄자키는 그런 우익들을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구국을 위해 한 곳에 모인 것은 동일.
여러가지 산재한 문제들을 안은 채로 우국부흥회는 첫 번째 활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