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71)화 (370/517)



〈 371화 〉32.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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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음. 오늘은 좀 평화롭네."
"...부장님 밖에 지금 난리 났는데요??"
"알아서 하겠지 뭐. 강남이잖아. 별 일 있겠어?"

분명 경찰, 그것도 고위경찰인데 경찰서에서 일어난 소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 역할은 모험가 범죄를 관리하는 거라고. 근데 강남에서 그런  일어날  없잖아."


오히려 게으르게 퍼져서는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누워있기까지 하다.
배 위에는 뜯어진 과자가 한 봉지.
이게 과연 직장에 있는 사람의 모습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나저나 추가지원은 대체 언제 해준다는 거야? 누가 대한민국 아니랄까봐 지들끼리 미루기나 하고 느려터졌네. 지원이 와야 뭘 하든 할 거 아냐~ 교육도 좀 하고. 어?"
"이게  부장님이 게을러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

팀원이 하나같이 그녀를 지목했지만 은소령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몸을 바쳐 경찰과 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둔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평생의 업적이라 생각하기에  이상 일할 의욕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상관인 도희가 더 힘들어 하는 거지만....


"서장님이 보시면 시말서 쓰라고 할 거예요."
"시말서어? 그게 뭐냐. 먹는 거냐?"
"애초에 말이죠. 부장님 사무실 놔두고 여기서 이렇게 놀고계시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구요."

설상가상으로 지금 그녀가 널브러져 있는 이곳은 그녀의 사무실도 아니다.
경정인데다 일개 부서의 부장인 만큼 널찍한 개인사무실이 마련돼 있었는데, 답답하다면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부하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뭐가 말이 안 돼. 이렇게 하고 있구만."

양쪽 다리를 번갈아 흔들면서 과자를 집어먹는 모습이 영락없이 땡땡이치는 여고생이다.

"살찔 거예요. 포동포동 돼지가 될 거라고요."
"응 아냐."
"그렇게 게으른 상태로 칼로리도 높은 ㅡ,"

부하직원이 계속 뭔가 말하려던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ㅡ과자를 먹으면...에?"
"왜? 서장언니라도 들어왔어?"

과자를 집어먹던 소령이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봤을 때, 이미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는 코 앞에 있었다.

"응?"


너무 가까이 있어서 누군지 알아볼  없는상황.

"건방진 태도도 용납이 안 되는데 이런 불량식품까지 집어먹고...감점될 만한 행동은 죄다 하는군요?"

그녀는 은소령이 먹던 감자칩을  움켜쥐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은소령이 발끈하며 상반신을 일으키자, '누군가', 즉 서현은 막무가내로 소령의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찾아내더니 그것마저 쓰레기통에 버렸다.

"당신의 육체는 주인님 소유에요.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되죠."
"이씨. 지금 뭐하자는 거야?"

목소리를 통해 서현이라는 걸 알게  소령이 의자를 치우며 일어났다.
일전에는 공포에 얼어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건드린다면 상황이 다르다.

맞써야 한다!

"은소령씨, 금일부로 충성도 부족 및 태도불손으로 특별교육대상자가 됐다는 걸 알려드려요. 교육은 황궁 비서실 산하 제국교육청에서 주관하며, 교육에리어에서 진행될 거예요. 기간은 1개월."
"뭐,뭐라고? 교육?!"

맞써야한다는 생각이 바로 들어가버렸다.
세상에 교육이라니.
그것도 임서현이 직접 찾아왔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현이 매우 아쉽다는 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중국문제를 제게 맡기신 덕분에  아주 바쁠 예정이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특별히 '직접' 교육을 시켜드렸겠지만...그럴 여력이  되니 단체교육에 편입될 거예요."
"우,웃기지마...이나이에 교육은 무슨 교육이야...."

서현이 직접 교육을 진행한다는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했지만, 그래도 서현이직접 찾아와서 선고할 정도면 심상치 않은 교육일 것이었기에, 소령은 괜히 기가 죽었다.
서현의 뒤를 슬쩍 보니 어쩔 줄을 몰라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도희가 보였다.

'도와줘요! 언니! 사랑해요! 언니!'


눈을 반짝이며 세상 착한 부하를 연기하고도희의 동정심을 자극해 보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다른지역도 아니고 강남에서 궁과 척을 진다는 건 자살행위. 게다가 그녀도 시녀가 아닌가. 자칫하다간 서현이 말했던 것처럼 교육대상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결국 도희는 소령의 시선을 외면했고, 그걸 본 소령은 극단적인 선택을 취했다.


"이익!"

바로 몸을 돌려 창문쪽으로 도주.
칸막이라던가책상이라던가 모니터라던가 하는 장애물이 무수히 있었지만 야마카시 타듯 넘어넘어 마침내 창문 앞까지 도달했다.

'내키진 않지만 일단 그자식한테 가면 살 수 있을 거야.'

기본적으로 물렁물렁한 유은에게 간다면 그의 뒤에 숨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녀.
하지만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잡아."
서현의 한 마디에, 지금껏 그녀 뒤에서 가만히 있던 집행부 시녀들이 쏜살처럼 튀어나가 양쪽에서 소령을 붙잡아 검거(?)했다.


"이익! 이거 놔!"

어떻게듯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벗어날 수 없다.

또각또각.

체포된 현행범처럼 바닥에 엎드려진 그녀에게, 서현이 다가왔다.
마치 저승사자의 발걸음.
그날 그녀가 창고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목격한 소령으로써는 날카로운 칼이 심장으로 진격하는 걸 보는 느낌이었다.


"불순분자로 분류되었음에도 주인님의 은혜를 생각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하는데 도망을 치려 해?"
한 층 차가워진 서현의 말투.
안 그래도 그녀는 소령을 맘에  들어 했는데, 오늘의 일은 그야말로 역린을 건드린 꼴이다.

서현에게 궁의 모든 시녀의 관리를 맡긴 것이 유은이기 때문에 서현이 내린 판단과 명령은 다시말해 유은이 내린 판단과 명령에준한다.
그것을 거부하고 도망치려 했다면 그야말로 유은에 대한 반역.

서현이 가장 혐오하고 쓰레기 취급하는 행동이었다.


꾸욱.

"히익!"

서현이 높은 굽으로 소령의 등을 밟았다.

"주인님이 아끼시는 년이 아니었으면 넌 여기서 폐기처분이야."
"...."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광기에 소령이 발악을 멈추었다.
다 살고자 하는 짓인데 괜히 여기서  그녀를 건드렸다간 창고에 있던 남자들처럼 토막쳐서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집행부 시녀들에게 연행(?)되었고, 그 장면을 도희를 비롯한 경찰들이 씁쓸한 모습으로 지켜봤다.

철컹.


"에?"

'부장님은 좀 교육을 받아야 할지도....'라고 생각하던 팀원들은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보고 물음표를 띄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그리고 서현의 말에 절망했다.
모두 다 소령과 함께 교육에리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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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리어의 규모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지하기지인 주제에 최대 10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고, 덕분에 사람들을 교육할 장소는 넘쳐났다.


은소령과 그녀의 부하들은  거대한 강당으로 끌려왔는데,거기에는 이미 선별청에서 분류한 시녀들이 천 명 가까이 모여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명령을 내렸을 텐데 번개와도 같은 속도다.

"많죠? 정말 통탄할 노릇이예요. 주인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다니. 심지어 이건 5분의 1수준이예요. 단순히 충성도만 따져도 교육대상자가 5천 명이나 되거든요. 어처구니가 없죠."


서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령은 뭐라고 태클을 걸고 싶어 속이 근질근질했지만 필사적으로 눌러 참았다.

미친년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씨발...좆같지만 이렇게 된 거 1달만 참자.'

그래.  같은 한국 경찰생활을 7년 넘게 해왔는데까짓거 한 달을 못 버틸까.

'두고봐. 허리놀림 같은 거 찰떡같이 배워서 베갯머리 송사로 써먹을테다.'

은소령이 발군의 조임과 테크닉으로 유은을 휘어잡아 서현을 혼내주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을 때, 서현은 홀로 걸어나가 단상으로올라갔다.
천 명에 이르는 시녀들이 각자 불만과 불안을 표출하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전부 조용."

마이크를 몇 번 두들기다 시끌시끌한 강당을 단 한 마디로 회장을 조용히 시킨 그녀가 좌중을 훑어 보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폐기 처분 후보'다. 알겠어?"



"...응? 폐기 처분 후보...?"
"시,싫어...무서워...."
"강제로 시녀가  것도 짜증나는데 이건 또 뭔...."


조용해졌던 강당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현이 말을 이었다.

"이미 통보를 받았겠지만, 너희들은 여기서 한달 간 교육을 받는다. 교육은 1주차씩 총 4주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1주차가 끝날 때마다 시험과제가 있다.당연히 점수가 매겨지고, 4주차가 끝날 때 모든 점수를 합산하여 최종결정을 내린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걸까.
시끄럽게 웅성거리던 시녀들이, 중간부터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있는 너희들은 '폐기 처분 후보'다. 한달 후 기준점수에 못 미치는 년들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말 안해도 되겠지? 장난으로 생각하지 마라. 이 교육은 주인님의 하해와도 같은 은혜를 저버린 너희들에게내리는 마지막 자비니까."

서현의 경고성 연설이 끝나고, 천여 명의 대상자는 100명씩  반, 그리고 10명씩  팀으로 짜여져 반장과 팀장을 뽑고 그녀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생활'이라 적힌 작은 책자를 지급받았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이미 서현의 연설로 인해 기분이 팍 상해버린 소령이 신경질적으로 펼쳐 읽기 시작했다.

 번째 장에 '시녀의 마음가짐'이라 적힌 복무신조 시녀판이 적혀 있었는데 참으로 가관이다.

우리는 주인님께충성을 다하는 하렘궁의 시녀이다!
하나. 우리는 오롯이 궁을 수호하며 세계소성의 역군이 된다!
둘. 우리는 다듬어진 미모와 철저한 테크닉으로 주인님께 봉사한다!
셋. 우리는 궁의 법률을 준수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넷. 우리는 충성과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만들거면 제대로 만들것이지, 어디서 이런 표절작을만들어왔는지. 어이가 없다.


그리고 다음장을넘기니 거기엔 전체적인 일정이 쓰여 있었는데, 그건  가관이었다.
그  가장 충격적인   가지만 뽑아보자면,



1.모든 교육생은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세면  강당에 모여주인님이 계신 방향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

2.매 1주차 교육이 끝날 때마다 주인님에 대한 찬양가 혹은 찬양시를 작성하여 제출, 우수한 작품의 경우 단상에서 발표할 기회가 생기고  경우가산점을 받는다.

3.매주마다 미술교육이 있는데, 교육이 끝날 때마다 정성을 들여 주인님의 초상화를 그린 뒤 그걸 보며 공개자위한다. 얼마나 빨리 절정에 달하고 중간에 얼마나 흥분했는지에 따라 충성도와 애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삼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여긴 정상이 아냐...."

은소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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