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화 〉34.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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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떠오르는 여인에게 세계가 주목했다.
본래도 한국에서는 유명한 여인이었지만(정재계에서만) 이번일을 통해 거의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렸다.
“이상입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하렘궁 소속으로서의 본인을 드러낸 채 하는 두 번째 공식회견.
소냐가 말을 끝내자마자 장내에 있는100여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물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고려일보의 전수아 기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방금 전 발표도 그렇고, 지난번에 공표하신 법안, 그리고 최근 궁의 도쿄지부 소속 시녀들의 행각 등등 하나같이 일본과 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일본 당국은 물론이고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우려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젊은 여기자의 질문에 소냐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방에서 카메라셔터가 터지면서 그녀의 전신이번쩍거렸다.
“저를 비롯한 법무부에서 내린 명령으로 인해 일본에 있는 많은신민들이 당혹스러워하고 분노마저 느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본 제국의 근간이 되는 제국헌법의 중요한 축으로서, 재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은 지난 9월에 있었던 궁일조약에 의해 본 제국의 식민지임을 자처하였고, 이에 대한 증거로서 도쿄시티의 완전한 할양과 총 6개 지역의 던전권리 이양 및 공주 거주지의 강남이전 등이 해당 조약에 명백히 쓰여 있습니다.”
“입조에 대한 내용도 조약에 들어 있는 건가요?”
“궁일조약 조항에는 없습니다만, 법무부에서 작성중인 식민지법에서 ‘입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입조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일각에서는 일왕이나 총리 대신 공주를 지목한 것에 있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이미 궁일조약에공주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본래 일본은 궁일조약이 체결된 직후 공주를 강남으로 보냈어야 했습니다만 황제께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것을 기회삼아 아직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조치일 뿐입니다.”
그녀의 질문이 끝난뒤에도 기자들의 세례는 끝나지 않았다.
“광명신문의 조광섭 기자입니다. 일본을 식민지로 삼는 것에 대한 근거에 대해서 계속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는 그보다도 그걸 이루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최근 도쿄지부에 속해있는 시녀들이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에 무단침입하여 당국의 허락없이 수사를 벌이는 등의 행동을 했고, 그 결과 고쿄에서 일하던 정원사 한 명을 역시 당국의 동의 없이 강남으로 이송시킨 바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이것이 장관님께서 사주하신 일인 것처럼 퍼져있는데, 사실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소냐가 잠시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사주하진 않았습니다.”
잠시 시끄러워지는 장내.
기자가 말을 더듬었다.
“그,그럼 도쿄 시녀들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법무부장관의 정당한 권한을 이용하여 관련부처에 협력을 요청하고 징발했습니다.”
“…정당…한 권한?”
누군가가 제대로 된 의문을 중얼거렸지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옆에 있는 동료기자와 말을 나누는데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타국의 성지를 무단침입할 것을 직접 명령하셨다는 말인가요?!”
멀찍이서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기자 한 명씩 일어나 질문을 주고받는 자리였기에 굳이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지만 소냐는 미소와 함께 대답해 주었다.
“일본 정부를 압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범죄자를 잡기 위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일본은 한국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타국입니다만! 게다가 한국법이 적용된다 해도 궁을 욕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압송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법과 제국의 법은 다릅니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이기 때문에 일본 헌법보다도 본 제국의 법을 먼저 적용받습니다.”
“예?”
슬슬 정신나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그럼 범인을 이미 잡았음에도 고쿄에서 시녀들을 물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본이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예?”
이쯤되면 기자회견은 대박 중의 대박.
아무말 대잔치도 이렇게 막나가진 않을 것이다.
소냐는 벙쪄있는 기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야릇하게 웃었다.
“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다음부턴 순서를 지켜주시기 바래요. 조광섭 기자님? 계속하시죠.”
“아? 예..예.”
기자는 가져온 수첩을 몇 장 넘기다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이건 이번 사건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 장관님 본인에 대한 질문입니다만,”
“네.”
“듣기로 장관님의 자녀인이유나씨가 궁의 주인…제..국 황제의 예비 신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장관께서는 황제의 예비 장모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네요.”
“…그런데 일각에선 장관님 본인도 황제의 예비 신부라는 설이 돌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사실인 겁니까?”
이 질문에 기자들이 촉각을 세우며 소냐의 입에 집중했다.
사실 암암리에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소냐와 유나 모녀가 동시에 유은의 여자라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하지만 이걸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또 다른 얘기다.
한국은 누가 뭐래도 일부일처이고, 중혼 및 축첩은 불법이었으니까.
아무리 유은이 여색으로 유명해도, 공식적인 부인을 여럿 두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논란이었다.
소냐는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심플하게 대답했다.
“둘 다 사실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절대 심플하지 않았지만.
“예??”
이해하지 못한…아니 정확히는 이해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기자들이 동시에 반문했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서.
하지만 소냐의 대답은 동일했다.
“둘 다 사실입니다.”
“….”
예비 장모와 예비 신부 모두 사실이란다.
그 말은 즉 딸과 같은 남편을 두겠다는 건데, 한국 정서상 용서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게…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아니…그야 물리적으론 가능하겠지만…사회적으로…아니 그 이전에 자기 애인이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삼는 게 용인되십니까??!”
정말 이해가 안 됐는지 한 여기자가 일어서며 거의 외치듯 물었지만, 소냐는 또 심플하게 대답했다.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인데.”
누군가 팩트를 중얼거렸지만 사람들 모두 애써 무시했다.
“또 다른 질문 있나요?”
“어,없습니다….”
“그럼 다음 분 질문 받도록 하죠.”
“….”
다음순서로 넘어가자, 방금 일어나 외치듯 물었던 여기자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이화전보의 윤세리 기자입니다. 저도 장관님 개인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네.”
“최근 하..렘궁의 법무부장관으로서 갑작스런 신고식을 하셨는데요, 그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에서 수위에 드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계셨었지요?”
“뭐, 나름 유명했죠.”
“전관예우를 받는 고위검찰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대로펌을 낀 것도 아닌 개인 변호사로서 굉장히 드문 성취를 일구어 내셨는데요, 앞으로 변호사 활동은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아마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으로 변호사 일을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활동이 뜸해지신 걸로 봐서 궁 초창기에 합류하신 것 같은데, 왜 이제서야 궁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까?”
“초반에는 서현씨를 비롯한 시녀분들이 궁의 얼굴을 맡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본궁하면 가장 먼저떠오르는 사람이 황제와 비서실장일 겁니다. 하지만 점점 체급을 불려가고 있는 본 제국이기에 그 상징 역시 체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키운 체급이 장관님 본인이라는 말씀인가요?”
“후후. 그 점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여기자의 질문이 끝나고도 무수한 질문이 쏟아졌다.
“상당히 어려보이시는데, 아이템을 사용한 것입니까?”
“성녀로 유명한 유소라씨 역시 황제의 예비 신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까?”
“세 예비 신부 중 유일하게 약혼식을 올리지 않으셨는데, 이혼전과 때문입니까?”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 쳐도 딸인 이유나씨 역시 이를 너그럽고 용인하고 계신건지 궁금합니다.”
엄청난 양의 물음들.
중간중간 소냐의 심기를 자극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나름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질문.
“여성신문의 홍선희 기자입니다. 저는 다시 이번 사건에 대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네.”
“고쿄에 시녀들을 남겨두신 것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요.”
“네.”
“그럼 만약 일본 정부가계속해서 장관님의 말을 무시하고 공주를 보내 입조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묻고 싶습니다.”
“흠.”
거의 끊임없이 대답하던 소냐가 처음으로 1분 가까이 침묵을 지켰다.
그 모습에 괜히 긴장된 기자들의 움직임이 멎어들고, 여기저기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나온 대답.
그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하렘궁 치고는 지나치게 온화하달까?
그럴 수도 있다니?
하지만 역시 하렘궁은 하렘궁이다.
“중국이 그랬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